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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아내는 이만 떠나렵니다 (118)화 (118/129)

118.

며칠이 더 흘렀다. 아버지는 시골집에 다녀와야겠다며 길을 떠났고, 선대 공작께서도 한동안은 제도의 타운하우스에 머물 예정이었다.

“조용해요.”

헬렌은 다시 조용해졌다. 캐서린이 담요로 몸을 감싸고 화단 앞에 있는데, 로렌디스가 다가와서 어깨를 감쌌다.

“왜 밖에 있는 거야?”

“그냥. 산책 겸 걷고 있었어요.”

“밤공기는 차가우니까 낮에 다시 나오자.”

로렌디스는 캐서린의 어깨를 감싸서 침실로 이끌었다. 복도에 있던 하녀들이 둘이 같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자리를 비켰다. 캐서린은 길게 자란 머리칼을 배배 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들이 좋을까요?”

“무슨 뜻이야?”

“당신 닮은 아들이면 어떨까 싶었어요.”

로렌디스가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조금은 당혹스러워하는 것도 같고.

“아이 가지고 싶단 생각 없었어요? 아들은 좀 그런가요, 딸이 좋아요?”

“아이라고?”

“우리도 일상을 되찾아야죠.”

전쟁이 끝나고 우리는 일상을 되찾았다. 생각해 보면 위태로운 나날이었다. 후계자 하나 없이 주인 내외가 야만족과의 싸움에 몸을 던졌다. 마지막까지 일이 잘 풀렸으니까 망정이었지, 잘못됐다면 헬렌에 큰 피해가 올 뻔했다.

“네 몸이 견뎌 낼까? 이 작은 몸이 아이를 갖는다고?”

“이제는 괜찮아요. 우리 후계자도 한 번은 고민해 봐야 했잖아요?”

캐서린은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조금 늦었지만 이제라도 잘 지내고 싶어요. 나는 여기가 좋아요. 춥지만 따뜻해요.”

“이상한 말을 하는군.”

“당신이 여기 있잖아요, 로렌디스.”

로렌디스가 캐서린의 목덜미를 입술로 머금었다. 부드럽게 혀로 어르는데, 척추에서부터 오싹한 한기가 솟았다. 치아로 살갗을 아프지 않게 깨무는데, 뭉툭한 혀로 살갗을 어르는 게 아찔했다.

“고마워요. 계속 옆에 있어 줘서. 로렌디스가 있어서 버텼어요.”

지난 전투의 상처는 금방 회복됐다. 영지민은 어수선했던 상황 속에서 다시금 바닥을 딛고 일어서서 일상생활을 영위했다. 지금도 선술집이나 중앙광장으로 가면, 주인 내외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사랑해요.”

“……너는 정말.”

“나를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요.”

캐서린은 그의 이마에 이마를 맞댔다.

“캐서린.”

로렌디스가 그녀를 침대에 밀어 눕혔다.

“너무 작잖아.”

“뭐가요?”

“이 작은 배에 뭘 담는다고.”

로렌디스가 커다란 손아귀로 아랫배를 어루만졌다. 기다란 손가락이 배꼽 주변을 배회했다. 로렌디스가 몸을 숙이더니 아랫배에 고개를 묻었다. 커다란 몸으로 그녀를 감싸자 그대로 파묻혔다. 캐서린은 손을 내려서 그의 머리를 감쌌다.

“사랑해요.”

목이 막혔다. 그날 다시 깼을 때, 몸은 이미 거의 다 회복되어 있었다. 오랜 꿈을 꾼 기분이었다.

페레타가 남겨준 마지막 선물이라는 게, 새 생명이었을까. 다시 깼을 때는 흉터는 남았을지언정, 상처는 모두 회복됐다.

“로렌디스.”

캐서린이 먼저 그를 불렀다. 로렌디스가 고개를 들었다. 캐서린은 그의 턱을 붙잡고 입술을 맞췄다. 두 손으로 목덜미를 감싸고 고개를 비틀자, 로렌디스가 팔을 내려 침대를 짚었다.

입맞춤은 뻣뻣했다. 그녀가 먼저 한 것도 처음이었다. 이게 맞던가? 혀를 얽고 입술을 핥고. 캐서린은 느릿하게 아랫입술을 베어 물었다. 치열을 훑고 혀를 옭아맸다. 서툰 솜씨로 숨을 섞는데, 로렌디스가 캐서린의 옷을 끌어 내렸다. 드레스가 손쉽게 벗겨졌다.

“서툴어.”

로렌디스는 드레스 뒤의 지퍼를 내리고 그대로 벗겨 냈다. 속옷을 손가락에 감아서 끌어 내리자 헐벗은 몸이 가늘고 여렸다.

“아팠나?”

캐서린이 가슴 쪽으로 파인 상처를 가리는데, 로렌디스가 혀로 핥았다. 정점을 입안에 넣고 혀로 굴리더니, 통통하게 살이 오른 둔덕을 삼켰다.

“흐윽!”

로렌디스는 손끝으로 반대쪽 가슴 둔덕부터 배꼽 아래까지 어루만졌다. 가슴골을 스치고 내려오는데, 굳은살이 박인 손아귀는 거칠었다.

캐서린이 몸을 움찔하자, 손아귀로 골반을 눌러서 그의 아래로 끌어당겼다. 단단한 손이 하체를 끌어당기자 다리가 벌어졌다.

“움직이지 마.”

“로렌디스…….”

로렌디스는 배꼽에 고개를 묻고 혀로 쓸었다.

“살살해요.”

“어디 하나 부서지기라도 할까 살살하잖아.”

로렌디스가 배꼽에서부터 다시 찬찬히 내려갔다. 움푹 파인 우물 안을 내려다보더니, 그는 그대로 다리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더운 열기가 끼쳤다. 캐서린이 이불자락을 붙잡고 허리를 젖히자, 로렌디스가 골반을 단단히 붙잡았다.

느리지만 단호했다. 정중하지만 빠져나갈 틈 하나 없이 촘촘했다. 흐르는 샘물로 목을 축이듯, 로렌디스가 입술로 아래를 샅샅이 핥았다.

캐서린이 다급하게 손을 내려서 그의 머리칼을 붙잡았다. 손아귀 아래서 그의 머리칼이 헝클어졌다.

집요했다. 오랜만에 섞는 몸일지라도, 로렌디스는 어디가 예민한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허벅지 안쪽 살갗을 깨물고 고개를 드는데, 마주친 눈이 음험했다.

“머리카락 잡지 마.”

캐서린은 허리를 뒤틀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생경한 자극에 아랫배가 점점 뭉쳤다. 손가락이 한껏 예민해진 살점을 구슬처럼 굴렸다. 목덜미에서부터 쭈뼛쭈뼛하며 소름이 돋았다. 아래가 미끈하게 젖어 들었다.

“넣을게.”

“…….”

“괜찮아. 울지 마.”

캐서린이 허리를 들썩이자, 로렌디스가 셔츠를 벗었다. 겹치는 몸이 거대했다. 다리 사이가 경련하듯 조여들었다. 허벅지 근육이 팽팽하게 조여 오고, 내벽을 긁는 존재감은 예전보다도 더 거칠었다. 날것 그대로의 부피감에 캐서린은 신음을 삼켰다. 눈을 크게 뜨며 입술을 벌리자, 로렌디스가 입을 맞췄다.

“아아……!”

뭉툭한 끝이 내벽을 긁었다. 성난 몸짓에 몸이 흔들렸다. 캐서린이 울먹거리며 손을 바스락거리자, 로렌디스가 팔을 가져가 그의 목에 둘렀다. 촘촘하게 겹친 몸이 맞물렸다.

* * *

캐서린은 욕조에 몸을 담갔다. 머리카락이 가늘게 흘러내리고, 로렌디스가 가느다란 금발을 손가락으로 빗었다.

욕조에서 모락모락 피어나는 열기로 뺨이 후끈거렸다. 캐서린이 뺨을 손등으로 만지작거리는데, 로렌디스가 그녀의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더워.”

캐서린은 욕조에서 돌아앉아서, 로렌디스와 눈을 맞췄다. 로렌디스가 안았던 손을 풀고 허리를 단단히 잡아서 그녀의 몸을 지탱했다.

“온수잖아요.”

“네 몸이 뜨겁다고.”

“아아…….”

“확실히 따뜻한 게 좋아.”

혼잣말 같았다. 로렌디스가 그녀의 허리에 감은 손을 느릿하게 내렸다. 등줄기를 훑는 손이 노골적이었다. 캐서린이 그의 목에 이마를 기대고 숨을 나른하게 내쉬는데, 그가 자세를 고쳐 안았다. 캐서린이 불안한 눈으로 그를 살피자, 로렌디스가 괜찮다며 어깨를 두들겼다.

“괜찮아.”

로렌디스는 뭉친 근육을 느릿하게 풀어 주며 다시 몸을 겹쳤다. 캐서린은 벅찬 숨이 터져 나오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물 안에서 느릿하게 움직이는 몸이 자극적이었다. 로렌디스가 다시 그녀를 안아서 욕조에서 나올 때, 캐서린은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다.

“체력이 많이 안 좋구나. 닦아 줄게. 이리 와.”

“그, 그만…….”

“닦기만 할게. 이대로 침대에 누울 것도 아니잖아.”

로렌디스는 씻은 몸을 수건으로 닦고, 침의를 입혀서 다시 눕혀 줬다. 늦은 새벽이어서일까. 몸이 나른했다.

“나중에요.”

“응.”

“광장에 다시 다녀와도 돼요?”

로렌디스는 캐서린이 나지막하게 꺼내는 이야기에 답했다.

“광장에는 왜?”

“벽화……. 다시 그려 넣고 싶어서요.”

뎐트가 사라지며 벽화도 지난 세월을 한꺼번에 맞이한 듯 드문드문 벗겨졌다. 로렌디스는 나중에 다녀오자며 답했다. 허리를 다독이는 손이 느릿했다. 캐서린은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캐서린은 약속한 대로 로렌디스와 광장을 찾았다. 낮에는 사람들이 많으니 일부러 늦은 저녁에서야 나왔다.

로렌디스는 캐서린에게 로브를 꼼꼼히 씌우고, 벽화 가까이 다가갔다. 조각칼로 깎은 흔적은 그대로지만 페인트는 거의 다 벗겨졌다.

캐서린은 품에서 페인트를 꺼냈다. 너무 많이 건들지는 말자. 다만, 이곳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할 수 있는 정도로만 다시 그려 주자. 캐서린은 긴 은발에 흰 페인트를 칠했다.

‘내가 당신들을 기억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페레타와 뎐트 당신을 잊겠지만, 적어도 이곳에 서 있는 우리는 기억하겠노라고.

그녀가 봤던 페레타는 장성한 성인이었다. 여기에 있는 어린아이는 페레타의 어린 시절이겠지. 캐서린은 벽화를 손으로 더듬거렸다.

“때때로 짓궂다가도 무심해지고, 감정변화가 극히 드문 것 같더라니.”

그들은 너무 오랜 시간을 여기에 붙잡혀 있었다.

“아직도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설화니 고대 왕국이니 하는 이야기도 솔직히 옛날이야기고,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기록은 과거의 잔재이다. 과거를 조각조각 내서, 책에는 아주 일부분만 담아냈다. 고작 책 몇 권을 봤다고 페레타 왕조를 논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있다면, 기록으로 완전히 보존되는 건 ‘1’이 다였다. 그것도 해석하기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된다. 그래서, 설인과 고대 왕국의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다만, 그들이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확실했다.

“이만 가요.”

걸음을 옮기려던 캐서린은 벽화 한쪽에 남아 있는 공간을 발견했다. 공간은 좁았지만, 여기에 무언가를 그리기에는 충분한 것 같았다. 캐서린은 거기에 작은 흔적을 그렸다.

‘우리 또한 당신들과 있었노라고.’

천년 전의 역사가 담긴 벽화에 손을 대는 게 잘한 짓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뎐트가 본다면 싫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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