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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54화 (54/145)

54화

“아무래도 그리 깊게 들어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데미안이 따 온 과일을 먹는 사이 그가 말을 꺼냈다.

데미안은 다프네가 기절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고, 그녀를 동굴로 데려왔다고 했다.

“이틀….”

그리고 그로부터 꼬박 이틀이 지났단다.

그 말은 즉 다프네가 이틀 만에 깨어났다는 것이기도 했고, 에드먼이 그들을 찾지 못한 지 이틀이 되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중간중간 옷가지를 찢어 흔적을 남겼습니다. 곧 수색대가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구나.”

“…그럼 주무십시오.”

마치 할 일을 다 끝냈다는 듯 데미안은 동굴 입구로 향했다.

멍하니 있던 다프네는 데미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덩달아 벌떡 일어났다.

“왜 일어나십니까?”

그 물음을 내뱉은 데미안은 곧 다프네가 왜 그러는지 깨달았다.

“밤에는 불침번을 서야 합니다.”

“아, 그럼 난 언제 교대하면 될까?”

“됐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데미안은 나직이 다프네를 불렀다.

“어머니가 하실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음식을 구해 오지도, 불침번을 서지도 못하잖습니까.”

데미안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다프네는 아무런 힘이 없다. 음식을 구해 오고, 불침번을 서게 될 때 불가피한 상황에 부닥친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냥 가만히 좀 계세요.”

데미안은 다프네를 뒤로하고 입구로 나갔다.

다프네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음 날은 비가 왔다.

데미안이 음식을 구해 오고, 데미안이 흔적을 남기고, 데미안이 불침번을 섰다.

다프네가 하는 일은 그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뿐.

데미안은 주로 해가 지기 전 잠을 청한다. 그리고 해가 질 무렵 일어나 불침번을 섰다.

과일을 따 오는 길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온 데미안은 불침번을 서기 위해 일찍이 자리에 누웠다.

타닥, 타닥 장작이 타오르는 모닥불 앞에서 데미안의 등을 보던 다프네는 과일에 손도 대지 않고 이내 그를 따라 자리에 누운 채 등을 돌렸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왜 절 구하셨습니까?”

그 침묵을 깬 것은 데미안의 질문이었다.

데미안의 마지막 기억은, 떨어지는 것은 안중에도 두지 않은 채 자신을 꽉 붙잡은 다프네였다.

기절한 다프네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내내 묻고 싶었던 말이었다.

왜, 왜 나를? 왜, 당신이 나를?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상한 약물을 뒤집어쓴 순간 데미안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난 죽는다.

몸이 알 수 없는 열기에 휩싸이고, 검은 아지랑이가 바로 자신의 몸에서 나오고 있다는 걸 본 순간.

끝이라는 걸 직감했다.

데미안은 딱 한 번, 에드먼이 폭주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검은 아지랑이를 몸에 두른 채 우두커니 서 있던 에드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단 걸 깨달은 순간.

누군가에 의해 어깨가 밀쳐졌다.

그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었으나 데미안의 시야에 다프네가 보였다.

지금 이 자리에서 폭주한다면 가까이에 있는 다프네에게 가장 큰 피해가 갈 것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순간, 어깨를 미는 힘에 몸을 맡겼다. 힘을 빼고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당신이란 사람은….”

데미안은 작게 읊조렸다.

목구멍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의 어머니는, 다프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데미안.”

혼란스러움을 지운 다프네는 굳은 결심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소리에 데미안 역시 고개를 들었다.

다프네는 입술을 달싹였다.

데미안은 다프네를 기다렸다. 예전과는 다르게 지금 이곳은 아무도 없었고, 오로지 다프네와 자신뿐이었다. 못 이기는 척 다프네를 기다릴 수 있었다.

다프네는 그런 에드먼을 바라보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호흡이 가빠 왔다. 쿡쿡 쑤시는 것 같은 긴장감을 뒤로하고 다프네는 말했다.

“만약 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나는….”

목이 막혀 한 박자를 쉬던 찰나, 데미안은 별안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쉿.”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댄 데미안은 저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듯 동굴 안을 그저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았다.

데미안은 조심히 움직이며 다프네의 어깨를 잡아 자신의 등 뒤로 당겼다.

영문도 모른 채 숨죽이던 것도 잠시 동굴 안쪽에서 들리는 짐승의 울음소리에 다프네의 어깨가 굳었다.

“어머니, 밖에 제가 길을 표시해 놨습니다.”

“데미안.”

“그걸 따라가면 강이 있습니다.”

다프네는 데미안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다급히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데미안. 너도 같이 가.”

“어머니가 있으면 방해만 될 뿐입니다!”

다프네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데미안은 제 소매를 붙잡은 다프네의 손을 차갑게 내쳤다. 데미안은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이 간다고 해도 따라잡힐 겁니다.”

그는 다프네의 어깨를 동굴 밖으로 밀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다프네의 몸이 젖어 들었다.

다프네는 뒤를 돌았다. 저 멀리 동굴 안쪽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짐승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다프네의 시선이 무기 하나 없는 데미안에게 향했다.

데미안은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속삭였다.

“금방 가겠습니다.”

그러나 데미안의 말은 짐승의 울음소리에 묻혔다.

***

허억, 헉.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다프네는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얼마나 뛰었는지 모른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는지 모른다.

자신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뛰고 있는지조차 신경 쓸 겨를이 없이 다프네는 몸을 움직였다.

“아!”

다프네는 미처 보지 못한 돌부리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쓰라린 고통이 밀려 들어왔다. 다프네는 일어설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숨을 헐떡였다.

아픔과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뭘 한 거야?’

데미안을 미끼로 도망쳤다.

숨이 조여 왔다. 다프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동굴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데미안의 말대로 자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짐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도망치는 게 과연 맞는 일일까.

다프네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멍하니 서 있는 것도 잠시, 걸음을 옮겼다.

이리 와.

그때, 어떤 목소리가 다프네를 불렀다.

순식간에 다프네의 눈에 초점이 사라졌다.

다프네는 날카로운 풀로 인해 팔다리에 생채기가 생기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으며 홀린 듯 숲을 걸었다.

더 가까이.

다프네의 걸음이 빨라졌다.

다프네의 걸음이 뚝, 멈춘 것과 동시에 앞에 나타난 것은 허름한 제단이었다.

거친 비바람이 불어왔다.

다프네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제단에 들어섰다.

제단은 오래되었음이 분명한데도 마치 사람이 주기적으로 드나드는 것처럼 정돈되어 있었고 깔끔했다.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점점 더 안쪽으로 향했다.

제물을 바치는 단 위로 가까이 향한 그때.

우웅.

다프네는 가슴께가 뜨거워지는 것을 보며 황급히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다프네가 꺼낸 것은 바로 머리 장신구였다.

뜨거운 열기는 머리 장신구, 더 정확히는 머리 장신구에 달린 보석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순간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어머니!”

의식이 꺼져 가는 와중에 데미안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렸다.

제대로 된 무기 하나 없이 짐승과 혈투를 벌이던 도중, 갑자기 짐승이 사라졌다. 이상함을 느끼고 곧바로 강가로 향했지만 다프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비 때문에 발자국은 이미 지워졌지만 이파리에 묻은 희미한 핏자국을 따라 이 정체 모를 제단에 도착했고, 단 위로 다프네가 쓰러지는 걸 목격했다.

다행히 다프네는 단순 혼절이었다.

안도하던 그때, 바닥에 떨어진 것을 발견한 그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건….”

***

“어디?”

빠르게 움직이던 에드먼의 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은 알렉이 대꾸했다.

“갑자기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더 수색하지 못했지만 분명 나뭇가지에 옷가지가 묶여 있었다고 합니다.”

에드먼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누구의 옷?”

“그것까지는….”

그 옷의 주인에 대한 답은 얻을 수 없었지만 에드먼은 아무 말 없이 다시 발을 옮겼다.

곧장 말에 올라타 검은 숲의 입구로 향한 그는 며칠 전 급하게 올라온 검은 기사단의 천막에 다다랐다.

“각하.”

옷가지를 발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검은 기사단의 기사, 유진이었다.

에드먼에게 경례 후 허리를 편 유진은 조금 전 상황을 설명했다.

“옷가지에는 딱히 피가 묻어 있지 않았고, 흔적을 남기기 위한 용도였습니다.”

에드먼은 데미안과 다프네가 떨어진 절벽에 서서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안쪽으로 들어가면 다른 흔적을 더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마치 그날처럼 비가 쏟아졌다.

에드먼은 물이 흐를 절벽 아래를 빤히 쳐다보았다. 알렉은 그 모습을 보며 바짝 바르는 입술을 축였다.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는 에드먼은 마치… 금방이라도 저 아래에 뛰어들 것처럼 보였다.

“알렉. 내려갈 준비해 놔.”

“예?”

혹시 몰라 에드먼을 막을 준비를 하던 알렉은 에드먼의 말에 뒤늦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에드먼이 하고자 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설마 지금… 저기로 내려가시겠다는 겁니까?”

“그래.”

“위험합니다.”

비로 인해 물줄기는 더 거세고 물의 양도 훨씬 불어나 있다. 자칫하다간 에드먼도 큰 사고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아직 데미안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에드먼마저 잃을 순 없었다.

“다 낫지도 않으셨잖습니까.”

알렉의 시선이 에드먼의 오른쪽 어깨로 향했다.

그의 말마따나 에드먼은 그 사건의 날 후로 상처가 더 악화되었다. 다프네와 데미안의 무게를 견딘 게 무리가 되었고, 더불어 비의 습기가 스며들어 마기의 침범이 한층 더 빨라졌다.

게다가 제대로 쉬지도, 자지도, 먹지도 않으니 상태가 나빠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생사는 확인됐으니 비가 좀 그치… 각하!”

알렉은 저도 모르게 버럭 소리쳤다.

에드먼이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비 사이로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젠장!”

알렉은 외투를 벗은 후 에드먼을 따라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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