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서찰에는 며칠 전 수도에서 만났을 때 했던 말의 반복이었다. 다만 그 끝에 달린 말이 있었다.
[만일 네가 더니즈 가의 딸과 약혼을 한다면, 나도 영지로 돌아가는 것을 고려하겠다.]
바꿔 말하면, 오웬 테라티우스 공작은 레온이 혼인하지 않는다면 절대 오지 않을 거란 얘기다. 비록 부인이 사경을 헤매고 있을지라도.
‘참으로, 남보다 못한 사이가 아닌가.’
뚜벅뚜벅 걷던 레온은 잠시 멈춰 서더니 부인의 방문을 노려보았다. 물론 그 노려본 시선 끝엔 부인이 아닌 아버지 공작을 떠올리고 있었다.
“전하?”
“그분도 참 한결같군.”
수하의 부름에 레온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는 가던 길을 마저 걸어갔다.
사실 정변이 있기 전까지 오웬과 레온 두 부자 사이는 평범했다. 딱히 깊은 정을 나눈 각별한 부자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를 갈만한 원수지간도 아니었다.
오웬은 그저 레온에게 때론 무심하고 적당히 엄한, 그 시대 많고 많은 아버지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자신의 어머니 소피아에게만큼은 무서우리만큼 독하고 냉정했다. 그 때문에 소피아는 사는 내내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고, 늘 외로워했다.
레온은 그런 어머니를 쭉 지켜보며 자라왔다.
“그런데 전하. 그 상인의 딸과 혼인 하실 생각이십니까?”
레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아버지 오웬의 의도를 이해할 수 없었고, 설사 한다 해도 그의 말을 따르는 데엔 반감이 들었다.
“그럴 리가.”
“잘 생각하셨습니다. 대공 전하에게 상인의 딸이라니 말도 안 됩니다. 적어도 유력 집안의 영애거나 아니면 다른 왕국의 공주쯤은 되어야…….”
“일단 그 여자에 대해 알아봐라.”
“예? 혼인하시려고요?”
레온이 가던 걸음을 다시 멈췄다.
“이 기회에 그 상단에 대해 더 깊이 알아볼 겸, 겸사겸사.”
“예에, 알겠습니다.”
다니엘은 펜으로 머리를 긁적거리며 다시 그를 따라나섰다.
타다다닥!
조급한 발걸음이 그들 앞으로 달려왔다.
“대공 전하!”
“무슨 일이냐.”
다니엘이 레온 앞으로 달려오는 하녀를 향해 말을 물었다.
“그… 아가씨가 깨어나셨어요!”
그런데 하녀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우물쭈물하는 그녀를 향해 레온이 다그쳐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게… 저.”
“빨리 말해라.”
하녀는 손끝을 꿈지럭거리다 모기만 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조금… 이상하세요. 계속 울기만 하시고 말씀을 잘 못 하시는 게…….”
레온과 다니엘이 동시에 서로를 마주 보았다. 영 감을 못 잡고 있는 다니엘을 향해 레온이 말했다.
“내가 가 볼 테니 넌 내가 이른 것을 알아봐라.”
“…예, 전하!”
그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다나가 잠들었던 방으로 가자 하녀의 목소리가 문밖으로 새어 나왔다.
“아가씨, 뭔가 불편하세요? 말씀을 하셔야죠. 어휴, 참 울기만 하시고….”
그러자 하녀가 어쩔 줄 몰라 하며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레온은 문고리를 잡으며 그녀에게 명령했다.
“너는 가서 주치의를 불러와라.”
하녀는 바로 후다닥 달려갔다. 레온은 숨을 한번 들이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광경에 곧바로 뒤를 돌았다.
“앗, 아가씨 아직 옷을…!”
레온을 발견한 하녀는 당황한 목소리로 외치며 다나의 팔을 잡고 있었다. 그때 침대에서 훌쩍 내려와 다다다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녀가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세상에…!”
레온이 뒤를 돌았다. 침대에 있던 그녀는 다 찢어져 흘러내리는 옷을 걸친 채 레온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의 품에 덥석 안겨 왔다.
“…이런, 이봐.”
그녀가 레온의 앞까지 왔을 땐 이미 원피스는 바닥까지 내려와 완전히 알몸이 되어 있었다. 레온은 손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얼떨떨한 표정으로 여자를 내려다보았다.
여자는 무언가가 몹시 두려운 듯 레온의 옷자락에 얼굴을 묻고 바들바들 떨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하녀는 벌게진 얼굴로 멀찍이 서서 그들을 지켜만 보았다.
“흑, 흐윽.”
두렵고, 서러운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레온은 손을 들어 어깨에 올리려다 허공에서 주먹을 한번 꽉 쥐었다. 그리고 어색한 목소리로 말로만 그녀를 다독였다.
“그만, 그만 울어라.”
레온이 그녀에게 화내지 않자, 멀리서 눈치를 보던 하녀는 조용히 문밖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가씨의 옷을 다시 준비하겠습니다.”
하녀마저 나가버리자 고요한 방 안에는 여자의 훌쩍이는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레온에게는 여자의 울음보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상의 자락을 사이에 두고 자신의 가슴 아래 닿아 있는 두 개의 봉우리였다.
참다못한 레온이 어색하게 있던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쥐고 확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그 아래로 시선이 가지 않게 하느라 그는 무던히도 애쓰고 있었다.
“이봐. 정신 차려. 계속 울기만 할 거야?”
그 때문에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무뚝뚝했다. 눈물이 그득하게 고인 푸른 눈동자가 그의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발갛게 부어오른 눈 아래가 묘하게 색정적이었다. 게다가 입술, 여전히 붉고 작고 오물대는 입술에 시선이 가자 레온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리 와.”
레온은 그녀의 손을 잡아 침대로 이끌었다. 하녀를 한참 동안 애먹이던 여자는 레온의 손짓에는 순순히 끌려갔다.
그녀가 침대 옆에서 멀뚱멀뚱 서 있자, 레온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여자를 침대 위에 앉히려 했다. 그러자 여자는 갑자기 레온의 가슴 쪽 옷자락을 덥석 잡아당겼다.
털썩-
레온이 예상치 못한 당김에 휘청거렸고, 그 무게에 기울어 둘은 침대 위로 포개져 쓰러져버렸다. 간신히 레온이 팔로 버텨 그녀가 깔리진 않았다.
“후우, 지금 뭐 하는…….”
짜증 어린 목소리를 내뱉던 레온은 얼굴을 굳혔다. 자신의 몸 아래 깔려 있는 여체의 느낌이 너무도 생생했다.
그녀의 다리 사이에 자신의 무릎이 포개져 있었고, 한숨이 나올 만큼 달콤한 숨결이 코끝을 스치고 있었다.
“지금 날 유혹… 하는 거라면.”
레온은 시험 삼아, 라고 스스로에게 변명하며 손을 슬쩍 그녀의 허리 위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감촉이 잘록한 곡선을 그리며 그의 손바닥에 찰싹 감겼다.
“그래, 좋아. 나쁘진 않아. 그러니 얘기를 해봐, 넌 누구지?”
손이 슬슬 골반을 쓸어 내려갔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속도로 그는 엉덩이를 스치며, 그녀와 눈을 마주했다. 푸른 눈동자는 그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조금 불안한 듯 흔들렸지만 그의 손길에도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레온의 날 선 추궁에도 아까 그녀가 보여줬던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허벅지 아래까지 간 손이 살집을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그녀는 조금 움찔하긴 했지만 딱히 피하거나 하진 않았다.
“말하지 않을 셈인가?”
레온은 아랫도리에 몰리는 욕구를 간신히 다스리면서, 지금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했다.
‘애초에 나를 노리고 일부러 접근한 것인가?’
자신을 술에 취하게 한 후 침실로 뛰어든 여자도 있었고, 발을 삔 척 앞에서 쓰러진 여자도 분명 있긴 했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움직이던 손이 뚝 멈췄다.
“뭐, 일을 치르고 나서도 나는 상관없다만, 말해두지. 나는 침대에서 그리 신사가 아니야.”
레온이 하는 말을 듣기는 한 건지, 눈을 마주한 여자는 바다색 눈동자를 반짝이며 눈매를 곱게 휘었다.
레온은 그녀의 웃는 표정에 뭔가 목에 걸린 것만 같았다. 그가 불편한 감정을 숨긴 채, 시선을 아래로 내리며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다.
달콤한 살 내음이 폐부 속 깊이 스며들자 머릿속이 아찔해졌다. 허벅지 아래를 쓰다듬던 손은 어느새 안쪽으로 넘어와 있었다.
레온은 새삼스레 우스웠다.
‘마치 풋내기 어린애 같지 않은가.’
확실히 이렇게 끓어오르는 건, 정말 기억나지 않을 만큼 오랜만이었다.
‘그러니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고 생각하는 머리와 달리 손가락은 다리 사이를 타고 올라가 허벅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멈추었다. 손끝에 가느다란 음모가 스칠 듯 말 듯 가까이 느껴졌다.
쪽, 쪼옥-
쇄골을 타고 내려오며 가볍게 살갗을 빨아들였다.
“으… 응.”
내내 말이 없던 입술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것이 마치 방아쇠인 듯, 레온은 손가락 하나를 세우고는 빠르게 미끄러져 안쪽으로 들어갔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감각이 손끝에 닿자, 실낱같던 이성이 툭 끊어졌다.
그는 눈앞에서 흔들리던 가슴 위의 붉은 정점을 입안에 머금었다.
“하… 아… 으응.”
그녀는 내숭을 떨지도, 거부하지도 않고 그가 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레온은 그런 여자가 이상하다 여기면서도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기 편하게끔 여자의 다리 사이를 더 넓게 벌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하지만 조금은 급하게 두 손가락으로 선홍빛 날개를 쓰다듬어 벌렸다.
“아…….”
여자가 아래에서 몸을 비틀며, 그의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손가락을 파고 들게 만들었다.
잘 여물어 단단해진 유두가 혀로 인해 입안에서 굴러다녔다. 그녀의 몸에선 내내 단내가 났다. 자신이 직접 씻기지 않았더라면, 여자가 자신을 유혹하기 위한 향수라도 썼다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마침 생각났다는 듯이, 레온은 고개를 들어 다시 그녀의 얼굴과 가까이 마주했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붉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서슴없이 나가는 진도에 레온은 스스로 당황했지만, 자신의 손은 착실히 욕구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으응.”
말랑한 감각과 달콤한 꽃향기가 머릿속을 지배하고 몸속의 욕정이 폭발하듯 들끓었다. 레온은 서둘러 자신의 바지춤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레온을 반갑게 마중 나와 혀를 얽히고 비벼댔다. 키스가 어색하지 않았다. 점막 안쪽을 샅샅이 훑으며 그녀의 입술을 잡아먹을 듯이 삼켜댔다. 다리 사이에선 그의 손목이 까딱거리며 민감한 부위를 찾아 헤집기 시작했다.
떨어진 서로의 입술 사이로 진득한 숨소리가 오고 갔다. 몽글하고 단단한 것이 손끝에 닿자, 그것을 꾹 눌러 짓이겼다.
“아…! 흣.”
솔직하게 반응하는 그녀에게 몸은 기꺼우면서도 마음속 어딘가엔 점점 의구심이 들었다. 손이 좀 더 깊은 아래로 이동했다. 다물린 안쪽을 벌리자 촉촉하게 젖은 그곳이 손가락 끝에 만져졌다.
“…이제 말해봐, 네가 누군지. 그렇게 입 다물고 있는 이유가 뭐지?”
달뜬 눈동자가 잠시 멈추고 시선이 멀어졌다. 그렇게 그녀는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푸른 눈물을 일렁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여전히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할 듯하면서도 쉽게 말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좀 더 듣고 싶은 마음에, 손끝이 질척이는 균열 위를 잘게 지분거렸다.
“하… 으… 아아…… 으응.”
그녀는 달아오르는 체온에 몸을 들썩이며 어쩔 줄 몰라 그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몸은 이렇게 솔직한데, 어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