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메리가 있을 때라면, 다나 더니즈의 대역을 대공성으로 보내기도 전이었다.
크리스틴 왕녀의 말에 따르면 다나는 그 전부터 대공성에 있었다는 소리인데, 자신이 알고 있는 것에 대입해보면 앞뒤가 맞지 않았다.
왜냐하면 더니즈 상단에서 메리가 도망친 후에 하벌트가 새로 뽑아 보낸 게 다나이기 때문이다.
‘정말 기억에 문제가 생겼다면….’
그렇다면 대공성에 머물던 다나가 밖으로 나와 우연히 상단으로 왔다는 소리인데, 그것도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일부러 접근한 거 아냐?’
기억을 잃은 게 아니라면 그럴 가능성도 있었지만, 대공이라는 권력자 옆에서 그런 번거로운 방법을 쓴다는 것도 이상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리안이 의심한 건 그 말을 뱉은 크리스틴 왕녀였다.
‘역시 취해서 헛소리한 건가. 하긴, 저 대공이 고양이 어쩌고 한 거부터가 말이 안 되지. 그 고양이가 꼭 다나라는 법도 없고.’
리안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크리스틴 왕녀를 빤히 쳐다봤고, 왕녀는 그런 그를 조금 오해했다.
“후후, 꼴에 눈은 있어가지고…. 좋아, 이리와 봐.”
“저… 저하?”
리안이 천하의 난봉꾼이긴 했지만, 타국의 왕녀를 상대로 무도회장 한가운데서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다나가 살아난 걸 보고는 온통 신경이 그곳에 쏠려 있었다.
그사이에 취기가 올라왔는지 왕녀의 눈은 아까보다 훨씬 몽롱하게 풀려 있었다. 앉은 자리에서 몸을 비틀거리며 크리스틴 왕녀는 리안에게 좀 더 가까이 붙었다.
그녀는 바짝 붙으며 술 냄새 풍기는 입술을 그의 뺨과 목덜미에 비벼댔다. 어찌나 취했는지 그 와중에 몸도 잘 가누지 못했다.
“저, 왕녀 저하, 잠시만요. 여기서 이러시면….”
“가만히 있어봐…. 내가 이런다고 널 마음에 둘 거 같아? 네가 먼저 왔으니까 그냥 하루 놀아주는 거야…. 그러니까 얌전히….”
연회 내내 외톨이로 있던 크리스틴 왕녀에게는 리안이 말을 걸어준 게 꽤 위로가 되었던 모양이었다.
엘라드 왕국은 하셸 제국보다 성적으로 더 개방된 국가였고, 그곳의 왕녀인 크리스틴 역시 왕의 눈을 피해가며 수많은 남성들과 쾌락을 즐기곤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는 사람도 없거니와, 엘라드 왕국의 대표로 왔기 때문에 그런 일을 자제해왔다. 하지만 술이 들어가자 빗장이 풀린 듯 이성을 잃고 말았다.
리안은 난감한 기색으로 그녀를 슬슬 피하면서도 멀리 있는 다나를 놓치지 않았다.
레온이 다나의 어깨를 감싸 안은 채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리안은 그들을 따라가려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 바람에 리안의 가슴 쪽에 손을 올리려던 왕녀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어쩔 수 없이 리안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아… 어지러워.”
리안은 레온과 다나가 그대로 2층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는 흘끔 왕녀를 보았다.
“너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 좀 쉴 곳으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리안은 옆의 시녀들에게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하며, 크리스틴 왕녀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녀는 휘청거리면서도 자신을 따라오려는 시녀들에게 신경질적으로 소리 질렀다.
“어딜 따라와? 하나같이 마음에도 안 들고, 눈치도 없… 아, 천천히 좀 가.”
“실례하겠습니다.”
왕녀의 걸음이 느려지자 리안은 그들을 놓칠까 봐 초조했는지, 아예 그녀를 앞으로 안아 들고 이동했다. 당연히 그곳에 있던 귀족들도 그 모습을 보았다.
‘젠장, 보기보다 무겁네.’
리안은 크리스틴을 안은 채 2층으로 올라가 다나가 간 방향으로 향했다. 시녀들은 또 왕녀가 화를 낼까 무서워 아주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왔다.
모서리를 돌아가는데, 이제 막 방문으로 들어서는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리안은 ‘이크.’ 하며 몸을 숨겼다가 문이 닫히고 안에서 잠기는 소리까지 들린 후에야 다시 걸어갔다.
운이 좋게도 그들이 들어간 방의 오른쪽 방이 비어 있었다. 리안은 크리스틴 왕녀를 안고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를 시녀들도 딱히 말리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리안은 옆방으로 들어간 다나에 대해 알아볼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크리스틴 왕녀는 침대에 눕히자마자 술기운에 잠이 들었고, 리안은 그런 그녀를 내버려 둔 채 왼쪽 벽에 귀를 대고 딱 달라붙었다.
솔직히 그 둘이 방 안에 들어가서 뭘 할지는 뻔한 일이었다.
‘그 냉혈한으로 소문난 대공이… 다나와….’
실제 벽 너머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리안은 음란한 상상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슬슬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젠장, 저 대공도 이제 아는 거지. 다나의 아랫도리가 죽여준다는 걸.’
과거에 숱하게 경험했던 다나와의 관계를 떠올리다 보니, 리안은 슬슬 자신의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아쉬운 눈으로 벽 쪽을 응시하다, 슬쩍 고개를 돌려 침대 쪽을 바라보았다. 크리스틴 왕녀는 그대로 뻗은 채 완전히 곯아떨어진 것 같았다. 말려 올라간 치마 아래로 노출된 허벅지에 그의 시선이 멈췄다.
리안은 입가에 비릿한 웃음을 걸고는 그녀가 있는 침대로 저벅저벅 걸어갔다.
***
문 안에 들어서자마자 다나는 휙 몸을 돌려 다짜고짜 레온의 목에 매달리며 키스했다.
잠시 입맞춤을 받아주던 레온은 그녀의 허리를 잡고 조금 떼어냈다.
“잠깐, 다나….”
하지만 떼어내기가 무섭게 다나는 다시 입술을 부딪치며 그를 침대 쪽으로 끌어당겼다. 침대에 가까이 닿자, 레온은 다나의 등을 감싸며 부드럽게 그녀를 눕혀주었다.
둘의 얼굴을 가렸던 가면이 느슨하게 풀려 툭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아, 레온… 어서….”
아직 레온은 슈트도 벗지 않은 상태지만, 다나는 레온의 드레스셔츠 단추부터 풀기 시작했다. 급하게 풀다 보니 오히려 헛손질이 많았다.
“아까 와인은 입에도 안 댄 것 같은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렇게 적극적이지?”
레온이 그녀 옆으로 비스듬히 팔로 머리를 기대 누운 채, 다나가 하는 대로 지켜보았다.
능글맞은 목소리는 기꺼운 듯 보였지만, 지금 그의 눈동자는 다나의 표정을 샅샅이 살펴보고 있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지금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레온은 그녀가 자신에게 숨기는 게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나면서도 초조했다.
어설프게 단추를 잡아 푸르던 그녀의 손목 하나를 가볍게 잡아 멈추게 했다.
“지금 황실 무도회가 한창이야, 곧 우리가 춤출 차례야. 빠지기도 곤란해. 이런 곳에서 갑자기 이렇게 나오다니. 정말 발정이라도 난 거야?”
분명 한참 전만 해도 레온이 오히려 다나에게 치근덕댔었다. 게다가 2층 방들은 거의가 만석이었다. 새삼스러운건 오히려 그였다.
다나는 그녀를 도발하려는 뻔한 레온의 말에 눈을 맞추는가 싶더니, 슬쩍 눈동자를 옆으로 돌려 피해버렸다.
“싫으면… 관둬요.”
그리고는 그대로 일어나려 했다. 그 모습이 레온을 더 자극했는지, 그는 무섭게 표정을 굳히며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까지 원한다면야… 치마 걷고 엎드려. 당장 흥분한 암캐를 다스리려면 이 수밖에 없겠지.”
화가 난 그의 말투에 다나는 눈치를 보듯 슬쩍 그를 보다 슬그머니 몸을 일으키며 침대 끝에 엎드렸다. 뒤로 손을 뻗어 풍성한 치맛자락을 더듬더듬 추켜올렸다.
그게 답답했는지 레온이 확 끌어 올려 등허리에 걸쳐놓았다. 안으로 둘러진 페티코트까지 올리자 하얀색 가터벨트와 이어진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속옷은 평소처럼 쉽게 벗겨지는 형태가 아니었다. 코르셋과 하나로 이어진 그것은 제대로 벗겨내는 데에만 한세월일 것 같았다.
“앞으로 이런 거추장스러운 건 입지 마. 언제든 벌려야 하는데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지?”
차가운 금속이 살 위에 닿는가 싶더니 질긴 섬유가 툭툭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레온이 번거로운 작업을 생략하려 단검으로 천을 아예 잘라내 버린 것이다.
그 바람에 다나의 아래가 아예 훤히 드러나 버렸다.
“아… 그래도….”
“어차피 치마 안은 잘 보이지도 않잖아.”
“그, 으… 하…읏.”
예고도 없이 그의 가운뎃손가락이 그녀의 질구 속으로 쑥 파고들었다. 조금 빡빡한 와중에 몇 번인가 드나드니 금방 촉촉해졌다. 그러자 레온도 바지의 버클을 풀고 지퍼를 내렸다.
바지를 다 벗지도 않은 상태에서 페니스를 꺼내 슥슥 손으로 문질렀다. 적당히 단단해지자 그대로 구멍에 맞춰 입구에서 깔짝거렸다. 다나의 봉긋한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 풀어, 힘들어지니까.”
그와의 관계에서 이렇게 제대로 된 애무 없이 바로 들어오는 건 거의 처음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뒤돌아보는 다나의 표정은 붉게 상기된 채, 오히려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레온은 여전히 입매를 굳히며, 페니스를 꾹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으… 윽.”
다나가 자신의 몸을 팔로 버티며, 뭔가 참는 듯한 소리를 냈다. 그러자 레온이 살짝 뒤로 물러나며 조금 더 귀두로 깔짝거렸다.
질구가 자극되자 미끌거리는 애액이 조금 더 배어나왔고, 레온은 다나의 골반을 잡고, 한 번에 쑥 파고들었다.
“하… 악, 아….”
단번에 아래가 꿰뚫리자 다나가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쫙 뻗어 버티고 있던 팔꿈치가 결국 꺾이더니 어깨가 낮아졌다.
엉덩이만 쑥 들어 올린 자세 그대로, 레온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다.
“읏, 흐으… 윽….”
레온은 감정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기계적인 허리 짓을 반복했다. 충분히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의 것을 받은 다나가 버거울 건 분명했다.
하지만 다나는 침대에 얼굴을 박은 채, 끙끙대는 신음만 흘릴 뿐 그저 얌전히 그를 받아들였다.
그는 오히려 그 모습이 짜증이 난 듯 미간을 좁히며 더 거칠게 박아대자, 젖은 속살이 딸려나와 붉은빛을 띠며 꿈틀꿈틀 그의 것을 집어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