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
해가 떴음에도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지하실은 어두웠다.
“공작님.”
닉의 물음에 에드먼은 머금었던 궐련 연기를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통 입을 열 생각을 안 합니다.”
새벽 내내 심문을 이어 가던 수하를 따라 직접 심문에 참여한 닉은 흐르는 땀을 닦아 냈다. 그의 몸은 물론 얼굴에 집중적으로 상당한 양의 피가 튀긴 상태였다.
“이대로 시간만 낭비하다간 아무런 정보도 얻지 못하고 저놈이 먼저 죽을 겁니다.”
닉은 뻐근한 뒷덜미를 매만지며 앓는 소리를 냈다. 닉과 함께 심문했던 수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각하. 아무래도 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잡힌 다리를 스스로 자르면서까지 도망가려는 것을 보고 보통내기가 아니라고 생각은 했으나 이 정도까지 버틸 줄은 몰랐다.
“얼마나 버틸 수 있지?”
“지금 상태로는 길면 한 시간. 짧으면 30분입니다.”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약 투여해.”
승인이 떨어지자 수하는 다시 감옥 안으로 들어갔고, 고통에 찬 비명이 한 차례 들린 후 수하가 나타났다.
“들어가시죠.”
끼이익.
녹슨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축 늘어져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이가 있었다.
수하가 그의 뒤로 가 머리채를 잡고 올리자 피 칠갑으로 퉁퉁 부은 얼굴이 드러났다.
에드먼은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먼저 약효가 제대로 돌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기본적인 것을 물었다.
“이곳에는 왜 왔지?”
“내… 이름은 없다…. 이곳에는 편지를… 받기 위해… 왔다….”
그는 이가 다 빠져 새어 나가는 발음으로 답했다.
“다프네가 사라진 것을 블레드 후작이 아는가?”
“모른다….”
에드먼은 마른세수와 동시에 몸을 뒤로 젖혔다. 긴장된 몸이 순식간에 풀렸다.
블레드 후작은 다프네가 사라진 것을 모른다. 이 말은 즉 다프네가 블레드 후작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하지만 이내 다른 생각이 밀려 들어왔다.
‘홀로 북부를 지났다고?’
그건 한평생 북부에서 지낸 영지인도 힘겨워하는 일이다. 더군다나 다프네는 영지인이 아니며 귀하게 자란 귀족 영애다.
불가능했다.
“각하.”
에드먼이 갑자기 심문을 멈추자 수하가 그를 다그쳤다. 시간이 없다는 걸 자각한 에드먼은 곧바로 품 안에서 쪽지를 꺼내 펼쳤다.
닉은 고작 한 번 본 것을 바로 실행하는 에드먼을 보며 눈가를 좁혔다.
“이것. 네가 쓴 게 맞나?”
“아니… 다….”
“네 역할은?”
“편지를… 주고받는… 것이다….”
그저 편지를 배달하는 것에 불과했다.
“해독해.”
쪽지를 앞에 들이밀자 그는 부은 눈을 겨우 떴다. 그러자 피처럼 붉디붉은 눈동자가 보였다.
“이만… 돌아와라. 곧 계획을… 시작할 때이다…. 괜한 짓… 하지, 마라….”
“계획? 그 계획이 무엇이지?”
“세계의 평화와…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세계의 평화와… 영원한 안식을 위하여… 모든 것은 그분의 뜻대로….”
마치 조종당하는 인형과도 같았다. 잘 대답하던 그는 입력된 값만 말하는 인형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뇌 마법…. 악질이군요.”
강력한 세뇌 마법에 오랫동안 당한 게 분명했다. 세뇌 마법을 자극하면 자칫하다간 뇌가 터진다.
“그만. 다른 질문을 한다.”
에드먼은 급하게 제지했다.
눈이 더 붉게 물들었다가 차츰 빛을 잃었으나 에드먼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언제부터 편지를 주고받았지?”
“5년… 전부터….”
결혼한 바로 직후부터였다.
“주로 주고받은 편지의 내용은 무엇이냐.”
“그분만 아신다…. 나는… 모른다….”
에드먼은 문득 위압감을 느꼈다.
“…그분이 누구지?”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그러자 그는 아까와 같은 반응을 보이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는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마치 공포가 학습된 모습이었다.
“멈춰!”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말할 수 없다!”
수하는 재차 멈추라고 했지만, 잘게 일어나던 경련은 점점 심해졌다. 입에서 거품이 일어나는 것을 본 수하는 황급히 주사기로 손을 뻗었다.
“약을 더 투여하겠습니다!”
목덜미에 주사기가 꽂히자 언제 난동을 피웠냐는 듯 순식간에 얌전해졌다.
에드먼은 이 세뇌의 단점을 파악했다.
“그분이 블레드 후작인가?”
직접적인 정답을 말하지 못했지만 ‘예, 아니요’로 답할 수는 있었다.
“…아니다.”
제 가설에 확답을 얻기 위해 질문했던 에드먼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블레드에서 보냈지만 블레드 후작이 주인이 아니라니.
“각하. 약을 연달아 두 번이나 투여했기에 시간이 정말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수하는 에드먼을 재촉했다.
에드먼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주인이 블레드 후작이 아니라면 남은 건 단 한 명이다.
“그럼 그분이자 네 주인이 세르기 블레드인가.”
“맞… 다….”
세르기 블레드.
다프네의 오라버니이자 장차 블레드가를 이을 후계자.
에드먼은 잠시 멈칫했다. 현재 세르기 블레드는 닉이 탈옥했던 루부즈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
루부즈는 황실과 연관된 죄를 저지른 이들이 수감된 곳이기에 다른 감옥과는 다르게 그 어떤 돈이나 권력도 일절 통하지 않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세르기가 편지를 주고받는 건 불가능했다.
“세르기는 지금 어디 있지?”
“모른… 다….”
“세르기가…. 루부즈 감옥에 수감 된 게 맞는가?”
“아니… 다….”
세르기가 루부즈를 탈옥했다. 전혀 모르던 첩보였다.
에드먼은 혹시나 하며 세르기에 대한 질문을 더 해 봤지만 경련을 일으키거나 모른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에드먼은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세르기에 대한 세뇌 마법을 몇 겹이나 더 걸어 놨다는 걸 알아차렸다.
발작을 일으키는 간격은 점점 짧아졌고, 입에서 다시 거품이 일어났다.
“각하.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었다.
“…….”
에드먼은 끝내 회피하던 의심을 거두지 못한 채 망설였다.
“먼저 나가 보아라.”
그 말에 수하는 머뭇거렸다.
“하지만 아직 위험한 상태입니다. 혹여….”
“내가 당할 성싶으냐.”
“아, 아닙니다!”
“닉. 너도 나가.”
수하는 망설이다가 닉과 밖으로 나갔다.
에드먼은 몸을 경련하며 눈과 코, 입에서 피를 쏟아 내는 것을 가만히 응시했다.
“…세르기와 편지를 주고받은 대상이 다프네인가.”
그는 입을 뻐끔거렸으나 이미 성대가 굳었는지 소리가 희미했다. 에드먼은 목소리를 듣기 위해 가까이 다가갔다.
고개는 아래로 향해 있었다. 이 때문에 덥수룩한 머리카락이 붉은 안광을 빛내는 눈을 감추었다.
“그건….”
바로 앞까지 다가가자 겨우 목소리가 들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에드먼은 기이하게 붉은 안광과 눈이 마주쳤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몸을 뒤로 빼는 순간, 무언가 그의 옆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각하!”
콰앙!
엄청난 폭발음이 울렸다.
에드먼은 눈을 깜빡이며 고개를 들었다. 먼지바람이 사그라들고 보니 붉은 안광을 내뿜던 이는 머리에 검이 꽂힌 채 벽면에 박혀 있었다.
에드먼이 이상함을 감지하자마자 빠르게 피했으나 거리가 워낙 가까웠기에 그의 뇌가 폭발하기 직전에 먼저 검이 머리통을 날리지 않았다면 족히 팔 하나는 잃었을 것이다.
“각하! 괜찮으십니까?”
그 검을 던진 장본인, 요한은 황급히 다가왔다.
“약을 두 번 투여했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죄송합니다. 제가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는데…”
“됐다. 얻을 건 얻었다.”
약을 두 번이나 투여한 게 큰 자극이 되어 터진 모양이다. 요한에게 뒷수습을 맡긴 에드먼은 그대로 지하실을 나왔다.
에드먼은 그제야 해가 뜬 것을 발견했다. 이제 막 뜨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에드먼은 우두커니 섰다.
그때, 누군가 그의 뒤로 다가왔다.
“알렉.”
“각하.”
알렉이었다. 알렉은 급하게 뛰어온 것인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마님을… 마님을 찾았습니다.”
다프네를 찾았노라고.
***
ㅎㅂㄹㄱ.공금
치지직.
수정 구슬 위로 깨진 화면이 비쳤다.
“세르기 님.”
수하는 나직이 자신의 주인을 불렀다. 하지만 그의 주인은 그저 가만히 깨진 화면을 응시할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그것이 수하를 더 불안케 만들었다.
세르기 블레드.
비록 블레드가 쇠퇴의 길을 걷고 있으나 이 남자, 세르기는 달랐다.
그는 반역에 가담한 아버지와는 다르게 아무것도 모르는 후계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르기는 재판장에서 늙고 쇠한 아버지 대신 루부즈 감옥에 수감되는 것을 자처했다.
차가운 푸른색의 머리카락과 달리 세르기의 따스한 자상함과 배려심은 사교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어느 자식이 아비의 죄를 뒤집어쓰고 수감을 자처할까. 많은 이들은 세르기의 효심에 감동했다.
황제는 간곡한 세르기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블레드 후작에게 아예 형벌을 내리지 않을 순 없었기에 무기 징역 선고 후 다른 감옥으로 보내고, 세르기는 루부즈에 수감되었다.
하지만 세르기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사뭇 다르다. 그것을 잘 아는 수하는 세르기가 평소와 똑같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고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약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한참 후, 세르기가 내뱉은 말은 수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 탓에 잠시 멍을 때리던 수하는 세르기와 눈이 마주치자 번뜩 정신을 차렸다.
“아, 저 약은… 그러니까….”
대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일단 닥치는 대로 입을 열었으나 아는 게 없으니 정작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이거, 담당자 좀 데려올래요?”
세르기는 깨진 화면을 가리켰다.
위기에서 벗어날 기회를 얻은 수하는 곧바로 사망한 이의 담당자를 데려왔다.
쓰임을 다한 물건의 담당자는 다름 아닌 총책임자였다. 총책임자는 사람이 바뀌더라도 ‘노아’라고 불렸다.
노아는 수하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었기에 굽신거리며 세르기의 앞에 데려왔다.
“세르기 님, 어쩐 일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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