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뭐?”
레온이 손을 멈추고 되묻고 나서야 그녀는 자신이 말을 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
다나도 놀랐는지 헐떡이면서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바닥으로 입을 가렸다. 레온은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 아주 느리게 손을 아래서 빼냈다.
“처음 꺼낸 말이 그만하라는 거라니, 유감이야. 그렇게 싫었나?”
“아, 아니…! 그게 아니라!”
막 떨어지려는 그의 팔을 다나가 두 손으로 붙잡았다. 조금 어리바리하긴 했지만, 한번 말이 터지니 그다음은 어렵지 않았다.
자신을 잡은 그녀의 손을 보며 빙긋 웃은 레온이 젖어있는 손가락을 다나의 눈앞에 확인시켜주었다.
“그렇지, 몸은 이렇게 원하는데 말야. 입은 트였어도 아직 솔직하진 못하군.”
그렇게 말하면서도 레온은 다나가 자신을 잡은 것이 꽤나 만족스러워 보였다. 조금은 다정해진 말투로 가까이 그녀와 마주 보았다. 그리고 손은 은근슬쩍 다시 아래로 향했다.
“자, 이제 말해봐. 넌 누구지…?”
하지만 그렇게 묻는다 한들, 다나로선 또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몰랐기 때문이다.
또다시 조용해진 그녀를 이번엔 레온도 채근하지 않았다. 대신 선홍빛 날개를 가르고 들어가 깊숙한 곳에 다시 손가락을 넣었다. 파고드는 찌릿함이 서서히 퍼져갔다.
“하… 아.”
“기억나지 않는 건가?”
다나의 푸른 눈빛이 몽롱하게 너머를 향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흣, 모르… 겠어요, 난… 누구죠?”
레온의 잔잔한 시선이 음란한 손길과 어울리지 않았다. 이번엔 나른한 쾌락이 딱 기분 좋을 만큼 온몸에 은은히 부유했다.
레온은 그녀가 지금 하는 말이 진실인지를 가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도 지금으로선 제대로 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뭐가 됐든.’
솔직히 말하면, 그녀가 누구라도 지금의 그에게는 상관이 없었다. 레온이 몸을 일으켜 바지 버클을 푸는 모습을 보며 다나는 다시 한번 질문했다.
“당신은… 누군가요?”
“레온 테라티우스.”
짧게 대답한 레온이 바지를 벗어 마찬가지로 침대 아래로 던져 내렸다. 속옷까지 탈의하고는 다시 그녀의 몸에 겹쳐 올라탔다.
그가 지금 무엇을 하려는 지는 다나 역시 알고 있었다.
“그, 그게, 당신 이름?”
이 와중에 통성명을 한다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어쨌든 대화가 그녀와 가능하다는 사실만으로 레온에게는 반가운 일이었다.
“그래, 내 이름이야.”
레온은 친절하게 그녀에게 대답하면서도 착실하게 다나의 다리 안쪽에 자리 잡았다. 그제야 다나는 레온의 물건을 제대로 보았다. 다나의 푸른 눈이 휘둥그레졌다. 빳빳하게 솟은 기둥을 손으로 훑으며, 레온은 다나의 허벅지를 더 넓게 벌렸다.
“그걸… 어떻게 다.”
“음, 역시 바로는 무리겠지?”
다나는 정확한 뜻을 몰랐지만 일단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그러자 레온의 머리가 쑥 내려가 가랑이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그… 앗! 뭐, 뭐 하는 거예요?”
바동거리는 다나의 다리를 손으로 붙잡고서는 레온이 흘끔 시선만 올려 대답했다.
“뭐긴, 빨아주려는 거지. 가만히 있어.”
“잠… 시만, 핫, 아… 으응…….”
노골적인 언어에 당황하기도 잠시, 미끌거리는 감촉이 갈라진 둔덕 사이를 파고들자 다나는 달콤한 신음을 흘려보냈다.
민망한 부위를 적나라하게 보인다는 수치심을 잊을 만큼 황홀한 감각이 계곡 사이를 오르내렸다. 붉게 충혈된 연약한 돌기가 그의 입속으로 사라지는 순간, 다나의 허리가 저절로 튀어 올랐다.
“하… 아! 하읏…!”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뻣뻣하게 굳고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번개가 내리친 것 같은 감각이 몇 번이고 척추를 관통했다.
그 와중에도 레온은 느긋하게 혀를 이용해 그녀의 음핵을 이리저리 굴려대고 있었다.
“아, 아아… 아.”
그로서도 본능적으로 행동할 뿐, 이 모든 것은 처음이었다. 일일이 반응하는 그녀가 귀엽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랑스러웠다.
‘사랑스럽다…?’
낯설다 못해 거북하기까지 한 단어가 스치고 지나가자, 레온은 애무를 하다 말고 고개를 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어차피 그렇지 않아도 더 이상은 한계였다. 터질 듯이 부푼 물건이 한참 전부터 그를 재촉하고 있었다.
레온은 보드라운 허벅지와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하체를 가까이 밀착시켰다. 레온의 행동에 다나는 숨을 죽이며 또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이 다음은 뭐지?”
레온은 기둥의 뭉툭한 끝을 이용해 갈라진 사이를 두어 번 문지르며 오르내렸다.
“…읏, 네?”
툭 뱉어진 질문에 다나는 영문을 몰라 그를 빤히 봤다.
질구 끝을 깔짝거리면서도 그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안달 난 다나가 엉덩이를 들썩일 때까지 주위를 맴돌며 쿡쿡 찌를 뿐이었다.
“너와 이렇게 하고 나면, 그다음은 뭘 해야 하냐는 거야. 분명 원하는 게 있을 텐데.”
‘내가 원하는… 것.’
자신이 기억을 되찾을 때까지 그가 안전하게 지켜주길 원했다.
물론 잠자리를 대가라 하긴 뭐했지만, 지금의 다나로선 이것이 유일한 미끼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 그런 생각보다는, 들어올 듯 말 듯 한 저것을 원하는 본능이 훨씬 컸다.
마치 거래하듯 말하면 그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 진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지도 몰랐다. 그 때문에 다나는 일단 말을 아꼈다.
“…없어요, 그런 거.”
그녀의 대답에 레온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
그리고 자비 없이 자신의 분신을 질구 속에 푹 밀어 넣었다. 길들이는 과정도 없이 처음부터 거칠게 움직이던 레온은 차갑게 그녀의 말을 되뇌었다.
“없다, 원하는 게.”
“하읏, 아, 아… 천, 천천히, 하.”
빠듯하게 벌어진 입구였지만 애액에 푹 절여져 무리 없이 그의 것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거센 몸짓이 이어지자 다나는 처음부터 강한 자극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번도 응한 적은 없지만, 레온에게 있어서 여자가 잠자리를 대가로 뭔가를 요구하는 건 아주 익숙한 일이었다.
그 때문인지 다나가 그렇다 해도 레온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오히려 의도가 없다 하니 꺼림칙해졌다.
“그럴 리가 없잖아.”
차라리 다나가 뭔가 원한다 했으면 원하는 것을 들어주려 했을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처음 본 자신에게 매달리며 몸을 허락하는 것에 그는 의심스러우면서도 짜증이 났다.
“그런 관계는 믿지 않아.”
동그란 엉덩이 살과 단단한 치골이 부딪히며 찰싹찰싹 소리를 냈다.
“아, 하, 아흣!”
그녀의 다리는 들어 올려져 레온의 어깨 위에 걸쳐 있었다. 하얀 발이 허공에서 맥없이 흔들거렸다.
뭔가가 그의 심기를 거스른 게 분명했다. 레온은 믿지 않는다는 한마디 후, 더 이상은 말이 없었다. 하지만 꽤 격렬해진 관계가 단지 흥분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핫, 아… 왜, 화가, 났, 흣… 어요? 하윽.”
간신히 눈치를 보며 운을 뗐지만, 사실 그럴만한 타이밍은 아니었다. 굵은 기둥이 푹 파고들어 내벽 깊숙한 곳을 강하게 자극했다.
“아… 핫!”
다나가 짧은 절정을 느끼는 와중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였다. 페니스가 드나들 때마다 윤활유가 함께 미끄러져 흘러나왔다. 버거울 법도 한 크기를 선홍빛 속살이 쑥쑥 잘도 집어삼켰다. 무서울 정도로 쾌감이 크고 짙었다.
다나는 무의식중에 손을 뻗어 그가 잡아주길 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뻔히 보고도 슬쩍 시선을 외면하며 하체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민망해진 손을 거두려 하자, 그제야 레온이 슬쩍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흣, 하아, 너무, 깊… 어, 하…….”
쾌락에 푹 젖어있는 그녀를 레온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손등 위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그녀의 다리를 벌리게 한 후 상체를 숙여 몸을 바짝 붙였다. 시선이 가까워지고, 밭은 숨이 서로의 공간 속에 섞이며, 레온의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다.
이제야 다나는 아래에서 묵직하게 파고든 것을 오롯이 느끼며 약간의 여유를 되찾았다. 다나는 숨을 고르고 잠시 생각하더니,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냈다.
“…말해주지 않으면, 나는 몰라.”
조금은 어색하게 흘러나온 다나의 음성에 레온이 움직임을 멈추고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다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나에게 화내지 마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
가진 것도, 기억도 없는 자신은 그가 내친다면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굳게 다물렸던 입술이 열리고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고저 없이 단조로운 와중에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주고받는 것에 익숙하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다나는 말없이 눈을 깜빡거렸다. 레온은 다나의 턱 아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숨을 들이켰다. 달콤한 살 내음이 그의 초조함을 조금 누그러뜨려 주었다.
“원하는 바 없이 내 곁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러니 너도.”
웅웅대며 억눌린 목소리가 느리게 이어졌다. 그리고 멈췄던 움직임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나는 오르내리는 감각에 눈을 감으며, 그의 뒷머리를 손으로 가만히 쓰다듬었다. 강해보이는 그가, 지금은 어쩐지 아주 조금 약하게 느껴졌다.
“원하는 것을 말해. 그래야 내가 이해할 수 있으니.”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아래를 채우던 묵직한 부피가 쑥 빠져나가버렸다.
“아… 흐.”
다나가 뭔가를 하기도 전에, 레온은 그녀의 몸을 가볍게 뒤집었다. 그리고 무릎을 세워 엉덩이를 들게 만들었다. 다나는 그가 하려는 대로 자세를 취하고는 베개 위에 얼굴을 묻었다.
곧 엉덩이 아래쪽으로 손이 쑥 들어왔다. 바짝 긴장하는 가운데, 다시 손가락이 질구 속을 파고들며 이리저리 헤집어 놓았다.
“으응, 으… 흣, 아…….”
찰박대는 물소리가 연이어 들리며 다나는 다시 끙끙대기 시작했다. 조금 지친 건 사실이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그와의 관계가 전혀 싫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 거 였구나… 난 그전에도 이런 걸 즐겼을까?’
왠지 모든 게 처음 같은 기분에 긴가 민가 싶다가도 가슴 한구석이 저릿거렸다. 기억의 공백은 이 와중에도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구멍에서 빠져나온 손가락은 축축한 그대로 그녀의 허리와 엉덩이 가운데쯤 놓여 넓게 자리 잡았다. 레온은 갈라진 틈바구니 안으로 기둥 끝을 맞추고 망설임 없이 한 번에 푹 박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