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길들여진 상속녀-20화 (20/92)

20화

“…네?”

남자는 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여자와 눈을 마주치고는 능글맞게 웃었다. 남자가 여자의 귀밑머리를 슬쩍 건드리며 목소리를 낮췄다.

“네가 마음먹기에 달려있어… 네 아들이 이대로 굶어 죽을지, 아니면 배불리 먹을지는 말야.”

남자는 은근하지만 노골적이었다. 사실 대놓고 말한다 해도 이곳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다나 주변에 있던 젊은 여자들은 슬슬 그 남자들의 무리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고, 남자들은 그녀들을 훑어보며 손에 음식을 쥐어주고는 주변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

스스로 끌려가는 이들 중에는 여자 뿐 아니라 병약해 보이는 소년들도 있었다.

그들도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랜 굶주림 앞에서는 그 어떠한 신념이나 자존심도 사치일 뿐이었다.

여자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남자는 픽 바람 빠진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싫으면 말고.”

“자, 잠깐… 만요…!”

여자는 남자의 바짓단을 다시 붙잡았다. 뒤에 있는 아이를 흘긋 보고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

남자는 자신의 자루 속에서 말라비틀어진 빵 한 조각을 꺼내 여자 앞에 툭 던졌다.

“해가 지면 찾아와. 나머지는 끝나고 주지. 애새끼는 달고 오지 말고, 흥이 안 나니까.”

남자가 사라지고 여자는 잠시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니, 아이의 부름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한 손에는 빵조각을, 다른 손엔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나가 있는 곳에서 모든 대화가 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무슨 상황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가련하게 느껴졌지만, 차라리 그나마 나아 보였다. 이도 저도 끼지 못하는 늙은 노인이나, 아주 어린 아이들은 돌봐주는 이도 없이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누구길래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레온은 알고 있는 걸까?’

아무튼 더 있을 곳은 아니라고 느꼈다. 다나가 자리를 털고 일어서려는데, 후문 앞에 있던 무리 중 남자 둘이 다가왔다.

다나의 주변엔 아직 자리에 그대로 있는 여인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들 중에는 아직 앳된 얼굴의 소녀도 섞여 있었다.

아직 그 소녀는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기 위해 뒤로 숨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몸짓이 무색하게도, 한 명의 사내가 그 소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아!”

사내에게서 별다른 위협이나 말도 없었지만, 손목이 잡힌 소녀는 반항 한번 못 하고 그대로 일으켜졌다. 그 모습을 본 다나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소녀의 앞을 막아섰다.

“잠깐만요…! 너무 어리잖아요.”

누군가 막자 화를 내려던 사내가 다나를 보더니 말투가 한결 누그러졌다.

“그게 뭐? 아아, 맞다. 아까 쫓겨난… 네 년이 가고 싶은 거구나. 배가 많이 고프나? 흠, 어디 보자.”

예상치 못한 시선에 다나가 주춤 뒷걸음질 쳤다. 뒤편에 있던 또 다른 사내가 기다리지 못하고 다가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 둘이 닮은 게 형제인 것처럼 보였다.

“형, 뭐 하는 거야? 빨리 안 오고.”

“거 참, 기다려봐. 이 계집도 가고 싶다잖아.”

“저, 전 그런 뜻이 아니고….”

사내 둘은 다나를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확실히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 외모의 소유자였다.

“뭐가 문제야? 데려가면 되지. 거기 애는… 뭐 별것도 없는 어린애잖아. 일단 놔두고.”

뒤에 온 남자는 망설임 없이 다나를 번쩍 안아 어깨에 걸쳐 멨다

“놔, 놔주세요! 그런 게 아니에요! 놓으라고!”

싫다며 발버둥 치는 다나를 무시하며, 그들은 대어를 낚은 어부처럼 의기양양하게 무리 앞을 지나갔다. 다나를 본 사내들이 눈의 휘둥그레지는 것은 은근히 기분 좋은 일이었다.

“우리가 아예 차지하고 한 번씩 밖에 돌리는 게 어떨까? 이 여자 정도면 자루로도 받겠는데.”

“그래도 일단 우리 먼저….”

다나가 아무리 소리쳐도 도와주는 이 하나 없었다. 오히려 하이에나처럼 다나를 노리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부럽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관심이 없었다.

그들 대다수는 남을 도와주기는커녕,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도 벅찬 현실이었다.

그들은 성벽과 조금 떨어진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어설프게 만들어진 간이 막사가 있었다. 그들이 만든 곳은 아니었지만 주인이 없는지 오래라, 마음대로 차지하고 있었다.

냄새나고, 더럽고, 좁은 공간이었지만 그조차도 몇몇을 제외하곤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마른 풀이 듬성듬성 깔린 바닥 위로 다나를 털썩 눕혔다.

다나는 그의 어깨에서 내려지자마자 일어나려 했지만, 그들 중 동생에 의해 제지당했다.

“이년은 잘 먹었나, 힘이 넘쳐.”

“아까 성문에서 쫓겨났거든. 내가 그걸 두 눈을 똑똑히 봤지.”

“아아, 그래? 어차피 그럼 갈 데도 없겠는데. 그냥 얌전히 굴면 우리가 끼니 걱정은 안 하게 해줄게. 그러니….”

동생이 다나의 어깨를 양팔로 잡아 눌렀다.

“놔, 놔… 읍, 흐읍…!”

그리고 형은 다나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다나가 온 힘을 다해 빠져나가려 했지만, 건장한 남자 둘을 당해내긴 무리였다.

하루 사이 꽤 더러워진 치맛자락이 걷어지고 다리 사이 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형제들은 동시에 입맛을 다셨다.

“형, 내가 먼저….”

“야, 이 새끼야. 당연히 내가 먼저지, 내가 형인데.”

“뭐라고? 계속 내 음식을 가져다 먹어 놓고 이 정도도 양보 못 해?”

“그딴 걸로 치사하게, 이제 더러워서 안 먹는다.”

형이 먼저 다나의 발목을 잡고 강제로 벌리고는 그 사이 자리 잡고 앉았다. 동생 쪽은 툴툴거리면서도 위쪽을 차지했다. 계속해서 다나가 버둥거리자 손목을 주변에 널린 낡은 끈으로 칭칭 동여맸다.

“읍… 으읍!”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안락하고 편안했던 성에서 한순간 쫓겨난 것도 기가 막힌데, 이런 곳에서 모르는 남자들에게 겁탈을 당한다는 사실이 황망하고, 서럽고, 또 무서웠다.

‘레온, 레온…!’

의지하는 이를 아무리 머릿속으로 불러도 소용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남자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불쾌한 손길이 점점 다리 사이를 타고 들어왔다.

‘싫어, 이러지 마. 싫어.’

얇은 속옷은 무참하게 벗겨졌고, 다리는 무자비하게 한껏 벌어졌다. 수치스러운 느낌도 아주 잠시, 형이란 작자는 그대로 바지를 내리고 물건을 꺼내 주물거렸다.

“형, 크큭 급하네. 그러다 찢어지면 어쩌려고.”

“그건 내 알 바 아니지. 빡빡한 데 넣는 맛이 난 좋더라고.”

“그래도 살살 다뤄. 장사 밑천인데.”

우려하는 척 말하면서도 동생의 눈빛은 형의 짐승 같은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체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고, 보잘것없는 남자의 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다리 사이 정확히 가운데를 향하고 있었다.

‘안 돼, 아플 거야. 더러… 워!’

혐오감과 공포감이 극에 달할 무렵, 다나의 머릿속이 마치 번개를 맞은 것처럼 쨍하고 울렸다.

“으… 윽.”

극심한 두통과 함께 흐릿한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누군가가 이렇게 자신을 눕히고 막 바로 삽입하려는 모습이었다. 전에 레온과의 관계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땐 곧바로 쾌락에 묻혀 잊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은 잊었던 기억 속 당시 느꼈던 빠듯한 통증까지 생생히 떠올랐다.

‘제발, 싫어. 누구라도… 누구라도 도와줘.’

강제로 벌어진 다리와 고정된 팔에 점점 힘이 빠졌다. 아래에 무언가 닿는 느낌이 끔찍하여, 다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눈 안에 눈물이 고였지만 흐르진 않았다.

머리 위로 묶인 손이 더러운 흙바닥을 달달 떨며 긁어내렸다. 성미 급한 남자는 냄새나고 아직도 물렁한 성기 끝으로 그녀의 마른 비부 위를 쿡쿡 찔러댔다.

“아무래도 아직 무리인가?”

“윽… 으읍…!”

끔찍한 느낌에 다나가 몸서리쳤다. 그때 손가락 끝에 차고 날카로운 것이 걸리더니 따끔한 감각이 느껴졌다.

“에이, 형, 뭐 해! 꾸물댈 거면 비켜, 나부터 하게!”

“아니, 이게 왜 이렇게….”

자신의 물건을 한 손으로 잡고 주물대면서, 다른 손으로는 다나의 다리 사이를 헤집으려 했다. 다나 뿐만 아니라, 남자의 것 역시 영 맥을 못 추고 있었다.

동생은 더 이상 못 기다리겠는지, 자신의 형을 뒤로 밀쳐냈다.

“나부터 한다니까!”

“이 자식이! 형을 밀어?”

“뭐! 맨날 형이라고 뻐기기만 하지, 제대로 하는 게 뭐가 있어? 이제 줘도 못 먹는 주제에.”

형은 벌떡 일어나더니 동생의 멱살을 잡아챘다. 발목에 걸쳐진 바지가 신경 쓰이는지 아예 벗어 던지고는 동생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말 다 했냐? 어?”

“그래! 내가 안 그래도 한번 말하려고 했어. 음식도 맨날 밀려서 하나 못 구하고 내 거 빼 먹는 주제에, 이제 나도 지긋지긋하다고!”

다나는 두 형제가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 손에 닿은 날카로운 조각을 주워들었다. 손 어딘가가 얼얼했지만, 그런 통증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들이 보지 않는 동안, 그 조각을 이용해 끈을 조금씩 끊어냈다. 다 삭고 낡은 끈이라 칭칭 감긴 부분이 툭툭 끊기는 게 느껴졌다.

퍽, 퍽-!

형과 동생은 아예 주먹질까지 하며 싸우고 있었다. 이제 그들에게 다나의 존재는 보이지도 않는 것 같았다. 다나에게는 기회였다.

‘빨리, 제발, 빨리.’

손에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힘줘 문질렀다.

“윽, 윽, 졌어! 그만해!”

그 와중에 형은 쓰러진 동생을 깔고 앉은 채 얼굴에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형의 얼굴도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지만, 동생이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한 번만 더 까불면 네가 내 동생이라도 죽여 버릴 줄 알아!”

형은 주먹을 털고 일어났다. 아래를 벌거벗은 채 일어나 다시 다나 쪽을 보았다. 그때 다나를 묶고 있던 줄이 모두 끊어졌고, 다나와 남자는 눈이 마주쳤다.

“뭐야, 너도 죽고 싶어?”

싸움의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그가 다가왔다. 그는 목 안의 가래와 핏물을 바닥에 툭 뱉고는 다시 다나의 다리를 벌리려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싸우면서 그의 것은 커져 있었다.

그때였다.

다나가 순간 손에 쥔 소각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단면이 무언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아아악!”

남자가 사타구니를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어둑어둑한 와중에 뚝뚝 흐르는 선혈이 선명하게 보였다.

다나는 그를 무시하고 벌떡 일어났다. 남자는 중요한 곳이 다쳤는지 아예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엎드린 채 헐떡거렸다.

‘지금이야, 도망쳐야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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