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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67화 (67/145)

67화

아침은 늘 돌아왔다.

뉴벨 남작 부인은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해를 멍하니 지켜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마님이 돌아오시고 어느덧 다섯 밤이 지났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없었다. 단 하나, 에드먼을 빼고.

최근 사교계가 떠들썩하다 못해 제국민들 사이에서까지 뜨거운 감자가 된 이야기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들의 주인이었다.

윈터 공작이 현 부인과 이혼하고 엘리자벳 황녀님과의 결혼을 준비 중이다.

소문의 내용을 전해 들은 저택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근 5일간 에드먼이 황실, 더욱 정확히는 황녀 궁으로 간 것이 세 번이나 되자 모두가 입을 다물고 에드먼이 할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에드먼은 침묵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도대체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각자의 일에 집중했다. 그건 뉴벨 남작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벨 남작 부인은 방문을 열었다. 고요한 침대 위로 데미안이 잠들어 있었다.

“마님.”

그리고 방 한쪽에 다프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드먼에게 허락을 받은 후 다프네는 잠과 식사 시간, 치료할 때를 제외하곤 모든 일을 데미안의 방 안에서 해결했다.

딱히 할 일이라고 해 봤자 멍하니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뉴벨 남작 부인을 발견한 다프네는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몸은 좀 어떠세요? 계속 걸어 다니셨죠?”

“응.”

아무것도 하지 않으니 몸의 회복은 생각보다 빨랐다.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다프네는 어제부터 제대로 걸어 다녔다. 아직까진 다친 다리를 절긴 했어도 벽을 짚고 걷지 않아도 되었다.

“계속 걸어 다니는 연습은 하시되 너무 무리하지는 마세요.”

“응.”

뉴벨 남작 부인은 이내 데미안에게 가까이 다가가 열을 재고 손이나 발을 만져 보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프네가 돌아온 날을 기점으로 발작은 멈추었다.

그러나 몸 상태가 나아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늘 몸 상태는 어제와 똑같았다.

가벼운 진찰을 끝낸 뉴벨 남작 부인은 어느새 침대맡에 엎드려 잠든 다프네를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 나왔다.

***

“각하.”

벤자민의 부름에 에드먼은 재킷을 그에게 건네며 응시했다.

“…어깨는 좀 어떠십니까.”

“괜찮다.”

마력석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리 없는 벤자민은 수긍했다.

“각하.”

또다시 벤자민이 부르자 에드먼은 의자에 앉은 후 그를 응시했다.

“그것이….”

“그냥 말해.”

벤자민이 이런 식의 대화를 시작한 지 며칠 되었다. 하지만 벤자민은 시간이 흘러도 본론이 아닌 다른 말을 꺼냈다.

벤자민의 마음도 이해 갔기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계속되는 엘리자벳의 요구와 협박에 오늘도 황녀 궁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체력이 좋은 몸은 고단하지 않았으나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쌓였다. 벤자민을 조금이라도 빨리 내보내고 싶었다.

벤자민은 굳은 결심을 한 듯 고개를 들었다.

“소문을 들었습니다. 터무니없는 내용이지만 노파심에 얘기해 봅니다. 각하께서 마님과 이혼하시고 엘리자벳 황녀님과….”

“맞다.”

에드먼은 지끈거리는 미간을 문지르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 소문, 사실이야.”

“…그렇습니까.”

벤자민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삐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쉬십시오. 저는 이만 나가 보겠습니다.”

재킷을 정리한 벤자민은 그대로 허리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에드먼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의 눈과 손은 쉴 새 없이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오늘도 저녁을 거르고 서류를 보다가 눈앞이 흐릿해졌다.

에드먼은 습관처럼 품 안에서 궐련을 꺼내 붙을 붙였다.

에드먼이 오기 전부터 창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궐련 연기는 바로바로 빠져나갔고, 서류를 보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궐련 하나를 다 피운 에드먼은 또다시 품 안으로 손을 넣었다가 텅 빈 궐련 통을 더듬거렸다.

가벼운 궐련 통을 빼낸 에드먼은 미간을 좁혔다.

이번에는 유난히 궐련 한 통을 빨리 비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에드먼은 설렁줄을 잡아당기려다 지금이 새벽이라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어차피 궐련이 없으면 잠들 수 없었기에 에드먼은 침실로 향하는 대신 서류를 붙잡았다.

몇 개의 서류를 더 보고 서명을 하던 에드먼은 오늘 데미안에게 한 번도 가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에드먼은 자리에서 일어나 텅 빈 복도를 혼자 거닐었다.

고요함 속에서 에드먼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이윽고 방의 문을 연 순간 보이는 모습에 에드먼은 문고리만 잡은 채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다프네가 있었다.

침대에 누운 데미안의 손을 붙잡고 고개를 푹 숙인 다프네가.

에드먼이 문을 연 탓에 복도의 희미한 불빛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이 때문에 다프네의 등 뒤로 빛이 쏟아졌고, 가느다란 몸이 움찔거렸다.

다프네는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눈이 마주쳤다.

“…….”

다프네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미안을 보러 오신 거면 자리 비켜 드릴게요.”

다프네는 멀쩡한 걸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에드먼은 자신을 스쳐 가는 다프네의 뒷모습을 끈질긴 시선으로 따라갔다.

얼핏 보면 아무 문제 없어 보이는 걸음이지만 에드먼의 시선에서는 불안정하기 짝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웠기에.

“다프네.”

그 이름을 부른 순간 다프네는 휘청거렸다.

에드먼은 손을 뻗어 다프네의 허리를 휘감았다. 서로의 숨결이 섞일 만큼 가까운 거리가 되었다.

“…놔주세요.”

다프네는 미약한 힘으로 버둥거렸다.

“또 넘어질 생각입니까.”

다프네를 들어 올린 에드먼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말았다. 한 겹 너머로 마른 몸이 그대로 느껴졌다.

분명 잘 쉬고 잘 먹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몸은 좀처럼 살이 붙지 않았다.

“방까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다프네는 에드먼이 걷기 시작하자 곧바로 발버둥을 멈췄다. 어차피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는 걸 다프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다프네는 고개를 돌린 채 최대한 에드먼과 숨결이 섞이지 않도록 애썼다.

적막함 속에서 아까와 같이 에드먼의 발걸음 소리만 울려 퍼졌다.

문을 연 에드먼은 이내 다프네를 침대에 내려놓았다.

“쉬세요.”

에드먼은 몸을 돌렸다.

“각하.”

다프네가 한 말이었다.

“…왜 나를 그렇게 부릅니까.”

“우린 이혼한 사이인걸요.”

“다프네.”

에드먼은 다프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화났습니까?”

“화요?”

다프네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요. 이 이혼에 가장 먼저 동의한 게 저인걸요. 제가 왜 각하께 화가 나겠어요?”

다프네의 목소리에는 그 어떠한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마치 텅 빈 인형처럼.

쿵.

별안간 들리는 소리에 에드먼은 번뜩 정신을 차렸다.

쿵.

그 소리는 또다시 울렸다.

에드먼은 그것이 자신의 심장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

자신은 무엇을 이토록 불안해하는가?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다프네.”

“아, 나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

다프네는 에드먼과 눈을 맞추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안나를 꼭 찾아 줘요. 가족도 없는 아이예요. 그 아이가 원한다면 내 하녀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찾아만 줘요.”

“…….”

“이게 내 조건이에요.”

다프네는 피식, 헛웃음에 가까운 웃음을 지었다.

“모든 게 원점으로 돌아온 것 같아요. 황녀님과 결혼하시고 난 후엔 아마 내가 없을 테니까 미리 말할게요.”

“…다프네.”

에드먼은 왠지 모를 불안감에 다프네를 불렀다. 그러나 다프네가 말을 하는 것이 더 빨랐다.

“결혼 축하해요. 진심으로.”

진심으로.

에드먼은 눈을 깜빡였다.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에드먼은 다프네의 말을 되짚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와 원하는 이와 결혼할 수 있게 됐잖아요. 제가 각하의 시간을 너무 빼앗은 것 같아요. 각하께….”

“그만.”

에드먼은 저도 모르게 다프네를 막았고, 그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에드먼은 멍하니 생각했다. 황녀와의 결혼은 득보다 실이 많다. 딸려 오는 자잘한 이득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에드먼의 목적은 오직 다프네를 그곳에서 빼 오는 것, 그거 하나였다.

에드먼은 그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오직 하나였다는 것을.

‘왜?’

왜 그랬지?

왜… 왜 이렇게 가슴이 묵직할까.

에드먼은 알 수 없는 감정에 잠겼다.

“각하, 저는….”

“다프네.”

에드먼은 몸을 숙여 다프네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특색 없는 갈색 머리카락이 에드먼의 손을 휘감았다. 이내 손에 힘을 풀자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렸다.

“내가 그대와 이혼했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

“미리 말하지만 도망갈 생각하지 마세요.”

에드먼은 다프네의 납작한 배를 덮었다. 그 손길에 다프네의 어깨가 움찔거리면서 얼굴이 굳었다.

“난 내 씨를 밖으로 나돌게 할 생각 없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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