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사람들이 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수호는 사실 그들의 말처럼 특별한 생각을 하면서 살지 않았다. 늘 멍했고, 그저 흘러가는 대로 그렇게 물 흐르듯이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고요한 시냇물 같은 수호에게 요즘 거대한 고민거리가 생겼다.
고민거리의 이름은 김주오. 수호는 요즘 그가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주오와 친해지기 전에 느꼈던 것처럼 그를 회피하고 싶은 불편함은 아니었다. 지금은 전혀 그를 피하고 싶은 느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함은 대체 무엇일까.
요즘 수호는 주오만 보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가 자신을 부를 때, 눈이 마주칠 때, 그가 다가올 때. 그때마다 수호는 안절부절못하는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평온함을 유지할 수 없는 그런 느낌.
묘하게 귓가가 간지럽고, 두근거리는 느낌.
수호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어떤 말로 정의 내려야 할지 아무리 고민을 해도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면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려주지 않을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도 물어볼 사람이 없었다. 결국 모든 고민은 수호 혼자서 감내해야 할 몫이었다.
수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호 무슨 걱정 있어?”
그리고 그 한숨을 들은 김주오가 귀신같이 등장했다.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을 빤히 보는 주오 때문에 수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또다. 묘하게 두근거리는 느낌.
수호는 낯설고 생생한 감각을 느끼면서 한 뼘 거리에서 바짝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주오와 눈을 맞췄다.
자신에게서 언제나 떨어지지 않는 따뜻한 다갈색빛 눈동자. 수호는 그 눈을 볼 때마다 곤란한 느낌이었다.
뭔가 해주고 싶은 느낌. 보고 있으면 몸이 굳는 느낌.
수호는 자신의 대답을 바라며 여전히 걱정 어린 얼굴을 하고 있는 주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형은 눈이 예쁘네요.”
“어?”
“응, 예쁜 것 같아요.”
수호는 자기 자신에게 말하는 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세히 보니 정말 예뻤다. 반짝이는 다갈색 눈은 다시 보고 싶어질 만큼 예뻤다. 그래서 자꾸만 주오가 자신을 보며 웃는 모습이 보고 싶은가 보다.
수호가 물끄러미 눈을 맞추자 갑자기 주오가 시선을 홱 돌렸다. 어딘가 부끄러워 보이는 주오의 귓가가 붉어져 있었다.
귀엽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수호는 자신도 모르게 한 생각에 고개를 갸웃했다. 저 덩치가 귀엽게 느껴질 수 있구나. 수호는 신기하다고 생각했다.
“수호가 더 예뻐. 수호는 눈꼬리가 길게 뻗은 게 진짜 예뻐.”
“아뇨. 형 눈이 더 예뻐요.”
“아니야. 수호 눈이 더 예뻐.”
“아니라니까요.”
오늘도 어김없이 둘 사이에서 쓸데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1라운드가 끝나고 짧은 휴식기가 찾아와 숙소에서 쉬고 있던 선수들은 염병 터지는 주오와 수호를 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아, 제발, 대체 왜 그러는 건데.”
TV를 보던 우찬이 못 참겠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쿵쾅거리며 부엌으로 가는 우찬을 보던 은기가 주오와 수호를 바라보며 못마땅한 듯 입을 열었다.
“둘이 그냥 나갔다 오는 건 어때요. 어차피 둘이서 계속 그럴 거 아니에요?”
“계속 그럴 건 아닌데.”
은기의 말에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은기는 그 말을 못 믿겠다는 듯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선우는 심기가 불편해진 은기의 어깨에 턱을 올리며 주오를 향해 말을 건넸다.
“은기 말대로 둘이 놀다 와. 형이랑 수호 그러는 거 이제 그만 보고 싶으니까.”
생긋 웃는 선우는 무언의 눈치를 주고 있었다. 그걸 잘 캐치한 주오가 생긋 웃었다.
“그럴까? 수호야 저녁 먹고 들어올까?”
“나기가 귀찮아요.”
“귀찮으면 내가 업어줄게.”
그러면 문제없지 않느냐며 간단하게 말하는 주오를 수호가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사실 수호는 주오랑 단둘이는 그렇게 있고 싶지 않았다. 이유 모를 초조함을 계속 느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같이 있으면 좋지만, 가끔 거북해질 때마다 수호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마땅치 않아하는 수호에게 주오가 질척거리며 달라붙었다. 수호의 팔에 팔짱을 낀 주오가 착 붙어 떠들기 시작했다.
“나는 수호랑 저녁 먹고 싶은데 수호는 싫어? 맛있는 거 사 줄게.”
안쓰럽게 울상을 지으며 말하는 주오 때문에 수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저런 식으로 굴 때마다 수호는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주인만 보는 순둥한 강아지 같은 눈이었다. 결국 수호는 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잔치국수면 갈게요.”
결국 주오의 말간 시선을 이기지 못한 수호가 작게 중얼거리자 주오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수호가 먹고 싶은 건 뭐든지 사 줄게.”
“됐어요. 그리고 전에 사 주셨으니까 이번엔 제가 살게요.”
“데이트 신청은 내가 했으니까 내가 살게.”
“데이트 아니에요.”
뚱한 수호의 대답에도 주오는 뭐가 좋은지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수호는 볼수록 예쁘게 느껴지는 미소에 그저 시선을 돌렸다. 오래 보고 있으면 두근거릴 것 같았다.
수호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오가 외출 준비를 하기 위해 콧노래를 부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주오의 뒷모습을 보던 선우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실실 웃으며 수호에게 고개를 돌렸다.
“맛있게 먹고 재밌게 놀다 와.”
“네.”
“이참에 외박도 괜찮고.”
눈가를 찡긋거리는 선우에게 수호는 평소와 같이 무뚝뚝한 얼굴로 대답했다.
“감독님한테 혼나요.”
“애초에 휴식 기간인데 무슨 상관이야.”
선우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선우의 말대로 휴식 기간이라 외박을 해도 다음 날 연습이 없어서 괜찮았지만, 굳이 외박을 할 이유가 없었다.
“저녁 먹고 올게요.”
더 대화를 나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수호는 소파에서 일어나 주오와 함께 쓰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호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안쪽에서 또 둘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웅얼거리는 소리가 문 밖으로 들려왔다.
안쪽 상황이 어떨지 뻔해서 선우가 재밌다는 듯 웃자, 은기가 뭐가 그렇게 웃기냐는 듯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둘이 저러는 거 재밌잖아. 볼 때마다 웃기다니까.”
“전 두 사람보다 형이 더 신기해요. 대체 뭐가 재미있어요?”
“재미없다는 게 더 신기한데.”
은기는 동그랗게 뜬 눈을 끔뻑거리는 선우가 정말 신기하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진짜 형 개그 코드는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불편하니까 이만 떨어져요.”
“듀오끼리는 사이가 좋아야지. 은기는 너무하네.”
어이없다는 듯 눈가를 찡그리는 은기에게 선우는 방긋 웃어 보였다.
* * *
은기와 선우가 투덕거리고 있는 사이 외출 준비를 마친 주오와 수호는 숙소를 나섰다
나란히 걸음을 옮겨 잔치국수집에 도착한 두 사람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건 수호였다.
“은기랑 선우 형이랑 사이좋아 보이네요. 선우 형이 저렇게 사람한테 붙어 있는 건 처음 봐요.”
사교성이 워낙 좋은 선우라 친한 선수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들과 스킨십이 심한 편은 아니었다. 수호가 보기에는 그랬다. 그런 선우가 은기와 붙어 있으니 제법 신기한 모양이었다.
“선우가 은기 같은 타입 좋아해.”
간략한 주오의 답변을 이해하지 못한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수호가 귀엽다는 듯 주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선우 입장에선 은기만큼 놀리기 좋은 애는 없을걸.”
“아…….”
이제야 주오의 말이 이해가 가는 듯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선우는 장난기가 제법 있는 타입이었다. 물론 제라드의 제일가는 장난꾸러기 김우찬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짓궂은 면이 있는 사람이다.
“은기가 조용해 보여도 은근 찌르면 찌르는 대로 반응을 잘하거든. 그래서 선우가 종종 놀리는 것 같더라. 수호도 주이에 있을 때 선우가 많이 놀렸어?”
주오의 물음에 수호의 검은 눈이 도로록 한 바퀴 굴러갔다.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할 때가 있긴 했지만, 딱히 놀리는 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수호가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 다음에 선우가 놀리면 나한테 꼭 말해줘. 혼내줄게.”
“저 애 아니에요.”
괴롭힌 동급생이 있으면 꼭 말해달라는 선생님 같은 주오의 말에 수호가 멀뚱히 고개를 저었다.
주오는 날이 어느 정도 풀려 도톰한 노란 개나리색 후드티를 입고 자신을 동그란 눈으로 보는 수호가 귀여워서 당장에라도 끌어안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길거리에서 그러면 수호가 단박에 싫어할 것 같아 마음을 꾹 참고 입을 열었다.
“다 컸지. 근데 노란색 입고 있으니까 꼭 어린이 같네.”
“안 어울려요? 팬분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선물해 주셨는데.”
수호가 선물을 받았을 때 옆에 있던 주오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임에서 승리하고 나면 보통 짧게 팬미팅 시간이 있었다. 그때 어떤 팬이 수호에게 꼭 입어달라며 보송보송 딱 봐도 포근해 보이는 노란 후드티를 선물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보던 주오도 수호와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엄청 잘 어울려. 예뻐.”
“보통 무채색만 입어서 그런지 어색해요.”
“수호는 뭐든 다 잘 어울려.”
“형 말은 신용이 안 가요.”
매번 귀엽다, 예쁘다, 수호만 한 사람은 없다를 입에 달고 사는 주오였다. 덕분에 익숙해져서 한동안은 그런 말도 흘려들을 수 있었는데, 최근에는 그게 쉽지 않았다.
최근에 주오가 애정 표현을 해오면 주오에게 느끼면 이상한 느낌 때문인지 괜히 그를 볼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유 모를 민망함에 수호는 시선을 돌려 멍하니 소박한 식당 테이블만 바라봤다.
“진심인걸. 나는 수호가 너무 좋아서 모든 게 다 멋있고, 예뻐 보여.”
“형 취향 진짜 이상해요.”
“수호가 그렇게 말하면 나 상처받아.”
자신의 취향을 무시당한 주오가 시무룩한 얼굴을 해 보였다. 수호는 괜히 자신이 잘못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저런 표정을 짓게 하려던 게 아니었는데.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아니야. 아, 국수 나왔다. 맛있게 먹어.”
“형도 맛있게 드세요.”
수호는 주오가 건네는 젓가락을 받아 들고 호로록 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오는 전과 마찬가지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호를 바라봤다. 그럼에도 신기하게 꼭 먼저 그릇을 비우는 사람은 주오였다.
천천히 자신의 그릇을 비운 수호가 물을 꼴깍 마시며 주오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어떻게 봤는데?”
수호의 물음에 주오가 잠시 의아한 듯 눈을 크게 뜨고는 이내 둥글게 접어 웃었다.
수호는 유독 자신을 이상하게 만드는 주오의 미소에 귓가에 열이 올랐다. 둥글게 휜 눈매 사이로 드러난 다갈색 눈동자가 너무나 예쁘고 다정해서 수호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콩콩, 다시 이유 모를 두근거림이 찾아왔다.
“……부담스러운 눈빛으로요.”
“앗, 이건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눈빛이었는데.”
민망해 시선을 돌리는 수호에게 주오가 장난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수호는 잔잔한 웃음소리와 함께 울리는 낮은 음성에 두근거림이 더욱 심해진다고 느꼈다. 어느새 열기가 오른 수호의 귓가가 옅게 붉어져 있었다.
* * *
“수호 다 먹었으면 이만 갈까?”
“네.”
자리에서 일어난 두 사람은 계산을 마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카운터에서 서로 내겠다며 실랑이가 오갔지만, 결국 직원에게 카드를 내민 건 주오였다.
“제가 사 드린다고 했잖아요.”
“그렇게 사 주고 싶은 거면 우리 조금만 더 놀다 갈까?”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는 게 아쉬웠는지 주오가 핑곗거리를 찾으며 웃었다.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인 수호는 주오의 핑계에 홀라당 넘어갔다. 고개를 끄덕이는 수호를 보며 주오가 기쁜 듯 활짝 미소 지었다.
“어디 갈 건데요?”
“음, 술 마실까?”
“술이요?”
의외의 제안에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주오는 술을 못 마셨다. 그래서 회식 때도 늘 한두 잔만 마시고 그 뒤는 음료를 마시든가, 애초에 처음부터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그런 사람이 술을 마시자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의아함을 가득 담은 수호의 눈빛에 주오는 그저 해사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수호가 좋아하잖아. 그리고 나도 수호랑 둘이서 마셔보고 싶어. 혹시 나랑 마시는 건 재미없어서 싫어?”
혹시나 수호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일까 불안한지 주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시무룩해진 주오가 웃기고 귀여워 수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뇨. 그냥 형이 재미없어할 것 같아서요.”
술을 못하는 주오에게 술자리는 지루한 장소일 것 같았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라는 듯 주오가 가볍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수호랑 하는 거면 뭐든 재밌으니까 괜찮아. 그러면 갈까?”
“네.”
그렇게나 자신이 좋은 걸까. 수호는 괜히 또 민망한 느낌에 시선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오는 그런 수호를 이끌고 국수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술집으로 향했다.
주오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곳은 단아한 분위기의 이자카야였다. 개인실같이 칸막이를 친 공간도 여럿이라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인 것 같았다.
직원에게 칸막이가 쳐진 안쪽 자리로 안내받은 수호는 메뉴판을 뒤적였다. 담백한 튀김 요리와 탕, 술을 시킨 두 사람은 말없이 멀뚱히 서로를 바라봤다.
수호는 턱을 괴고 자신을 흐뭇한 시선으로 보는 주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컵에 물을 따랐다.
“또 너무너무 좋아한다는 눈빛이에요?”
왜 그렇게 보냐고 물어보면 분명 주오는 그렇게 대답할 것 같았다. 그리고 수호의 예상이 맞았는지 주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수호가 내 마음을 알아주나 봐.”
“그렇게 말하는데 어떻게 몰라요.”
“그래서 어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수호는 뚱한 시선으로 주오를 바라봤다. 어떻고 말고 할 게 있을까. 하지만 주오가 다시 한번 좋아한다고 말하자 수호는 가슴께가 몰랑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이상하고 낯설어서 가슴을 꾹꾹 누르고 있는데 직원이 주문했던 음식과 술을 가져왔다.
“감사합니다.”
“맛있게 드세요.”
직원이 꾸벅 인사를 하고 나가자 주오의 시선이 다시 수호에게 향했다.
“싫어?”
“……아뇨.”
좋고, 싫고로 구분하면 싫지 않았다.
“그러면 부담스러워?”
수호는 곰곰이 생각했다. 부담스러운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러면 자신이 느끼는 이 기분은 뭘까. 수호는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하지만 답답하게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수호는 이제 막 냉장고에서 나와 시원한 술을 따 들이마셨다. 차가운 액체가 들어가자 답답한 속이 한결 풀렸다. 주오는 갑자기 술을 벌컥 들이마시는 수호가 놀라운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다행이야. 수호 요즘 연습만 하느라 술 많이 마시고 싶었나 보다.”
수호는 갑자기 자신을 애주가로 만드는 주오를 뚱한 얼굴로 바라봤다.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귀여워.”
늘 그랬지만, 생뚱맞은 주오의 답변에 수호는 시선을 돌렸다. 오늘은 술이 잘 안 맞는 날인 듯했다. 후끈한 열기가 벌써 올라오고 있었다. 수호는 열기를 식히기 위해 다시 소주잔을 비웠다.
“진짜 신기하다.”
“뭐가요?”
“너랑 둘이 이러고 있다는 게.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수호는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불편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망설임 없이 김주오를 꼽았을 거다. 그만큼 주오가 불편했다. 자꾸만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오가 수호는 왜 그렇게 불편해하는지 모를 정도로 그에게 거북감을 느꼈었다.
그런 주오와 지금 단둘이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게 수호로서도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주오가 왜 불편했을까.
수호는 새삼스레 다시 떠오른 의문에 주오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갑자기 시선을 맞추며 자신을 빤히 보는 수호가 의아했는지 주오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뇨.”
“그러면 하고 싶은 말 있어?”
“그것도 아니에요.”
단호한 수호의 답변이 궁금증을 더욱 불러일으켰는지 주오가 의문이 가득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수호는 술잔을 비워내며 입을 열었다.
“형이 진짜 불편했는데 그런 형이랑 이러고 있는 게 저도 신기해서요.”
“수호는 내가 왜 불편했어? 너무 달라붙어서?”
아마 그건 아닐 거다. 지금 수호는 E스포츠 판에서 전설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아무도 이뤄내지 못한 월드 챔피언십 4회 우승과 독보적인 플레이. 그것만으로도 다른 선수들의 동경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수호를 동경해서 프로가 된 선수들이 손에 꼽지도 못할 만큼 많은 시점에서 주오보다는 못해도 수호에게 달라붙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 선수들 모두가 불편했던 건 아니었다. 물론 낯을 가리는 수호에게는 어색한 상황이었지만, 사람들이 다가오는 걸 피하고 싶을 만큼 불편하진 않았다.
회피하고 싶을 만큼 불편한 사람은 주오가 유일했다.
“형이 평범하지 않아서요.”
“어?”
주오는 수호의 대답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눈을 크게 떴다. 의아함이 가득 담긴 다갈색 눈이 조명을 받아 더욱 반짝거렸다.
“형 같은 사람은 처음 봤어요. 그래서 불편했어요.”
“음, 혹시 전에 내가 왜 사진 안 찍어줬었냐고 물었을 때 했던 대답과 같은 맥락이야? 내 얼굴이 잘생겨서 부담스러웠다는 그 말.”
수호는 주오가 말하는 게 언제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골똘히 생각하던 수호는 이내 올스타전 복도에서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왜 그동안 사진 찍어달라는 제안을 거절했는지 묻던 주오였다. 그때 분명 수호는 주오에게 잘생겨서 부담스럽다는 말을 했었다.
확실하게 기억이 떠오른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오는 멀뚱히 눈을 깜빡이고 있는 수호를 보며 수줍게 웃었다.
“수호 눈에는 내가 정말 잘생겼나 봐.”
수줍게 웃던 주오가 민망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수호는 눈만 빼꼼 내민 주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형, 잘생겼어요.”
사실이었다. 길 가는 사람 열을 잡고 물으면 모두가 김주오는 잘생겼다는 대답을 할 만큼 그는 잘난 얼굴이었다.
명백한 사실을 담백하게 말한 수호에게 주오가 불쑥 다가왔다.
수호는 순간적으로 가까워지는 잘난 얼굴에 놀라 심장이 뛰었다. 다급히 뒤로 몸을 물린 수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오를 바라봤다.
“수호가 보기에는 내가 그렇게 잘생겼어?”
“……네.”
“사람들은 보통 잘생기고 예쁜 걸 좋아하는데 수호는 부담스러운가 보네. 어떡하지. 역시 얼굴이라도 가리고 다닐까?”
주오가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삭 감추고 눈만 빼꼼 내밀었다. 가릴 거면 다 가려야지 눈을 빼놓으면 가리는 의미가 없는데 말이다. 수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걸렸다.
“그게 뭐예요.”
“수호가 너무 좋아. 웃을 때는 더 좋아. 계속 웃어줬으면 좋겠어.”
정말로 좋은 듯 주오의 눈매가 둥글게 휘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호가 좋아하게 된 주오의 미소였다. 보고 있으면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호는 발끝부터 훅 올라오는 뜨거운 열기에 귓가가 붉어졌다.
정말 이상했다. 주량만큼 술을 마신 것도 아니었는데 벌써부터 취기가 올랐다. 이게 정말 취기인가? 수호는 혼란스러웠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때에도 요즘 주오만 보면 종종 이런 기분이 들었다.
몸이 뜨겁게 달궈지는 느낌. 어딘가 몰랑몰랑해지는 느낌.
반쯤 들어간 술 때문인지 수호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요즘 이상해요.”
“어떤 게?”
갑자기 심각해진 수호의 음성에 주오의 표정도 심각해졌다.
웃는 얼굴을 더 보고 싶었는데. 웃음이 사라지는 주오를 보며 아쉽다고 생각한 수호는 자신이 하는 생각에 순간 놀라고 말았다.
혼자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수호를 보며 주오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수호야, 괜찮아?”
걱정 어린 다정한 다갈색 눈이 너무 예뻤다.
“형이 웃는 게 보고 싶어요.”
“어?”
수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 듯 주오의 눈에 의아함이 가득 찼다. 수호는 그런 주오를 보며 말을 이었다. 한번 터진 입은 그칠 줄을 몰랐다.
“두근거려요. 형 보고 있으면.”
“…….”
“이상해요. 이게 무슨 느낌인지 모르겠어요. 형이 싫은 건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러는 걸까요?”
“……수호야, 취했어?”
수호가 취하지 않았다는 건 누구보다 주오가 더 잘 알고 있었다. 수호는 취기가 오르면 급격하게 잠이 쏟아져 눈이 멍하니 풀렸다. 하지만 지금의 수호는 아주 멀쩡했다. 평소보다 오히려 눈빛이 더욱 또렷했다.
“형은 알아요? 이게 무슨 느낌인지?”
수호는 어딘가 당황스러운지 멍해진 주오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이수호는 지금 답을 알고 싶었다. 자신이 요즘 왜 자꾸만 이상해지는지에 대한 답을.
하지만 대답을 해줄 주오는 입을 꾹 다문 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던 주오가 이내 손으로 입을 가렸다. 혼란스러운 듯, 그의 두 눈이 정처 없이 흔들렸다.
수호는 그런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그가 답을 내주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한참을 침묵하던 주오가 이내 수호와 눈을 맞추고 입을 열었다.
“수호야.”
“네.”
“이수호.”
“네.”
“……왜 두근거리는지 알고 싶어?”
여유롭지만 무엇을 결심한 듯 주오의 다갈색 눈이 반짝였다. 수호는 자신에게 향한 눈빛에 괜히 또 두근거렸다. 자연스럽게 술잔으로 손이 뻗어졌다.
“네. 알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시험해 볼래? 네가 두근거리는 이유가 뭔지 알기 위해서.”
“뭐를요?”
대체 뭘 시험해 보자는 걸까. 의아한 마음에 고개를 갸웃하는 수호 앞으로 주오가 훌쩍 다가왔다. 갑자기 거리가 좁혀지자 수호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뒤로 뺐다. 하지만 뒷머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주오의 손길로 인해 거리를 벌릴 수 없었다.
“형?”
“기분 나쁜지 아닌지 말해줘.”
“네?”
주오의 말뜻을 이해 못 한 수호가 되물었지만, 주오는 대답 대신 짧게 입을 맞췄다. 입술에 스치듯 닿는 주오의 따스한 온기에 수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굳어 있는 몸과는 다르게 가슴이 쿵쿵 빠르게 뛰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놀라서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멀뚱히 끔뻑거렸다.
어느새 입술을 뗀 주오가 불안한 듯 떨리는 눈으로 수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기분 나빴어?”
“…….”
“수호야?”
수호는 다시금 자신을 부르는 주오의 음성에 아득했던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방금의 상황은 뭘까. 밀물이 밀려오듯 혼란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기분…… 안 나빴어요.”
하지만 혼란스러운 머리와는 다르게 입은 솔직했다.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간지러운 느낌이 기분 좋았던 것 같았다.
수호의 답변에 불안하게 떨리던 주오의 눈빛이 안정을 찾아가다 이내 둥글게 휘었다.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는 주오를 보자 수호의 귓가가 붉어졌다.
웃는 게 정말 보기 좋았다. 원래도 예쁜 눈이 웃으면서 둥글게 휠 때면 정말 시선을 떼기 힘들 정도로 더 예뻐졌다. 수호는 방금 전 주오와 입술이 닿았을 때처럼 가슴이 뛰는 걸 느끼며 다시 술잔에 손을 뻗었다.
술을 마시면서도 수호의 눈길은 자꾸만 주오에게 향했다. 그때마다 주오는 눈가를 둥글게 휘며 웃었다.
“그만 웃어요.”
수호는 감당하기 힘들 만큼 두근거리는 마음에 주오를 뚱한 눈으로 바라봤다.
“아까는 내가 웃는 게 보고 싶다고 했잖아. 뽀뽀하고 나니까 이제는 보기 싫어졌어?”
주오의 눈가가 시무룩해졌다. 그게 또 귀엽고 안쓰러워 보여 수호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너무 두근거려서 그래요.”
“……이번엔 수호가 날 두근거리게 하는데?”
곤란한 듯 주오의 시선에 당혹이 들어찼다. 물론 수호를 향한 견고한 애정은 그대로였다.
수호는 괜히 방금 전 닿았던 주오의 입술의 느낌이 떠올랐다. 미지근한 온도와 살짝 건조하게 느껴지던 입술. 살짝 내려앉는 가벼운 느낌이 떠올라 수호는 괜히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전부터 형이랑 닿았던 곳들이 가끔 간지러워요.”
“응? 왜지?”
“글쎄요. 그냥 형한테 두근거릴 때마다 그런 것 같아요.”
말한 수호는 평소와 같이 무덤덤했지만, 듣는 주오는 부끄럽다는 듯 시선을 돌렸다.
주오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누가 봐도 자신을 좋아하는 주오의 모습에 수호는 울컥했다.
“형.”
“어? 왜?”
기쁨과 부끄러움에 시선을 돌리고 있던 주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재빨리 수호를 바라봤다. 수호는 주오에게 얼굴을 쭉 내밀었다. 주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다시 해봐요. 해주세요.”
뚱한 얼굴을 내밀며 말하는 수호를 보며 주오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로 기쁘고 행복하다는 듯. 그리고 상대가 너무 좋아서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수호야, 나 정말로 네가 너무 좋아.”
“……저도 형 좋아요.”
“형으로서?”
“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물어본 주오였지만, 역시나 수호의 대답은 매정했다. 하지만 주오의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만연했다.
“곧 다른 대답을 하게 될 거야. 이제 형으로서 좋다는 말은 싫어.”
본인에게 다짐하듯, 수호에게 경고하듯 말한 주오가 가볍게 수호의 뒷머리를 당겨 입술을 맞댔다. 이번에도 전과 마찬가지로 서로의 숨결이 살짝 얽히는 정도의 짧은 입맞춤이었지만, 둘 중 누구도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오는 본인이 바랐으면서도 여전히 뭔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수호를 보며 웃었다. 지금까지 수호가 봐온 미소 중 가장 기뻐 보이는 웃음에 수호의 입가에도 저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수호는 두근거리는 이유를 알기는커녕, 점점 심해지기만 하는 자신의 증상에 고개를 갸웃하고는 이내 남은 술잔을 비워냈다. 아직 답을 깨닫지 못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게 싫은 건 아니었기에. 오히려 두근거리는 동안은 기분이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수호와 주오는 서로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명목은 술 취한 수호를 집에 데려다준다는 거였지만, 손을 잡았다는 사실은 명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