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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마님이 사라졌다-27화 (27/145)

27화

“소, 소공작님!”

그들은 이제껏 데미안과 에드먼이 얼굴만 닮았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데미안은 늘 미소를 짓고 있었고 하대를 쓰지 않았으며 예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마치 에드먼을 보는 것 같았다.

“그, 그것이….”

“소공작님.”

소피아가 끼어들었다.

“이건 어른들의 사정입니다.”

“대모님.”

“마님께서는 결단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지르셨습니다. 가정에 충실하지 않고 불륜을 저지르셨죠. 이게 다가 아닙니다. 야반도주까지 하셨습니다.”

데미안은 입을 꾹 다물었다.

“소공작님께서는 아무것도 듣지 마시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마세요.”

“대모님, 어떻게 신경을….”

“돌아오셨습니다!”

그때, 사용인 중 하나가 다급히 뛰어오며 외쳤다.

“각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에드먼이 돌아왔다.

“각하!”

응접실 문이 열리고 에드먼이 들어오자 방 안의 모두가 벌떡 일어났다.

에드먼은 응접실을 가득 채운 가신들을 보며 미간을 좁혔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에드먼의 기분을 말해 주고 있었다.

데미안은 에드먼의 뒤를 흘끔거렸으나 기다리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고 문이 닫혔다.

“각하, 일단 앉아서 얘기하시죠.”

소피아의 권유에 에드먼은 자리에 앉았다.

“일단….”

“본론부터.”

에드먼은 창백한 얼굴로 소피아의 말을 끊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에드먼은 평소보다 더 예민했다. 과연 지금 말하는 게 나은 것인가, 소피아는 고민했으나 이내 말을 꺼냈다.

“우선 이것 먼저 봐 주시겠어요?”

소피아가 내민 것은 다프네가 주고받은 편지였다.

에드먼은 무심한 눈길로 그것을 훑었다. 그가 이 편지에 대해 짐작할 무렵, 소피아가 말을 이어 갔다.

“시녀가 발견한…. 마님의 불륜 증거입니다.”

“불륜?”

“예. 마님께서 사라지신 이유입니다. 마님은 야반도주하신 겁니다.”

“야반도주라….”

에드먼의 반응은 모두의 예상과는 달랐다. 아무리 냉혈한이라고 해도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야반도주까지 했는데 에드먼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에드먼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볼 기세로 천천히 읽어 내렸다.

그럴수록 소피아의 초조함은 커져만 갔다.

“그래서.”

에드먼은 한참 후 입을 열었다.

“하고 싶으신 말이 무엇입니까?”

에드먼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던 소피아는 예상외의 모습에 잠시 당황했다.

“…이혼하셔야 합니다.”

“대모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가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들었다.

“마님의 행동은 명백히 윈터 공작가를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맞습니다. 이 치욕을 씻기 위해서는 이혼을 해야 합니다.”

“다프네가 임신했다.”

“그래도 이혼…. 예?”

정적이 흘렀다.

소피아는 더듬더듬 에드먼의 말을 나열했다. 다프네가, 그러니까 마님이 임신하셨다. 아이를 가지셨다.

“각하.”

소피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외간 남자의 씨를 품으셨다면 더더욱 이혼해야지요. 이건 말도 안 되는…!”

“내 아이입니다.”

말문이 막혔다.

“…그 아이가 각하의 아이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 내 말이 틀렸다는 겁니까.”

소피아는 감히 에드먼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에드먼과 눈이 마주친 순간 우뚝 멈췄다.

그사이 에드먼은 다프네의 불륜 증거라면서 소피아가 내민 종이를 집어 품에 넣었다.

소피아가 그를 붙잡기도 전에 데미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미안은 걸음을 옮기기 전, 고개를 돌려 가신들을 쭉 훑어보았다.

에드먼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에드먼의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피하기 바빴다.

“당장 해산하도록.”

“아버지!”

데미안은 곧바로 에드먼을 따라 나왔다.

무슨 일인지 잠시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던 에드먼은 몸을 돌렸다.

“어머니는… 오셨죠?”

“…….”

“아버지?”

“방에 있다.”

순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내 데미안은 속사포로 질문을 퍼부었다.

“변이 마물에게 공격을 받아 다치시진 않았습니까? 동상이라도 걸린 건 아니겠지요? 어디서 찾으신 겁니까?”

“데미안.”

에드먼은 대답 대신 이름을 부르며 데미안을 진정시켰다. 데미안은 자신이 현재 지나치게 흥분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심호흡했다.

“지금은 늦었으니 나중에 찾아가라.”

“…예.”

데미안을 돌아서려는 에드먼을 불렀다.

“저, 아버지.”

“말해라.”

“대모님이 하신 말…. 사실입니까?”

데미안은 망설였다.

“정말 어머니께서….”

“그럴 리 없다.”

“…알겠습니다.”

데미안은 사라지는 에드먼을 붙잡을 수 없었다. 방에 돌아간 후에도, 데미안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갑자기 벤자민이 찾아와 내려가 봐야 할 것 같다고 할 때까지만 해도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데미안은 문 앞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가신들이 다프네에게 모욕을 주는 것까지, 전부.

과연 어머니는 대모님의 말대로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치신 걸까.

‘…아무것도 모르겠어.’

답답하다.

데미안은 뒤척였다. 머리가 복잡하기도 하고 심장이 쿵쾅거려서 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긴장 때문인지, 기대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기대?’

데미안은 제 생각에 화들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기대를 하는 거지? 당황스러움에 벌떡 일어났던 그는 다시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어머니를 만나면 이런 감정도 다 해결될 거다. 그래서 기다리는 것이다.

데미안은 눈을 질끈 감았다.

***

챙그랑!

귀가 찢어질 듯한 파열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소리를 낸 장본인, 소피아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대모님, 진정을….”

“진정?”

시녀가 말리자 소피아는 고개를 휙 돌렸다. 우아하게 틀어 올렸던 머리카락은 산발이 된 지 오래고 눈에는 실핏줄이 다 터졌다.

더는 화낼 힘조차 없는 소피아는 비틀거리며 소파에 몸을 뉘었다.

“내가…. 내가 뭐에 홀린 게 틀림없어.”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허점 가득한 계획에 마음이 움직였을 리 없다. 소피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아니야, 뭔가, 뭔가 이상해….”

아무리 생각해도 그때 자신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쯧.’

혼란스러워하는 소피아의 모습에 문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마린다는 혀를 찼다. 계획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소피아를 제 편으로 만드는 데 조금 애먹었지만 모든 건 계획대로 흘렀다. 가신들이 완전히 넘어오기 직전, 에드먼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왜 믿지 않으시지?’

한 번 해 본 필사를 두 번째로 하려니 더 수월했다. 증거는 완벽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고 분명 그날 밤도 완전히 믿는 눈치가 아니었다.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었지만 마린다는 확신할 수 있었다. 에드먼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설마 마님을 만나신 건가?’

손톱을 물어뜯던 마린다는 비릿한 피 냄새가 입에 퍼지자 손을 뗐다.

‘확인해 보자.’

조용한 복도로 마린다의 발걸음 소리만 울렸다. 곧이어 다프네의 방 앞에 도착한 마린다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방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온기 하나 없는 방의 공기가 훅, 마린다를 덮었다.

‘…없어?’

방은 텅 비어 있었다.

***

“각하.”

급하게 뛰어온 요한은 숨을 고를 틈도 없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생길 줄 몰랐습니다.”

수도에 심어 둔 정보 요원에게 문제가 생겨 중간 지점에 잠시 만나러 다녀왔다. 고작 반나절에 불과했다.

“됐다.”

에드먼은 자리에 앉았다.

에드먼은 불편하게 겉옷을 입은 채였다.

“옷시중을 들겠습니다.”

“필요 없어.”

에드먼은 가까이 다가오는 요한을 차단했다.

요한은 그 모습에 어정쩡하게 들었던 손을 내렸다.

“…어딜 가셨던 것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에드먼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꾸했다.

“다프네를 찾으러 갔었다.”

“닉이 마님을 찾았습니까?”

그런 얘기를 전해 들은 적 없는 요한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아니, 내가 따로 찾았다.”

“각하! 그런…!”

“요한.”

에드먼은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췄다.

“내 씨를 품은 여자다. 내가 찾는 게 이상한가?”

“각하, 그게 아니오라….”

요한은 부정했으나 다른 대꾸도 하지 못했다. 요한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인생의 1순위를 에드먼으로 정하고 행동했다.

요한의 말과 행동 중 에드먼에게 해로운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둘은 돈독한 주인과 신하의 관계였다.

마님이 사라지기 전까지.

“…제가 주제넘었습니다.”

“오늘 벌어진 일을 자세히 조사해 와.”

“예, 알겠습니다.”

요한은 하루 정도 미뤄진 보고를 시작했다.

“성기사를 생포해 오는 와중에 한 차례 습격이 있었다고 합니다.”

“신전인가?”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직접 제 편을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황실로 의심됩니다.”

“황실이 뭘 안다고?”

“아는 게 없습니다. 아무래도 수상하니까 일단 저지르고 본 모양입니다. 확신하지 못해 습격자들의 수도 적고 능숙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황당했다. 의심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습격할 정도로 황실이 멍청할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황제가 닉의 죽음을 미심쩍게 받아들이고 있어… 비밀리에 황태자에게 조사 명령을 내린 것 같습니다.”

우려하던 일이 발생했지만 그 누구도 놀라지 않았다.

갑자기 세운 계획인 만큼 성공했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일이 걸릴 것은 예상하였다. 미리 꼬리를 다 잘라 놓고 위조한 증거도 만들어 놨으니 수사는 한참을 헤매다가 포기할 것이다.

보고가 끝나 갈 무렵 요한은 코끝을 맴도는 독한 궐련 냄새 사이로 피비린내를 맡았다.

“각하, 혹시 어디 다치신 건….”

에드먼은 요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요한에게 건넸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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