소설리스트

가짜마님이 사라졌다-82화 (82/145)

82화

요한은 에드먼의 대답에 기뻐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자신이 제시한 방도긴 하지만 위험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미 결단을 내린 에드먼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요한은 그를 따르기로 했다.

“요한.”

에드먼은 방을 나서려는 요한을 불렀다.

“예, 말씀하십시오.”

“누구냐.”

“예?”

“이 방도를 알려 준 게 누구냐.”

“그저 주워들은 것이라….”

“다시 묻게 하지 마.”

순간 요한의 심장이 철렁하며 내려앉았다. 애당초 에드먼을 속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각하께 소개시켜 드릴 분이 있습니다.”

“소개?”

에드먼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일어난 일을 진작 보고하지 않은 요한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똑똑.

때, 문을 두들기는 것과 동시에 굳은 얼굴을 한 벤자민이 들어왔다.

“폐하께서 소환장을 보내셨습니다.”

소환장은 특수한 경우에만 황제가 보내는 것이다. 이것을 받은 즉시 황실로 오지 않는다면 최대 사형까지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곧, 제가 말한 분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에드먼은 요한이 남긴 의미심장한 말에 되묻는 대신 이 소환장을 거부한 순간 번역자로 간주하겠다는 짧은 문구와 함께 날아온 소환장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렉과 뉴벨 남작 내외를 데려와.”

에드먼은 조금 뒤 덧붙였다.

“…데미안도.”

벤자민은 곧바로 그들을 데리고 에드먼의 집무실로 들어왔다.

“모두 잘 들어라.”

한곳에 모인 이들은 에드먼의 말에 귀를 기울었다.

“우린 북부로 돌아갈 것이다.”

북부로 돌아가는 것 자체가 위험한 선택임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을 에드먼이 더 잘 알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무도 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벤자민, 지금 남은 마력석의 개수는 어떻게 되느냐.”

“100여 개가 남았습니다.”

“현재 마님은 하루에 두 개 반 정도의 마력석을 필요하십니다. 그 정도 양이면 지금은 충분한 양이지만 안심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에요.”

뉴벨 남작 부인은 의견을 더했다. 사흘 밤낮 동안 다프네를 간호하고 진료를 보았기에 현재 다프네의 상태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그녀였다.

“요한, 너는 마력석을 최대한 더 끌어 모아라. 남작과 알렉은 북부로 떠날 준비를 하고 부인은 다프네의 곁에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에드먼은 마지막으로 남은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둘은 핼쑥해진 서로를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고 보면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했다.

“데미안.”

그의 이름을 부른 찰나 밖에서 말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환장을 전달하러 온 황궁의 시종이 재촉하는 소리였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 잘 들어라. 만약 내가 해가 지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먼저 북부로 떠나. 알겠나.”

“각하,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다프네를 최우선으로 생각해라.”

에드먼은 요한의 말을 끊고 문을 박찼다.

“언제 나오시려는 겁니까. 폐하께서 주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 크흡. 나오셨습니까.”

큰 소리로 소란을 일으키던 황궁 시종은 에드먼이 등장하자 주춤거렸다.

“어서 마차에 오르시지요.”

그가 가리킨 마차는 허름한 마차였다. 황제의 의도가 너무나도 명확했기에 에드먼은 마차를 지나쳐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공작님!”

황실 시종은 거친 모래바람과 함께 사라지는 에드먼의 뒷모습을 보며 벙쪄 있는 것도 잠시 허둥지둥 마차에 올라 그의 뒤를 따랐다.

***

황궁에 도착한 에드먼의 발걸음은 거침없었다. 누군가 빠르게 그의 뒤에 따라붙었다.

“공작님.”

시종장이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십시오.”

“내게 이런 쪽지를 같이 보내시더군.”

에드먼은 뒤를 돌아보지 않은 채 황제가 보낸 쪽지를 건넸다. 그 내용을 확인한 시종장은 잠시 제자리에 서 있다가 다급히 다시 에드먼의 뒤로 붙었다.

“근래 폐하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습니다. 그 핑계로 재상이 대리인으로 나오는 일이 허다합니다. 황태자 전하께서는 도통 이런 일에 신경 쓰이지 않으니… 반역죄로 소환된 귀족이 이번 달에만 벌써 셋입니다.”

“시종장.”

에드먼은 가까워지는 인기척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는 그대가 결단을 내려야 할 차례다.”

선택의 갈림길에 선 시종장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돌아가.”

에드먼은 모퉁이를 돌며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알아들은 시종장은 서둘러 몸을 숨겼고 에드먼은 곧이어 한 무리와 맞닥뜨리게 되었다.

“윈터 공작.”

세르기는 에드먼을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왜 공작이… 아아. 오늘 소환장이 갔군요.”

에드먼은 세르기의 별 같잖은 도발을 무시하며 그의 뒤를 살폈다. 새로 보는 귀족 대여섯이 세르기의 뒤를 줄줄이 따르고 있었다.

눈먼 황제의 대리인으로 회의에 참석해서는 자신의 사람들로 채워 넣는 세르기의 속셈이 훤히 보였다.

세르기와의 마지막 만남이 검은 숲이었던 탓일까. 에드먼은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억지로 풀었다. 만약 보는 눈이 없었다면 세르기에게 무슨 짓을 했을지도 모른다.

에드먼은 뻐근한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폐하께 가시는 길이라면 저희도 같이….”

에드먼은 눈을 깜빡였다. 순식간에 서 있던 장소가 바뀌었지만 에드먼은 크게 놀라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일세, 공작.”

눈이 마주친 칼리토는 어색하게 웃으며 에드먼의 어깨에서 손을 뗐다.

에드먼은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 그러나 아무런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기에 상대가 바라는 대로 움직였다.

그 결과, 세르기의 앞에 있다가 순식간에 어느 방에 칼리토와 단둘이 남게 되었다.

“전하께서 어떻게 여기 계십니까.”

칼리토는 현재 남부에 있는 별정에서 지내고 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휴식을 빙자한 감금이었으며 이것 역시 세르기가 꾸민 것이었다.

“자네를 만나러 왔네.”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접전도 없는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말에 에드먼의 미간이 좁혀지던 찰나, 요한의 말이 떠올랐다.

“…곧, 제가 말한 분을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전하이십니까?”

칼리토는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다행히 말이 이미 된 모양이군.”

“역시 맞군요.”

그다지 놀라지 않는 에드먼의 모습에 도리어 칼리토가 당황하였다.

“공작, 그대는 뭔가를 더 알고 있었나?”

“황궁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인물 중에서 그런 정보를 가지고 있는 이가 몇이나 되겠습니까.”

“하.”

칼리토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들겼다.

“공작님! 거기 계십니까?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바로 옆인지라 말소리가 들린 것이었다.

“재상님, 어쩌죠?”

“기사들을 당장 불러오세요.”

기사들이 온다는 말에 칼리토는 급히 말을 이어 갔다.

“폐하는 어떤 이유를 대서든 그대를 감옥에 잡아 둘 걸세. 그대가 수감될 미로 감옥은 탈출이 쉽지 않으니 내 수하 하나를 붙여 주겠네.”

“그것 말고 다른 부탁이 있습니다.”

에드먼이 말을 끝마치자 칼리토의 표정이 미묘해졌다.

“공작님! 지금 문을 열지 않는다면 소환장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 둘, 셋!”

쾅, 하는 소리와 동시에 문이 열렸다.

우르르 방으로 쏟아지듯 들어온 기사들은 무장을 한 채로 멍하니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은 방에 그대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벽 한 면이 뻥 뚫린 곳 앞에 선 에드먼이.

“자객이 있었다.”

에드먼의 검 날에서는 피가 후드득 떨어졌다.

“부상을 입혔으니 멀리 도망가지는 못했을 거다.”

에드먼은 멍하니 서 있는 기사들을 지나치다가 고개를 돌렸다.

“왜 가만히 있지? 자객을 놓칠 건가.”

“아, 예, 예!”

기사들은 헐레벌떡 밖으로 향했고 에드먼은 세르기를 지나쳤다.

세르기는 어딘지 이상했지만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에드먼을 보내 줄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은 곧이어 황제의 침실 앞에 도착했다.

에드먼은 소환장을 받고 소환된 이였기에 무기를 몸에 지닌 채 황제와 알현할 수 없었다. 시종은 뜨끈한 피가 묻은 에드먼의 검집을 받고는 벌벌 떨었다.

“들어가시죠.”

에드먼은 시종장의 뒤를 따랐다.

“폐하, 윈터 공작이 소환되었습니다.”

“소환…? 아, 그랬었구나….”

이어서 들어오라는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에드먼이 들어와 인사를 하려던 찰나였다.

“공작. 마음에도 없는 인사말은 하지도 말게.”

“폐하.”

“항상 그대는 이런 식이지. 감히 한 제국의 황제인 나를 무시하고 능멸하고 멸시하고!”

황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해이십니다, 폐하.”

“내가 모를 줄 알았나! 내 주위에도 자네의 사람이 있어!”

갑자기 화를 쏟아 내던 황제는 마른기침을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이내 기침을 마친 황제는 잔뜩 갈라진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왜 근 며칠 동안 신성력이 든 마력석을 쓸어 모았지?”

“…….”

“반역을 꾀하고 있는 건 아니고?”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