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아흑!”
또다시 강렬한 쾌감에 맞춰 다나의 입속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쿵 쿵 쿵, 뒤에서 박아대는 몸짓에 다나의 몸도 미친 듯이 흔들렸다. 하얀 침대보 위에 아직 덜 마른 금발이 이리저리 나부끼며 흐드러졌다.
이게 과연 옳은 방법이었을까. 몸으로 유혹해 그의 곁에 있는 게 가능한 걸까. 이 관계 후에 자신이 버림받진 않을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쾌감 속에 녹아내려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워졌다.
그의 허리 짓이 속도를 더해갈수록, 다나의 신음은 더 높아졌고 레온의 호흡도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했다.
둔부를 붙잡는 그의 손에 더 힘이 들어갔다. 진작부터 무너지려는 그녀의 몸을 단단히 잡고는 퍽 퍽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치받았다.
“으흣, 으응, 하, 아아…!”
마치 불에 덴 것마냥 마찰되는 부위가 뜨겁게 느껴졌다. 이것은 분명히 쾌락에 의한 열감이었다. 전신에 느껴지는 진동이 홧홧하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헤집으며 그녀를 점점 전율시켰다.
“아… 아…….”
다나가 자지러질 법하면 레온을 속도를 늦춰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그렇게 조금 안정되고 나면 다시 제 것을 미친 듯이 박아 넣어 또다시 흥분시켰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다나는 완전히 지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레온은 흐느적거리는 그녀의 몸을 안아 들었다. 그리고 침대 헤드에 기대앉고는 몸 위에 다나를 올려놓았다.
“으… 응, 아직… 흣.”
레온은 다나의 엉덩이를 감싸 쥐곤 기둥 위로 서서히 내려오게 만들었다. 아직도 건재한 그의 페니스가 자궁에 닿을 듯이 깊게 파고들었다. 다나는 질겁하면서도 반응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다나는 그의 기둥을 품은 채로 탄탄한 가슴팍에 기대어 색색 숨을 몰아쉬었다. 질 내벽에 맞닿은 그의 분신이 안에서 꿈틀거렸다.
피곤이 한꺼번에 몰려와 다나의 눈꺼풀이 느리게 오르내렸다. 잠시 쉴 틈을 주는 건지 몰라도, 레온은 잠시 그녀의 어깨를 토닥이며 일단 내버려 두었다.
그의 붉은 눈빛에 집착이 어려 가늘게 떨렸다.
레온으로서도 이건 생애 첫 정사였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만 생각한 것과 실제는 차원이 달랐다.
‘생각보다 몰입했어.’
어쩌면 처음부터, 그녀를 구하던 그날 밤부터 줄곧 자신은 기회를 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치더라도 이렇게까지 이성을 잃고 달려들 줄은 미처 몰랐다. 지금도 자신의 분신을 조였다 푸는 감각이 생각을 방해하고 있었다.
레온은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검은 앞머리 아래 가려진 눈동자가 핏빛으로 가라앉았다. 그 짧은 사이에 다나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잠들어 있었다. 몇 번의 절정을 봤으니 그녀로선 아쉬울 게 없었겠지만, 레온은 아직이었다.
아주 천천히 그녀의 엉덩이를 잡고 조심조심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 와중에도 다나는 완전히 지쳤는지 쿨쿨 잘만 잤다.
“큭.”
레온이 잇새로 신음을 내며 천정을 바라보았다. 꽤 오래 참은 욕구가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그녀가 임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언뜻 들긴 했지만,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다.
‘차라리 어디도 도망가지 못하게.’
그저 다친 고양이를 주워와 돌봐주다, 그대로 돌려보낼 생각이었다. 값싼 동정에서 시작된 심심풀이 같은 것이었다.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자신의 것을 삼킨 채 움찔거리며 잠든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금발 위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조금 더.’
잠시 쉬고 있던 기둥이 다시 힘을 되찾았지만, 레온은 애써 외면하며 몸을 뒤집었다. 그리고 그녀를 침대 위로 눕히며, 결합됐던 그곳을 천천히 분리했다. 다나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다리 사이에선 허옇고 멀건 액체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그 음란한 장면을 바라보는 레온의 붉은 눈동자 깊은 곳이 희미하게 꿈틀거렸다.
“으… 응.”
슬쩍 손끝이 그것에 닿으려는데, 다나가 잠에 취한 목소리를 희미하게 흘렸다. 레온은 손을 거두고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몽롱하게 풀린 푸른 눈동자가 멍하니 그를 보았다. 다나는 바람 소리만 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
레온은 불명확한 그녀의 입 모양을 보고 있다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되묻기도 전에 다나는 스르르 눈을 감아버렸다. 침대 위에 놓여있던 레온의 손이 잔뜩 힘이 들어가 주먹을 쥐다 스르르 풀렸다.
“후우…… 말도 안 되는 소리.”
레온은 다나의 말에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다 아예 돌아서 버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 중얼거린 그의 얼굴은 손 아래서 미세하게 붉어져 있었다.
***
창문까지 가려진 마차 문이 안에서 밖으로 조금 열리자, 밖에서 기다리던 사내가 허겁지겁 안으로 올라앉았다.
“보좌관님.”
“응, 어떻게 됐나?”
“상단에서 오래 일했다는 녀석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다니엘은 어서 말하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사실 지금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대상인 더니즈의 상속녀 ‘다나 더니즈’는 시작만 하면 금방 찾을 거라 생각했다. 그 정도 대상인의 딸이라면 웬만한 귀족성 몇 개는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음만 먹는다면 아예 작위까지도 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 존재는 자연스레 눈에 띄는 법이었고, 그래서 다니엘은 처음에 쉽게 접근했었다.
바로 테라티우스의 성에서 대량 구매할 물건에 대해 협상한다는 핑계로 더니즈 상단의 대표 ‘다나 더니즈’와의 접견을 요구한 것이다.
혼담에 대한 이야기는 저쪽이든 다른 쪽이든 별로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직접 보고 판단하려 했었다. 하지만 돌아온 답신은 ‘다나 더니즈’가 부재중이라는 내용이었다. 단순 ‘외출 중’이거나 며칠 간의 부재가 아닌 듯 보였다.
“일단 상단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겉보기에는요.”
“겉보기에는? 그럼 사실은 아니란 말야?”
더니즈 상단은 그녀가 없지만 납품을 원한다고 했다. 따라서 상단의 상급 관리자들은 다나 더니즈 대신 대리인을 보내겠다고 답했지만, 다니엘은 처음부터 그녀가 목적이었던 것만큼 바로 거절했다.
대공가를 상대라 생각하면 상단의 태도가 불경하다 할 법했지만, 죄송하다는 문구가 다섯 번 적혀 있을 만큼 그들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 같았다.
“일단 중간 관리자들이 몇몇을 제외하고 싹 물갈이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물러난 관리자들이 한결같이 선대 더니즈 대표와 각별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처음 상단을 시작할 때부터 함께했던 이들이죠. 아, 그들 중에서도 한 명은 제외되었지만요.”
다니엘은 턱을 쓰다듬으며 미심쩍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짚어보았다.
“그냥 세대교체가 된 거 아냐? 선대 때부터 함께했으면 나이가 꽤 들었을 테니 말야. 참, 한 명이 제외됐다고?”
“예,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살아남은 사람은 선대 더니즈가 사망 후 실질적으로 상단을 운영하던 관리자입니다.”
“모두가 바뀌면 운영이 어려울 테니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문제는 그녀가 어디로 갔냐는 거야.”
“그게 소문이 돌고 있다고는 합니다.”
상단 안의 정치 싸움까지 알고 싶진 않았지만, 완전히 듣지 않을 순 없어 다니엘은 심드렁하게 다음 질문을 했다.
“무슨 소문?”
“이건 지부의 보부상 말이라 확실하진 않은데…….”
약간 뜸을 들이던 남자에게 재촉하려는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다나 더니즈가 어떤 남자에게 빠져 전 재산을 넘겼다고도 하고, 같이 야반도주를 했다는 말도 있고…….”
다니엘은 눈살을 찌푸리며 입맛을 다셨다. 남자는 말을 이어갔다.
“하여간 비밀리에 사귀던 사람은 있긴 한가 봅니다. 늙은 귀족이라고도 하고, 어느 젊은 남작과 불륜이라는 소문도….”
“아아, 됐어. 그만, 그만.”
“네?”
다니엘은 신경질적으로 마차 창문에 드리워진 커튼을 한쪽으로 넘겼다. 답답하고 어두웠던 공간에 빛이 들어왔다.
“더 들어볼 것도 없잖아.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소문의 여자와 우리 대공 전하라니! 상인의 딸인 것도 마땅치 않은데…….”
다니엘은 꼭 자기가 레온의 친인척이라도 된 것처럼 기분 나빠하며 툴툴댔다. 보고하던 사람은 입을 다물면서도 의아하게 그를 봤다.
사실 이 나라에서 귀족이 배우자 외의 애인을 두는 것은 가십거리도 되지 않을 만큼 흔한 일이었다.
“어쨌든 애인이 있었다는 거잖아. 돌아가자.”
“저는 어떻게 할까요? 여기 보수가 좋아서…….”
애초에 남자는 대공성에서 일이 있을 때만 심부름하던 사람이었고, 잠시 알아보기 위해 상단 밑에 직원으로 들어간 사람이었다.
“당분간은 부를 일 없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니엘이 귀찮다는 듯 손을 흔들자 남자는 활짝 웃으며 성큼 마차에서 내렸다.
“헤헤, 그럼 살펴 가십시오.”
마차가 출발하고, 다니엘은 손가락으로 뺨을 긁으며 중얼거렸다.
“그냥 그대로 말씀드리면 되겠지?”
***
나무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먼 곳에서부터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잠들어 있던 다나가 부스스 눈을 뜨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내려가자 울긋불긋한 나체가 드러났다. 그 와중에도 누군가가 계속 노크를 했다. 다나는 이불을 끌어 올려 몸을 완전히 덮고 작게 소리 냈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하녀가 들어왔다. 조금 긴장했지만 어제의 그 하녀는 아니었다. 그녀는 깨끗하게 손질된 단정한 드레스를 침대 끝에 놓고는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뭔가 주의를 받았는지 하녀의 태도는 어제와 비교해 매우 깍듯했다.
“어, 저…….”
“원한다면 여기다 가져다드리겠습니다. 나와서 하셔도 되고요. 전하께선 이미 식당에 가 계셔요.”
다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으로 가져다주세요. 일단은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 나가주시고요.”
다나에게서 자연스럽게 반 명령조의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하녀는 군말 없이 그녀의 요청대로 문밖으로 나갔다.
다나는 머쓱하게 이불을 다시 내리고,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어젯밤 그 난리를 치르고도 살결이 보송보송했다. 심지어 다리 사이까지 말끔해져 있었다. 물론 군데군데 흔적은 그대로였다.
‘누가… 설마 그 사람이?’
다나는 붉어진 얼굴로 조심스레 몸을 일으켜 하녀가 놓고 간 옷을 집어 들었다. 수수한 디자인이었지만, 고급재질의 윤이 반들반들한 소재로 되어있었다. 그제야 고개를 들어 방 안을 살펴보았다.
“평범한 집은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