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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49화 (49/145)

49화

닉이 내뱉은 말은 실로 충격적이었다. 마님이 황녀를 독살하기 위해 계획을 세운다는.

“어젯밤, 다프네의 짐에서 독을 발견했다.”

“아….”

진실이다.

알렉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몰라 눈을 가만히 깜빡였다.

그러다 의아함이 피어났다.

왜 각하께서는 그걸 막으신 걸까? 황녀 독살 성공 여부를 떠나서 그런 계획을 세웠다는 것 자체로 다프네는 감옥에 수감될 것이다. 그럼 둘은 자연스럽게 이혼을 하게 될 텐데.

아, 마님의 배 속에는 각하의 아이가 있지.

알렉은 뒤늦게 그 사실을 떠올리며 혼자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니.”

에드먼이 갑자기 멈추면서 알렉은 앞서가다가 몸을 틀었다.

“돌아간다.”

“아직 한 시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에드먼은 알렉의 만류에도 말의 고삐를 틀었다.

이유 모를 불안함이 그의 발을 타고 올라와 그를 옭아매기 시작하던 그때.

“공작?”

칼리토가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에드먼은 고삐를 틀어쥔 손의 힘을 느슨하게 풀었다.

“저하께서도 참여하신 겁니까?”

“아아, 아버지의 기침이 갑자기 심해져서 대신 참여하게 됐네.”

에드먼의 시선이 자신의 텅 빈 등 뒤로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아챈 칼리토가 머쓱하게 웃었다.

“사냥감을 쫓다 보니 혼자더군.”

에드먼은 한숨을 삼켰다.

수하들과 떨어져 혼자 있는 칼리토를 두고 갈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기묘한 동행을 시작했다.

“그 머리만 없던 동물들의 사체가 다 공작이 한 짓이었군?”

칼리토는 길게 늘어진 동물의 목들을 보며 말했다.

주로 떠드는 것은 칼리토였으며 에드먼은 그저 간간이 묻는 말에만 간결히 답했다.

“아, 그런데 소공작이 공작 부인을 꽤 좋아하는 모양이야.”

뜬금없는 말에 에드먼이 칼리토를 응시했다.

칼리토는 어깨를 으쓱였다.

“어제 사냥 대회가 끝나고 급히 어디를 가길래 봤더니만 공작 부인을 찾아갔더군. 그때 공작 부인은 엘리자벳을 포함한 다른 레이디들과 있었던 것 같은데.”

엘리자벳의 이름이 나오자 에드먼의 미간이 좁혀졌다.

에드먼은 고개를 살짝 돌려 알렉을 보았다. 알렉 역시 당황한 듯 고개를 잘게 내저었다.

감시로 붙인 크리스에게 그런 말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공작. 소공작이 아무리 공작 부인을 좋아해도 가장 중요한 건 공작의 마음 아니겠는가?”

칼리토는 말의 고삐를 틀어 에드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공작은 내 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

“이런 말을 내 입으로 직접 하기엔 좀 그렇지만 엘리자벳은 내가 보기에도 아름다워. 그 누구보다 더.”

마지막에 말에 힘이 들어간 탓인지 유난히도 거슬렸다.

모두를 포함한 것 같은 말은 마치 다프네 하나를 지목한 것 같았다.

“뭐, 겸사겸사 그대가 내 매부가 된다면 좋을 것 같기도 해서 말이야.”

“저하! 어디 계십니까! 엇, 저하! 갑자기 사라지시면 저희는 어찌합니까!”

“어허, 네놈들이 날 못 따라잡았으면서 왜 날 탓하느냐?”

칼리토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수풀 사이로 그의 수하들로 보이는 이들이 불쑥 나타났다.

순간 칼리토의 미간이 일그러졌다가 빠르게 펴졌다. 그는 활짝 웃으며 수하들을 향해 손을 올렸다.

그리고 순간, 칼리토의 몸이 휘청거렸다.

“저하!”

수하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터져 나온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에드먼이 손을 뻗었고, 칼리토는 기다렸다는 듯이 그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반동을 이용해 에드먼의 앞까지 상체를 휙 가까이 붙인 칼리토가 재빨리 몸을 떨어트렸다.

“공작이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구나.”

“제발 몸 좀 조심히 다루십시오.”

칼리토가 낙마할 뻔했던 탓에 수하들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칼리토는 수하들에게 향하며 뒤를 돌았다.

“그럼 공작. 조심하게.”

에드먼의 얼굴은 칼리토가 사라진 후에도 좀처럼 펴지지 않았다.

그는 칼리토가 손에 쥐여 준 마력석을 내려다보았다.

신성력이 담긴 마력석이었다.

***

“넌 이만 돌아가.”

“예?”

어린 종자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데미안은 말에서 내려와 고삐를 주변에 있는 나무에 묶었다.

“왔던 길에 칼로 흠집을 내고 왔으니 돌아가는 길이 어렵지는 않을 거다.”

데미안이 향하려는 곳이 어디인지 알아챈 종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소, 소공작님. 그곳은….”

“몇 번을 말하게 할 셈이지?”

“…알겠습니다.”

데미안의 매서운 눈초리에 종자는 이내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종자가 사라지고 주변에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고 나서야 데미안은 움직였다.

검은 숲의 입구로 향할수록 그를 누르는 공기가 점점 무거워졌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의 귀를 어지럽히던 자연의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저 고요함이 맴돌았다.

데미안은 처음 느끼는 검은 숲의 기운에 저도 모르게 검집으로 손을 움찔거렸다.

마치 마물들에게 둘러싸인 듯한 오싹함이 발끝부터 그를 서서히 집어삼켰다.

약속 장소에 도착한 데미안은 마른 입술을 축였다. 검은 숲이 주는 위압감 때문도 있지만 긴장되었기 때문이다.

데미안은 땀으로 젖은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깊게 심호흡했다.

“후우.”

그리고 중얼거렸다.

허탕을 치더라도 낙심하지 않을 자신 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젖어 있던 데미안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벤트는 이걸 어떻게 알게 된 거지?’

놀라고 기쁜 나머지 그것을 물어보는 걸 깜빡했다. 돌아가면 물어봐야겠다며 생각하던 그때.

바스락.

그 작은 소리에 데미안은 순간 숨 쉬는 것조차 멈췄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동물들의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이곳에서 인기척을 낼 수 있는 이는 한 명뿐이다.

바로 데미안을 이곳으로 불러낸 상대.

심호흡한 데미안이 고개를 돌린 순간.

“!”

그대로 얼어붙었다.

***

“아, 왔구나.”

세르기는 다프네의 등장에 미소를 머금으며 뒤돌았다.

사냥 대회가 시작한 지 한 시진 정도가 지나고 나서 다프네는 움직였다.

제대로 된 장소조차 몰랐으나, 숲으로 들어가자마자 누군가 다프네의 앞에 나타났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세르기의 수하였다.

그를 따라 걷기를 얼마, 세르기의 앞에 도착했다.

“노아.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세르기 님.”

“흠, 좀 늦었구나.”

시간을 확인한 세르기가 싱긋 웃었다.

“황녀에게 불려 갔었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공작과 이혼해요.”

불과 조금 전, 사냥 대회가 시작될 무렵 갑자기 찾아온 엘리자벳이 한 말이었다.

그녀가 찾아온 구실은 에드먼은 파트너로 맞이한 것에 대한 사과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엘리자벳은 다프네에게 당당히 이혼을 요구했다.

“…신경 쓸 이유 없어요.”

애써 떠오르는 기억을 억누른 다프네는 긴장한 채 주위를 살피다가 방금까지 세르기와 인사를 나누던 이를 발견했다.

“당신은….”

닉.

닉 아처다.

황제 시해범인 닉은 붉은 눈으로 무심하게 다프네를 쳐다보았다.

“공작이 꽤 급했던 모양이야. 닉 아처까지 동원해서 누이를 찾으려 했던 걸 보면.”

세르기는 닉의 어깨를 두들겼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한층 더 붉어졌다.

“세뇌에 애를 좀 먹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것 같지 않아? 봐 봐, 붉은 눈을 감출 수도 있어.”

탁.

세르기가 손가락을 튕기자 닉의 눈동자의 붉은 기가 사라지고 점차 갈색을 되찾아 갔다.

동시에 되살아나는 생기를 직접 목격한 다프네의 몸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침을 삼켜도 입 안은 버석하게 말라 갔다.

“…설마.”

“맞아, 새로운 실험이 성공했어.”

성공한 실험체를 보던 세르기가 고개를 돌려 다프네를 보았다.

“신전에서 난리를 쳐 대니 실험의 속도를 올리느라 좀 많은 실패작이 탄생했지만 뭐, 결론적으론 성공했지.”

세르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습지 않아? 성녀의 두 번째 자식의 피에 더 많은 신성력이 있다는 게.”

신전은 모두를 속이고 있다.

기준에 맞는 자에게 성녀의 표시가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첫 번째 성녀의 피를 이은 자들만이 성녀가 된다.

형평성과 신앙심을 높이기 위한 연극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점점 성녀의 신성력이 흐릿해지자 성녀의 첫 번째 자식을 떠받던 이들은 뒤늦게 깨달았다.

성녀의 두 번째 자식이 더 방대한 신성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선택한 자는 틀렸다!

하지만 이미 세간에 알려질 대로 알려져 이젠 그렇다더라, 하는 소문이 아닌 진실이 되어 버린 걸 번복할 수 없었다.

그리고 블레드 가문과 신전의 은밀한 거래가 시작되었다. 그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세르기의 실험에 희생된 이들은 수천, 수만 명. 그리고 성공률은 매우 희박했다.

“다시 인사할까.”

그리고 다프네는.

“내 누이, 내 사랑스러운 실패작.”

그 확률에 들지 못한 실패작이다.

다프네의 몸이 흠칫 떨렸다.

“난 실패작 중에서도 누이가 참 사랑스러워.”

세르기는 진정한 실험자였다. 그는 실패작마저 사랑스럽게 여겼다.

다프네는 그것이 미칠 만큼 끔찍했다. 얼마나 끔찍하냐면, 그의 곁을 벗어나기 위해 상처만 끌어안은 결혼 생활을 5년이나 이어 갈 정도로.

그러나 다프네는 또 같은 실수를 했다.

“네가 그리 아끼는 이들이 다치는 꼴 보기 싫으면 말이야.”

뻔히 보이는 덫에 또다시 스스로 걸어 들어갔다.

마치 몇 달 전 수도로 올라왔을 때처럼.

“그동안 내가 새로 한 실험이 있어, 누이.”

실패작이라는 말에 몸을 사시나무처럼 떠는 다프네를 보며 미소 짓던 세르기가 품에서 꺼낸 것은 작은 물약이었다.

새빨간 물약이 찰랑거린다.

“이성을 잃고 힘을 남발하게 되는 물약이야.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지. 실제로 본 적 있어? 소드 마스터가 폭주하는 모습 말이야.”

다프네의 떨림이 멈췄다.

삽시간 핏기가 가시는 얼굴을 보던 세르기는 그 약물을 닉에게 건넸다.

닉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프네가 눈으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사라졌다.

다프네가 뒤늦게 몸을 돌린 그때, 세르기가 무언가를 자각한 듯 아, 하며 손뼉을 쳤다.

“근데 누구한테 갔는지 모르겠네?”

“…그게 무슨.”

당연히 에드먼이라고 생각한 다프네의 어깨가 흠칫했다.

“소공작이 누이의 사랑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야. 살짝 흘린 친모에 대한 정보를 그대로 덥석 물더니 검은 숲의 입구까지 순순히 나오는 걸 보면 말이야.”

검은 숲이라니.

다프네의 심장이 툭, 건들면 터질 것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애당초 소공작은 누이의 사랑을 받은 적 없으려나. 하긴, 나도 멀리서 봤는데 속이 울렁거리더라고. 공작보다 더 진한 핏줄을 이어받았으니 오러가 센 건 당연하니까. 오러 울렁증도 참 고질병이야.”

세르기는 자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만큼 충격에 빠진 다프네에게 다가가 친절히 어깨를 잡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속삭였다.

“잘 골라 봐.”

세르기의 시선이 다프네의 납작한 배로 향했다.

“배 속 아이의 아비인지, 아니면 목숨을 갉아 대면서 5년간 키운 아들일지.”

세르기가 다프네의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비틀거리던 다프네는 그대로 달렸다. 그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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