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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50화 (50/145)

50화

“끄악!”

고요한 숲 사이를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뜨거운 피가 튀었다.

에드먼은 얼굴로 날아오는 피를 가뿐히 피하며 뒤로 물러났다.

그와 마찬가지로 살수들의 목을 긋던 알렉이 다가왔다.

“그게 마지막입니까?”

에드먼은 대답 대신 꿈틀거리는 몸에 칼을 쑤셔 넣었다.

“후….”

그리고 에드먼은 반쯤 뒤집혀 흰자만 보이는 눈을 유심히 살폈다.

붉은 눈이 아니다.

허리를 펴던 에드먼은 어깨의 통증이 계속되자 미간을 좁혔다. 검을 쥔 그의 오른쪽 손은 아주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것을 미처 보지 못한 알렉이 에드먼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그는 서둘러 손을 꽉 쥐며 떨림을 숨겼다.

“이들 모두 붉은 눈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에드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들의 발치를 빼곡하게 채운 살수들은 칼리토가 사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이들은 제대로 된 훈련을 받지 못한 자들이다. 살수는 분명하지만 에드먼을 상대할 정도의 실력은 갖추지 않았다.

마치 그때처럼 구색만 갖췄다는 의심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닉의 말대로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닉의 말대로다.

닉은 자신이 알게 된 황제와 세르기의 계획을 이들에게 전했다.

먼저, 수많은 살수가 이들을 덮칠 것이다. 그리고 소드 마스터를 폭주시키는 약물을 어느 정도 힘이 빠졌을 에드먼에게 이용할 것이다.

그러면 에드먼은 이성을 잃고 오러를 뿌려도 될 테고, 큰 인명 손해를 끼칠 것이다.

황제는 이것을 노려 에드먼을 ‘어쩔 수 없이’ 살해한 상황을 연출한다.

“닉의 조언대로 정말 황녀에게 청혼하는 시늉이라도 했다면 이런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겁니다.”

“실제로 황녀와 결혼할 것이 아니니 그 전까지 계속 이런 시도를 해 오겠지.”

황제는 에드먼이 황녀와 결혼해, 아이를 볼 때까지 시도할 작자다. 아니, 윈터 공작가를 차지할 아이가 태어난다면 쓸모를 다한 에드먼을 그대로 죽일 것이다.

뭐가 되었든 이런 상황은 올 테지만, 에드먼은 거짓이라도 황녀에게 청혼하고 싶지 않았다.

에드먼은 문득 조찬 때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공작이 오늘 잡은 모든 동물을 내게 주겠다 약조하였습니다.”

엘리자벳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에드먼이 제일 먼저 한 생각은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하는가’가 아니었다.

‘무슨 얼굴을 하고 있었을까.’

다프네는 자신과 황녀의 모습을 보며, 미간을 찡그렸을까. 아니면 입술을 꽉 깨물거나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었을까.

다프네의 옆자리로 왔을 때 그녀는 무표정이었으며 에드먼은 알지 못했으나 이것 하나는 확신했다.

다프네는 신경 쓰고 있다.

그가 예리하고 끈질기게 추적한 결과, 아주 잘게 떨리는 다프네의 손끝을 발견했다.

바스락.

벌써 다음 단계로 넘어간 것인가. 에드먼은 검을 쥐며 소리가 난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

그리고 풀숲에서 튀어나온 상대를 본 에드먼은 검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프네?”

가쁜 숨을 헐떡이는 다프네가 서 있었다.

다프네의 시선이 에드먼을 빠르게 훑었다.

차마 손을 대지 못하는 탓에 다프네의 시선은 유난히도 찐득했다.

“그대가 왜 여기 있습니까.”

“혹시 다른 일이라도….”

풀숲에서 한 걸음 나온 다프네는 뒤늦게 바닥에 빼곡하게 깔린 살수들을 발견했다.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뛰어서 그런지 피비린내를 미처 맡지 못했다.

흠칫하던 다프네는 이내 걸음을 옮기며 에드먼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 걸음이 어찌나 조급한지 시체를 밟아 비틀거리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떨리는 어깨를 발견했다. 그러곤 피 묻은 검을 검집에 넣고 몇 발짝 다가갔다.

“무슨 일이라도….”

“약물, 약물 같은 거에 당하지 않았어요?”

약물이라는 단어에 에드먼은 미간을 좁혔다.

“그대가 그걸 어떻게 압니까?”

“괜, 괜찮은 거죠?”

다프네는 손을 달싹이며 가까이 다가온 에드먼을 몇 번이나 훑었다.

“하아….”

에드먼이 멀쩡하다는 것을 본 다프네는 떨림이 멈추지 않은 손으로 입가를 틀어막았다.

어정쩡하게 서 있던 에드먼은 다프네의 뒤를 빠르게 살폈다. 그러나 크리스는커녕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마님. 약물에 대해 어떻게 아십니까?”

상황을 이상하게 여긴 알렉 또한 다가왔다.

“오라버니가… 알려 줬어요.”

다프네는 세르기가 민 방향으로 무작정 뛰었다.

숲은 넓고 사람들은 많았으나 다프네는 누구 하나 마주치지 않고, 심지어 그렇게 오래 뛰지도 않은 시점에서 에드먼과 마주쳤다.

마치 세르기는 에드먼이 그곳에 있는 걸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다프네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배 속 아이의 아비인지, 아니면 목숨을 갉아 대면서 5년간 키운 아들일지.”

다프네의 고개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에드먼과 눈이 마주쳤다.

다프네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데미안.”

“…데미안?”

다프네의 말을 따라 읊조린 에드먼은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다.

“알렉! 당장 숲 밖으로 가!”

“예!”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그들을 보던 다프네는 이내 정신을 번뜩 차렸다.

“데미안은 검은 숲의 입구로 갔어요!”

“거길 도대체 왜….”

“아무래도 오라버니가 데미안의 친모에 대한 정보를 이용한 것 같아요.”

친모라는 단어에 에드먼이 멈칫했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다프네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 나도 같이 가요.”

“안 됩니다.”

에드먼은 일말의 고민조차 없이 다프네의 요청을 거절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고요. 그대를 지켜 줄 수 없습니다.”

에드먼의 시선이 바닥에 깔린 사체들로 향했다.

그러나 다프네는 개의치 않았다.

“난 상관없어요.”

“다프네.”

에드먼은 말에 올라타 다프네를 내려다보았다.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 흐린 하늘을 등진 에드먼의 얼굴엔 깊은 그늘이 져 있었다.

“당신이 내 씨를 뱄다는 걸 잊지 마세요.”

에드먼은 굳은 다프네를 보다가 고삐를 휙 틀었다.

“알렉, 넌 가서 알려라. 나는 먼저 가서 데미안을….”

“날 데려가 줘요!”

터져 나오는 비명에 고개를 돌린 에드먼과 알렉은 그만 눈을 크게 떴다.

“!”

주변에 떨어진 검을 주운 다프네가 칼날을 자신에게 향한 채 서 있었다. 정확히는 납작한 배로.

칼을 잡은 손이 떨리면서 칼날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마치 금방이라도 배를 그을 것처럼.

“아이… 잃고 싶지 않잖아요. 날 데려가 줘요, 제발.”

알렉은 다프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속삭였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 빼앗겠습니다.”

“…됐어.”

에드먼은 말에서 내렸다.

그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검을 쥔 다프네의 손의 떨림이 심해졌다.

“오지… 읏!”

순식간에 검이 날아가자 다프네의 얼굴 위로 절망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에드먼이 다프네의 양 겨드랑이 아래 손을 끼워 들어 올려 말안장 위로 앉히는 게 더 빨랐다.

“그대까지 신경 쓸 수 없습니다. 반드시 가만히 있으세요. 알겠습니까?”

순식간에 시야가 높아지고 에드먼이 자신을 올려다보는 구도가 되었다. 놀란 다프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뒤로 올라타 고삐를 쥐었다. 다프네는 자연스레 에드먼의 단단한 품 안에 갇혔다.

“알렉. 날 따라와라.”

“…예.”

말에서 내렸던 알렉은 다시 올라 에드먼의 뒤를 쫓았다.

길은 갈수록 점점 험해지고 반동 또한 심해졌다.

승마 경험이 거의 없는 다프네는 가끔 심하게 튀어 오를 때마다 몸 전체가 들썩거렸다. 그나마 에드먼의 품 안이기에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튕겨 나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에드먼은 그런 다프네를 바라보다가 고삐를 쥔 자신의 손을 보았다.

그의 손이 움찔거리던 찰나, 다프네가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다프네를 따라 고개를 들어 올린 에드먼은 이제 막 비를 쏟아 내기 시작한 하늘을 응시했다.

“으악!”

앳된 목소리로 내뱉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알렉의 말 앞으로 튀어나온 어린 종자가 바닥에 엎드린 상태였다.

“…데미안의 종자예요.”

다프네의 말에 에드먼이 종자를 향해 말 머리를 틀었다.

“네가 데미안의 종자냐.”

“그, 그렇습니다.”

“데미안은 어디에 있지?”

“그것이….”

어린 종자는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각하께서 묻고 계시지 않느냐.”

알렉의 매서운 재촉에 종자는 여전히 떨리는 몸으로 자신이 나온 길을 가리켰다. 그러다가 아차, 싶은지 황급히 손을 내렸다.

“안, 안 됩니다! 가시면 안 됩니다!”

“왜지?”

“검, 검은 숲에서 분명 괴, 괴물이 튀어나왔습니다.”

“괴물?”

“커다랗고 검, 검은 괴물… 그런 건 처, 처음 봅니다… 날 잡, 잡아먹고 말 거야! 도망쳐야 해!”

어린 종자는 정신없이 소리치다가 갑자기 숲 안으로 달렸다.

미간을 좁히던 에드먼은 자신의 직감을 애써 무시하려 했다. 그러나 그럴수록 확신은 점점 강해졌다.

“각하, 설마….”

에드먼은 대답 대신 말의 옆구리를 발로 찼다.

알렉이 그 뒤를 쫓았다.

가다 발견한 나무에 묶인 데미안의 말을 지나쳐 달리길 얼마.

희미하게 들리는 낯선 소리와 순식간에 뒤바뀐 숲의 분위기에 다프네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조금 더 달리자.

“데미안!”

데미안이 있었다.

마물에 둘러싸인 데미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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