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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 아내는 이만 떠나렵니다 (12)화 (12/129)

12.

캐서린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리 와.”

로렌디스가 침대에 걸터앉아서 그녀를 당기자, 몸이 침대 위로 풀썩 넘어졌다. 맞닿는 몸이 뜨거웠다. 그 체온이 낯설었지만, 마냥 나쁘진 않았다.

입술이 내려앉았다. 아랫입술을 베어 물고 느릿하게 혀로 눌렀다. 느릿하고 정적이었지만, 오싹하리만큼 강한 자극이었다.

결혼식 때도 비슷했다. 그런데 지금 이 오싹함은 그때와 다르다.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입맞춤은 혼례식의 일종이었고, 지금 이건 조금 더 은밀하고 농밀했다.

“으응.”

그의 손이 침의 아래에 닿았다. 거친 손가락에 살갗이 저릿해졌다. 낯선 체온이 몸을 스치자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그 자극은 캐서린을 이상하리만큼 로렌디스에게로 이끌면서도, 동시에 나락 끝으로 내모는 것 같았다.

그가 침의를 손가락에 감아서 끌어 내렸다. 목덜미에 입술을 맞추고, 어깨까지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아랫배가 바짝 조였다. 허리에 힘을 주자, 그가 그걸 느낀 듯 캐서린을 침대에 밀어 눕히고 옷을 한 겹씩 벗겼다.

“이상해요.”

“왜?”

“내일 전장에 오르는 분께서 기사단이 아닌 제 곁을 지킨다는 게요.”

보잘것없는 내 곁보다는 당신의 기사들 곁에서, 조금이라도 더 실속 있는 대화를 나눴다면 어땠을까.

그가 목덜미의 살갗을 깨물었다. 따끔한 통증이 일었다.

“그들이야 나중에 오래도록 볼 얼굴이잖아. 지겹지. 경계선에서 야만족이 날뛰는 것만 아니면, 그 얼굴들을 질리도록 볼 일도 없건만.”

“으읏!”

“초연한 네 표정도 금이 갈 때가 다 있네.”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시트 자락을 움켜쥐었다. 그의 손짓이 닿을 때마다, 아랫배 가득 열기가 고였다. 뜨겁다.

그 손짓 하나하나가 적나라한 자극이 돼서 내려앉는다. 허우적거리자 그의 무릎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무릎이 단단히 그의 몸을 지탱했다. 그리고 뭉툭한 무언가 닿았다.

“흣! 잠, 잠시…….”

“가끔 그 초연함을 짓이겨 망가트리고 싶단 마음도 들곤 했지.”

캐서린은 덜덜 떨리는 뺨을 짚으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 무거운 압박감에 아랫배가 짓눌렸다.

그 아래에서부터 채워 오는 부피감에 입술이 힘없이 벌어졌다. 손가락으로 더듬어 입가를 다리는데, 그의 손이 그 손짓마저도 가로막았다.

로렌디스가 팔을 뻗어서 깍지 껴 잡았다. 으응. 작게 새어 나가는 신음에 침실에 농밀한 온기가 차올랐다. 그의 몸이 반쯤 빠져나갔다 다시 채워졌다.

이건, 너무 버겁잖아. 격한 자극에 휩쓸린 몸이 점점 젖어 들었다. 가느다란 몸은 그를 받들기에 작고 여렸다. 땀으로 젖은 손아귀는 미끈거렸다.

“나쁜 짓 같은데…….”

“어째서.”

“당신 나 안 좋아하잖아요.”

거친 열기가 배 속을 채웠다. 송골송골 맺힌 땀이 시트를 적셨다. 미끈거리는 손아귀로 시트를 쥐고 손톱으로 긁는데, 잇새에서 여린 신음이 터졌다. 그 열기는 머릿속을 아득하게 다 잡아먹고, 이성을 송두리째 잡아 흔들었다.

“그런 사감은 없어도 돼.”

“어, 읏!”

“계약이더라도 부부이고, 정략혼으로 맺은 부부도 부부관계는 맺으니까. 거창한 이유는 없어. 너도 복잡하게 여길 것 없고. 그저, 잠자리야.”

아득해지는 머릿속은 자꾸만 이성을 놓는다. 그 아득함이 기껍다.

‘뜨거워.’

우리가 부부더라도 우리는 이러면 안 된다.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은 부부관계를 배덕하게 만들어 놓았다. 뜨겁고 아랫배 가득 고인 열기가 쉽사리 내려앉지 않는다.

그의 손이 골반 어귀에 닿았다. 다시 몸을 섞을 일은 없다……. 배덕감이 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그 배덕감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기분도 마냥 나쁜 건 아니다.

“괜찮나?”

“좋아요, 나름……. 으응. 이상한가?”

로렌디스의 목을 안고서 미약한 울음을 토했다.

“조금 이상한 것 같기도 해요.”

“어디가?”

“여기, 몸이 열기로 보글보글 끓는 것 같아요.”

시한부다. 1년 뒤면 어차피 묻힐 몸이다. 이런 배덕감도 좋다. 떠난다고 몸을 너무 험하게 다뤘나, 그런 기분도 들고.

하지만 어차피 오늘 이후로는 다시 보기 힘든 얼굴이다.

전쟁이 끝나면 헤어질 운명이고, 아아…… 또 긁네. 여린 살을 긁는 몸짓에 눈앞이 흰 도화지처럼 질렸다. 쇄골을 깨무는 이빨이 따끔하게 살갗에 박힌다.

* * *

낯익은 얼굴이 문밖에 있다.

‘어린 시절 꿈인가……?’

이제는 기억에도 없는 어린 시절 이야기다.

어맨다가 자작저의 문턱을 밟는다. 의붓언니의 앳된 얼굴과 젊은 새어머니. 아버지께서 이들을 데려온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아주 어릴 때다. 이제는 다 잊은 그 시절의 그 기억이 왜 머릿속에 자리 잡았을까.

‘네 아버지가 전장에서 실종됐다는구나. 그런데, 그 눈보라 속에서 어찌 살아 돌아오겠니? 이제 네겐 나뿐이란다.’

그래. 어머니는 혼자가 된 캐서린에게 자주 이야기했다.

나라도 없으면 너는 혼자라고.

미래를 엿본 와중에도, 캐서린은 미련을 놓지 못했다. 어디서 죽거나 하는 미래보다는 혼자가 되는 미래가 더 싫었다. 설마. 설마. 하는 그런 미련이었다.

이제야 기억난다. 왜 그 독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는지. 캐서린은 아주 작은 애정이라도 바랐을 뿐이다.

그리고 캐서린은 독살당했다.

* * *

허리가 저릿했다. 아직 늦은 밤이었다. 몸 여기저기에 붉은 자국이 가득했고, 온몸을 붉게 물들일 듯 붉은 꽃망울들이 곳곳에서 폈다.

달빛이 침실을 은은하게 비췄다. 달빛 한 점이 침대에 닿았다. 침대를 더듬거리는데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캐서린이 고개를 들자, 로렌디스가 가운 차림으로 다가왔다. 한껏 흐트러졌던 그 모습은 퇴폐적이었다면, 지금 이 모습은 정적이었다.

“더 자지 않고.”

캐서린은 흠짓하며 몸을 사렸다. 이불을 끌어 올려 몸을 가리는데, 로렌디스가 굵은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감아쥐었다.

“1년이랬나. 계약은 계약이지.”

“조용히 지낼게요.”

“조용히 지내는 것만으로는 안 돼. 그 1년만큼은 충실하게 아내 역할을 해 주었으면 해. 그 기간만큼은 완벽한 아내를 연기해 내.”

그 1년간은 그의 빈자리를 채우면서 지낼 것이다. 그게 계약직 아내의 역할이니까. 캐서린도 큰 걸 바라지 않는다. 고요함과 안락함이면 된다.

이불이 흘러내리며, 동그란 어깨선이 도드라졌다. 뽀얀 몸이 촛불 빛을 받아서 붉게 물들었다.

“당신 뜻대로 해요.”

“대신, 폐하께나 가신들에게는 비밀이야. 계약이니 거짓 결혼이니 이딴 말을 꺼냈다간 황실을 능멸하는 게 되니까. 적당히 진짜처럼 지내야 해.”

로렌디스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 아래에 캐서린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열기로 붉게 상기됐던 표정은 초연함 뒤로 숨었다.

로렌디스는 끌끌 혀를 찼다. 그저, 계약이다. 떠날 인연. 그럼 가볍게 여기면 된다. 로렌디스는 이미 오랜 기간 전쟁터를 누비며 감정 또한 무뎌졌다.

그런데 이상하다. 저 처연한 눈을 보니, 저 표정을 잔뜩 망가트리고 싶다.

“미쳤지.”

로렌디스는 잡념을 털어 냈다. 그런 와중에도 그의 표정은 말끔했다.

캐서린은 자그마한 여인이었다. 생김새도 그렇고, 그 속도 그렇다. 헬렌에서 지내기엔 약한 몸이다. 그 몸에 깃든 영혼도 약하다.

“이리 와.”

로렌디스가 다시 캐서린을 이끌었다. 그쯤, 캐서린은 무언가 질린다는 표정으로 로렌디스를 힐끔거렸다.

“또요?”

거친 손길이 닿자, 몸이 움찔하며 숨을 곳을 찾았다. 이 침실에서 숨을 곳이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초야는 이미 보냈다. 흰 시트 위에 붉은 캐노피를 걸어 두고, 그 속에서 몸을 섞었다. 그 열기가 아직도 선명했다.

“헬렌은 개방적인 도시인가요?”

“왜?”

“지금 당신이 너무 개방적이어서요. 전쟁을 오래 겪은 도시들은 다 이런가…….”

오늘 하루 사는 사람처럼.

앞날 따위 개나 줘 버리는 사람처럼. 딱 그랬다.

캐서린이 작게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그의 흑색 눈동자가 고요하게 잠겼다.

캐서린은 시골에서 살아서 이런 밤 문화 쪽으로는 문외한이었다. 아마, 시한부라는 현실만 아니었으면, 캐서린도 조금 더 망설였을 것이다. 남은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당장의 자극에 몸을 맡겼다.

“헬렌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도시야. 북부 특성상 폐쇄적인 구조라서 더 그랬지. 헬렌은 부부 사이의 덕을 중요시해. 지금 우리가 주고받은 계약이니, 그런 건 헬렌에서는 원칙적으로 안 돼.”

로렌디스가 매끄럽게 답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가 교양 책의 문구를 읊듯 나긋나긋하게 읊조렸다. 그의 손은 은밀한 곳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으응…….”

작게 신음하자 로렌디스가 캐서린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손은 내밀한 곳을 어루만졌다. 로렌디스가 짧게 고민하더니 이어 말했다.

“헬렌에 유일하게 개방적인 문화가 있다면…….”

“그게 뭔데요?”

“제국의 귀족들은 고상한 품위를 지킨다며 각방을 쓰지만, 헬렌은 부부가 같은 침실을 쓴다는 부분이지. 그래서 헬렌에서는 아무리 사이가 나쁜 부부더라도, 합방을 원칙으로 하거든. 그러니까 네 물음에 답하자면, 그쪽으로는 개방적이되 다른 쪽으로는 보수적인 편이야.”

로렌디스의 손이 천천히 머리를 다독였다. 캐서린은 호흡을 되찾고 눈을 느릿하게 떴다. 그의 손도 그때쯤 떨어졌다.

조명이 침실 주변을 따뜻하게 비췄다. 헬렌은 보통 원목 가구를 쓰는데, 여기 침실도 그랬다. 그래서 침실 내부에서도 나무 특유의 향이 은은히 풍겼다.

“헬렌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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