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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아내는 이만 떠나렵니다 (92)화 (92/129)

92.

캐서린은 어색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몸이 흔들거리면서 잠에서 깼다. 가슴을 답답하게 했던 옷이 한 꺼풀씩 벗겨졌다.

캐서린은 몸을 약하게 들썩거렸다. 그러자 허리 아래에 걸렸던 옷이 손쉽게 벗겨졌다. 으음. 가벼워.

옷차림이 한결 편안해졌다. 베개에 뺨을 약하게 비비다가 눈을 떴다. 그리고, 그제야 그녀가 후원에서 잠들었던 사실을 떠올렸다.

언제 침실로 왔지.

몸이 좀 가볍더라니 침대에 누워 있었구나. 막 고개를 드는데, 로렌디스와 눈이 마주쳤다. 로렌디스가 캐서린을 작게 불렀다.

“당신.”

캐서린은 베개에 뺨 한쪽을 묻고 약하게 앓았다. 피곤하긴 했어. 잠깐 꾸벅꾸벅 졸던 게 그대로 잠들어 버릴 줄이야.

잠에서 막 깨서인지, 눈가가 뻐근했다. 캐서린은 눈매를 더듬거리다가 몸을 옆으로 일으켰다.

“……언제 깼어?”

“방금요. 이건?”

“당신 잠들어서 위에 옷만 벗기던 참이었어.”

로렌디스의 어조는 덤덤했다. 그는 그 순간에도 남은 옷가지를 벗겼다. 캐서린은 흰 레이스 속옷을 보고 흠칫 굳었다.

드레스 안에 입던 속옷이었다. 이불을 끌어와서 어설프게나마 가리는데, 로렌디스의 시선이 닿았다.

“왜 갈아입혔어요?”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잠들었잖아. 네가 잠들지나 말든가……. 사람이 멀쩡한 침실 놔두고 왜 밖에서 잠들어?”

당신 기다리다가 잠든 건데요. 약하게 웅얼거렸지만 소심한 목소리는 금방 목구멍 속으로 묻혔다.

“그나저나, 어디 다녀온 거예요?”

“지하 감옥?”

“거기는 왜요?”

로렌디스는 지하 감옥에 누구를 데려다 놨는지 이야기하며, 간단하게 정황을 캐서린에게 설명해 주었다.

“후계자를 인질로 데려온 거예요?”

“이대로 인질로 놔둘지, 황실로 보낼지는 아직 결정 내리지 못했어.”

지배자의 후계자를 데려왔고, 황후와 야합한 정황도 잡아냈다. 이대로 놈을 제국에 넘긴다면 로렌디스를 성가시게 하던 일도 나란히 정리될 것이다.

물론 야만족은 꾸준히 또 설원을 내려오겠지만, 한동안은 잠잠해지겠지.

“왜 그런 표정이에요?”

“내 표정이 어때서?”

“마음 쓰인다는 듯 하고 있어서요.”

“그놈에게 받은 게 많아서 어지간한 부탁은 그냥 들어주고 싶다만, 이번에는 어쩔 도리가 없잖아.”

그놈이라는 건 뎐트를 뜻하나.

그 말을 하는 로렌디스의 표정이 조금도 편하지 않다. 그만큼 그의 주변이 어수선하다는 뜻이었다. 신경 쓸 일이 많다.

제도에서는 황후가 그를 건드리고, 북부에서는 야만족이 그를 건드린다. 잠시도 가만히 두질 않으며, 결국에는 그가 직접 움직이게끔 했다.

‘피곤할지도.’

캐서린도 그제야 깨달았다. 그의 표정이 유난히 어둡다. 역시나 그간의 일로 지친 모양이다.

버틴다고 오래 버텼지.

캐서린은 팔을 뻗어서 그의 목을 감쌌다. 작은 온기일 뿐이다. 팔 안에 감싸 안아도, 그의 몸이 따뜻해질 리 없다.

작은 위로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당신에게 그런 마음이 닿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캐서린은 고요히 눈을 감았다.

“왜.”

로렌디스가 낮은 목소리로 되물었다.

“이러는 거지?”

“좀 피곤했는가 싶어서요.”

이런 게 당신에게 위로가 될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당신에게 조금의 여유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헬렌에 처음 왔을 때 암울하던 내 앞길을 다시 비춘 게 당신이었으니까.

캐서린이 그의 등을 다독이자, 다리 아래가 단단해졌다.

“너는 부주의해.”

그녀를 책망하는 어조였다. 그녀가 부주의해서 고단하다는 듯. 로렌디스는 팔을 뻗어서 캐서린의 팔뚝을 낚아챘다.

아프지 않게 힘을 조절했는지, 아프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그대로 캐서린을 밀어 눕혔다.

이미, 너무 한 번 힘을 빼뒀지 않나…….

캐서린은 질린다는 듯 그를 올려다봤다. 탁한 눈동자는 검었다. 그는 잡념을 몰아낸 듯, 캐서린만 내려다봤다.

“이야기했잖아.”

“어떤 이야기요?”

“머릿속이 복잡할 때는 뇌 속을 뒤집어 버릴 기세로 엎으라고.”

당신은 뇌 속을 뒤집는 게 아니라, 몸속을 뒤집는 게 문제다. 캐서린은 소심하게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그런 호소는 닿지 못했다.

로렌디스가 입술을 한입에 삼켰다.

진득하게 달라붙은 입술이 치열을 쓸었다. 뜨뜻미지근한 온기가 입안에 퍼졌다. 처음에는 텁텁할 줄 알았는데, 특유의 체향이 입안에 스미자 심적인 안정감이 내려앉았다.

그는 캐서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느릿하게 하체를 비볐다. 뭉툭한 존재감이 다리 사이를 찔렀다.

속옷만 남은 와중에, 로렌디스의 눈이 다리 아래에 닿았다. 그는 그대로 입에 머금었다. 뭉근하게 아래를 축이고, 입으로 적셨다.

뱃속이 뜨거워졌다. 다리를 버둥거리자 허벅지를 쥔 손아귀가 단단히 다리 사이에 자리 잡았다. 울먹거리며 목 속에서 울음을 토해 내는데, 천천히 젖어드는 게 한두 곳이 아니었다.

“하아…….”

때로는 짐승처럼 탐하고 찢고 먹어 치웠다. 그의 몸은 날것 그대로였고, 그 자극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 안에 압박감이 가득 차올랐다. 숨을 헐떡이며 이불을 움켜쥐자, 로렌디스가 천천히 몸을 맞췄다.

아래위로 흔들거리는 박자감이 빠듯하게 몸 안을 채웠다.

복잡하던 머릿속이 비워졌다. 예전에 아버지 소식을 다시 듣게 됐을 때도, 이런 식으로 우리는 복잡한 마음을 다시 억눌렀다.

뜨거운 온기가 몸 안을 채우고, 빠듯한 쾌감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리 아래는 덜덜 떨렸다. 모든 근육이 비명을 내질렀다.

빠듯하게 속살을 헤집고 들어온 그것이 안에서 몸을 부풀렸다. 내벽이 진동하듯 바르르 떨었다.

“으응!”

작게 신음하듯 앓자 로렌디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존재감이 끝까지 들어찼다. 캐서린은 울먹거리며 그의 어깨를 손톱으로 긁었다.

거친 둔통이 찾아들며 또다시 함락되듯 내부가 경련했다.

* * *

앞전에도 이미 짐승 같다고 표현했지만, 찰나의 판단이 의외로 잘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우리가 그랬고, 실제로 로렌디스는 본성 앞에서 솔직한 편이었다. 쾌락과 충동을 억누르는 게 인간이라는데, 로렌디스는 그런 점에서 날것 그대로 짐승에 가까웠다. 그는 절제라는 것을 몰랐다.

‘으읏, 아파…….’

약하게 앓으며 허리를 짚는데, 로렌디스가 말끔한 표정으로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밖에서는 이미 해가 밝아 있었다.

캐서린은 곰곰이 시간을 되짚었다.

저녁 무렵에 침실에서 식사를 했다. 일단은 먹고 하자는 게 그의 의견이었고, 이거라도 안 먹었다간 체력적으로 더 힘들 것 같았기에 순순히 응했다.

침실이라서 향이 강하지 않은 음식으로 택했다. 평소에도 향신료를 크게 즐기지 않아서인지, 담백한 음식들이 입맛에 잘 맞았다.

그 뒤로도 우리는 다시 몸을 섞었다. 해가 질 무렵, 선잠이 들면 로렌디스가 그녀를 다시 깨웠다.

토벌을 막 끝내고 와서 당신도 피곤할 것 아니냐고 설득했지만, 이불 시트를 밀어내는 손짓은 거침없었다.

새벽 무렵까지도 시달리느라 해가 겨우 뜰 때야 잠들었다. 그리고 로렌디스는 잠깐 눈을 붙이고는 금방 회복됐다.

“당신 나가요?”

“왜 깼어?”

“부스럭거려서요.”

“더 자. 깨워서 미안하게.”

당신에게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있었다는 건 오늘로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캐서린은 이불로 몸을 감싸고 고개만 내밀었다. 로렌디스가 셔츠 단추까지 마저 다 채우고 캐서린에게 다가왔다.

“몸은.”

“당신은 괜찮을지 몰라도, 나는 아니에요. 체력적으로 당신과는 몸이 다르다고요.”

“나름 조절한다고 조절했다만.”

당신이 조절한다고 조절한 수준이었다면, 이건 해도 해도 너무했다. 캐서린이 억울함을 호소해도, 그를 들어 줄 사람은 떠날 채비를 끝낸 뒤였다.

로렌디스는 말끔한 낯이었다. 어제저녁 혈색이 어두웠던 피부에 생기가 감돌았다. 다부진 근육이 옷 속에 몸을 숨겼지만, 지난 기억들 때문에 또렷하게 떠올랐다.

“오늘은 뭐 할 거야?”

“당신 덕분에 잠을 못 자서요. 조금 더 자고…….”

“조금 더 자더라도 점심식사는 해야 해. 당신 식사까지 거르고 자는 거 나중에 내 귀에 들렸다간 하인들부터 초상날 거라는 걸 알아둬.”

로렌디스는 캐서린을 협박하는 방법을 잘 깨우쳤다. 말로 설득해서는 듣지 않으니, 누군가 하나를 걸고 넘어져야지 듣는 척이라도 한다.

식사나 생활습관처럼 사소한 부분이 더욱 그랬다. 캐서린도 로렌디스만큼이나 무던한 성격이라서 평소에 스스로를 잘 안 챙기는 편이었다.

“네 몸에 작은 이상이라도 생겼다간 제임스 박사부터 목이 아슬아슬해질 거야.”

그는 빈말이 아니라며 엄포를 놓듯 이야기했다. 제임스가 곧 앓으며 그녀를 찾을 것 같다. 단지 예감일 뿐이지만, 보통 이런 예감은 잘 피해 가지도 않더라.

물론, 당신은 예전부터 유난히 유난스러웠다. 그런데 이런 그를 예민하게 만들어 버린 게 캐서린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알겠다고 그의 마음부터 풀어 놓았다.

“더 자.”

“다 잤어요.”

“기진맥진해서 쓰러질 거였으면, 아침 늦게까지 자 줘야지.”

그는 유쾌하다는 듯 웃어넘겼다. 그 자리에서 웃어넘기는 모습이 요사스러웠다. 캐서린은 로렌디스부터 보내 두고 침대에서 나왔다.

하녀의 도움을 받아서 옷을 가볍게 입고 밖으로 나오자, 반쯤 희게 질린 제임스가 책망하듯 캐서린을 쏘아봤다.

“제임스는 또 왜 심술이 나 있지?”

“마님께 무례합니다.”

넨시가 거들듯 하는 이야기에, 제임스는 홀로 목덜미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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