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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75화 (75/145)

75화

에드먼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허리춤에서 꺼낸 검과 손을 비롯한 팔이 전체적으로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긴 팔이 잘린 짐승의 고통에 찬 비명이 귓가에 윙윙거리며 마치 어느 한 겹에 쌓인 듯 희미하게 들렸다.

에드먼은 움직였다. 처음에는 그에게 반격하던 짐승이 겁을 먹어 도망치려는 것을 막아 난도질을 했다. 다프네의 피가 짐승의 피로 뒤덮이도록 움직이고 또 움직였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에드먼은 멈췄다. 짐승의 토막 난 사체 사이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지경이 된 다프네의 옷이 보였다.

‘다프네.’

무릎이 저절로 구부려졌다.

빗물이 에드먼의 볼 위로 흘러내렸다. 숨이 점점 거칠어지고 몸은 차가웠다. 에드먼은 그 옷가지를 향해 손을 뻗어 꽉 쥐었다.

에드먼은 옅은 신음을 내뱉었다.

다프네가, 죽었다.

북부에 있을 때 다프네가 사라졌을 당시, 에드먼은 피 묻은 로브를 보고도 그녀의 죽음을 확신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다르다.

에드먼은 그저 멍하니 제 손안에 있는 드레스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본래의 색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에 젖은 드레스에서는 역한 피 냄새만 날 뿐 다프네의 체취는 지워진 지 오래였다.

슬픈가 묻는다면 에드먼은 알 수 없다 답한다. 그럼 기분이 어떤가 묻는다면 에드먼은 이 또한 알 수 없다 답한다.

그가 가진 감정은 없다. 그렇게 교육받았으니까.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없도록 교육받았다.

그런 그가 다프네를 처음 본 순간 가슴에서 피어오르는 간질거림에 불쾌감을 느꼈고 그녀의 답답한 행동에 귀찮음을 느꼈다.

에드먼은 이토록 가슴이 먹먹한 이유를 몰랐고, 모른다. 입을 벌려 봐도 나오는 말이 없었다.

에드먼은 자신이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급하게 숨을 들이쉬자 폐로 차갑고도 습한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그리고 내뱉는 그 순간까지 에드먼은 이 모든 행동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에드먼은 깨달았다.

“…아.”

나는, 다프네를 사랑한다. 저주스러울 만큼 사랑하고 만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온몸의 전율이 일어났다.

“하.”

에드먼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러나 입꼬리는 빠르게 내려앉았다.

자신은 정말로 다프네를….

“…에드먼?”

그때, 목소리가 들렸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빗소리에 묻힐 만큼 작고 가는 소리였다.

에드먼은 고개를 들었고 돌렸다.

다프네였다.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동굴의 입구로 향해 걸어갔다.

한 발자국을 사이에 두고 다프네는 동굴 안에 있었고, 에드먼은 동굴 밖에 있었다. 에드먼의 속눈썹으로 빗물이 무겁게 매달렸기에 그는 눈을 한 번 깜빡였다. 손을 들어 올렸으나 차마 닿지 못했다.

“…환영인가.”

환영이라는 게 이렇게도 선명한 것이었던가. 에드먼은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

다프네는 거친 숨을 헐떡였다. 짐승의 손이 날아오는 것을 피한 것은 아주 간발의 차였다. 그러나 곧바로 다프네는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때 자잘한 돌 또한 같이 사방으로 튕겼기에 짐승은 귀를 기울이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숨소리도 참는 마당에 바닥에서 일어설 수 없었던 다프네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그리고 자신의 옷을 발견했다. 비에 젖어 도저히 입고 있을 수 없어 로브를 걸치고 말리기 위해 널어 뒀던 옷이었다. 다프네는 그 옷을 굴러다니는 나무토막 위로 던졌다.

그 소리에 짐승은 곧바로 나무토막을 입에 물어 머리를 마구 흔들다가 반으로 쪼갰다. 조금만 잘못됐어도 저 나무토막이 자신이었을 것이다. 입 안에 묻어 있던 피 때문에 옷이 점점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본 다프네는 식은땀이 흘렀다.

짐승은 나무토막을 만족할 때까지 잘근잘근 씹다가 몸을 휙 돌렸다. 옷은 아직 짐승의 이빨에 걸려 있었다.

짐승이 완전히 동굴을 나가고 나서야 다프네는 잔뜩 굳어 있던 몸에 힘을 풀 수 있었다. 긴장하고 있던 근육이 아직 뻣뻣했기에 다프네는 목덜미를 주물렀다. 비틀거리며 벽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때였다.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뚫고 들리는 희미한 소리에 다프네는 동굴 입구로 조심스럽게 향했다. 그리고 나타난 광경에 다프네는 눈을 깜빡일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까지 동굴에 있던 짐승이 잔혹하게 토막 난 사체 위에 무릎을 꿇은 남자가.

“…에드먼?”

다프네는 홀린 듯 그 이름을 내뱉었다. 아차 싶었지만 그는 이미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후였다.

이런 곳에서 저 커다란 짐승을 손쉽게 상대할 만큼의 실력자를 만난 것은 결단코 달가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도망을 치기엔 다프네의 몸이 많이 지친 상태였다.

‘에드먼이 여기에 있을 리가 없는데.’

분명 지금쯤이면 행복한 결혼 생활을 준비 중이어야 할 그가 왜 여기에.

에드먼이 자리에서 불쑥 일어나더니 다프네를 향해 걸어왔다. 다프네는 가까이 다가온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에드먼은 다프네에게 닿지 않을 정도로 손을 뻗은 후 중얼거렸다.

“…환영인가.”

그리고 에드먼의 눈이 감기더니 스르륵 쓰러졌다.

다프네는 엉겁결에 쓰러지는 에드먼을 붙잡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에드먼이 앞으로 중심을 잃는 바람에 같이 넘어지지 않기 위해 다프네가 버틴 것이었다. 에드먼의 무게를 견딜 수 없는 다프네가 뒤로 밀리면서 벽에 등이 닿았다.

“윽.”

등에서 느껴지는 알싸한 고통에 신음을 내뱉는 동시에 다프네는 에드먼이 머리부터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의 옷을 꽉 붙잡았다가 바닥에 주저앉고 나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툭. 에드먼의 머리가 다프네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는 생생했다.

“…하.”

마치 다프네에게 이것이 꿈이 아니라고 알려 주듯이.

다프네는 두 눈을 꾹 감은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비를 얼마나 맞은 것인지 그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고 입술은 버석하게 말라 있었다.

에드먼의 상태는 좋지 않았다. 겉으로는 별다른 부상을 찾을 수 없었지만, 다프네는 그의 셔츠 단추를 풀자마자 경악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에드먼의 오른쪽 어깨의 반이 마기로 잠식되어 있었다. 오래된 상처인지 상태는 꽤 심각했다. 에드먼이기에 지금까지 버틴 것이지, 다른 이였다면 진작 숨이 넘어가고도 남았다.

다프네는 조급해졌다. 동굴 주변에 풀이 가득 자라나 있던 기억을 떠올린 다프네가 무작정 일어나 입구로 향했다. 그러나 곧 우뚝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 약초 중에서 다프네가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시 에드먼에게로 돌아와 보니 그 짧은 사이에도 에드먼의 상태는 더 악화된 듯했다.

다프네는 주변에 있는 날카로운 돌을 집어자신의 손목을 그었다. 피가 송골송골 맺히자 다프네는 에드먼의 입가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굳게 닫힌 입술은 열리지 않았고 떨어진 핏방울은 입술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입가로 흘러내렸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다프네는 이 방법으론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천으로 대충 손목을 지혈했다.

‘입술을 어떻게 열게 하지?’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둘러야 한다. 다프네는 습관처럼 입 안의 여린 살을 이로 꾹 누르다가 그 행위를 멈췄다.

“…이건 치료일 뿐이야.”

이것이 될지 안 될지 몰라도 다프네가 할 수 있는 건 이거 하나였다. 그가 죽으면 많은 이들이 피해를 보니까. 단지 그뿐이다.

다프네는 다시금 입 안의 여린 살을 거칠게 씹었다. 순식간에 입 안은 비릿한 피 냄새로 차올랐고 다프네는 고개를 숙여 에드먼의 창백한 입술에 입을 맞췄다.

혹여 이번에도 그의 입술이 열리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입술이 닿자마자 에드먼이 입술을 벌렸다.

다프네는 놀라 어깨를 움찔거리는 것도 잠시 입 안에 머금고 있던 피를 그에게 열심히 넘겼다. 그러면서도 마기로 잠식된 그의 어깨를 흘끔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입을 맞춰야 했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어 상태를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얼굴의 혈색만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괜찮아졌나?’

입 안이 바싹 마를 때까지 피를 넘겨주던 다프네는 그의 어깨 상처를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떼려고 했다.

“…읍!”

그러나 커다란 손이 그녀의 뒤통수를 붙잡는 게 더 빨랐다.

에드먼을 내려다보던 다프네는 어느 순간 그의 아래에 깔려 거침없이 밀어붙이는 에드먼을 받아 내느라 급급했다. 그는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린 사람처럼 다프네에게 달라붙었다.

위에서 누르는 단단하고도 묵직한 느낌에 다프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으, 잠, 잠시만….”

겨우 고개를 트는 것도 잠시 다프네는 재차 에드먼에게 입술이 집어 삼켜졌다. 내뱉는 거친 숨도, 타액도 모조리 에드먼이 앗아 갔다. 다프네는 그저 에드먼의 셔츠를 꽉 붙잡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드디어 입술에 떨어졌다. 다프네는 마치 오랫동안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을 헐떡였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귓가에 고개를 숙인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말할 힘도 없는 다프네는 힘없이 떨리는 손으로 에드먼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탁. 하지만 힘을 채 실기도 전에 에드먼이 그 손을 붙잡았다.

“코로 숨 쉬세요.”

에드먼은 고개를 들어 올리며 속삭였다.

아. 그의 눈을 본 다프네는 짧게 신음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에드먼은 다시 다프네의 입술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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