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몰락? 부진?
“…….”
트러블이 있었던 후로 늘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오던 주오가 단호하게 말을 꺼내는 탓에 수호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시선을 내렸다. 그런 수호를 보던 주오가 이내 옆에선 진형을 돌아봤다.
“감독님, 돌아가면 제가 먼저 수호랑 개인 면담 해도 돼요?”
“네가? 음, 뭐 그래도 상관없지. 나보다는 네가 먼저 얘기하는 게 좋을 수도 있겠다.”
“그러면 제가 수호 좀 먼저 데려갈게요.”
“그래라. 일단 짐부터 챙겨. 그리고 은기, 넌 도착하는 대로 나랑 면담 좀 하자.”
진형은 여전히 의자에 망부석처럼 앉아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은기를 돌아봤다. 은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가자. 너네는 다음 경기 때까지 죽어라 연습만 할 줄 알아. 대체 갑자기 호흡들이 왜 그렇게 안 맞는 거야?”
진형이 알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리며 코치진들을 챙겼다. 선수들은 그래도 경기가 막 끝났을 때보다는 차분해진 분위기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수호는 대화를 신청해 놓고 옆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보는 주오를 힐끔 바라봤다. 유리창을 통해 시선이 마주치자 주오는 살긋 웃어 보일 뿐 돌아보진 않았다. 미지근한 반응에 수호도 고개를 돌렸다.
경기가 열리는 아레나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연습실에 도착하자 주오는 수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호야, 연습실 안에서 얘기하는 것보다는 밖이 좋지 않아?”
그 말도 맞았다. 지금 연습실에서 하기엔 너무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남들 앞에서는 꺼내지 못할 마음들이었기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님! 저희 이 앞에서 얘기하고 들어갈게요.”
주오의 부름에 은기를 데리고 들어가던 진형이 돌아봤다.
“한 시간 안으로 들어와라.”
“네.”
주오의 짧은 대답과 함께 진형은 그대로 자신보다 큰 은기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건물 안으로 향했다. 진형에게 짓눌린 은기는 굉장히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그대로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둘이 얘기 잘 하고 와.”
옆을 지나친 선우와 우찬이 손을 살랑거리고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자, 주오가 수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왜 웃는 걸까. 웃을 상황이 아닐 텐데. 수호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주오에게 미소만 짓게 만드는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갈까?”
“……네.”
“아이스크림 먹을까?”
오후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뜨거운 햇볕은 잠잠해졌지만, 여전히 기온은 후덥지근했다. 두 사람은 건물 안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들고 앞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에 앉아서도 주오는 물론이고 수호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아이스크림만 먹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뿐이었다.
그렇게 5분. 아이스크림을 전부 해치운 주오가 입을 열었다.
“수호야, 우리 이렇게 대화 나누는 거 참 오랜만인 것 같다.”
“……네.”
담백한 음성이 더운 기온을 품은 바람과 함께 날아들었다. 수호는 자신을 심란하게 만들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좋은 주오의 음성에 고개를 숙였다.
“내가 은퇴한다는 게 그렇게 충격이었어?”
충격이었다. 경기에 집중을 하지 못할 만큼 수호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형은 더 할 줄 알았어요.”
“나는 지금도 충분히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형은 지금도 잘하니까 더 오래 할 줄 알았어요.”
“와아, 수호가 좋게 봐줘서 너무 좋다.”
늘 성적과 커리어가 따라다니는 직업이다 보니 남들이 잘한다고 인정해 주는 게 프로게이머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주오는 정말 기쁘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있잖아, 나도 마음 같아선 수호랑 더 오래 같은 팀에서 뛰고 싶어.”
“그렇게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1년만, 그 정도는 더 해도 괜찮잖아요.
수호는 입 밖으로 꺼내놓을 수 없는 어리광을 꾹 참았다.
“나 7년 동안 정말 열심히 했어. 그래서 후회도 없어.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이제 나는 내려갈 일만 남았잖아. 너한테, 그리고 팬들에게 그런 모습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아.”
CRK의 토템이라고 불릴 만큼 상징적인 선수가 RAIN이었다. 그러니 선수가 짊어지고 있는 책임감도 막중했다. 그런 선수가 최근 몇 년 동안 월드 챔피언십 준우승에서 멈춰 있었다. 사실 그 시점에서부터 RAIN이 가졌던 명성은 어느 정도 떨어진 상태였다.
야속하게도 그랬다. 1위. 우승만이 모든 영광을 가질 수 있었다.
“은퇴는 전부터 생각했던 거였어. 1년만, 한 번만 더 도전해 보자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왔던 건데 더는 안 될 것 같아.”
“……제가 억지 부리고 있는 거 알아요.”
은퇴 문제는 선수 본인이 결정하는 거였다. 그리고 수호도 같은 프로게이머로서 주오의 마음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수호는 데뷔 후부터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기에 주오의 1년만, 한 번만 더라는 간절한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사실 팀 주장으로서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나는 수호가 내 은퇴가 신경 쓰여서 경기에 집중 못 하는 게 기분 좋았어.”
예상하지 못한 주오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들어 주오를 바라봤다. 어느새 주오는 다정한 다갈색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주오는 민망하다는 듯 시선을 살짝 돌렸지만, 이윽고 그의 눈이 다시 수호를 찾았다.
“내가 수호한테 신경 쓰이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좋았어. 나랑 더 오래 경기하고 싶구나. 그 생각이 드니까 너무 기쁘더라.”
“……정말로 주장으로서 할 말은 아니네요.”
“그렇지?”
주오는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수호는 그런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형 말대로 형이랑 더 오래 현역으로 뛰고 싶어요. 형이 신경 쓰여요. 형이 너무 좋아요.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와아, 진짜 나 너무 설레.”
주오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는 눈만 빼꼼 내밀었다. 반짝이는 다갈색 눈이 애정으로 반짝이는 게 예뻤다. 수호의 마음도 자연스럽게 콩콩 뛰었다.
“그래서 서운했어요. 형은…… 그런 게 아닌 것 같아서. 은퇴하면 당연히 숙소에서도 나가게 될 거고, 연습도 같이 못 하고. 지금은 하루 종일 같이 있고 생활하는데 은퇴하고 나면 이것도 끝이잖아요.”
그게 너무 아쉽고 서운했다고 형은 그렇지 않냐고 수호의 말간 검은 눈이 말하고 있었다. 주오는 미안하다는 듯 살짝 웃고는 얼굴을 덮은 손을 떼어냈다.
“나도 아쉬워. 그래도 우리 관계가 끝나는 건 아니잖아. 혹시…… 내가 은퇴하면 우리 헤어지는 거야……?”
주오의 눈이 불안하게 떨렸다. 그건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끔찍한 일이라고 외치는 눈을 보며 수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만약 주오가 그러고 싶다고 해도 수호는 싫었다.
“절대 안 돼요. 설마 그런 마음으로 은퇴하려는 건 아니죠?”
“설마! 그런 미친 짓은 안 해!”
단단히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 없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젓는 주오였다. 그건 같은 마음이라는 게 다행스럽게 느껴져서 수호는 살며시 웃었다.
“아니면 나 숙소 옆집에서 자취할까?”
“혼자 살기엔 너무 넓지 않아요?”
최소 성인 남자 5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었다. 혼자 살기에는 지독하게 넓었다. 수호는 이상한 억지를 부리는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주오는 한결 안정을 되찾은 수호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수호, 너랑 가까이 있으려면 난 상관없어. 그리고 굿즈가 많아서 집은 넓은 게 좋을 거야. 현수막이나 실물 사이즈 인형이라든가 본가에서는 못 꺼내고 보관 중인 게 많거든. 집이 넓으면 걸어둘 수 있잖아.”
“누가 집에 그런 걸 걸어놔요.”
“현수막? 그런데 사진 진짜 잘 나왔어. 나중에 놀러 오면 보여줄게.”
“제 사진을 제가 봐서 뭐 해요.”
주오가 엉뚱한 얘기로 빠지자 수호의 시선이 불퉁해졌다. 그런 시선에도 주오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보여줄게.”
“……그래요.”
허탈한 수호의 대답을 끝으로 침묵이 찾아왔다. 이런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오랜만에 느끼는 소소한 대화였다. 요즘에 이런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저 혼자 토라져선 말을 걸어오는 주오를 무시했을 뿐이었다.
수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과 똑같을 수는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 관계가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라는 확답을 들었다. 주오의 은퇴가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문제 하나로 주오와 말없이 지내며 멀어지고 싶진 않았다.
대략 반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주오에게 더 이상 억지를 부려서 부담을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마음을 한결 가다듬은 수호가 고개를 들어 주오와 눈을 맞췄다.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해요.”
“그래. 누구보다 열심히 하자. 마지막인데 우승컵은 들어봐야지.”
역시. 우승에 대한 욕심은 주오도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제가 우승컵 안겨 드릴게요.”
“상상만으로도 너무 좋은데?”
환하게 웃는 주오를 보며 수호는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꼭 그가 영원히 잘하는 선수로 남을 수 있도록 만들겠다고. 그가 지금처럼 웃으며 선수 생활을 끝낼 수 있도록. 수호는 주오의 말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이건 주장으로서 하는 말인데…… 상처받으면 안 돼?”
“뭔데요?”
“나 싫어해도 안 돼.”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주오의 표정이 심각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저렇게 불안해하는 건지. 수호는 괜찮다며 말해보라고 주오를 다독였다. 한동안 망설이던 주오는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나 때문이지만 그렇게 게임에 집중 못 하는 건 수호가 잘못했어. 특히나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면 더더욱 그렇고. 체이스에서 가장 중요한 라인이 미드야. 중심인 네가 사적인 고민으로 그렇게 집중 못 하고 오더도 제대로 안 따르면 당연히 결과는 오늘처럼 될 수밖에 없어.”
“……그렇죠.”
수호는 변명의 여지 없는 주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다정한 말만 하던 주오가 이렇게 훈계를 하자 수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수호야, 정신 차리자. 실수는 누구나 하는 거라지만, 오더까지 무시하는 건 무조건 고쳐야 해.”
“네……. 죄송해요.”
“오늘 남은 경기로 우리 플레이오프 위치가 정해지는 건 알지?”
이미 시즌은 막바지였다. 이제는 서머 시즌 결승에 도전할 수 있는 다섯 팀을 가리는 것만 남은 상태였다. 그리고 제라드의 경기는 오늘로 마지막이었다.
지금 순위 4위. 만약 지금 5위에 머물러 있는 팀이 승리하면 제라드는 자동으로 5위 확정이었다.
다섯 팀 중에서 가장 밑바닥부터 올라가야 하는 순위였다.
다시금 침울해졌다. 5위면 결승까지 총 4번의 경기에서 승리해야 서머 시즌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순위 싸움에 목을 매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었다.
결승 직행이면 단 한 번의 승리가 필요할 뿐이었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에 터진 실수로 인해 결국 우승에 도전하는 길이 멀고 험해졌다.
그렇게 힘들 길을 가도록 만든 자신이 더욱 열심히 해야 했다. 어깨가 무거워지는 느낌이었다.
“……알아요.”
“승패에 따라 우리가 3위가 될지, 5위가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그래도 어떤 결과든 우승하자.”
“네.”
고개를 끄덕이는 수호를 만족스러운 눈을 보던 주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덩달아 수호의 시선도 주오를 따라 위로 향했다.
“이만 갈까? 감독님이랑 면담해야지.”
“아, 네.”
“감독님이 너무 뭐라고 하면 나한테 많이 혼났다고 그래.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말씀드리고.”
지독하게 화가 나 있던 진형이 혹시나 수호를 쥐 잡듯 잡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인지 주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수호는 별걸 다 걱정한다며 주오를 보며 웃었다.
진형이 겉보기에는 과격해 보여도 막상 둘이 얘기를 나누면 화를 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주오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수호는 걱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짧은 거리였지만 연습실이 있는 건물로 향하는 두 사람은 어느새 손을 맞잡고 있었다.
수호의 예상대로 진형은 그저 차분히 수호의 말을 들어줄 뿐이었고, 개인 면담은 큰 소란 없이 끝이 났다. 수호보다 먼저 들어간 은기도 한결 누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주이와 제라드 다음으로 경기를 치르던 킹콩과 추안생명의 경기 결과를 보고 진형이 다시 분노했다.
5위였던 추안생명의 승리로 결국 제라드는 서머 시즌 플레이오프 5위가 확정됐다.
“도장깨기다. 경기 수가 다른 팀들에 비해 많은 만큼 우리 전술도 그만큼 드러날 수밖에 없다. 결국 실수를 줄이는 게 우리가 우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는 거다. 알겠지?”
“네!”
“그러면 플레이오프도 열심히 해보자! 아자!”
선수들과 코치진을 불러 모은 진형이 파이팅 있게 소리를 외쳤다.
열기를 태우는 선수들 틈에서 수호는 작게 심호흡을 했다. 우승. 꼭 주오에게 우승컵을 줄 수 있기를.
수호는 선수들 틈에서 같이 파이팅 구호를 외치는 주오를 보며 주먹을 쥐었다.
* * *
[게임/8332164] 플레이오프 확정
1~5위까지 순위 싸움 치열해서 누가 어떻게 올라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설마 제라드가 5위로 올라갈 줄을 몰랐다...
최근까지 경기력 미쳤던데 갑자기 왜 이러는 거냐. 오늘도 개불안하던데.
└ 나도 그거 보고 제라드가 서머도 우승할 것 같았는데 오늘 경기보고 접음ㅋㅋㅋㅋ 우승 그냥 체스 아니면 주이임.
└ 22222 개공감.
└ 요즘 수호랑 무가 진짜 개판이던데;; 원래 이수호 경기력 이렇게 널뛰기였나??? 존나 잘하더니 지금은 존나 못함.
└ 원래 안 그러는데 좀 이상하긴 하다.
└ 팀이 안 맞는 거 아님?
└ 주이에 있을 때는 계속 잘했는데 뭐지...
└ 김레인이랑 싸운 거 아님?? 정글이랑 호흡 너무 안 맞던데.
└ 이거 일리 있다.
└ 그냥 오늘 제라드 주이한테 쌉발렸음. 이거 반박 불가임;;
└ ㅇㅈ... 레인이랑 봉이 고군분투하는데 진짜 마음 아프더라...
└ 포스트시즌 다가오면서 팀 분위기 아작난 건가???
└ 이번에 제라드 수호랑 두유 영입하면서 진짜 독보적일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닌 거 같음...오히려 더 안 좋은 거 같은데...
└ 아니;; 게임을 하다 보면 어떤 시기에는 좀 부진할 수도 있는 거지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하냐. 탈룰라임?
└ 쟤 의견이 그렇다는 건데 넌 또 왜 말을 그렇게 하냐;;
└ 예에~~ 이번 우승 주이 각인가요???
└ 가능성 있다. 지금은 OZ가 수호 바를 듯.
└ ???????? 아닌데. 수호가 제일 잘함.
└ ㅅㅂ 수호빠 또 나왔넼ㅋㅋㅋㅋ 얘네는 이수호 퇴물 된 거 인정을 못 하나 봐
└ 네가 뭔데 퇴물이래. ㅅㅂ 일 년만 반짝하고 퇴물 될 OZ 빠는 새끼들이;;
[게임/9831263] 제라드 도장깨기 가나요오오~~
[JPG]
플레이오프 대진표임. 전나 제라드 5위인 거 실화?? 경기 안 보고 결과만 봤는데 진짜 눈이 잘못된 줄 알았다.
일단 다음 주 수욜부터 제라드vs추안생명. 아무리 그래도 추안생명은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제라드 도장깨기 해서 우승하고 월챔 진출하자!! 준우승만 해도 스프링 우승이어서 월챔 진출 포인트 제일 높으니까 결승만 가면 된다ㅠㅠㅠ
└ 예에!! 가보자!!!
└ 지금까지 도장깨기 성공한 팀 있긴 해??
└ ㄴㄴ 없었음. 보통 5위 팀은 첫 경기에서 바로 떨어지더라...
└ 플옵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그때까지 준비 잘하자...
└ 받은 만큼 일은 해야지!!
└ 앀ㅋㅋㅋㅋㅋㅋ근데 진짜 성공하면 ㄹㅈㄷ 아니냐;;
└ 성공하는 순간 평생 제라드 팬 한다...
└ 이 댓글은 성지가 됩니다....
└ 요즘 제라드 경기력으로 보면... 솔직히 첫 경기에서 탈락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음...
└ 마! 초지지 마라!
└ 응 불가능~ 어차피 뭐다? 우승 주이~~
└ 주이 아니면 체스가 우승 각이다. 제라드는 빠져라.
└ 뭐래;;
└ 중요한 딜러진인 지금 정신 못 차리는 거지 다른 라인들은 그래도 멀쩡함. 미드 원딜만 정신 차리면 다시 원래 폼으로 돌아올 듯.
└ ㅇㅇ 근데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흔들리니까 살짝 불안하긴 함.
└ 무는 원래 플옵전에 좀 흔들렸었음. 이번이 좀 과하게 실수가 많은 편이긴 한데 그래도 플옵만 들어가면 정신 차리니까 원딜은 괜찮을 듯
└ 그럼 문제는 미드인가
└ 잠깐 부진인 건지, 진짜 퇴물 된 건지 나오겠네.
└ 진짜 좆같이 말하는 새끼들 보는 앞에서 도장깨기 성공하고 우승컵 들었으면 좋겠다.
└ ㄹㅇ 남들 잘나가는 꼴은 죽어도 못 보는 새끼들인가;;
└ 그러니까 키보드질이나 하면서 남 욕이나 하는 거니까 그냥 무시해. 무시가 답이야.
* * *
그 후로 수호는 누구보다 연습에 몰두했다. 원체 연습량이 많았던 수호였지만, 지금 그가 하루에 게임에 할애하는 시간은 어떤 프로도 따라오기 힘들었다.
수호뿐만 아니라 제라드 전체가 강행군이었다. 특히나 마지막까지 흔들렸던 수호와 은기는 주변에서 쉬라면서 말릴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제라드의 엉망이었던 호흡은 다시 정상궤도로 돌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부담감을 전부 내려놓지 못한 탓인지 실수를 완벽하게 고치지는 못했다. 그건 플레이오프 일정이 코앞으로 다가올수록 두드러졌다.
플레이오프 시작까지 3일. 수호는 생각처럼 잘 풀리지 않는 손을 주무르며 승리로 끝난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기긴 했지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실수가 있었다.
게임 승패에 큰 영향을 주는 실수는 아니었지만, 실전에서는 자잘한 실수 하나가 크게 굴러가는 경우가 많았다. 만족스럽지 못한 수호의 뚱한 시선이 화면에서 떨어지질 않았다.
“초조해하지 마. 방금 되게 좋았어.”
수호는 갑자기 불을 쿡 눌리는 생경한 감각에 고개를 돌렸다. 뚫어져라 화면을 보고 있던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자 주오는 방긋 웃어 보였다.
수호는 보조개처럼 볼이 폭 패인 채로 멀뚱히 주오를 바라봤다.
“이건 뭐예요?”
여전히 볼을 쿡 찌른 채 멈춰 있는 주오의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그러자 주오는 손가락을 살며시 흔들었다.
“귀여워서. 싫었어?”
방실거리던 얼굴이 어느새 다시 시무룩해졌다. 온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혼날까 봐 구석에서 눈치를 살피는 강아지 같은 눈이었다. 수호는 손안에 얌전히 잡혀 있는 손가락을 문지르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간략한 답변에 주오는 방긋 웃었다.
“그런데 미드에서 갱킹 피할 때 다른 루트였으면 나랑 합류해서 상황이 더 좋았을 것 같아. 아까 이 길로 뺐지? 수호는 벽도 넘을 수 있었으니까 이쪽으로 오는 게 나랑 합류하기 더 빨랐을 거야.”
주오의 긴 손가락이 화면 속 미니맵을 짚으며 말을 이었다.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플레이면서도 마음에 걸리던 부분이었다.
주오는 붙잡힌 손가락을 구부리며 수호의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너무 신경 쓰지 마. 다음에는 내가 제대로 콜할게.”
“네.”
“그래도 집중력 많이 올라온 것 같아서 좋다.”
실수를 남발했을 때보다는 괜찮아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수호는 묘하게 굳은 손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수호의 행동을 물끄러미 보던 주오가 입을 열었다.
“수호야, 긴장돼?”
“네?”
수호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눈을 깜박였다. 프로게이머 SUHO와는 전혀 관계없는 단어가 긴장이었다. 데뷔전 때 이후로 경기를 할 때 들어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기에 주오를 보는 수호의 시선이 멍해졌다.
“……그렇게 보여요?”
“손 굳은 거 푸려고 하는 것 같아서. 수호가 이러는 거 처음 봐.”
만인이 아는 이수호의 찐팬, 김주오가 수호의 성향을 모를 리가 없었다. 지금까지 수호는 크든 작든 어떤 경기에서도 늘 평온했다. 그게 수호의 강점이었다. 그런 수호가 긴장으로 손이 굳어 있는 것을 주오는 묘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수호는 주오의 말에 오히려 본인이 더욱 놀랐는지 눈을 깜빡였다.
생각해 보니 선우 형도, 제라드의 선수들도, 그 전에 주이에서 같이 뛰었던 선수들도 종종 이런 식으로 손을 푸는 걸 본 적이 있었다. 그게 긴장해서 그런 거였구나.
“아, 저도 처음이에요.”
주오의 시선이 묘해졌다. 이윽고 다시 미소를 띤 주오가 입을 열었다.
“적당한 긴장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 조금만 더 맞춰보자.”
“좋아요.”
고개를 끄덕이자 주오가 좋다는 듯이 잡힌 손가락을 다시 흔들어 보였다.
“맞춰보자는 게 손잡고 놀자는 거면 때려치워라.”
방금 전 경기에 대해 분석하고 있던 루퍼가 꽃가루를 휘날리며 염병천병을 떨고 있는 주오와 수호를 불만스럽게 바라봤다. 주오가 방실 웃었다.
“사이가 돈독해야 플레이에서도 드러나는 법이에요.”
“그래, 잘났다. 잘났어. 아무튼, 방금 시험해 본 캐릭터는 조커 픽으로 쓸 만할 것 같네.”
정규 시즌과는 다르게 플레이오프는 토너먼트전이라 한 번 패배하면 거기서 끝이었다. 승률을 높이기 위해 기존에 사용하던 캐릭터의 숙련도를 높이는 법도 있지만, 상대의 예상을 벗어나는 캐릭터나 전략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 물론 도박에 가까운 수이기도 했다.
루퍼는 그런 부분에서 유명한 코치였다. 주오와 현역으로 뛰었을 때도 기발한 캐릭터로 상대 팀을 혼란스럽게 하곤 했다.
“코치님이 예전에 자주 쓰던 바르다를 쓰는 것도 괜찮지 않아요?”
현재 메타는 탱커를 앞세워 밀고 들어가 강한 딜로 상대 딜러진들을 빠르게 잡아내는 게 중요했다. 그러려면 탱커가 앞에서 든든하게 방패 역을 해주는 게 포인트였다.
루퍼가 자주 사용하던 바르다도 단단하기로는 악명을 떨칠 만큼 철갑방패를 자랑하는 캐릭터였다.
“음…… 그렇긴 한데 기동성이 부족해서 조금 애매할 것 같은데.”
“어차피 한타에선 기동성 필요 없잖아요. 중앙에서 밀고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각 라인전에서는 불편할 수 있겠지만, 요즘은 5대5 꽝 붙는 싸움에서 승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리고 그런 싸움은 보통 장애물이 적은 넓은 공간에서 벌어졌기에 벽을 넘어다니는 캐릭터보다는 차라리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캐릭터가 더 좋을 수 있었다.
고민하듯 펜을 입에 물고 곰곰이 생각하던 루퍼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파트너로 계약 맺어서 아군 방어력도 올려줄 수 있으니까 괜찮겠다. 캐릭터 조합은 다시 생각해 볼 테니까 일단 지금 맞춘 조합으로 더 연습하자.”
루퍼는 다시 시작되는 연습을 뒤로하고 바르다랑 함께 조합할 챔피언들을 찾아내느라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주오와 루퍼의 대화를 듣던 수호는 물끄러미 주오를 바라봤다.
“바드라 되게 오랜만이네요.”
체이스 초창기에 나온 캐릭터인지라 바르다는 이미 백여 가지가 훨씬 넘어가 좋은 캐릭터가 많은 요즘 고인으로 통했다. 그런 캐릭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검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을 보는 수호로 인해 주오가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렸다.
“내가 처음 프로 했을 때만 해도 많이 나오던 캐릭터였어.”
캐릭터가 오십여 가지도 되지 않았던 초창기를 생각하면 바르다는 그중에서도 메이저 픽이 될 만한 캐릭터이긴 했다.
“형은 챔피언 이해도가 높으니까 은퇴하고 코치로 전향해도 좋을 것 같아요.”
무의식적으로 내뱉어진 말이었다. 말을 하고 나서 수호는 프로 생활에 지친다고 말했던 주오가 떠올라 슬쩍 눈치를 살폈다. 프로 그만두면 코치라도 해서 옆에 있어달라고 들리면 어쩌나 싶었다.
혹시나 오해를 사면 어쩌나 눈치를 살피는 수호를 보며 주오는 평소와 같이 방긋 웃어 보였다.
“코치하기엔 내 능력이 부족할 것 같은데.”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수호는 걱정하던 것을 뒤로 제쳐두고 주오를 직시했다. 주오는 누구보다 능력 있었다. 순간 울컥한 수호가 불만스럽게 눈을 빛냈다.
“선수들 다독이는 것도 잘하고, 전술도 잘 짜고, 캐릭터에 대한 이해도 좋아요. 형은 정말 멋있는 선수예요.”
“앗, 수호가 그렇게 말해주면 너무…… 설레.”
어느새 귓가가 붉게 물든 주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눈만 빼꼼 내미는 주오는 정말 숨 막히게 귀여웠다. 수호는 요즘 주오의 이런 모습을 보는 재미로 살았다. 수호가 주오를 뚫어져라 보며 웃었다.
“하지만 정말 멋있는걸요. 형이 제일 멋있어요.”
“수호야, 그만해…….”
“그래. 제발 그만해라. 미친 자들아!”
묵묵히 게임에 집중하던 우찬은 못 참겠는지 헤드셋을 벗어 던지며 소리 질렀다. 그건 선우와 은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들의 표정도 볼만했다.
“아, 미안.”
아직 인게임 전이라 딴짓을 하고 있던 수호는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화면에 집중했다. 때맞춰 캐릭터들이 전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게임 시작을 알렸다.
애정 표현을 하던 주오와 수호도 어느새 누구보다 집중한 얼굴로 연습에 몰두했다. 플레이오프는 이제 바로 코앞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