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보좌진과 기사들은 야영을 준비했다. 바깥에 오두막이 있는데, 거기서 잔다며 기사들끼리 잘 자리를 마련했다.
“밖에서 자도 괜찮아요?”
“저희는 안이 더 불편합니다.”
“차라리 헬렌으로 바로 출발하는 게…….”
“괜찮습니다. 내일 아침에 출발해도 됩니다.”
브레디는 그길로 기사들을 데리고 바깥에서 취침 자리를 준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고 갈 게 아니라 헬렌으로 바로 가는 건데. 캐서린은 어색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로렌디스가 침의를 갈아입고 방으로 왔다. 좁은 방은 헬렌에서 지내던 부부 침실과 달랐다. 그나마 청소를 가볍게라도 해 둔 게 다행이었다. 로렌디스는 가구나 벽지를 손으로 한 번 쓸어 보고 캐서린을 돌아봤다.
“다시 봐도 좁긴 좁아.”
“불편하시겠죠? 표정이 조금 그러신데…….”
“아니야. 반년이 지나도 여기서 네 체향이 난다는 게 이상해서 그래.”
캐서린은 멈칫하며 목덜미를 긁적였다.
“제 방에서 자려고요?”
“그럼 어디서 자나?”
“침대가 좁아요.”
침의로 갈아입은 캐서린이 먼저 침대에 누웠다. 당신이 괜찮다면 괜찮겠지만, 그래도 침대가 좁아서 누울 때 부딪치는 건 어쩌지 못한다. 캐서린이 미리 양해를 부탁하자, 로렌디스는 괜찮다며 수긍했다.
“상관없어.”
“상관, 없다고요?”
“침대가 조금 삐거덕거리네. 어차피 내보냈으니까 상관없나?”
캐서린이 천장을 보고 누웠다. 그러고 가만히 있는데 침대 옆이 꺼졌다. 로렌디스가 따라 누운 것 같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캐서린은 아버지를 잃고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를 처지였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까, 그날 그 기억들이 떠올랐다.
‘이상하지. 그래도 마음은 편안해.’
여기 눕는 건 언제나 캐서린 혼자였다. 여기를 찾는 것도 캐서린 혼자였다. 그 허전함이나 박탈감이 침대에만 누우면 몰려왔었다.
‘잠들었나?’
옆에 누군가 누웠다는 사실만으로도 머릿속이 또렷해졌다. 그래서 더더욱 잠자리에 들기가 어려웠을까? 쌕쌕대는 그의 숨소리만 더 의식됐다.
캐서린은 손가락을 꼼지락대며 이불만 만지작거렸다. 침대에 누워서 천장만 보는데, 로렌디스가 그녀의 허리를 어루만졌다. 가느다란 허리에 로렌디스의 팔이 감겼다. 캐서린은 그 팔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이불을 조금 더 끌어 올렸다.
몸이 더 바짝 붙었다. 캐서린은 숨을 멈추고 다리를 웅크렸다. 커다란 몸이 뒤에서 겹쳤다. 캐서린은 베개를 움켜쥐고 고개를 숙였다.
“보좌진과 하인들이 왜 나가서 잔다는 줄 아나?”
“자리가 협소해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이유도 있지만, 아무래도 나무집의 경우에는 방음이 안 좋아서…… 위층에서 잠깐 걷는 것도 진동소리로 울린다더군. 브레디가 그래서 밤에는 나간다고 한 거야.”
캐서린은 목덜미를 붉히며 긁적였다. 아랫배가 서서히 뭉쳤다. 긴장감으로 그 속을 긁어내며 간지럽혔다. 베개를 쥔 손끝이 잘게 떨렸다. 호흡 하나하나를 의식했다.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이상한데……. 고개를 슬쩍 돌리자, 검은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캐서린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아…….”
“자려고?”
“안 돼요?”
“그럼 자.”
턱을 쥔 손이 캐서린의 입술을 벌렸다. 아랫입술을 누르고 그 안을 베어 물었다.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눈살을 찌푸리자, 등줄기를 천천히 쓸었다. 턱을 깨물고 목덜미를 깨물고, 쇄골까지 내려온 입술이 움푹 파인 골짜기를 혀로 축였다.
“하아…….”
“사람 없는데 굳이 입술 깨물지 마.”
신음이 터졌다. 그럴 때마다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로렌디스가 손가락으로 혀를 누를 때는, 차마 막지 못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나는 네가 우는 소리가 좋아.”
울먹거리자 그의 눈이 짙어졌다. 침의를 벗자 헐벗은 사냥감이 됐다. 어둠 속에서 눈을 빛내며 사냥감을 기다리는 포식자처럼, 그는 몸을 낮췄다. 다리 사이로 파고든 손이 몸을 단단히 받쳤다.
“하인도 없는데 왜 또 입술을 깨물어.”
헬렌에서는 하인들을 의식해서 입술을 깨물며 버텼다. 그게 버릇이 돼서 신음이 나오면, 그걸 억누르고 삼키는 게 습관이 됐다. 탁한 숨이 터졌다. 로렌디스가 목덜미를 치아로 깨물었다. 캐서린은 그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목을 젖혔다.
“읏!”
울먹거리는 울음소리도 그의 입술에 묻혔다. 빠듯하게 파고드는 몸이 벅찼다. 아랫배를 가득 채우고도 그 속을 사정없이 긁었다. 속을 긁어내며 자극하는 몸짓에 어질어질했다. 스스로 모든 걸 내려 두고 몸을 맡긴 기분이었다.
“흣!”
“있잖아.”
“왜, 왜요…….”
로렌디스가 몸을 겹치고 낮게 이야기했다.
“가끔 보면 너는 나를 짐승 보듯 보더라.”
“그건 당신이 짐승처럼 굴 때가 있잖아요.”
“내가 언제?”
“지금도 그렇잖아요.”
겹쳤던 몸이 파도처럼 캐서린을 덮쳤다. 복잡하던 머릿속은 이미 엉망이었다. 다른 마음을 품을 겨를도 없었다. 빠듯하게 벌어진 아래를 강하게 헤집었다. 안개 속에 파묻혀서 눈앞이 희게 질린 것 같았다.
“부부잖아. 부부끼리는 원래 그래.”
“진짜요?”
“내가 아는 부부는 그래.”
“아닌 거 같은데…….”
캐서린은 입술을 손으로 가렸다.
“그래서 도망가려고?”
“도망간 적 없어요.”
“너는 나만 보면 도망가려는 마음부터 품잖아.”
로렌디스가 가느다란 손목을 손아귀로 움켜쥐었다. 땀이 밴 손바닥이 진득거렸다. 삐거덕삐거덕. 침대가 몸짓에 따라 거친 마찰음을 냈다.
“어디든 도망갈 궁리만 하는 모습 다 보여.”
“그랬나……?”
울음을 참아 내며 되물었다. 나도 모르는 내 머릿속을 당신이 알 수 없잖아요. 캐서린이 호소하듯 중얼거리자, 로렌디스가 캐서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찔렀다.
“처음부터 석연치 않은 결혼이었다는 건 알아. 그래도 어디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모습이 보기 좋을 리 없잖아.”
머릿속이 하얗게 질렸다. 캐서린은 몸을 덜덜 떨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강한 자극이 범람해서 머릿속을 집어삼켰다. 온 근육들이 덜덜 떨리고, 침이 입가에 고였다. 그는 그것까지 모두 먹어치웠다. 캐서린은 로렌디스에게 몸을 맡겼다. 그의 어깨에 팔을 감고 몸을 기댔다.
“기대.”
“당신 너무 집요해…….”
손아귀에 땀이 고였다. 동그란 어깨가 안으로 굽어서 몸이 움츠러들었다. 로렌디스가 척추를 쓸 때, 캐서린은 목을 젖히며 앓았다.
* * *
새벽쯤에서야 겨우 잠이 들었다. 억지로 잠을 청할 것도 없었다. 거의 지쳐서 쓰러지다시피 잠들었다. 눈을 뜨자 자작저에는 이른 아침이 찾아왔다.
“이만 일어나.”
“일어났어요.”
졸음이 쏟아졌다. 꾸벅꾸벅 조는데, 로렌디스가 목덜미를 손으로 감쌌다. 캐서린은 그의 시선을 피하다가 눈동자를 도르륵 굴렸다. 로렌디스가 웃으며 캐서린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 기분이 묘했다.
“일으켜 줘?”
“혼자서 일어나도 돼요.”
“데려온 하녀가 없어. 옷 입는 건 내가 도와줄게.”
로렌디스가 익숙하게 옷을 입히고 치장을 도왔다. 긴 드레스를 입히는 손길이 매끄러웠다. 버벅대는 것 없이 수월하게 입혔다.
“여자들 옷을 입혀 본 거예요?”
“벗을 때 순서를 눈여겨본 거야.”
아아……. 캐서린은 어버버하다 눈을 피했다. 당황할 말만 골라서 하는 것 같다. 저런 성격이었나. 나름 무던하고 시큰둥한 성격이었잖아.
“요즘 자주 당황하네.”
“로렌디스가 말을 당황하게 하잖아요.”
그랬나.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로렌디스가 캐서린을 밑으로 이끌었다. 말끔하게 정돈된 저택은 어제저녁 때보다 깨끗했다. 캐서린은 응접실 앞에 서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로렌디스가 숄을 가져와서 캐서린의 어깨에 덮었다.
“춥진 않고?”
“헬렌보다는 따뜻해요.”
“헬렌으로 가면 다시 추워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 입어 둬.”
캐서린이 숄을 꼼꼼히 여미는데, 바깥에 마차가 준비됐다.
“이만 출발하시겠습니까?”
캐서린은 문가에 서서 아버지를 떠올렸다. 언제 또 올까. 올 수 있을까. 적막한 집 안이 이상하게 마음 한쪽에 밟혔다.
“아버지도 돌아오시겠죠?”
모리켄 경도 왔으니까. 아버지도 곧 오시겠지.
아버지는 헬렌이 아니라 자작저에 묻어 드리고 싶다. 헬렌의 기사가 아닌, 아버지로 보내 드리고 싶은 건 욕심이려나. 캐서린이 집 안을 물끄러미 보는데, 로렌디스가 느지막하게 답했다.
“곧 오실 거야.”
“……이만 가요. 헬렌으로.”
브레디가 짐을 챙겨 나왔다. 따로 가져온 짐도 없다. 기사들이 묵었던 자리를 정돈하는 수준이었다. 한동안 다시 못 오니까 한 번 더 눈에 담아 두고, 캐서린은 어깨를 으쓱이며 몸을 돌렸다.
“브레디, 마부를 불러라. 지금 출발한다.”
자작저의 문은 다시 잠겼다. 자작저는 사람을 따로 고용해서 주기적으로 관리해 주기로 했다. 로렌디스가 알아서 한댔으니까 알아서 해 주려나. 캐서린은 그 이후 일은 로렌디스에게 맡겼다.
자작저 앞에 들꽃이 폈다. 캐서린은 그 꽃을 가만히 보다가 마차에 탔다.
“챙길 것 없나?”
“필요한 거 있어요?”
“나는 없어.”
“그럼 그냥 가요.”
로렌디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없다고?”
“없는데…….”
로렌디스가 캐서린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빛바랜 액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