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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41화 (41/145)

41화

에드먼 대신 알렉이 선두에 자리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움직였다.

문제는 그 후였다.

다프네가 깬 창문을 임의로 막아 보았지만 차가운 바람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다프네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둥글게 말았다.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있던 에드먼은 눈을 떴다.

그리고 손을 뻗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다프네를 품에 안았다.

단지 저체온증으로 인한 사망을 막기 위한 행위에 불과했다.

그렇게 한참이 흐르고 에드먼의 체온을 받던 다프네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 움직임에 에드먼이 고개를 숙이고, 다프네가 눈을 뜨는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프네의 눈이 당황으로 크게 뜨였다.

‘녹색.’

에드먼은 문득 초상화에 옅게 채색된 다프네의 눈 색을 떠올렸다.

녹색이라 봐야 거기서 거기일 줄 알았건만, 다르다. 다프네의 눈 색이 좀 더 맑고 아름다운….

“지,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다프네는 몸을 버둥거렸다.

하지만 에드먼의 단단한 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놔줘요.”

“놔주면. 또 난동이라도 피울 생각입니까.”

“난동이라니요? 그게 무슨….”

다프네는 말을 뚝 끊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생각난 모양새였다.

“…이제 난동 안 피울 테니까, 놔줘요. 굳이 이렇게 불편하게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후회할 텐데.”

“그럴 일 없어요.”

다프네를 내려다보던 에드먼은 망설임 없이 손을 풀었다.

드디어 그의 품에서 벗어난 다프네는 빠르게 몸을 움직여 자리를 잡았다. 에드먼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반대편 대각선 자리였다.

좁은 마차 내부인지라 큰 차이는 없었지만, 다프네는 필사적으로 구석으로 몸을 구겼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프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겨우 혈색이 돌아온 입술은 파랗게 질리기 시작했다.

에드먼이 자신을 놓아주면서 한 말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말했잖습니까. 후회할 거라고.”

다프네는 창백한 얼굴로 에드먼을 돌아보았다.

몸을 아무리 웅크려봐도 옷 사이로 시린 바람이 파고든다.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도 있습니다.”

에드먼은 까딱였다.

“옆으로 오세요.”

다프네는 할 수만 있다면 헛웃음이라도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이미 바닥을 드러낸 체력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 그저 고개를 돌린 채 몸을 더 웅크릴 뿐이었다.

“그대로 죽을 생각이 아니라면 이리 오세요.”

“싫어요.”

다프네의 태도는 단호했다.

“다프네.”

“배 속의 아이가 그렇게 걱정돼요?”

다프네는 고개를 휙 돌려 에드먼을 보았다.

“당신이 안절부절못할 만큼, 그렇게 걱정되느냐고요.”

에드먼은 자신이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자각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점점 파랗게 질려 가는 다프네의 얼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말해 봐요.”

“맞습니다. 맞으니까, 빨리 내게 오세요.”

하.

결국, 참지 못한 다프네의 잇새로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말했잖아요. 싫….”

눈 한 번 깜빡이자 에드먼의 품속이었다.

다프네는 빠져나오기 위해 손발을 움직이려고 했으나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놔요.”

“동상에 걸린 것 같습니다.”

에드먼이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다프네의 몸이 동상으로 굳은 것이었다.

에드먼은 겹겹이 둘러싸인 다프네의 치마 속으로 가감 없이 손을 뻗어 발을 움켜쥐었다.

다행히 경미한 정도였다.

“그대는 도대체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만약 아주 조금만 늦었다면 심각한 동상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

“…에드먼.”

다프네는 멍하니 그를 불렀다.

“당신, 말이에요.”

심장이 쿵, 쿵 뛰기 시작했다. 손과 발에 온기가 도는 탓인지, 긴장할 때처럼 열이 모이면서 찌릿찌릿했다.

다프네는 눈을 깜빡였다.

아니, 눈을 깜빡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다프네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당신 혹시….”

다프네도, 에드먼도 그 누구도 숨 하나 제대로 쉬지 않았다. 에드먼은 다프네의 입술이 달싹거리기만을 기다렸다.

누구의 심장 소리인지 모를 박동만이 울렸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시린 바람만이 이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시키고 있었다.

“알고 있었나요?”

그때였다.

“각하! 마물이…!”

우지끈, 마차의 지붕이 무너져 내렸다.

“각하!”

에드먼은 달려오는 알렉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그 뜻을 알아챈 알렉이 멈춘 사이, 에드먼이 몸을 일으켰다.

마차가 무너지면서 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고 그 너머로 마물이 마기를 뿜어 대고 있었다.

‘눈이….’

마물에게서 눈이 없다는 특이한 점을 발견한 에드먼이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모두가 숨을 죽였다.

에드먼은 허리춤을 더듬었다.

없다.

검집을 고정하던 끈 자체가 사라졌다. 에드먼은 마차 잔해에 깔린 자신의 검을 발견했다.

그리고 마물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품 안에 있는 다프네에게 속삭였다.

“조용히, 뒤로.”

그 말에 다프네는 주위를 조심스럽게 두리번거렸다.

“어머니.”

바로 뒤에서 들리는 데미안의 작은 목소리에, 다프네는 조심스럽게 뒷걸음질 쳤다. 데미안 또한 다프네에게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모두가 숨죽였고, 마물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알렉은 에드먼의 상황을 눈치채고 자신의 검을 전달하기 위해 조심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저 마물이 앞을 보지 못하는 종이라는 것이다. 마물은 갑자기 모든 인기척이 사라지자 큰 귀를 팔랑거리며 코를 킁킁거렸다.

다프네는 마른침을 삼키며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두 걸음.

데미안은 점점 가까워지는 다프네를 보며 손을 천천히 내밀었다.

몸을 격하게 움직였던 탓인지 다프네의 팔뚝에 감겨 있던 붕대가 느슨해져 피가 송골송골 맺히다가 결국 흘러내렸다.

피는 팔뚝을 지나, 손목을 훑고 손바닥을 타고 손끝에 다다랐다.

툭.

피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다프네는 마지막 발을 땅에 내디뎠다.

우지끈.

조용한 설원 위로 작은 나뭇가지의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렸다.

끼에에엑!

마물이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며 빠르게 달려왔다.

에드먼은 급하게 나무판자를 들어 오러를 흘려 보냈다. 그러자 당장 부서지지 않은 게 용한 나무판자는 마물의 몸통 박치기를 막아 냈다.

“데미안!”

데미안은 곧바로 다프네의 몸을 끌어당겼다.

“크윽.”

“각하!”

마물의 손톱에 팔뚝이 긁혀 신음을 낸 에드먼을 향해 알렉이 자신의 검을 던졌다.

검을 낚아챈 에드먼이 마물을 썰고, 마물의 피가 에드먼에게 온통 튀게 된 것은 한순간에 일어난 것이었다.

에드먼은 몸을 꿈틀거리는 마물에게 다가가 보라색으로 빛나는 핵을 찾아 파괴했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거친 호흡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동시에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사람들은 서둘러 마저 채비했다.

두 개의 마차 중 하나가 부서졌기에 다프네는 데미안이 타고 있던 짐마차로 옮겨졌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상황이 정리되자 알렉은 곧바로 에드먼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됐다. 난 괜찮아.”

그의 검을 내민 에드먼은 마물의 사체를 치우고 나무판자를 들어 올렸다. 그 아래 깔린 검집을 들어 올리자 마물의 피가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에드먼은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검집에서 칼을 꺼내 마물의 사체를 뒤집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알렉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이건 눈이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눈을 감겼다. 마물에게는 눈이 있었다. 그러나 두 눈은 접착제가 묻은 것처럼 딱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에드먼은 널브러진 마물의 비이상적으로 큰 귀를 펼쳤다. 그러자 그 안이 자세히 보였다.

“고막의 모양이 이상합니다.”

알렉은 자세히 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꼭… 여러 개의 고막이 붙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하나만 있어야 할 고막은 여러 개가 촘촘하게 붙어 있었다.

“각하, 이런 마물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없다.”

지금껏 수많은 마물을 베온 에드먼도 처음 보는 것이다.

그 말은 즉.

“…변이 마물이다.”

또 다른 변이 마물의 등장이었다.

일반적인 변이 마물은 그저 마물의 진화 형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르다.

몸집이 작고 앞을 볼 수 없지만, 청력만큼은 변이 마물보다 더 발달해 있다.

“근 5년 동안 벌써 두 번째 변이 마물입니다.”

변이 마물이 나타난 것이 고작 5년 전이다.

그런데 또다시 새로운 형태의 변이 마물이 나타났다.

만약 에드먼이 빠르게 마물의 상태를 확인하지 못했다면 큰 인명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각하, 무언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때, 수하가 다가왔다.

그 말에 에드먼은 마물을 살피던 것을 멈추고 앞을 보았다.

하나였던 검은 점이 여러 개가 되던 순간, 피비린내가 그의 코를 스쳤다.

“…요한!”

선발대였다.

10명 남짓한 이들은 모두 자잘한 부상을 입었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이는 요한이었다.

요한의 옆구리에 세로로 길게 찢어진 상처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냐.”

“마물을 만났습니다.”

초췌한 얼굴의 뉴벨 남작은 설명을 이어 갔다.

“고작 한 마리라 방심했습니다. 그러나 그 마물의 상태는 일반 마물도 변이 마물도 아니었습니다.”

에드먼은 기시감을 느꼈다.

“그 마물, 앞은 잘 못 보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상하게 아주 작은 소리도 잡아냈습니다. 요한은 마물을 피하려다가 돌에 쓸려 옆구리가 찢어진 거라 그나마 양호합니다. 그 마물은 마치….”

“귀가 비이상적으로 컸는가.”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말한 적 없는 것을 에드먼이 알고 있자 뉴벨 남작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마물인가?”

에드먼은 반으로 갈라진 마물의 사체 앞으로 뉴벨 남작을 데려갔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미처 마물의 사체를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던 뉴벨 남작의 눈이 커다래졌다.

“맞습니다. 설마 이곳도….”

“갑자기 나타나 마차를 공격했다. 정확히는 다프네와 내가 타고 있는 마차를.”

에드먼은 말을 하면서도 이상한 점을 감지했다.

마물은 목적을 가지고 공격한 것처럼 정확히 마차를 노렸다. 가장 선두에 있던 이들을 무시하고 곧바로 마차를.

“그런데 저희를 공격한 것은 더 작은 것이었습니다.”

“…그 말은 즉, 둘 다 성체가 아니란 거군.”

에드먼은 말의 두 배만 한 마물의 사체를 내려다보았다. 핵은 더 작았지만, 몸은 더 커졌다.

“설마… 새로운 변이 마물입니까?”

“그것 외에는 없다.”

“이럴 수가….”

새로운 변이 마물의 등장에 뉴벨 남작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에드먼은 문득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들어 올렸다.

검집을 지탱하던 끈은 정확히 깔끔하게 끊어져 있었다. 인위적으로 끊어진 것이 아니라 정말 뚝.

마치 무언가를 암시하는 듯한 모습에, 에드먼은 검을 꽉 쥐었다.

“…바로 출발한다.”

서둘러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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