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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진 상속녀-25화 (25/92)

25화

레온은 다니엘에게서 멀어지자, 뒤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레온에게 테라티우스 성의 소식을 알렸던 기사가 후다닥 달려왔다.

그는 목소리를 조금 낮춰 말했다.

“너는 아까 하던 보고를 마저 말해라.”

“본성의 하녀들에게 사라라는 분의 안부를 물어보자, 요 며칠 보이지 않는다고 초조해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안 보였다는 거지? 다들 그래서 찾지도 않고 손 놓고 있었다는 건가?”

왕녀의 도발엔 평온하기만 했던 그의 음성에 노기가 서렸다. 레온이 으르렁거리자, 보고를 하던 기사가 움찔하며 긴장하기 시작했다.

“몇몇 하녀들과 병사들이 조용히 성안을 찾아보았으나, 제가 갔을 때엔 아직 찾지 못한 것 같았고….”

“조용히?”

그 말을 되묻던 레온이 얼굴을 굳히며 입을 다물었다. 그들이 그렇게 본격적으로 찾지 못했던 건, 레온이 다나가 처음 성에 온 날 내렸던 명령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분노가 사그라드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분노보다도 더 낯선 감정이 그의 마음속을 지배했다.

‘이렇게까지 초조하다니….’

자신에게는 꽤 낯선 감정이었다. 성안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고 후회됐다.

후회라고는 전혀 모르고 살아온 레온이기에 이 또한 낯설고 어색했다. 아까 돌아가겠다는 결정을 내린 건 엘라드 왕국에 대한 외교적 판단이었지만, 사심이 듬뿍 들어가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사들이 짐과 말을 챙겨 오는 모습을 보고 레온이 서둘러 그쪽으로 향했다.

“출발하자.”

말에 올라타려는데, 뒤에서 뾰족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지금 어딜 가신다는 거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크리스틴 왕녀였다. 그녀는 좀 급하게 나온 듯, 숨이 차 보였다.

“일이 생겨 영지에 돌아갑니다.”

“그럼 나는 어쩌고요? 대공이 수도까지 수행하기로 한 거 아니었나요?”

“그랬지만 일이 생겨 가 봐야 합니다, 그리고.”

레온은 왕녀를 쳐다보지도 않고 무뚝뚝하게 일갈했다.

“원래 엘라드 왕국의 사절단은 마중 없이도 잘만 수도에 왔었습니다. 이렇게 왕녀까지 함께 요란하게 오는 이유도 모르겠고, 따로 저를 지목한 이유도 모르겠지만.”

레온의 붉은 눈이 날카롭게 빛나며, 크리스틴을 향하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며 시선을 피했다.

“저를 불편해하시는 것 같으니, 제가 없는 게 왕녀께서 더 편히 가실 수 있을 겁니다. 제가 떠나고 나면 리차드 후작이 와서 대신 수행할 겁니다.”

레온은 말 위로 훌쩍 올라타 안장 위에 앉았다.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크리스틴이 참을 수 없다는 듯 마지막으로 캐물었다.

“대체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긴 거죠?”

높은 곳에서 크리스틴을 내려다보던 레온은 아주 잠깐의 뜸을 들이다 말했다.

“…아끼던 고양이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크리스틴이 잘못 들은 줄 알고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레온을 말을 몰고 출발했다. 멍하니 몇 초간 있은 후에야 크리스틴 왕녀가 분통을 터뜨렸다.

“그깟 고양이 때문에 왕녀인 나를 놓고 갔다는 거야?”

***

쇳소리가 섞인 숨소리가 조용한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진정제를 먹고 잠든 소피아를 오웬이 침대 옆에 선 채로 내려다보았다.

“소피아, 꼴이 이게 뭔가. 아주 가련한 처지가 되었어.”

가련하다 말하는 그의 목소리엔 한 줌의 동정도 깃들어 있지 않았다.

“날 찾았다지. 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신 뜻대로 하지 않았나. 뭐 그래도 당신이 찾아 준 덕분에 레온을 설득할 구실을 얻긴 했지만.”

울컥 억눌린 분노가 목구멍으로 새어 나왔다.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 쭉 이 상태로 버텨주길 바라. 그래도 레온에게는 좋은 어머니인 척 잘 연기한 거 같으니, 이번 일만 잘 성사된다면.”

오웬의 말이 끊기며 잠시 숨을 멈췄다. 긴 망설임 끝에 참은 만큼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그래, 어쩌면… 용서할 순 없어도, 가련하게 여겨줄 순 있을지도.”

소피아는 자신이 기다린 오웬을 앞에 두고도, 옷자락조차도 볼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 잠든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오웬은 이조차도 보러오지 않았을 것이다.

오웬이 소피아에게 들른 사이, 서쪽 별궁의 시녀들은 들려오는 소식에 초조해했다.

“그럼 그때 그 여자가 정말로…?”

“그래, 지금 없어졌다고 난리 났대. 여자가 본성에 머물고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냐고.”

“아아, 전하가 꽁꽁 숨겨두고 꽤 아꼈다고 하던데. 우리가 내쫓은 걸 알면….”

그러자 그중 시녀 한 명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녀는 가장 적극적으로 다나를 내보내라 말했던 사람이었다.

“우리는 소피아 님 말에 따른 것뿐이잖아. 윗전의 명령에 어떻게 거스를 수 있겠어?”

그녀는 소피아가 온전한 정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은근슬쩍 뒤로 제쳐두며 책임을 미루려 했다. 다른 시녀들도 알고 있었지만, 살길이 그것뿐임을 알았는지 적극적으로 동의했다.

“맞아! 우린 명에 따랐을 뿐이라고. 그때 소피아 님이 흥분해서 잘못되기라도 했으면 더 큰 일 날 뻔했다고.”

“게다가 직접 내보낸 건 병사들이잖아?”

끼익-

수군대는 목소리가 커지다 오웬이 나오는 모습을 보고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그녀들은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 아래로 찡긋대는 시선이 오고 갔다.

소피아가 그토록 찾던 이 성의 또 다른 주인의 방문은 그녀들에게 또 다른 흥밋거리였다.

***

평생 꿈도 꾸지 못했던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메리는 양손이 침대 기둥에 묶여있었다.

리안은 궐련을 물고 알몸으로 그 침대 옆에 털썩 걸터앉았다. 그가 가까이 오자 메리는 두려움에 움찔거렸다.

“자, 메리. 다시 말해봐. 그러게 처음부터 잘하면 금방 넘어가잖아.”

리안은 다정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말하며 손으로 그녀의 무릎 안쪽부터 허벅지까지 슥 쓰다듬었다. 올라간 치마 아래 언뜻 비치는 비부가 발갛게 부어있었다.

“저… 저는… 다나 더니… 즈이고… 흑, 모든 권한을 대리인… 에게 맡겼… 습니다. 또한….”

메리는 더듬더듬 외운 내용을 말하며 리안의 눈치를 봤다. 리안은 더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 이다음은… 그러니까… 아… 악…!”

메리의 대답이 막히자, 리안은 손을 그녀의 사타구니 안으로 넣더니 사정없이 체모를 움켜잡고 확 쥐어뜯었다.

아픔에 몸서리치며 메리가 소리 없이 흐느꼈다. 손가락 사이 가닥가닥 끼어있는 것들을 훅 불어내고는 우는 메리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다지 닮지 않았다 생각하면서도, 저 금발과 푸른 눈은 어쨌든 다나를 떠올리게 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천박한 피라 그런가 머리도 나쁘네. 다나도 귀족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야.”

평소 장인인 공작과 부인에게 좋은 사람인 척, 존중하는 척하는 일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자연스레 이곳에서 풀고 있었다.

실제 다나에겐 이렇게까지 심하게 대한 적 없으면서도, 그는 그녀와 닮은 여자를 괴롭히면서 그 시절과 같은 쾌감을 느꼈다.

“벌려.”

리안이 메리에게 바짝 다가가며 짧게 명령했다. 메리는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자신의 허벅지를 스스로 벌리며 고개를 돌렸다.

허벅지 안쪽이 온통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었고, 계곡 안에 자리한 퉁퉁 부은 음핵 위를 리안이 자신의 페니스로 익숙하게 문질렀다.

“으… 흐읏….”

통증과 원치 않는 쾌감이 번갈아 찾아오자 메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몸은 야속하게도 지속적인 자극에 충실히 반응했다.

“더러운 년, 이 와중에도 질질 잘도 싸는데. 잘 들어, 그날 일을 망친다면 죽지도 못하고 평생 수컷들의 노리개로 살아가게 할 테니.”

“흑, 아, 안… 아…!”

여린 질구가 속절없이 기둥을 받아들이며 마구 짓이겨졌다. 손목이 묶여있어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대체 몇 번일지 모를 만큼 그에게 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일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어.’

이상한 일이라 생각했지만, 워낙 거액을 제시해서 덜컥 승낙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만두는 것조차 의지대로 할 수 없었다.

“큿…!”

리안은 몇 번인가 거칠게 박아대다 또 금방 부르르 떨었다. 메리는 그사이 지쳐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똑, 똑, 똑-

“각하, 잠시 나와 보세요.”

밖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리안은 훌쩍 일어나 옷을 입었다. 그리고 메리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 방은 예전 다나가 상단에 있을 때 쓰던 방이었고, 다나가 없는 지금은 리안만 종종 드나들며 사용했다.

상단의 몇몇 사람들은 그 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방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

메리가 정신을 차렸을 땐, 사방이 조용한 밤이었다. 다리 사이를 비롯해 온몸이 너무 아팠다.

‘내가 속은 거야.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어!’

절망하며 몸을 떨던 메리는 문득 손목을 감은 천이 꽤 느슨해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는 방문 밖의 기척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리저리 손목을 비틀었다. 리안이 어설프게 묶은 탓인지 곧 메리는 널널해진 매듭 사이로 두 손을 모두 빼내는 데 성공했다.

메리는 이 방에 비밀 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엊그제 잠든 척할 때, 리안이 그곳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을 직접 봤기 때문이었다.

조마조마했던 마음과 달리, 메리는 그 방을 아주 쉽게 탈출했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대한 멀리 달아났다.

리안이 그녀가 없어진 사실을 안 건, 다음 날 아침이었다.

“찾아와, 당장!”

자신의 부주의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리안은 크게 소리 지르며 상단에 있는 사람들을 닦달했다.

그의 뻔뻔함에 하벌트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어쨌든 상단에서 부리는 하인들을 모아 지시했다.

“금발 머리에 푸른 눈이다. 멀리 가진 못했을 거야. 우리의 비밀을 알고 있는 여자이니 소란 없이 조용히 잡아 와라.”

하인들은 딱 두 가지 단서만을 전달받았다. 당연히 그 여자가 누구고 무엇때문에 찾아야 하는 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들은 황당한 지시에 속으로 투덜대면서도, 일단 밖으로 나갔다.

사실 명령한 하벌트나 하인들이나 신분은 모두 평민이었지만, 돈으로 맺어진 종속 관계는 신분 차이만큼이나 강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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