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40)

* * *

[자, 이제 결승전의 진정한 마지막 세트가 될지 모를, 4세트를 시- 작하겠습니다!!]

월드 챔피언십, 그리고 주오의 마지막 경기가 시작됐다. 주이는 2, 3 세트에서 펼쳤던 전략으로 다시 제라드를 공략했다. 하지만 팀 리더의 은퇴 경기를 꽃길로 만들어주겠다는 의지가 동기를 크게 부여했는지 선수들은 전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서로 킬을 주고받기를 반복하며 월드 챔피언십의 최장 경기 시간을 갱신했다. 50분, 게임은 극 후반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 오브젝트 싸움.

이미 양쪽의 포탑은 외각은 무너진 지 오래였고 내각 포탑만 남겨두고 있었다. 이번 싸움으로 더 많은 수의 선수가 죽는 팀이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거대 골렘 앞에서 대치한 양 팀은 서로 양보할 수 없다는 듯 한 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애들아, 전투에서 굳이 이길 필요 없어. 시간만 끌어줘.”

“응? 무슨 소리야?”

갑자기 떨어진 주오의 오더에 우찬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길 필요가 없다니.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경기였다. 수호도 주오의 생각을 몰라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주오는 어느 때보다 진지한 눈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시간, 상대의 아이템, 병사의 위치, 그리고 지금 선수들이 서 있는 위치까지 모든 것을 꼼꼼하게 따지는 눈이었다.

“2분. 수호가 앞에서 어그로 끌면서 시간 좀 끌어줘. 그러다가 급해져서 주이가 들어오면 우찬이 너는 무조건 OZ만 붙들어. 꼭 죽일 필요까진 없어. 그리고 선우는 MAIL만 마크해 줘. 은기도 OZ 포커싱하지 말고 MAIL만 봐주고. MAIL은 죽여야 하니까 우찬이 너도 OZ 붙잡는 게 힘들 것 같다 싶으면 OZ 버리고 MAIL 봐줘.”

“형은 뭐 하려고?”

그 오더 속에서 주오는 없었다. 오브젝트 싸움에서 정글이 없다는 건 오브젝트를 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상대 본진으로 뛸 거야. 병사 생성기 아이템도 있으니까 벽 넘어서 병사 생성하면 내각 포탑 부수지 않고 보석만 노릴 수 있어. 그러니까 3분만 끌어줘.”

“그거 도박 아니에요? 그러다가 시간 못 끌고 우리 다 죽으면 무조건 지는 건데?”

차라리 다 같이 전투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묻는 은기를 향해 주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 안 져. 우리가 냅다 던지지 않는 이상 3분은 버틸 수 있어. 아이템 빌드도 그렇고 그동안 축적해 놓은 버프들 때문에 방어력도 올려놨으니까 빨리 안 죽을 거야. 딜러진은 몸이 약해서 죽을 수 있다고 쳐도 탱커들만 살아서 쟤네 귀환만 방해해도 시간은 채울 수 있어. 그리고 하던 대로만 하면 전투도 무조건 이길 테니까 걱정 마.”

“형…….”

여전히 불안한 듯 주오를 부르는 음성이 흔들렸다. 주오는 그런 은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우승할 거라니까.”

제라드의 선수석에서 우승을 가장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건 누가 뭐라고 해도 김주오였다.

남은 선수들은 시간이 있었고, 내년이 있었다. 하지만 주오에게는 이제 그런 것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승이라는, 정상이라는 자리에 앉아봤던 주오는 그 영광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을 품고 있었다. 그 간절한 마음은 그 자리에 앉아보지 않은 사람은 죽어도 모를 지독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드러내지 않았지만, 주오는 언제나 그 자리를 되찾고 싶었다. 자신의 손으로.

주오의 확고하면서도 확신의 찬 시선을 말없이 보던 은기가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만약 진짜 우승 못 하면 형 은퇴 절대 못 하게 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

내년에도 그 자리에 앉혀줄 거라고 무섭게 말하는 은기를 보며 주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럴 일 없을 거니까 걱정 마라. 그러면 시간 끌기 부탁한다. 딱 3분이면 돼.”

그 말이 끝나자 선우는 오브젝트 지역 시야를 잡아나갔다. 상대 진영까지는 무리라고 해도 자신들이 서 있는 영역 주변은 가능했다. 주오가 이 자리에 없다는 걸 들키지 않을 정도로 상대의 시야를 끄는 건 쉬웠다.

그리고 주오를 제외한 선수들은 정글, 주오가 있는 것처럼 당당하게 앞으로 나섰다. 당장에라도 골렘을 칠 것처럼 당돌한 그들의 태도를 보면 누가 봐도 주변에 정글이 숨어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오가 상대 본진 외벽에 도착했다. 본진 내부는 환하게 밝혀져 있어서 진입하는 순간 주오의 위치를 들킬 수밖에 없었다.

“나 들어갈게. 주이가 나 발견하면 이쪽으로 오려고 할 테니까 시간 끌면서 막아줘. 부탁해, 수호야.”

“네. 걱정하지 마세요.”

수호는 자신을 부르는 주오의 음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하지 않아도 무조건 해낼 생각이었다.

“알겠으니까 빨리 들어가!”

투덜거린 우찬의 말이 끝나자 주오는 벽을 넘어 본진에 잠입했다.

[아아아!! RAIN 선수!! 백도어인데요?! 오브젝트는 버리고 백도어로 승부를 보겠다는 것 같습니다!]

[주이 선수들 알아차렸죠?! 본진으로 귀환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제라드 선수들 막아야죠!!]

주오를 발견한 주이의 선수들이 본진으로 귀환하려고 하자 제라드 선수들은 골렘을 쳤다.

본진으로 돌아가면 이건 우리가 가져갈 거라고 말하는 플레이에 귀환을 타던 선수 중 일부가 귀환을 끊었다. 주오를 막는다 해도 공격력 버프를 넘겨주면 4:5 전투를 해도 주이의 승리를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귀환을 끊지 않는 선수도 있었다. OZ였다. 그리고 우찬은 그런 OZ를 향해 궁극기를 사용해 돌진했다.

충격이 가해지면 귀환이 끊기기 때문에 주이 선수들이 OZ의 앞을 막았다. 하지만 뒤에서 나타난 수호를 막기는 무리였다.

수호는 OZ를 붙들고 우찬은 앞을 막은 주이의 선수들을 헤집었다. 그 뒤로 선우와 은기가 MAIL에게 달려들었다.

말 그대로 난장판이었다. 더군다나 제라드에게 공격받은 골렘이 분노해 둥지를 뛰쳐나와 전투에 참여했다. 보이는 족족 가까이 있는 선수들에게 돌주먹을 선사했다.

[골렘!! 골렘이 너무 아파요!!! 골렘이 주이의 선수들을 공격합니다!]

[아니, 때린 건 제라드인데 주이의 선수들이 맞고 있는 거죠?!]

AI의 오류다. 보통 친 사람을 공격했지만, 골렘 인근에 사람이 많으면 골렘의 포커싱이 흐트러졌다. 이렇게 난장판 속에서는 확실히 흐트러질 수밖에 없었다.

[아아악!! 그러는 동안 RAIN 선수는 병사 생성기를 보석 앞에 설치했습니다! 이거 주이 어떻게든 귀환을 해야 합니다. 아니면 져요오오!!!]

다급한 유기현 해설의 외침에 주이 선수들도 공감했다. 하지만 귀환을 할 수가 없었다.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제라드 선수들의 방해 공작이 너무 심했다. 숫자로 밀어붙이려고 해봤지만, 골렘이 무슨 이유인지 제라드 선수를 공격하지 않고 주이의 선수들에게 돌주먹을 날려댔다.

[이거, RAIN의 역할을 골렘이 대신 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요!!! 정글을 지배하는 RAIN!!]

박동진 해설이 졸도할 것처럼 격하게 흥분해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오더대로 상대 봇듀오가 전사했다. 그리고 주오도 착실히 보석을 깨갔다. 딜러의 역할이 아니었기에 보석 앞을 지키고 있는 포탑을 깨는 데만 시간이 적잖이 걸렸다.

[오오오, 오오오즈!!! OZ!!!]

혼란 속에서 수호에게 붙잡혀 있던 OZ가 수호를 뿌리치고 은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미 MAIL과 HOOKI를 잡아내느라 체력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서로 바텀 듀오가 전사하고 남은 건 3대3이었다. 다만 전투 자리에 없는 주오로 인해 3:2인 상황. 그때 우찬이 기연의 머리를 도끼로 내려쳤다.

“몽둥이다!”

그리고 이어진 메시지.

“아아악! 안 돼!”

우찬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전투에서 남은 수호와 OZ, 그리고 상대 정글인 QUERY.

골렘도 전투로 인해서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그리고 유일하게 오브젝트를 단번에 잡아낼 수 있는 스킬을 가진 QUERY가 체력이 얼마 남지 않은 골렘을 잡아냈다. 그와 동시에 공격력 버프를 받은 OZ와 QUERY의 몸이 불타올랐다.

“야, 이거 망했어!”

보석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한 명이라도 귀환을 하는 순간 보석보다 주오가 먼저 죽는다.

수호는 본진으로 귀환하는 두 선수에게 달려들었다.

달려드는 수호를 QUERY가 막아섰다. 하지만 수호는 QUERY의 공격을 모두 피하며 QUERY를 잡아냈다.

[아아악!! OZ 진짜 가야 해요! 아니면 본진 터집니다!]

주오가 보석을 깨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주오가 보석을 깨는 데까지 30초가량이 더 필요했다. 시간을 더 끌어야 했다. 절대로 살려서 본진으로 보내면 안 됐다.

생존기를 쓰면서 OZ에게 달라붙은 수호는 그가 본진으로 넘어가기 1초 전에 귀환을 끊어냈다. 귀환이 끊긴 OZ는 수호를 잡고 돌아가려는지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생존기와 스킬의 일부를 쓴 수호였다. 하지만 물러설 수 없었다. 그리고 질 생각도 없었다. 수호는 일부러 거리를 애매하게 두며 OZ가 초조해지도록 만들었다.

지금 본진을 위협받는 쪽은 주이였다.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OZ가 급하게 수호에게 달려들었다. 수호는 특유의 외줄타기 방식으로 아슬아슬하게 OZ의 공격을 회피하며 스킬을 소모시켰다.

결국 OZ의 남은 스킬이 자신과 똑같아지자 수호가 돌진했다. 마지막으로 OZ의 공격을 스킬로 무력화시킨 수호는 그대로 캐릭터 기본 공격으로 OZ를 공격했다.

문구가 뜨는 동시에 보석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승리>

[제라드가 주이의 보석을 깨며 GG!! 월드 챔피언십 20XX년 우승은 제- 라드!!!]

“아아아아!! 이겼다!!”

“아, 이수호!!! 진짜 씨발, 너무 잘했어!”

은기와 우찬이 자리를 박치고 일어났다. 수호를 붙잡고 얼싸안으며 기쁨의 욕설을 내뱉는 둘 사이에 끼게 된 수호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와, 진짜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네. 형, 진짜 도박이었다니까.”

의자에 푹 늘어진 선우가 꼭 이렇게 했어야 했냐며 원망스러운 눈으로 주오를 바라봤다. 주오는 미안하다는 듯, 그리고 잘했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애들아! 내 새끼들!! 너무 장하다! 장해!”

선수석 문을 아주 부술 정도로 박차고 들어온 진형이 두툼한 팔로 한데 엉겨 붙어 있는 선수들을 얼싸안았다. 발을 동동 구르며 뛰어오르는 사이에 끼인 수호는 숨이 막혔지만, 어느새 울고 있는 은기와 우찬을 보며 같이 발을 동동 굴렀다.

웃음과 울음이 한가득이었다. 수호 무리를 끌어안고 있던 진형이 주오를 바라보며 웃었다.

“축하한다.”

“감독님도요.”

“아아아, 진짜 레인 씨!!”

이번엔 우찬이 주오에게 달려들었다. 다시 은기와 우찬에게 감싸인 주오가 그 사이에서 짓눌렸다.

저렇게나 기쁠까. 우찬이야 의외랄 것 없는 반응이었지만, 은기까지 저럴 줄 몰랐다.

“만년 2등이었는데 쟤도 기쁘겠지.”

데뷔부터 만년 2등. 그리고 따르던 선수의 은퇴 경기까지 걸려 있었으니 이번 우승이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수호는 선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네요.”

“그것보다 마지막에 진짜 좋았다. 잘했어.”

“원래 잘해요.”

수호의 말에 선우가 짓궂게 웃었다.

“그래서 서머에서 OZ한테 지셨어요?”

“그건…….”

할 말이 없었다. 변명 대신 입을 다무는 수호에게 선우가 이번엔 청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장난이다.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어쨌거나 리벤지해 줬다는 게 중요한 거 아니겠어? 제대로 혼내주던데? 오늘 솔킬만 몇 번이야.”

선우는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우찬과 은기처럼 유난스럽지는 않지만 그래도 선우도 우승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수호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손으로 꾹꾹 눌렀다.

수호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주오를 바라봤다. 주오는 동생들 사이에 껴서 짓눌리고 있는 와중에도 수호와 눈이 마주치자 환하게 웃었다. 선수석 창 너머로 들어오는 스포트라이트보다 훨씬 눈부신 미소였다.

“수호야, 서로 약속 꼭 지키는 거다?”

‘평생을 바쳐서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계속 나만 좋아해 줘.’

‘네. 꼭 그럴게요.’

결승 전에 나눈 약속이었다. 수호는 당연한 걸 묻는 주오에게 웃음으로 답했다.

‘네.’

그 단출하면서도 어느 말보다 명확한 수호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주오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제라드 선수들은 무대 위로 올라와 주십시오!]

주이와 제라드 선수석 중간, 빛이 환한 무대 중앙으로 거대한 우승컵이 무대 아래에서 올라왔다.

조명을 받아 더욱 반짝이는 우승컵은 그 어느 때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무대로 달려가는 선수들 뒤를 수호와 주오가 천천히 따라갔다. 손끝이 스칠 만큼 가까운 두 사람 사이로 주오의 작은 음성이 흘렀다.

“수호야, 고마워.”

“뭐가요?”

“그냥, 전부 다.”

모든 것이 고맙다고 말하는 주오에게 수호는 감사함을 느꼈다. 오히려 그 말을 하고 싶은 건 수호였다. 우승이 정말 기쁜 일이라는 것, 팀메이트들과 지내는 게 얼마나 즐거운지, 그리고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마법 같은지를 알려준 김주오에게 수호는 무한한 애정과 고마움을 느꼈다.

“저도요.”

흔들림 없는 수호의 말간 검은 눈이 자신에게 향하자 주오가 슬쩍 수호의 손가락에 손가락을 엮었다.

아주 잠시간의 접촉이었지만, 손끝 마디에서 전해오는 온기에 수호는 가슴이 설렜다. 행복했다.

“와아, 와!! 진짜 우승컵이야! 야, 조은기, 이거 들어봐. 겁나 무거워!”

넋이 나간 듯 우승컵을 들고 있던 우찬이 그 영광을 은기에게 넘겼다. 은기는 자신에게 넘어온 우승컵을 보물단지를 받아 드는 것처럼 소중히 넘겨받고는 높이 치켜들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제라드! 제라드!

오랜 숙원이 이루어진 제라드 팬들이 목 놓아 제라드를 외쳤다. 발끝부터 짜릿한 감각이 타고 오르는 것 같았다. 자신에게는 당연했던 것들이 타인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이었다는 게 새삼 느껴졌다.

“형, 여기요.”

여전히 울고 있는 은기가 우승컵을 주오에게 건넸다. 거구의 주오가 두 팔로 끌어안아야 품에 다 안길 만큼 거대한 우승컵이었다.

주오가 우는 은기에게서 우승컵을 건네받았다.

그러자 관객석의 환호가 더욱 커졌다.

김레인! 김레인! 김레인!

주오는 자신을 부르는 관객석을 향해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수호는 주오를 멍하니 바라봤다. 정말 멋있었다. 평생을 이 순간의 사진만 보고 살라고 해도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만큼 멋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무대 중앙에, 정상에 선 주오는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멋있었다. 너무나 그에게 잘 어울리는 자리였다.

멍하니 주오를 보고 있자 어느새 그가 수호를 돌아보며 우승컵을 내밀었다.

“같이 들자. 그러기로 했잖아.”

수호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우승컵을 잡았다. 하늘 높이 치켜 들자 경기장 가득 꽃가루가 흩뿌려졌다.

거대한 함성, 눈부신 빛, 그리고 옆에 있는 사람이 너무나 좋아서 수호는 미소 지었다. 그 어떤 때보다 우승이 달았다.

“제라드 선수들 우승 축하드립니다! 제라드는 5년 만에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 올리게 됐는데 감회가 새로울 것 같습니다! 모두 다시 한번 제라드 선수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세요!”

어느새 무대로 올라온 이영중 캐스터의 외침에 경기장이 뜨거운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이영중 캐스터가 선수들 옆에 서서 입을 열었다.

“스프링에서 시작이 좋았으나 서머에서 경기력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머쥐게 되어 참 기쁠 것 같은데요. 선수들의 소감을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BONG 선수!”

마이크를 건네받은 우찬은 떨리는지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 진짜, 정말로, 진심으로 너무 좋습니다. 어어, 진짜 우승이라니. 이거 꿈인 건 아니죠?”

“하하하, 꿈일 리가요. 너무 감격하신 것 같네요.”

“진짜 너무 행복해요. 응원해 주신 팬분들 정말 감사하고, 어어, 진짜 너무 감사합니다.”

우찬이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관객석에 인사를 전했다. 이영중 캐스터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우찬을 빠르게 넘기고 선우에게 마이크를 내밀었다.

“주이에서 이적하고 바로 또 우승을 하시게 된 소감이 어떠십니까? 친정팀을 상대한 건데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우찬과 달리 선우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우승은 언제나 좋을 것 같습니다. 딱히 친정팀이라고 부담감은 없었고, 오히려 더 이기고 싶었습니다. 제가 주이에 있어서 우승했던 게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아아, 그러셨군요. 그리고 서포터로 포지션 변경을 하면서 말씀하셨던 게 탑 라인에서 정상을 찍어봤으니 다른 라인에서도 정상을 찍어보겠다고 하셨죠. 이번에 서포터로 정상에 올라섰는데 또 포지션 변경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이영중 캐스터의 웃음기 서린 음성에 선우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는 제가 탑에서 제일 잘한다는 확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우승은 했지만 서포터 중에서 제가 제일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포지션 변경은 생각이 없습니다.”

“DOYOU 선수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아쉽네요. 그러면 다음 기대하겠습니다. MOO 선수!”

선수 한 명, 한 명 인터뷰를 이어가던 캐스터가 이번엔 수호의 앞에 섰다.

“SUHO 선수, 통상 5번째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 올린 선수가 되었습니다. 유일무이한 기록을 또 한 번 갱신하셨는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하, 평소처럼 간결한 답이시네요. 그러면 이번 우승을 통해서 세체 자리를 다시 확고히 하셨는데 그 기분은 어떠신가요?”

세체. 그런 건 사실 상관없었다. 그건 단순한 명칭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잘한다는 사실만큼은 좋았다. 아직까지 게임이 좋았고, 앞으로도 좋을 예정이었다. 그러니 좋아하는 분야에서 언제나 잘하고 싶었다.

“좋습니다. 저는 제가 체이스를 좋아하는 동안 계속 누구보다 잘할 생각입니다.”

“아하하하, 정말 대단한 포부입니다! 앞으로도 수호 선수의 플레이를 기대하겠습니다.”

그리고 이영중 캐스터가 주오의 앞에 섰다. 주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은 듯 캐스터의 눈이 반짝였다.

“RAIN 선수! 스프링 우승 소감에서도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하겠다고 말씀하셨죠? 그 말을 지켜 5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셨는데 그 소감이 어떻게 되십니까?!”

마이크를 받아 든 주오가 입을 열었다.

“제가 프로 생활을 하면서 한 우승 중에 올해의 우승이 가장 값지고 기쁜 것 같습니다.”

“오오, 처음으로 우승을 했을 때보다 더욱 기쁜가요?”

“물론 처음에 우승을 했을 때도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현재의 우승이 더 기쁜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제 프로 생활 마지막을 장식해 준 우승이라 더욱 좋네요.”

“……어? 마지막이요? RAIN 선수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실 생각이신가요?”

이영중 캐스터도 이런 얘기를 우승 소감으로 들을 줄 몰랐다는 듯 놀라 입을 떡하니 벌렸다. 주오는 이보다 커질 수 없을 정도로 크게 눈을 뜬 이영중 캐스터를 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다.

“네, 올해를 끝으로 은퇴합니다. 오늘 우승으로 박수받을 때 떠날 수 있는 선수가 될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응원해 주신 팬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제라드를 많이 응원해 주세요!”

환하게 웃는 주오와 다르게 관중석에서는 아쉬움에 탄식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수호는 아쉽지만, 홀가분하게 웃는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러자 시선을 느낀 주오가 눈을 맞춰왔다.

“그리고 올해 제라드에 들어와 힘내준 수호와 선우, 오랫동안 함께 노력해 준 은기와 우찬이.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올해가 제가 프로 생활을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해였습니다.”

말을 마친 주오가 환하게 웃었다.

올해가 가장 행복했다는 건 수호도 공감하는 바였다. 수호가 옅게 웃으며 작게 속삭였다. 옆에 선 주오는 들었을 것이다.

“저도 형이랑 한 팀으로 뛸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어요.”

그건 주오의 미소가 한껏 더 짙어진 걸로도 알 수 있었다.

주오와 함께 뛰었던 1년도 이제 끝이다. 더 이상 함께 시즌을 준비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게 너무 아쉬웠지만, 수호는 말없이 주오를 보며 웃었다. 이제는 서로 다른 길을 가겠지만, 그래도 주오가 멀어지는 건 아니니까. 언제나 자신의 옆에 있을 사람은 주오였다.

길고 길었던 1년의 결실은 환한 스포트라이트 속에서 끝이 났다.

* * *

[Chase의 오랜 토템, RAIN 은퇴]

20XX년에 데뷔해 피지컬 게임이라는 Chase를 전략게임이라고 불리도록 한 RAIN이 7년의 길었던 프로 생활을 끝낸다. 데뷔부터 단숨에 우승을 거둔, 통칭 로열로더의 길을 처음으로 걸었던 RAIN의 은퇴 소식에 업계가 들썩였다.

현 프로 중 최장 기간 활동했던 RAIN은 SUHO와 양대산맥으로 Chase의 상징적인 선수로 꼽혔다. 은퇴 전 마지막 경기인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거두며 RAIN의 주가가 더욱 뛴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런 그가 돌연 은퇴를 밝혀 세계 각국의 팀에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오랜 시간 Chase의 살아 있는 토템이라고 불린 RAIN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앞으로도 그가 가는 길이 순탄하기를 바랄 뿐이다.

e-sport 매거진 김승태 기자

[게임/11103000] 김레인 은퇴 실화?

[Chase의 오랜 토템, RIAN 은퇴]

이거 기사 실화냐. 진짜 은퇴함? 진심으로??

└ ㅇㅇ. 진심 월드 우승 소감으로도 은퇴라고 했음. 그리고 제라드 공식 SNS에도 레인한테 그동안 고맙다고 그런 글도 올라왔음.

└ 와... 아니 왜 갑자기? 이번에 월챔 우승까지 했다면서 왜?

└ 원래부터 레인 형 박수칠 때 떠나고 싶다고 했었음. 이번에 우승했으니까 이제 때 됐다는 거지...

└ 진짜 스프링 우승 소감 때도 러쉬 얘기 꺼내길래 살짝 은퇴각 보였는데 진짜였네...

└ 나 이대로 못 보내ㅠㅠㅠㅠㅠㅠ

└ 진짜 혀엉.... 돌아와...

└ 아 진짜 너무 좋아했던 선수인데 아쉽다.

└ 22222

└ 앞으로 무슨 일을 해도 좋은 일만 있었으면 좋겠다.

└ 레인 씨 가는 길 꽃길만 있기를.

└ 수호랑 같은 팀 해서 1, 2년은 더할 줄 알았는데... 진짜 충격.

└ 나도 그렇게 생각했엇는데 아니었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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