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애가 시작된다고 연습이 끝나는 건 아니었다. 주오와 수호가 휴게실에서 대화를 나누는 짧은 시간을 못 참고 감독인 진형이 들이닥쳤다.
연습 중간에 놀고 있는 거냐며 한 소리를 퍼붓는 진형 때문에 둘은 연애의 생경함을 느끼지도 못한 채 다시 연습실로 끌려 들어갔다.
그렇게 4시간이 흐른 뒤에야 두 사람은 연습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이 해결된 탓인지 지지부진하며 실수가 많았던 수호의 플레이가 다시 원래의 템포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스프링이 끝나고 있었던 연습 경기 모두 졌던 제라드는 드디어 처음으로 승리를 맛보았다.
“진짜 오랜만에 이겼네. 이수호 갑자기 정신 차렸더라? 감독님이랑 레인 씨한테 혼난 덕분인가?”
“감독님한테 혼난 거야?”
연습실이 있는 건물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사이좋게 아이스크림을 산 선수들 입에 하나씩 아이스크림이 물려 있었다.
주오는 소다맛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고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이가 시려 메론맛 아이스크림을 할짝대던 수호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혼난 건 아니에요.”
“감독님이 너무 뭐라고 하면 말해줘. 내가 감독님한테 잘 말씀드릴게.”
“그런 거 아니래도요.”
거리를 두던 두 사람이 다시금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습을 본 우찬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둘이 화해했어?”
“애초에 싸운 적 없어.”
궁금증이 많은 우찬에게 주오가 단호히 말하고는 다시 반짝이는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애정이 한가득, 정말 한가득 담긴 시선에 수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자 덩달아 주오의 입가에도 미소가 걸렸다.
“수호는 웃는 게 정말 예뻐.”
본인은 알까. 그렇게 말하는 주오가 더 멋있다는 걸. 수호는 본인 스스로를 잘 모르는 주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형이 더 예뻐요.”
“아냐, 수호가 더 예뻐.”
“아니에요. 객관적으로 봐요.”
“말 한마디 해줬다고 사람이 저렇게 변하네.”
쓸데없는 걸로 언쟁하는 주오와 수호를 보며 선우가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수호가 단순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나 단순할지는 몰랐던 선우였다.
은기가 선우 곁으로 다가왔다.
“대체 무슨 말을 했길래 수호가 저래요?”
“어? 별말 안 했는데.”
“괜히 형이 수호 엄마라고 소문난 게 아니었나 봐요. 이수호 잘 다루네요.”
신기하다는 은기의 음성에 선우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쟤 진짜 단순해. 평소에 애가 뚱하게 생겨서 다들 말을 못 하는 거지 말만 하면 다 받아들여. 너도 말할 거 있으면 말해봐. 수긍하는 거면 바로 알겠다고 고개 끄덕일걸?”
“이수호가요? 신기하네요.”
“뭔데, 뭘 말해야 하는데? 나도 알려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세 사람과 다르게 주오와 수호의 속도는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새 세 사람 뒤로 빠지게 되자 주오가 수호를 보며 눈을 빛냈다.
“수호야, 수호야.”
“왜요?”
“손잡아도 돼?”
귓가에 작게 속삭이는 물음에 수호는 손을 뻗어 주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주오의 커다란 손이 수호의 손을 마주 잡아왔다.
“정말 좋다.”
주오는 정말 좋아 보였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는 주오 때문에 수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주오가 웃으면 정말 너무 좋았다. 좋아서 머리가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수호는 그저 마주 잡은 주오의 손을 꼭 쥘 뿐이었다. 오늘따라 저녁 하늘이 참 예쁘게 보였다.
* * *
숙소로 돌아온 두 사람은 그대로 방으로 처박혔다. 방으로 들어서고 문이 닫히자마자 주오가 덥석 몸을 끌어당겼다. 얼떨결에 끌어안겨진 수호는 이내 그의 어깨에 턱을 올리고 허리를 마주 안았다.
한껏 밀착된 탓인지 코코넛 향 보디워시 향이 느껴졌다. 늘 신기했다. 이제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침에 샤워를 하고 저녁이 됐는데도 아직까지 주오에게선 보디워시의 은은한 향이 흘러나왔다.
수호는 주오의 어깨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중얼거렸다.
“형한테는 언제나 좋은 향이 나요. 형은 땀도 안 흘려요?”
“그래? 나 더위를 안 타서 이 정도 날씨는 괜찮아. 그리고 수호도 좋은 향 나. 보들보들한 냄새. 너무 좋다.”
어깨와 목덜미에 닿은 주오의 머리가 수호와 마찬가지로 향을 맡기 위해 비비적거리기 시작했다. 목덜미를 스치는 주오의 머리칼이 간지러웠다. 수호가 움찔거리며 고개를 주오를 향해 돌렸다.
“간지러워요.”
숨결마저 느껴지는 근접한 거리에서 주오와 눈이 마주쳤다. 수호의 어깨에 이마를 대고 있던 주오가 웃어 보였다.
순간적으로 그에게서 풍기는 코코넛 향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만큼 그의 미소는 달콤했고,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수호는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포근한 감정에 그대로 주오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짧게 닿았다 떨어진 입술 사이로 주오가 작게 속삭였다.
“한 번만 더.”
수호는 다시 입을 맞췄다. 앙증맞은 소리와 함께 닿았다 떨어진 입맞춤에 주오의 입가에 호선이 그려졌다.
“형 어떡해요.”
“응? 왜? 무슨 문제 있어?”
곤혹스러운 표정을 하는 수호를 보며 주오가 걱정 어린 시선을 빛냈다.
수호는 갈증을 느꼈다. 분명 기분이 좋으면서도 어딘가 부족한 느낌을 받았다. 주오가 너무 좋았다. 한번 인정한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달려 나갔다.
“부족한 것 같아요. 형이 좋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곤란하다는 듯 이어지는 수호의 말에 주오의 눈이 커졌다. 이윽고 주오가 눈가를 곱게 접어 웃고는 수호의 양 뺨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뺨에서 느껴지는 주오의 온기에 수호는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느꼈다. 그는 체온조차 사랑스러웠다.
“나도 부족해. 수호야, 다른 것도 해도 돼?”
눌러왔던 애정이 터져 버린 수호의 눈동자가 반짝 빛이 났다. 눈치 없는 수호였지만 그래도 상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이수호는 주오가 말하는 걸 눈치채고는 입술을 달싹였다.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것. 그것을 눈앞에 있는, 같이 있기만 해도 떨림이 멈추지 않는 사람과 한다는 게 기대되면서도 무서웠다.
한참을 망설이던 수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야, 정말로 좋아해.”
작게 속삭인 주오가 다시금 입을 맞춰왔다. 그것은 늘 했었던 입술만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풋풋한 입맞춤이 아니었다.
주오는 수호의 입술을 이로 물고 빨았다. 수호는 축축하고, 낯선 느낌에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허락을 구하듯 다정하게 입술을 핥는 감촉이 애처로워 수호는 천천히 입술을 벌렸다.
허락이 떨어지자 주오의 혀가 밀려 들어왔다. 수호는 갑자기 입안을 파고드는 혀에 놀라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처음으로 경험해 보는 낯선 상황에 수호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수호는 아찔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주오를 받아들이려 애썼다. 하지만 입안을 파고든 침입자는 그런 수호의 노력을 허상으로 만들 작정인지 수호의 입안 곳곳을 건드렸다.
주오의 혀가 입천장이며 치열, 혀에 닿을 때마다 수호의 몸이 움찔거렸다. 수호는 점점 막혀오는 숨 때문에 다급히 고개를 저어 입술을 떼어냈다.
“아, 잠…… 형, 숨 못 쉬겠어요.”
“코로 쉬면 돼. 천천히 해봐.”
수호는 아득한 정신으로 주오가 시키는 대로 코로 숨을 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래도 주오의 움직임을 따라가기는 무리였다. 어느새 주오에게 뒷머리를 붙잡혀 벗어날 수도 없는 수호는 그저 주오의 팔을 꼭 잡고 할딱였다.
“하아, 형.”
따뜻하고 미끄덩한 혀의 느낌이 낯설었다. 하지만 놀라지 말라며 천천히, 부드럽게 입안을 훑는 주오 때문에 점점 안정을 찾아갔다. 그러면서 놀라서 느끼지 못했던 감각들이 수호를 덮쳐왔다.
빠르게 뛰는 심장과 손가락부터 타고 올라오는 간지럽고 찌릿한 느낌. 몸이 나른해지는 기분 좋은 짜릿함이었다. 그래서 주오의 입술이 떨어졌을 때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멍한 눈으로 주오를 바라봤다. 주오는 그런 수호를 보며 미안하다는 듯, 하지만 기쁘다는 듯 묘한 표정을 하며 웃어 보였다.
“…….”
“……기분 나빴어?”
주오의 물음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숨 막히면서 정신이 아득해지는 상황이 수호는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주오는 짧게 나온 수호의 대답에 환하게 미소 지었다. 첫 키스 때문에 멍해진 수호에게 주오의 미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과 같았다. 수호는 본인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해요.”
“어?”
“키스, 한 번만 더 하자고요.”
“……수호야, 나 조금 힘들어질 것 같아.”
수호의 요구에 주오는 곤란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수호와 마찬가지로 주오도 지금 혼란스러웠다. 혼란보다는 곤란했다. 더 이상은 참기 힘들 것 같았다.
하지만 수호의 머릿속은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해보고 싶다.
처음 느껴본 그 미묘한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수호를 지배했다. 그래서 수호는 눈앞에서 망설이는 주오에게 손을 뻗었다.
먼저 다가오는 수호에 놀란 주오의 눈이 커졌지만, 주오가 뭐라 입을 열기도 전에 수호의 입술이 주오에게 닿았다.
수호는 주오가 자신에게 한 것을 생각하며 주오의 입술을 혀로 가르고 들어갔다. 차근차근 걸음마를 떼듯 수호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주오의 몸이 움찔거렸다.
수호의 서툰 움직임이 한동안 이어졌다.
분명 지금도 좋지만 조금 부족했다. 아까와 같은 숨이 턱하고 막히는 짜릿한 감각을 느끼고 싶은 수호는 입술을 떼고 주오를 바라봤다. 꼭 그 눈이 ‘형, 어떻게 해요’라고 묻는 것 같았다.
수호는 괜히 초조해졌다. 그래서 주오의 뺨을 감싸 쥐고 입술을 짧게 맞췄다. 하지만 그래도 주오는 반응이 없었다. 포기하지 못한 수호가 다시 입을 짧게 맞추는 순간, 갑자기 입안으로 주오의 혀가 들이닥쳤다.
머리가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수호는 몽롱한 정신으로 입안에 가득 찬 주오의 혀를 따라 움직였다. 서로의 혀가 스칠 때마다 수호의 몸이 움찔거렸다.
“아……. 형.”
“수호 너무해.”
주오는 원망스럽다는 듯 수호의 혀를 살짝 이로 씹었다. 하지만 고통보다는 묘한 쾌감이 올라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주오의 팔을 더욱 꽉 잡았다.
입술이 떨어지고 수호는 붉어진 얼굴로 주오를 바라봤다. 타액으로 젖은 혀가 조명에 비쳐 반짝거렸다. 그걸 보던 주오의 표정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수호 진짜 너무해.”
“형, 또 해요.”
“수호야, 이제 그만하자.”
더 이상은 곤란하다는 듯 주오가 자신의 팔을 잡은 수호의 손을 떼어냈다. 수호는 그런 주오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요? 제가 너무 못해서 싫어요?”
갑자기 풀이 죽은 수호를 주오가 참을 수 없다는 듯 끌어안았다. 수호는 주오의 허리를 조심스럽게 감싸 안았다.
“너무 좋아. 정말 너무 좋아서 문제일 정도야.”
“저도 좋아요.”
어깨에 머리를 비비적거리는 주오의 음성에는 옅은 열기가 묻어 있었다. 수호는 주오를 꽉 끌어안았다.
“천천히, 천천히 하자. 더 이상은 감당 못 할 것 같아.”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내리누르는 듯 억눌린 주오의 음성이 작게 울렸다. 무엇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오가 너무 힘들어 보여 수호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가 힘들 건 싫었다.
“알겠어요. 그러면 내일 또 해요. 저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갑자기 승부욕을 불태우는 수호였다. 주오는 엉뚱한 데서 승부욕을 내뿜는 수호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귓가에 울리는 낮은 울림이 수호의 마음을 꽉 채워 나갔다. 수호는 전혀 부족하지 않는 풍족함을 느끼며 주오를 따라 웃었다.
연애라는 건 좋은 거였다. 그동안 고민한 게 무색할 정도로 너무나 행복한 일이었다.
* * *
최근 김주오는 세상을 가진 자의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하루가 천국에서 삶을 보내는 것 같았다.
각자 침대가 있지만 주오는 요즘 수호의 침대에서 함께 자고 있었다. 눈을 뜨면 잠에 빠진 말간 수호의 얼굴이 바로 보였고, 가끔은 수호가 품에 파고들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주오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멀리서 좋아만 하고, 말 한마디 나누고 싶어서 주이의 대기실 앞을 서성이던 그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상황이었다. 이제는 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같이 눈을 뜬다. 더군다나 매일 입을 맞춘다.
주오는 여전히 이불을 코끝까지 덮고 잠에 빠져 있는 수호를 끌어안았다. 뜨끈한 온기가 품에 가득 차는 느낌은 언제 느껴도 행복했다.
갑자기 끌어당겨진 수호는 눈가를 찡그리고는 이내 다시 주오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귀여워.”
주오는 수호의 이마에 입술을 쪽쪽 맞추고는 해맑게 웃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지금이라고 자신할 수 있을 만큼 행복한 나날이었다.
“수호야, 고마워. 나 좋아해 줘서.”
주오는 품을 파고든 수호의 머리꼭지에 고개를 묻고 작게 속삭였다. 잠에 한번 빠지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수호는 그저 고른 숨을 내쉴 뿐이었다.
주오는 그런 수호의 작은 숨소리마저 사랑스러워 환하게 미소 지었다.
* * *
6월 10일. 체이스 서머 시즌이 시작되었다. 초여름의 기운으로 개막식은 더욱 화끈했고, 화려했다. 개막식 경기도 주이가 킹콩에게 2:1로 승리를 거두면서 쟁쟁한 경기가 펼쳐졌다.
“호우, 다들 연습 좀 많이 했나 보네.”
연습실에 있는 거대한 TV로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며 우찬이 감탄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찬의 말대로 모든 팀이 연습에 매진했는지 스프링 때보다 격렬하고 공격적인 플레이가 많았다.
우찬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보고 있던 수호는 갑자기 앞으로 내밀어진 바나나에 고개를 돌렸다.
“배고플 것 같아서.”
“아, 고마워요.”
수호는 하얀 속살을 자랑하는 바나나를 주오에게서 건네받고 입에 넣었다. 특유의 달콤한 향과 맛을 느끼며 화면을 보고 있자 진형이 입을 열었다.
“우리도 점점 호흡이 다시 맞아가고 있으니까 실수만 하지 말고, 이번 시즌도 파이팅해 보자!”
“네!”
진형의 파이팅 넘치는 음성에 우찬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다 먹은 바나나 껍질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자 주오가 고개를 비쭉 내밀어왔다.
“맛있어?”
자신을 보는 주오의 다갈색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수호의 입가에는 어느새 미소가 걸려 있었다. 자연스럽게 앞머리를 가린 주오의 머리칼을 살짝 넘겨주며 입을 열었다.
“맛있어요. 형도 줄까요?”
“아니, 나는 괜찮아. 수호는 먹을 때 진짜 귀여운 거 알아?”
“저는 모르죠.”
팔불출 같은 소리를 하는 주오를 보며 수호가 고개를 젓고 있자 엄한 곳에서 분노의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 자식들은 요즘 왜 이러는 거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대화도 안 하던 것들이.”
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진형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멀찍이 앉아 있던 선우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원래 저랬는데 잠깐만 냉전이었던 거죠. 그냥 두세요. 요즘 둘이 사이좋아져서 연습 성적도 잘 나오잖아요.”
“그건 그렇지. 근데 요즘은 또 너무 붙어 있으니까 문제인 것 같단 말이야.”
“감독님 질투해요?”
진형의 미간에서 불만 어린 기색이 사라지지 않자 선우가 짓궂은 음성으로 진형을 놀렸다. 이윽고 선우가 고개를 돌려 멀뚱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은기를 타박했다.
“은기야, 감독님한테 애교도 부리고 좀 해봐. 요즘 외로우신가 봐.”
선우의 말에 은기의 표정이 단박에 일그러졌다.
“형, 제발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스트레스받으니까.”
이번에는 진형의 표정이 울적해졌다.
“은기 사랑이 식은 거 아니니? 우리 막내 너무 차가워졌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어느새 수호와 주오에게 향했던 진형의 관심이 은기에게 향했다. 은기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진형을 밀었지만, 우람한 진형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형에게 어깨가 끌어당겨진 은기는 강제로 그의 하소연을 들어줘야만 했다.
자신보다 키가 작은 진형에게 붙들려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인 채 하소연을 듣는 은기를 뒤로하고 주오는 수호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수호야, 숙소 가는 길에 떡볶이 먹을까?”
“형이랑 있으면 살찔 거 같아요.”
“응? 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주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 형은 정말로 그 이유를 모르는 걸까. 수호는 순수한 의문을 품은 주오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자꾸 뭐 먹자고 하잖아요.”
“그래서 싫어?”
“그건 아니에요.”
“그러면 먹으러 가자. 난 수호가 먹는 모습이 좋아.”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주오가 너무나 반짝여서 수호가 시선을 돌렸다. 계속 보고 있으면 그대로 입을 맞춰 버릴 것 같았다. 사람도 많은 연습실에서 그런 짓을 하면 정말 큰일이었다.
갑자기 귀 끝이 붉어져 시선을 돌리는 수호를 보며 주오가 미소 지었다.
“수호야, 수호야.”
“……왜요?”
“회의 끝나고 잠깐 시간 내줄 수 있어?”
뜬금없는 주오의 말에 수호의 고개가 갸웃했다. 어차피 회의가 끝나면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떡볶이를 먹으러 가는 거면 이미 같이 시간을 보내기로 한 것인데 무슨 시간을 내달라는 걸까.
수호는 의아한 마음에 주오를 바라봤지만, 그는 그저 생긋 웃을 뿐 대답을 들려주지 않았다. 수호는 의문을 품은 채 회의가 끝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유독 길게 느껴졌던 회의가 끝나고 수호는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진형이 오늘도 고생했다고 말하는 순간 주오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그대로 수호를 붙잡고 비상구로 향했다.
갑자기 비상구로 끌려온 수호는 멀뚱히 주오를 바라봤다.
“갑자기 왜요?”
“수호가 너무 좋아서.”
한시라도 빨리 둘이서만 있고 싶었다며 수줍게 웃는 주오를 보자 수호도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수호는 팔을 뻗어 주오의 목을 끌어안았다.
가까워진 얼굴을 마주 보던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췄다.
“응, 하아…….”
“수호야, 정말 좋아해.”
맞닿았던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내뱉어지는 주오의 고백은 수호를 더욱 뜨겁게 만들었다.
좋다. 너무 좋다. 수호는 어떻게 주오의 이 설레는 말에 그동안 반응하지 않았었는지 의아할 지경이었다. 옅은 열기와 함께 뱉어지는 따스한 숨결이 짜릿했다.
수호는 주오의 목에 감긴 팔을 당겨 그와 더욱 깊게 입을 맞췄다.
적당한 온기를 품은 입술과 그와 다르게 뜨거운 혀는 언제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구름 위를 걷는다는 말이 이래서 나온 거일지 몰랐다. 수호는 입안을 파고든 주오의 혀를 반기며 가볍게 빨아 당겼다.
어리숙하지만 착실히 반응하는 수호로 인해 주오의 숨소리가 더욱 격해졌다. 달뜬 열기를 품어가는 숨결에 수호도 덩달아 달아올랐다.
“흐, 읏. 형, 주오 형.”
“하아, 수호야 좋아. 너무 좋아해.”
늘 화사한 미소를 짓던 주오에게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낮고 거친 음성에 소름이 돋았다. 아찔한 느낌과 함께 아랫배에서 꿈틀거리는 열기가 몽실몽실 피어올랐다.
“형, 하아…… 그만.”
밭은 숨을 뱉어내며 주오를 밀어내자, 그가 붉어진 수호의 뺨에 짧게 입술을 맞췄다.
“미안, 힘들었어?”
“아뇨. 더 하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이곳은 직장이었고, 거기다가 사람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비상구였다. 여기서 더 이상 주오랑 입을 맞추고 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수호는 피어오른 열기를 끄기 위해 천천히 숨을 골랐다.
차분히 열기가 가시기를 기다리던 수호는 물끄러미 주오를 바라봤다. 형도 자신과 같을까. 키스를 하고 있으면 이 걷잡을 수 없는 열기가 형에게도 찾아올까. 문득 궁금해졌다.
“형.”
“응?”
“형도 흥분해요?”
“……어?”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듯 주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런 주오를 응시하며 수호는 방금 했던 질문을 다시 물었다.
“저랑 키스하면 흥분돼요?”
어쩌면 자신이 이상한 것일지도 몰랐다. 고작 이런 걸로 이렇게 열을 품는 게 맞는 건가? 혹시 형이 부담스러워하는 건 아닐까?
수호는 문득 든 초조함에 주오의 입술을 빤히 바라봤다. 어서 그가 답을 내주길 바랐다.
한참 동안 말없이 시선을 마주하고 있던 주오가 미안하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네가 좋아서 흥분돼. 수호는 아직 부담스러울 텐데, 미안해.”
혹시나 싫어할까 수호의 눈치를 살피던 주오의 눈가가 축 내려앉았다.
풀이 죽은 주오가 귀엽고, 그가 내민 답이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는 걸 확인시켜 줘서 수호는 안심했다.
수호는 죄를 지은 것처럼 풀이 죽은 주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다행이에요.”
갑자기 끌어안는 수호로 인해 주오의 표정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어?”
수호는 고개를 들어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당황해하는 주오의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저만 그런 줄 알았어요.”
“…….”
“저도 형이랑 키스하면 흥분돼요.”
초조함이 사라진 수호는 옅게 미소 지었다. 자신만 그러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심했다. 편안해진 마음으로 주오의 온기를 느끼고 있자 어느새 등 뒤로 주오의 팔이 감겨왔다.
“수호가 싫어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제가 왜 싫어해요.”
“수호는 이제 막 내가 좋아진 거니까. 그래서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수호와 다르게 주오의 감정은 오래오래 인내해 온 감정이었다. 그 기나긴 시간만큼 주오는 생각할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수호를 향한 마음에 성욕이 있다는 것쯤은 오래전에 파악한 바였다.
하지만 수호는 주오보다 고민할 시간이 적었다. 그래서 혹시나 우정으로서 좋아한다는 마음을 사랑으로 착각해 휩쓸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번에 수호가 내밀어준 답으로 인해 주오가 했던 걱정은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수호는 가라앉은 주오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막 시작한 감정이어도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거예요. 싫지 않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주오는 웃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다. 그러니 침울한 표정을 하는 건 원치 않았다.
수호는 주오가 어서 다시 웃기를 바라며 그의 입술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러자 마법처럼 주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걱정 안 할게.”
눈가를 둥글게 휘며 웃는 주오를 보며 수호도 마주 웃었다. 역시 김주오는 웃는 얼굴이 가장 멋있다.
* * *
제라드는 연습 때 연패를 했던 것과 달리 시즌이 시작되자 연전연승을 달렸다. 덕분에 침체됐던 팀 분위기도 다시 활기를 찾았다.
“오늘도 고생 많았다. 숙소 돌아가서 푹 쉬어라.”
“오늘은 그래도 아슬아슬했네요.”
오늘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던 은기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강팀으로 손꼽히는 팀이긴 했지만, 스프링 시즌과 비교하면 너무 치열한 시합이었다.
스코어는 2:1. 서머 시즌에는 유독 경기들이 치열했다. 월드 챔피언십으로 향하는 직행 티켓이 걸려 있는 시즌이니 당연한 일이었었다. 하지만 그래도 승리해야만 하고 또한 승점 관리도 잘 해놔야만 했다.
승패를 기준으로 팀 순위를 따지지만, 만약 승률이 동일한 팀이 있으면 승점으로 다시 순위를 정했다. 쟁쟁한 시즌이니만큼 승점 관리의 중요성도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스프링에는 주이와 체스가 돋보였다면 이번 시즌에는 킹콩과 추안생명도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총 10개의 팀 중 5개의 팀이 경쟁하는 구도나 다름없었다. 밥그릇 싸움이 더욱 치열해진 상황이기에 은기의 표정이 어두울 수밖에 없었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 은기를 백미러로 돌아본 루퍼 코치가 싱긋 웃었다.
“오늘따라 걱정이 많네. 아까 실수해서 그래?”
“……하아, 내가 왜 그랬지.”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앞으로 돌진해 버린 게 탈이었다. 은기의 포지션은 뒤에서 안정적으로 딜을 넣는 게 최우선인 역할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너무 좋았기에 앞으로 나선 게 한 세트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은기는 자책감에 결국 두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카시트에 몸을 묻었다.
“어쨌거나 이겼잖아. 그러면 됐지.”
낙천적인 우찬의 대답에 루퍼 코치의 눈매가 사나워졌다.
“그래도 그 마인드는 안 되지. 그리고 김우찬 너는 실수 안 할 줄 알아? 내일 연습실 오자마자 바로 피드백할 거니까 단단히 각오하고 있어.”
날 선 코치의 말에 방실거리던 우찬의 표정이 금세 침울해졌다. 맨 뒷자리에서 수호와 꼬물꼬물 손을 맞잡고 있던 주오가 어깨를 늘어뜨린 은기와 우찬을 보며 입을 열었다.
“후회할 시간에 다음에 어떻게 실수 안 할 건지 생각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와, 레인 씨는 가끔 진짜 매정해. 이럴 땐 위로를 해줘야지.”
나름 친절한 말투였지만, 위로를 바랐던 우찬은 매정하게만 느껴지는 주오를 힐끔 노려봤다. 그러자 열심히 핸드폰으로 같은 그림을 맞추는 게임을 하고 있던 선우가 고개를 들었다.
“매번 듣는 얘기면서 새삼 그러냐. 맞는 말이지 뭐. 후회한다고 달라질 거면 사람들이 다 후회만 하게? 그러니까 그만 우울해하고 내일 연습이나 생각합시다.”
선우가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하자 은기와 우찬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우는 만족한다는 듯 웃고는 이내 다시 고개를 숙여 게임에 집중했다.
“은기 이번 시즌에 대해 걱정이 많나 봐요.”
하얗고 유독 예쁜 수호의 손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헤실거리고 있던 주오가 은기를 힐끔 바라봤다. 까만 뒤통수만 보이지만 그래도 지금 은기의 표정이 얼마나 침울할지 알 수 있었다.
조용하긴 해도 승부욕 있는 은기였지만, 유독 시즌 초부터 날을 세우는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주오는 은기에게서 시선을 떼며 자신을 보는 수호의 까만 눈을 마주 봤다.
“월드 챔피언십 직행이 걸려 있으니까. 스프링에서 활약하지 못했던 팀들이 예상외로 선전하기도 하고.”
“그건 그렇죠.”
“수호는 걱정 안 돼?”
“걱정이 많은 편이 아니라서요.”
평소와 똑같이 평온하고 무던한 수호의 음성에는 주오의 물음처럼 걱정이라는 것은 단 한 톨도 묻어 있지 않았다.
이수호가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을 지킬 수 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수호는 승부욕은 강하되 경기에 대한 걱정과 부담감이 없었다. 그렇기에 플레이에 망설임이 없었고, 도전적이었다. 기본적으로 피지컬이 따라주니 그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앞으로도 수호한테 걱정거리가 없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늘 이렇게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지내기를 바라는 주오를 보며 수호가 작게 웃었다.
“형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나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는걸. 수호랑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 드는 일…… 그리고.”
말을 잇던 주오가 갑자기 얼굴을 바짝 붙여보고는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수호랑 연애하는 일.”
수호는 귓바퀴에 닿았다 떨어지는 주오의 따스한 숨결에 귓가가 붉어졌다. 흠칫 고개를 뒤로 빼며 주오를 불퉁한 눈으로 바라보자 그가 방긋 웃어 보였다.
“그러다가 다른 사람들한테 들켜요.”
속삭였다고는 하나 밀폐된 차 안이었다. 좌석마다 그리 멀지 않았기에 수호는 혹시나 남들이 주오의 말을 들었을까 주의를 살피며 속삭였다.
주변을 경계하는 수호와는 다르게 주오는 여전히 여유 가득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미안해. 조심할게.”
주오의 말에 수호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비밀스러운 눈빛을 공유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 좌석에서 우찬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둘이 뭘 그렇게 속닥거려? 무슨 재미있는 얘기 해? 나도 들을래.”
“그런 거 안 했어.”
“뭐야, 또 나만 왕따시키지? 나만 진심이었던 거야.”
수호의 단호한 대답에 우찬이 눈을 세모꼴로 뜨며 두 사람을 노려봤다. 그러자 우찬의 옆에 앉아 있던 선우가 그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차 안에서 그러고 있지 마.”
고개만 돌리는 게 아니라 몸을 뒤로 돌려 앉아 있는 우찬을 나무란 선우가 우찬을 다시 원래대로 돌려놨다. 그러고는 대뜸 눈을 찡긋거렸다.
멀뚱히 선우를 보는 수호와는 달리 주오는 같이 눈을 찡긋거렸다.
“선우가 참 눈치가 빨라.”
“그런 편이죠.”
“그래서 고마워.”
대뜸 없는 주오의 말에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의아함이 가득한 까만 눈동자가 그 이유를 묻는 듯했다.
“선우가 많이 도와줬잖아.”
박선우가 뭘 도와준 건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수호는 다시 핸드폰 게임에 열중한 선우의 뒤통수를 빤히 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죠.”
“그런데 쟤는 사실 도와주려고 했다기보다는 자기가 재밌어서 밀어준 거였을 거야.”
이번에도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들을 밀어줘서 선우가 재밌을 일이 뭐가 있을까 싶었다. 그런 수호를 보며 주오가 속삭였다.
“성격 특이하잖아. 그래도 나는 선우한테 고마워.”
도와준 사람에게 하는 말치고는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 주오는 이내 수호의 손을 다시 주물거렸다. 꼼지락거리며 수호의 손 이곳저곳을 살피고 만지는 탓에 손바닥에서 열이 올랐다.
괜히 민망해진 수호가 주오에게 잡힌 손을 꼼지락거리자 주오가 움직이는 손가락을 부여잡고는 웃어 보였다.
눈가를 둥글게 휘며 행복하게 웃는 주오의 얼굴을 보자 이제는 손이 아닌 얼굴에서 열이 올랐다.
수호는 이 낯설면서도 좋은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더 보고 있으면 주오에게 달려들 것 같았다.
수호는 요즘 김주오만 보면 몸이 들썩거렸다. 갑자기 이성을 잃고 입을 맞추고 끌어안고 싶어져 늘 억눌러야만 했다.
사람들이 연애가 힘들다고 하는데 이런 이유 때문일까.
수호는 입을 꾹 닫고 당장에라도 주오의 입술을 덮치고 싶은 마음을 추슬렀다. 하지만 그런 수호의 곤욕을 모르는 주오는 갑자기 눈을 감아버리는 수호가 염려됐는지 얼굴을 더욱 붙여왔다.
“수호야, 어디 아파? 멀미하는 건가?”
더욱 가까이서 들리는 주오의 다정한 음성과 숨결에 수호의 눈가가 움찔했다. 이윽고 수호가 눈을 뜨고 불퉁한 시선으로 주오를 바라봤다.
“참는 중이니까 방해하지 마세요.”
“어? 뭐를?”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가 안 되는지 주오의 눈에 의아함이 서렸다. 수호는 자신과 다르게 여유로워 보이는 주오에게 입을 열었다.
“키스하고 싶어요.”
“……어?”
“그러니까 가까이 오지 마세요. 참기 힘들어지니까.”
단호하게 내뱉어진 말에 주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곤란한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한 표정을 하는 주오에게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싫은 걸까.
“제가 이러는 거 싫어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묻자 주오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무 좋아! 나는 수호가 정말 너무 좋아!”
좌석 맨 뒷자리에서 조용조용하게 말하던 주오가 갑자기 번뜩 소리를 질렀다. 본인도 놀랐는지 ‘아……’ 하는 작은 탄성을 내며 앞 좌석을 바라봤다.
“그래, 인마, 네가 수호 좋아하는 건 이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운전을 하고 있던 루퍼 코치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 소리를 늘어놓았다. 이어서 가지 가지 한다는 듯 은기가 뒤를 돌아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하하하, 진짜 형 너무, 웃기잖아.”
“레인 씨 진짜 미쳤어?”
웃음을 터뜨리다 못해 죽으려고 하는 선우와 어안이 벙벙한 듯 멍한 눈을 한 우찬이 연달아 한마디씩 했다.
주오는 멋쩍은 웃음을 짓고는 수호를 돌아봤다. 수호도 갑자기 소리치는 주오 때문에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하지만 이윽고 수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진짜 김주오, 수호가 팀에 들어오고 나서부터 정신을 못 차리네. 주장의 위엄은 어디다 갖다 버린 거야?”
루퍼는 혀를 끌끌 차면서도 이 상황이 재밌는지 미소를 지었다. 우찬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루퍼의 의견에 공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맨날 수호만 챙기고! 이건 편애라고요!”
“나쁜 주장이네.”
“맞아요!”
타도 김레인을 외치며 놀고 있는 두 사람 때문에 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 틈에 수호는 주오의 손을 잡고 그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저도 좋아해요.”
수호는 눈앞에 남자가 너무나 귀엽게 느껴졌다. 키는 훌쩍 커서 귀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사람이었지만, 수호의 눈에는 그 어느 것보다 사랑스러웠다.
수호의 짧은 대답에 주오는 또 미묘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수호에게 속삭였다.
“수호야, 나도 참기 힘들어.”
“형도요?”
자신만 참고 있는 거라고 여겼던 수호가 되물었다. 그러자 주오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참고 있었어.”
수호는 자신을 직시하는 주오의 다갈색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자신은 이제 막 시작한 감정이었지만, 주오는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한 마음이었다.
주오와 같은 마음이 된 수호는 이제야 주오가 얼마나 참고 있었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오래도록 인내해 온 주오에게 수호는 작게 속삭였다.
“빨리 숙소에 도착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참지 않고 입을 맞출 수 있을 텐데.
뒷말은 삼켰지만, 수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아챈 주오는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마주 잡은 두 사람의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 * *
수호는 한없이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뿌옇게 보이는 시야가 어둑어둑한 것을 보니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인 듯했다.
목이 유독 건조한 느낌에 잠에서 깬 수호는 멍한 정신에 눈가를 꾹꾹 눌렀다. 어제 경기가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주오와 입술을 비비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한동안 눈을 문지르던 수호는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냉장고에서 꺼낸 물은 아찔할 정도로 시원한 느낌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건조했던 목이 다시금 촉촉해지자 수호는 다시 비척비척 방으로 향했다.
침대로 다시 들어가려 이불을 들친 수호는 이내 멈칫했다. 주오가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늘 주오가 먼저 일어났기에 수호로서는 그가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는 건 드문 일이었다. 올스타전과 감기를 앓았던 그때 이후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수호는 문득 떠오른 기억에 옅게 웃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하지만 취해서도 자신을 부르며 악수도 하고 싶고, 방송도 하고 싶다고 말하던 주오가 제법 웃겼던 기억이었다.
수호는 그때와는 다르게 곤히 잠든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네요.”
그렇게 불편하게 여겼던 사람과 한 침대에서 잠을 자게 되는 날이 오다니. 수호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주오의 옆에 찰싹 붙었다. 옆자리에 온기가 들어차니 주오가 자연스럽게 수호 쪽으로 몸을 돌리며 팔을 감쌌다.
한결 가까워진 거리에서 주오의 얼굴을 빤히 보던 수호는 잠시 멈칫했다. 아랫배 쪽에서 단단하고 뭉툭한 것이 불쑥 닿아왔기 때문이었다.
수호는 이게 뭘까 싶어서 이불을 들쳤다. 그러고 그 의아한 물체를 확인하곤 그대로 정지할 수밖에 없었다.
자면서 발기를 하는 게 종종 있는 일이긴 하지만, 주오와 같은 침대에서 자는 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광경이었다.
수호는 꼿꼿하게 서서 자신의 아랫배를 찌르는 주오의 성기를 바라봤다. 넉넉한 반바지 위로 유독 국부가 불룩 솟아 있었다.
수호는 묘한 기분에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윽고 몸을 일으켜 앉은 수호는 주오의 그곳에 시선을 고정했다.
키가 크고, 골격이 큰 건 알고 있었지만 여기까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옷을 입고 있음에도 확연하게 보이는 거대한 크기였다. 수호는 인체의 신비를 느끼며 그곳을 꼼꼼히 살폈다.
가끔 수호는 욕실 문을 벌컥 열다가 샤워를 하려 옷을 벗고 있던 주오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도 분명 얼핏 주오의 성기를 봤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렇게 위압적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팽창율이 좋은 건가.”
수호는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게 부피를 키우고 있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수호야.”
“왜요?”
민망한 곳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수호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음성에 대답했지만, 막상 수호를 부른 주오는 답이 없었다. 고개를 돌려 주오를 보자 그는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꼬대였나. 무슨 꿈을 꾸는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걸까.
수호는 눈을 끔뻑거리고는 이내 여전히 꼿꼿하게 선 주오의 성기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꿈을 꾸면서 발기하는 김주오. 묘하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주오와 키스를 할 때마다 아랫배가 찌르르 울렸다. 그래서 자신만 그에게 흥분하는 건 아닐까 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건 착각이었던 모양이었다.
수호는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사실 얼굴만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열이 올랐다.
수호는 자신이 변태가 아닌가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의 꿈을 꾸면서 발기하는 남자를 보고 흥분하다니.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하지만 상대가 주오니까.
수호는 목이 타는 느낌에 주방에서 가져온 물을 꼴깍 마셨다. 시원한 감각에 열기가 잠깐 사그라들었지만 효과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샤워라도 할까.”
이미 잠은 오래전에 날아갔다. 수호는 욕실로 향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갑자기 팔목이 잡혀 몸이 기우뚱했다.
“어…….”
“……어디 가.”
어느새 잠에서 깬 주오가 수호를 보고 있었다. 잠시 주오와 눈을 맞춘 수호가 눈을 깜빡거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샤워하려고요.”
“가지 마.”
중얼거린 주오는 그대로 수호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갑자기 주오에게 둘둘 감싸 안긴 수호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여전히 단단하게 선 그것은 수호의 아랫배를 꾹 누르고 있었다.
“형 닿아요.”
“처음 닿는 것도 아니잖아.”
가볍게 말하며 짧게 입술을 맞추는 주오를 보며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닿는 게 분명한데. 수호는 자신이 기억력이 나쁜 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수호의 기억 속에서는 발기한 주오와 성기와 닿은 적이 결코 없었다. 애초에 본 적도 없었다.
“처음인데요.”
“아니야. 방금도 했잖아.”
“뭘요?”
“뭐긴, 그야…….”
말을 잇던 주오는 갑자기 멈칫하고는 이내 수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잠에 빠져 있던 그의 눈이 어느새 혼란과 당혹, 그리고 놀람으로 가득 찼다.
말없이 한동안 시선을 맞추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건 수호였다.
“형?”
“……잠깐, 잠깐만. 이거 꿈이지?”
멍하니 중얼거린 주오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갑자기 옆에 찰싹 붙어 있던 체온이 사라지자 수호는 아쉬움을 느꼈다. 따뜻했는데. 아쉬움은 삼킨 수호도 몸을 일으켜 앉았다.
“꿈 아니에요. 그런데 형, 무슨 꿈 꿨어요?”
“……꿈이 아니라고?”
꿈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주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이윽고 잠시 이불을 들쳐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주오의 얼굴은 더욱 처참해졌다. 주오는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아니, 이건 생리적인 반응이니까……. 어……미안해.”
수호는 갑작스런 주오의 사과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가 미안해할 일이 뭐가 있는 걸까.
“왜 갑자기 사과해요?”
“수호, 너…… 기분 나쁠 테니까.”
이번에 나온 주오의 대답도 수호는 이해하지 못했다. 기분이 왜 나쁠까. 그럴 일이 없는데.
“제가 기분이 왜 나빠요?”
“……닿으면 기분 나쁘잖아.”
이불로 자신의 아랫도리를 감추는 주오를 보며 수호는 입을 열었다.
“그러면 형은 만약 제 게 닿으면 기분 나쁠 것 같아요?”
그러자 주오가 단박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절대로. 오히려 좋아.”
좋아하는 상대가 자신과 같은 마음으로 흥분한다는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수호는 옅게 웃어 보였다.
“저도 그래요. 전에 제가 그랬죠. 형한테 흥분한다고. 형도 그런 것 같아서 좋아요.”
“……정말? 기분 나쁘지 않아?”
조심스럽게 묻는 주오를 보며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나빠요. 그런데 형, 무슨 꿈 꿨어요?”
대체 무슨 꿈을 꿨는데 그렇게 됐냐는 수호의 질문에 주오는 입을 닫았다. 그저 미안하다는 묘한 미소로 수호를 바라볼 뿐이었다.
“미안, 그건 말 못 해주겠다.”
“꿈에서 저랑 뭐 했어요? 말해주면 똑같이 해드릴게요.”
커다랗게 뜨인 주오의 눈이 끔뻑거렸다.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도 알 만큼은 알았다. 키스보다 더 야한, 그런 꿈이겠지.
묘한 표정으로 한동안 말없이 수호를 보던 주오는 이내 슬쩍 웃었다.
“……무리일 것 같은데. 일단 샤워 좀 하고 올게.”
열기가 금방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지, 주오가 샤워를 하려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번에는 수호가 주오를 붙잡아 세웠다.
“보여주세요.”
“……뭘?”
“그거요.”
주오를 보던 시선을 내린 수호가 여전히 불룩 솟은 그의 성기를 바라봤다. 부끄럼 한 점 없이 당당한 수호의 태도에 주오 눈에 당혹감이 짙게 서렸다.
“아, 아니야. 금방 다녀올 테니까 자고 있어.”
“형, 저도 섰어요.”
급하게 욕실로 향하려던 주오의 걸음이 멈췄다.
“……어?”
얼빠진 탄성과 함께 멍하니 자신을 보는 주오를 보며 수호가 입을 열었다.
“저도 섰다고요.”
흥분했다는 사람치고는 너무나 담백하게 말하는 수호였다. 반면에 주오의 얼굴은 급격하게 붉어졌다. 이윽고 주오는 옅은 숨을 내뱉으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수호는 자신을 어떻게 봐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당황한 주오의 손을 잡아당겼다.
주오는 약한 힘에도 순순히 끌려오며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리고 수호를 바라봤다.
어느새 주오의 다갈색 눈동자에는 짙은 열기가 묻어 있었다. 늘 다정하고 온화하기만 하던 눈빛과는 달리 낯설기만 한 시선이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정말로 괜찮겠어?”
“안 괜찮을 건 뭐예요.”
“하지만 다른 애들도 있고, 또…… 해봤는데 싫을 수도 있으니까.”
싫다면 지금 그만두라고 말하는 주오를 보며 수호는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다른 방에서 팀원들이 곤히 잠들어 있겠지만, 수호는 그런 건 상관없었다.
수호의 수락이 떨어지자 주오는 잠시 말없이 서 있다 침대 위로 올라왔다.
“중간에 안 된다고 해도 못 멈출 것 같아.”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 주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수호는 주오의 목에 팔을 감고 짧게 입술을 맞추고는 작게 속삭였다.
“그럴 일 없어요.”
옅게 퍼지는 수호의 미소와 함께 주오의 손이 수호의 뒷머리를 감싸 쥐었다. 주오의 움직임에 망설임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급함이 느껴질 정도로 주오는 빠르게 수호의 입술을 머금었다.
방금 전 가볍게 맞았다 떨어졌던 앙증맞은 입맞춤과는 다르게 한껏 짙고 깊었다. 수호는 입술을 벌리며 안으로 밀고 들어오는 주오의 혀를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