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그럴 리가 없잖아.’
리안은 애써 머릿속에 잠시 떠오른 생각을 떨쳐버렸다. 아까 1층에서 본 금발 머리 여자의 뒷모습이 꼭 다나인 줄 알았다.
“그럼 들여보내겠습니다.”
“어… 그래.”
하벌트가 문을 열자, 금발 머리의 여자 두 명이 들어왔다. 둘 다 푸른 눈을 갖고 있었고, 다나와 키가 비슷했다.
하지만 리안은 뚱한 표정으로 그녀들을 볼 뿐이었다.
“대체 알 수가 없군.”
“네?”
“아냐, 아무것도.”
아까 1층에서는 뒷모습만 보고도 다나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지금은 다나와 닮았다는 여자 둘의 앞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둘 중 누구를 해도 부족해보였다. 하지만 골라야 했다.
“말을 시켜봐. 한 명씩.”
그녀들이 자신들을 소개하자, 리안은 더 크게 한숨 쉬었다. 일단 외모부터 구색을 갖춰야 했고 그렇다고 해서 일이 일인 만큼 있는 집 자식을 데려올 순 없었다.
자연스레 천민이나 가난한 평민의 여자들이었고 귀족 여자들과는 말씨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다나가 귀족은 아니었지만.’
대상인의 딸이라서인지 몰라도, 더니즈는 그의 딸에게 귀족 수준의 교육을 시켰고 철저히 교양을 익히게 했다.
“어쨌든… 이게 최선인 거겠지.”
리안은 결국 둘 중 그나마 나은 한 명을 골랐다.
“예에, 더는 없습니다. 말투는 되는대로 며칠 교육을 시켜 고쳐보도록 하죠.”
하벌트의 말이 끝나고, 리안은 지그시 눈을 뜬 채 남은 한 명을 바라보았다. 다나와 닮았다 생각하고 다시 보니 닮은 것도 같고.
“자네는 나가봐. 교육은 지금부터 내가 시켜 볼 테니.”
“네? 아, 네.”
하벌트는 리안의 눈빛에서 음흉한 속내를 읽었지만, 짐짓 모른 척 밖으로 나갔다. 이 와중에도 저런 생각밖에 안 하는 작자라니.
“뭘 하러 온 지는 들었지?”
“…네.”
리안이 여자에게 손짓하자, 여자는 쭈뼛거리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래, 원래 이름이 뭐지?”
“메리예요.”
“메리, 이제부터 넌 다나야. 다나 더니즈.”
“네, 저, 저기요?”
고개를 끄덕이던 메리가 깜짝 몰라 몸을 뺐다. 메리의 치마 안으로 리안의 손이 망설임 없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대 맞기 전에 가만히 있어. 네 교육담당은 나니까.”
“그… 저, 이런 건 말이 없었는데….”
메리는 안절부절못하면서도 차마 리안의 위협적인 목소리에 차마 손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곳에 오기 전, 이 남자가 얼마나 대단한 지위와 배경을 가졌는지 귀가 닳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돈도 돈이었지만, 메리의 가족도 이 일에 관련되어 있어 그녀는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계약금이 꽤 많은 걸로 아는데. 이미 받았겠지? 그리고 다나는….”
메리가 바르르 떨며 다리를 모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에 가로막혀 더 벌어졌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메리의 다리 사이에서 리안이 속옷을 끌어 내렸다.
“쭉 내 여자였어. 그러니 그 대역인 너도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지 않겠어? 그렇게 가만히 있지 말고.”
리안은 마른 수풀 사이를 헤집고, 손가락을 갈라진 틈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흘긋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뭐라도 좀 해봐. 빨리 끝내고 싶으면.”
메리는 순진한 편이긴 했지만, 그가 무얼 원하는 지는 바로 알아들었다. 그녀는 잠시 망설이며 우물쭈물 서 있었다. 그러다 리안이 발로 그녀의 정강이를 툭 차버리자, 메리가 털썩 리안의 다리 사이 바닥에 꿇어앉았다.
리안이 천천히 바지의 앞섶을 풀었고, 길고 단단한 것이 툭 붉어져 나왔다.
“거부하면 네 가족들도 가만 안 둘 거야. 입 벌려.”
리안은 피식 웃더니, 그녀의 사타구니에 있던 손이 우악스럽게 머리를 잡아 가랑이 사이로 끌어당겼다.
“우… 웁!”
갑자기 목 안으로 들어온 이물감에 메리가 괴로워했지만, 리안이 그녀의 머리를 놔주지 않았다.
“사실… 다나에게는 이렇게까진 못했어. 어쨌든 완전히 넘겨받기 전엔 친절하게 굴어야 했거든.”
리안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고 앞뒤로 움직이게 했다. 메리의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고, 입술은 더 붉게 달아올랐다.
리안은 만족스럽다는 듯 그녀를 내려다보며 기계적인 움직임을 반복시켰다.
“일어나.”
기진맥진한 메리를 일으키며, 책상을 잡고 엎드리게 했다. 치마를 허리까지 걷어 올리자 둥근 엉덩이가 밖으로 드러났다.
리안은 엉덩이 살을 거세게 움켜쥐고 양쪽으로 잡아 벌렸다. 골짜기 사이로 붉은 계곡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기도 비슷하면 좋을 텐데.”
메리는 곧 다가올 감각에 몸서리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으… 흐읏.”
간신히 벌어진 입구가 단단한 물체를 받아들이자 찢어질 것 같은 통증이 이어졌다. 메리는 숨을 쉴 수 없을 지경이었지만, 리안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단번에 밀려 들어온 기둥이 거칠게 그녀의 내벽 안을 짓찧기 시작했다.
“아, 아악, 아, 아…!”
메리가 손톱을 세우고 나무 책상 위를 긁어내렸다. 덜컹덜컹 소리와 함께 비부 안이 계속해서 마찰되고 있었다.
뜨겁고 아팠던 기운에 못 이겨 질구에서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리안은 그것이 메리가 흥분해서 나온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
“큭, 역시 네 년도 이 맛이 좋은가 보구나. 내가 특별히 있는 내내 잘 교육시켜주마.”
리안은 게걸스럽게 웃으며 더 세게 추삽질을 반복했다. 메리는 끔찍한 그의 말에 대꾸하고 싶었지만, 아래가 쑤셔지는 감각이 너무 강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하지만 메리에게 제안한 돈은 그녀로선 상상도 못 할 금액이었다. 게다가 그 돈들은 이미 약값과 빚을 갚기 위해 다 써버려서 돌려줄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리안이 길게 끌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메리가 언제쯤 끝나려나 생각하자마자, 리안이 급하게 물건을 빼고 엉덩이 위에 그대로 사정했다.
메리는 눈치를 보며 자신의 몸을 추슬렀다. 그리고 뒤 돌아 바지를 추켜 입는 그에게 인사했다.
“…저는 이만… 나가볼게요.”
다음이 또 있을지라도, 일단 지금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가긴 어딜 가?”
어느새 처음과 같이 옷을 갖춰 입은 리안이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아직 못 해본 게 많아. 넌 다나 대신이니까. 자자, 이제 진짜 교육을 시작해볼까?”
까딱이는 그의 손가락 끝을 바라보며 메리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의 표정이, 역시나 평범한 ‘교육’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었기 때문이었다.
***
아침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니 주방 일은 꽤 한산했다. 다나가 뭔가 더 일을 하려 기웃거리자, 리사가 손사래를 치며 쫓아 보냈다.
“쉴 수 있을 때 푹 쉬어둬, 저녁쯤 되면 또 바빠지니까.”
아무래도 점심 식사는 각자 해결하는 것 같았다.
밝은 낮에 방에 들어가 쉬기도 뭐해서, 다나는 밖으로 나와 돌아다니기로 했다.
다나는 상단 건물 밖으로 나와 마주 보며 몇 걸음 물러났다. 그녀는 전체적으로, 그리고 부분 부분 건물을 살펴보았다.
익숙하면서도 낯선 모습이 다나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그래, 유명한 상단이니까…내가 이 근방에 살았다면, 오며 가며 보긴 했겠지. 저 성처럼.’
하지만 눈물이 날 만큼 답답하고 그리운 이 느낌은 뭘까. 다나는 눈시울이 붉어지기 전에 자신의 눈가를 슥 문지르며, 타박타박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갔다.
허름한 옷을 입으니 확실히 사람들 속에서도 눈에 덜 띄었다. 다나가 입었던 옷이 성안에서 그리 화려한 옷은 아니었지만, 밖에서는 그 정도 되는 옷도 보기 힘들었다.
무심코 걸어간 곳은 테라티우스 대공성 정문과 바로 이어진 광장이었다.
광장 가운데에는 누군가를 기리는 커다란 동상이 있었고, 곳곳에 벤치들이 있었고 나무와 정원이 광장 가장자리를 따라 잘 어우러져 있었다.
다나는 그중 성과 마주 보는 벤치에 털썩 앉아 대공성을 드나드는 마차들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모두 어떤 신분증을 보여주며 들어갔고, 다나에겐 그게 없었다. 멍하니 그들을 보고 있는데, 눈앞에 어떤 사람이 슥 지나갔다.
그 사람이 지나간 바닥 위로 손수건 하나가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다나는 그것을 주워 재빨리 그 사람을 불렀다.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어요!”
돌아본 사람은 멋진 중년의 신사였다. 그는 다나를 보더니 멈칫 표정을 굳혔다.
“아… 고맙습니다.”
다나도 손수건을 그에게 주며, 신기한 표정으로 남자의 얼굴을 보았다.
‘레온과… 닮았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손수건을 받고도 남자는 다나의 얼굴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다나는 머쓱한 표정으로 살짝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그제야 남자는 실례가 되었다는 걸 알고,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합니다. 레이디, 제가 예전에 알던 사람과 너무 닮아서 신기해서 잠시 보았습니다.”
“…그러셨군요.”
다나는 자신이 한 생각과 그의 생각이 같자 속으로 놀라면서도 티내지 않고 대답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잠깐 옆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다나는 그의 첫인상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허락했다. 그리고 그녀 또한 그를 통해 닮은 누군가를 떠올렸다.
드문드문 희끗했지만 짙은 흑발의 신사는 눈동자도 레온처럼 붉은색이었다.
“레이디께서는 어쩐 일로 이곳에 나와 계십니까.”
“저는 일이 쉬는 시간이라 잠시 나와 있었어요.”
“성을 보고 계시던 것 같은데.”
다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지만,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라 더 솔직해질 수 있는 것 같았다.
“네, 저곳에 들어갈 방법을 생각하고 있어요.”
“으음, 저랑 반대시군요.”
“네?”
중년의 신사는 멋쩍게 웃으며 시선을 먼 곳으로 향하게 했다.
“저는 어떻게 하면 저곳에 가지 않을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다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귀족으로 보이는 신사는 성의 방문객으로 보였다. 레온을 싫어하는 걸까? 하지만 다나가 알기로 저 성에는 지금 레온이 없었다.
“왜… 가기 싫으신 건데요?”
“보통 장소가 싫고 좋고는 사람 때문이지요. 레이디는 왜 저 성에 가고 싶으십니까.”
“음, 저도 사람… 때문인 것 같아요.”
실제로 다나에게 레온을 뺀다면, 저 성은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문득문득, 레온도 자신과 같을지 자신이 없었지만.
‘뭘, 갑자기 의기소침해지고 그래.’
“제가 누군가 닮았다고 하셨죠, 저도 그쪽과 닮은 사람을 알고 있어요.”
그 말에 신사는 뭔가 더 이야기를 하려다, 자신에게 오는 기사를 보고 입을 다물었다.
“저는 이만 가 봐야겠습니다. 말동무가 돼주셔서 감사합니다.”
끝까지 매너 있게 물러나는 그에게, 다나도 서서 예의를 갖춰 인사했다. 낡은 작업복 차림으로 인사하는 그녀를 보며 신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제 이름은 오웬입니다.”
이름을 말할 줄은 몰랐는지, 다나는 눈을 몇 차례 깜빡거리다 대답했다. 생각해보면 귀족에겐 가문의 성이 중요하지, 개개인의 이름은 가까운 이를 빼곤 거의 불리지 않았다.
성을 뺀 이름을 말해준다는 건, 자신이 누군지 밝히고 싶지 않다는 말이기도 했다.
“아… 안녕히 가세요.”
“예, 레이디. 또 뵙는 날이 오기를.”
남자는 기사들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성에 가봐야 한다더니, 그는 곧장 들어가지 않고 다른 곳을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