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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28화 (28/145)

28화

다름 아닌 사람의 손이었다. 피 냄새의 원인이었다.

“손등에 있는 문신에 대해 알아 와.”

잘린 손을 돌리자 이상한 문신이 새겨진 손등이 보였다.

“예, 알겠습니다.”

방을 나온 요한은 이 손등을 계속 보관하고 있을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문신을 종이에 옮겨 담은 후 손은 소각장에 버렸다.

‘그나저나 마님은 데려오신 걸까.’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요한은 뒤늦게 그것을 떠올렸다.

늦은 밤, 요한의 발걸음 소리가 사라진 소각장.

움찔.

시커멓게 죽은 손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새벽이 내려앉은 저택.

벤자민은 홀로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그의 몸짓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조용했다.

“집사님?”

자다 깬 사용인을 만난 벤자민이 걸음을 우뚝 멈췄다.

“웬 술을….”

“각하께서 가져다 달라고 하셨네.”

사용인은 술병이 든 접시를 보며 눈을 비볐다.

“자네도 이만 자게.”

“예, 수고하십시오.”

잠기운에 휩싸인 사용인은 술병 옆의 헝겊과 붕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사용인을 뒤로하고 벤자민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에드먼의 침실이었다. 품에 무언가를 숨긴 채 노크도 없이 들어간 벤자민은 곧바로 소파로 향했다.

“…각하.”

그곳에는 오른쪽 어깨의 상처로 인해 입고 있던 흰 셔츠가 피로 붉게 물든 에드먼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에드먼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벤자민은 다급히 다가갔다.

“각하, 접니다.”

그 말에 에드먼은 몸에 힘을 뺐다.

벤자민은 곧바로 셔츠 단추를 풀었다. 셔츠를 젖히자 상처에서 피가 울컥, 쏟아졌다.

다급히 헝겊으로 지혈을 하자 에드먼의 미간이 인정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당연히 아플 수밖에 없다. 이 상처를 달고 몇 시간 동안 말을 타는 것은 물론 돌아다니고, 업무를 봤으니 말이다.

소파에 엎어진 에드먼을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바늘을 소독하느라 시간이 지체되고 있었다.

벤자민은 아까 봤을 때보다 더 벌어진 상처를 보며 서둘러 술을 들이부었다.

에드먼은 낮은 신음을 내뱉으며 숨을 헐떡였다.

“조금만 더 참으십시오. 빨리 끝내겠습니다.”

어렸을 때 높은 지위에 오른 탓에 에드먼의 주위는 늘 위험으로 뒤덮였다.

그러니 다치는 일이 흔치 않더라도 한 번씩 있었고, 외부로 알려지게 하지 않기 위해 벤자민을 통해 치료를 받았다. 그 탓에 벤자민은 이젠 웬만한 상처는 수습 가능할 정도의 의술을 겸비하게 되었다.

익숙하게 상처를 꿰맨 벤자민은 두 번째 술의 병을 따고 다시 들이부었다.

고통에 무뎌진 것인지 에드먼은 아까보다 더 편안해진 안색으로 입을 꾹 다물었다.

“다 됐습니다.”

한참 뒤, 붕대를 다 감은 벤자민은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먼은 기진맥진하여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상처가 덧날 수도 있으니 당분간 바깥 생활을 자제해야 합니다.”

“…알겠어.”

잔뜩 쉰 목소리로 대꾸하자 벤자민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화난 듯 말했다.

“적어도 제게는 말씀을 하셔야지요.”

만약 에드먼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는 정말 큰일이 났을 수도 있다. 상처 자체는 심각하지 않았으나 그것을 몇 시간 동안 방치했으니 자칫하다간 감염되어 살이 썩어 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제가 없던 지난 5년 동안 설마 혼자 이렇게 참으신 건 아니시겠지요. 정말 위험할 뻔했습니다.”

“그대가 날 발견했고 죽지 않았으면 됐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에드먼의 말에 벤자민은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한숨을 푹 내쉰 벤자민은 이내 피에 젖은 헝겊과 나뒹구는 술병을 하나씩 챙겼다.

“제가 한 것은 응급 처치에 불과합니다. 몰래 의원을 데려올 테니 제발 상처 덧나게 하지 마십시오.”

“노력하지.”

알겠다, 한마디를 한 번 안 하는 에드먼에 속이 터지는 건 벤자민이었다.

“한데… 왜 대모님께서 아직도 안주인의 방을 사용하고 계신 겁니까?”

벤자민은 에드먼이 자리를 비운 사이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공작 부인도 아닌 소피아가 안주인의 방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다프네가 에드먼과 결혼한 후에도, 계속.

“…다프네의 선택이다.”

“무엇이 말입니까?”

다프네가 시녀들이나 쓸 법한 방을 사용하는 일, 안주인도 아닌 이에게 안주인의 방을 내어 준 일.

“둘 다.”

“전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요. 당신도 그걸 원하잖아요?”

에드먼은 또다시 지끈거려 오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주머니 안에서 궐련을 꺼내자 벤자민이 수북하게 쌓인 궐련을 발견했다.

벤자민은 왜 에드먼이 진작 혼절하지 않은 것인지 이유를 찾았다. 궐련에 든 진통제 효과를 이용해 버티고 있던 것이다.

에드먼은 불이 붙은 궐련을 빨았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연기에 벤자민은 내뱉으려던 말을 도로 삼켰다. 금세 다 피운 에드먼은 주머니를 한참 동안 더듬거렸다.

벤자민은 테이블 위에 놓인 텅 빈 궐련 통을 발견했다.

“금방 채워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그래.”

벤자민이 나가고, 에드먼은 천장을 그저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겉옷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소피아가 내민 다프네의 불륜 증거였다.

서로를 그리워하는 온갖 단어들이 덕지덕지 보였다.

그것을 보던 에드먼은 소파에서 일어났다. 상처가 벌어져 피가 새어 나오는 것이 느껴졌으나 아랑곳하지 않은 에드먼은 침대로 향했다.

휘장을 걷자 침대에 누운 이가 있었다.

“…다프네.”

다프네였다.

만약 에드먼이 다프네를 감싸는 게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이 상처를 입었을 사람은 다프네였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다프네는 버티지도 못하고 중간에 숨을 거뒀을 확률이 높다.

이렇게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온전히 상처를 입은 사람이 에드먼이었던 거지 다른 이유는 없었다.

에드먼은 침대맡에 서서 기절한 다프네를 그저 바라보았다.

한참을, 그저 한참을.

벤자민이 그 모습을 보고 조용히 물러간 것을 눈치채지 못할 만큼, 한참 동안.

***

ㅎㅂㄹㄱ.공금

“알 수가 없습니다.”

벤트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중간에 하녀를 만나는 바람에 큰일 날 뻔했습니다.”

벤트는 연기하느라 혼났다며 숨을 푹푹 내쉬었다.

데미안은 벤트의 말을 듣고 초조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냥 소공작님이 직접 만나 뵙는다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오늘만 세 번째로 왔다 갔다 거리니까 하녀들이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한 번 더 간다면 이젠 덜미가 잡힐 거라며 벤트는 투덜거렸다.

“…안 돼.”

도대체 뭐가 안 된다는 건지, 벤트는 이제 묻지도 않았다.

“곧 다음 일정입니다. 빨리 가시죠.”

자리를 옮기면서도 데미안의 시선은 한곳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름 아닌 다프네의 방이었다.

데미안은 다프네를 만나기만 한다면 물으려던 말을 하고, 깔끔하게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데미안의 다음 일정은 오전에 처리한 서류를 가지고 에드먼에게 보고를 하는 것으로, 이번이 처음이었다.

“…해서, 가짜 마력석이 시장에 퍼져 큰 손해를 입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이번에 데미안에게 올라온 사항은 꽤 큰 사건이다.

몇 년 전, 천재라 칭송받던 연금술사가 있었다. 연금술사는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하기 위해 일반 돌을 마력석으로 만드는 실험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고 외면당한 연금술사는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 몇 년 뒤, 새로운 마력석이 시장에 풀렸다. 색도 아름답고 능력을 담을 수 있는 용량이 커 불티나게 팔렸다.

그러나 마력석이 등장한 지 정확히 한 달이 되던 며칠 전. 마력석을 구매하고 직접 쓰는 이들 사이에서 발작 증세가 나타났다.

조사해 본 결과 마력석을 유통한 사람은 다름 아닌 사라진 연금술사였고, 자신을 비웃은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며 ‘돌아왔다’는 쪽지를 남겨 놓고 또다시 사라졌다.

그 연금술사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만 행방이 묘연하다, 연금술사가 만든 마력석을 사용한 이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정도의 내용이었다.

“아버지?”

이 때문에 제국은 물론, 대륙을 떠들썩하게 만든 중요한 사건인데 에드먼은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는 듯했다. 설마, 그럴 리가. 착각이겠지.

“…만약 너라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역시 착각에 불과했는지 에드먼은 난감한 질문을 던졌다.

“저라면….”

데미안은 미리 생각해 둔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데미안이 대답을 마치면 에드먼은 그에 관한 추가적인 질문을 했고, 이를 반복하자 시간은 어느덧 훌쩍 지났다.

“각하.”

해가 완전히 저문 저녁.

벤자민이 집무실로 들어와 에드먼의 귓가에 무슨 말을 전하자 그의 미간이 좁혀졌다.

에드먼이 자연스레 궐련을 꺼내자 요한이 다급히 그를 불렀다.

“각하, 소공작님이 계십니다.”

“아.”

불을 찾던 에드먼의 손이 우뚝 멈췄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마.”

에드먼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드먼이 이렇게 일찍 집무실을 비운 적이 처음이기에 요한은 물론 데미안까지 멍하니 에드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에드먼은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어딘가로 바쁘게 향했다.

에드먼이 침실 문을 열자 유진이 고개를 숙였다.

“각하.”

“다프네는?”

“그것이…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계십니다.”

“그만 물러가라.”

유진이 나가고 에드먼은 침대로 향했다. 테이블에는 한 입도 대지 않아 식은 저녁이 놓여 있었다.

“다프네.”

다프네는 침대에 걸터앉아 얼굴을 손바닥에 묻고 있었다. 푸석한 갈색 머리카락이 마른 몸을 둥글게 감쌌다.

“…왜 이러는 거예요?”

다가오던 에드먼의 걸음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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