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세트 마지막에 진짜 쫄렸네.”
선우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거기서 전투를 진다고 해도 제라드의 상황이 불리해지는 건 아니었지만, 게임은 기세 싸움이었다. 만약 졌다면 후에 제법 승리하기까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안도하듯 한숨을 내쉬는 선우와는 다르게 은기의 표정은 딱딱했다.
“반응만 빨리 했어도 살 수 있었는데.”
“너무 안심하긴 했지.”
“이겼는데도 기분이 나쁘네요.”
은기의 눈매가 불만스럽게 일그러졌다. 선우는 그런 은기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못 지켜줘서 미안하다. 다음엔 잘 봐줄게.”
“형 때문도 아닌데 왜 미안해해요. 제가 잘못한 건데.”
은기는 괜히 자신에게 사과하는 선우에게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다.
“아하하하, 그러게 말이야. 반응을 빨리 했었어야지. 너 생존기 다 들고 죽었지?”
은기의 기분도 모른 채 우찬이 껄껄거렸다. 우찬의 옆에 앉아 있던 주오가 우찬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쥐었다.
“선우만 은기 봐줘야 하는 게 아닐 텐데.”
“아니, 나는 좀 떨어져 있어서……. 레인 씨 화내지 마, 무서워.”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나무라는 게 틀림없는 주오를 향해 우찬이 되도 않는 애교를 부렸다. 주오는 우찬에게 경고를 남기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수호를 돌아봤다.
“수호야, 너무 멋있었어. 수호는 최고야.”
우찬은 수호에게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과 말투를 하는 주오가 끔찍하다는 듯 오만상을 찡그렸다.
“진짜 레인 씨는 편애가 너무 심해. 우찬이 슬퍼.”
우찬이 관심을 끌기 위해 찡찡거려 봤지만, 어느 누구도 우찬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수호는 주오 뒤로 우찬이 분해하는 걸 슬며시 보고는 이내 주오와 눈을 맞췄다.
“형이 그때 본진 안 봐줬으면 다 못 죽였을 거예요.”
“수호는 그래도 잘했을 거야.”
“아니에요.”
“맞아. 수호가 제일 잘해.”
“아니라니까요.”
솔직한 심정으로 수호는 이번 승리의 일등공신은 주오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상대 정글을 말리기 위해 카운터 픽을 한 것도 그렇고, 그 후에 상대 정글을 따라다니면서 위치를 파악해 주면서 시야를 잡아줬기 때문에 플레이하기가 편했다. 덕분에 미드에서 솔킬도 나올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지막 한타에서 OZ가 아닌 상대 본진을 띄워 진입을 막은 게 컸다. 수호는 이번 판에서 본인의 힘으로 이룬 건 하나도 없다고 여겼다.
승부욕이 강한 수호의 가슴이 괜히 부글거렸다.
“수호야, 왜 그래?”
말없이 장비만 꾹꾹 챙기는 수호 앞으로 주오의 얼굴이 훅 다가왔다. 수호는 고개를 뒤로 빠끔 빼고는 뚱한 얼굴로 주오를 바라봤다.
주오는 눈을 깜빡거리며 멀뚱히 눈을 맞췄다. 대답이 없는 수호가 혹시 기분이 상한 걸까, 아니면 어디가 아픈 걸까 걱정하는 다갈색 시선에 수호는 고개를 돌렸다.
“다음에는 제가 이길 거예요.”
“어? 아, 우리 같은 팀인데.”
“그래도 제가 이길 거예요.”
늘 뚱하기만 하던 수호의 시선이 반짝였다. 주오는 같은 팀에게도 승부욕을 불태우는 수호가 귀여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수호야, 수호야.”
“왜요?”
“나 부탁이 있어. 들어줄래?”
키보드를 백팩에 집어넣은 수호가 주오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주오는 두 팔을 활짝 벌리고는 방긋 웃었다.
“기쁨의 포옹. 안 돼?”
덩치는 산만 한 사람이 이럴 때마다 꼭 작은 강아지 같았다. 주인을 쫄랑거리며 따라다니고 시도 때도 없이 발라당 누워서 애교를 부리는 순한 강아지. 그런 주오가 수호는 싫지 않았다.
백팩에 팔을 끼워 넣은 수호가 주오에게 다가가 팔을 벌렸다. 등을 두어 번 토닥이자 갑자기 어깨에 두툼한 팔이 훅 감겨왔다. 그 때문에 주오의 체취가 한 번에 훅 밀려들어 왔다. 숙소에서 함께 쓰는 코코넛향 보디워시 향기가 코끝이 간지러울 만큼 달콤했다.
분명 아침에 씻었을 텐데 아직도 향이 남아 있는 게 신기했다. 이 향이 이렇게 좋았었는지 수호는 문득 궁금해졌다.
“향 좋네요.”
“응? 무슨 향?”
“보디워시 향이요. 아직도 나는 게 신기해요.”
주오의 어깨에 턱을 올린 수호가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폭 묻었다. 그래서 수호는 주오의 귀가 화르륵 붉어진 걸 보지 못했다.
“수호한테서도 같은 향 나. 달콤한 냄새. 맛있을 거 같아.”
“맛없어요. 먹지 마요.”
“그래요. 먹지 말고 빨리 가요! 카메라 앞에서 대체 뭐 하는 거예요!”
아직 카메라가 선수석을 찍고 있음에도 수호와 주오가 떨어질 기미가 안 보이자 은기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음성은 안 들어간다고 해도 뭐 하는 거야, 정말. 투덜거리는 은기 뒤에서 진형이 웃고 있었다.
“곧 MVP 선정 결과 나오니까 빨리 대기실 가서 짐 놓고 와.”
“네.”
첫 세트에서 MVP를 받은 건 수호였다. 미드에서의 솔로킬과 마지막 한타에서 세 선수를 잡아낸 게 컸다. 하지만 수호는 만족하지 못했다. MVP는 승리에 크게 기여한 선수에게 주어진다. 보통은 화려한 플레이가 많이 나오는 미드나 원딜 쪽에서 많이 뽑혔다.
수호는 자신이 미드여서 받았던 것뿐이라고 여겼다. 첫 세트에서 정말 처음부터 승리를 위해 발판을 쌓고 마지막까지 묵묵하게 공헌한 건 주오였다. 그리고 두 번째 세트에서도 주오는 완벽했다.
타 팀에 있을 때도 조용히 설계를 잘하는 선수라고 생각을 했지만, 같은 팀에서 느껴본 주오는 누구보다 게임 설계를 완벽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처음 시작 동선부터 시야를 잡는 위치, 라인을 개입하는 타이밍까지. 모든 게 계산되어 있었다.
그렇게 세세한 플레이는 수호로선 해보지도 못했고, 생각도 못 해봤던 것이었다. 체이스라는 게임이 피지컬만이 아닌 뇌지컬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를 주오를 보면서 깨달았다.
* * *
[두 번째 세트의 MVP가 나왔습니다. RAIN 선수입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관객석에서 환호성이 울렸다. 열기가 감도는 경기장 때문인지 여전히 흥분감을 감추지 못한 유기현 해설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첫 세트 때부터 상대 정글을 압박하고 시야를 잡아주던 게 참 예술이었죠!]
[네, 맞습니다! 그런 플레이는 킬과 비교하면 수수해서 언급이 잘 되지 않지만, 저는 솔직히 첫 세트 때 MVP를 RAIN 선수가 받아도 이상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완벽한 정글 플레이였습니다!]
[네! 두 번째 세트에선 갱킹 위주의 플레이로 라이너들 성장에 많은 도움을 줬었죠.]
유기현과 박동진이 쿵짝이 맞아 주오를 칭찬하기 바빴다. 시끄러운 두 해설 사이에서 이영중 캐스터가 마이크를 잡았다.
[RAIN 선수의 칭찬이 끊이지를 않는군요. 그만큼 훌륭한 플레이였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자, 그러면 오늘의 MVP인 SUHO 선수와 RAIN 선수를 만나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영중 캐스터의 힘찬 인사와 함께 카메라가 수호와 주오를 비췄다. 주오는 카메라를 향해 손은 흔들었고 수호는 고개를 꾸벅였다.
[이야, 오늘 매치업에 대해 사람들의 기대가 많았는데 승리하게 돼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우선 주장인 RAIN 선수부터 말씀해 주세요.]
먼저 마이크를 잡은 주오가 입을 열었다.
“2위 팀을 상대로 2대0으로 승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플레이들이 나와서 더 즐거웠습니다.”
“저도 승리해서 좋습니다.”
두 사람의 기쁘다는 소감에 유기현 해설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여전히 경기의 열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는지 안경 너머로 눈이 반짝거렸다.
[진짜 두 분 모두 오늘 엄청난 플레이를 보여주셨습니다. 첫 세트에서 나온 미드 솔로킬! 상대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이라는 OZ 선수였는데, OZ 선수를 상대로 솔로킬을 낸 소감이 어떻습니까?]
수호는 자신에게 향해진 질문에 입을 열었다. 솔직히 소감이라고 할 건 딱히 없기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느라 말이 나온 건 입을 열고 나서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음, 주목받는 선수에게 따낸 솔로킬이라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직 OZ 선수도 SUHO 선수를 따라잡으려면 더 노력해야겠군요. SUHO 선수가 보기에 OZ 선수는 어떤 선수 같습니까?]
“피지컬이 좋은 선수 같습니다.”
이영중 캐스터는 수호의 대답이 신기했는지 호오, 하는 반응과 함께 다시 질문을 던져왔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첫 세트에서 저희가 골렘 둥지 쪽 시야를 다 잡아놨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야를 피해서 오히려 저희 진영 쪽에서 나와 순식간에 MOO와 DOYOU 선수를 잡아내는 걸 보고 피지컬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곤조곤 이어지는 수호의 답변에 유기현 해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설을 하기 전 프로 선수였던 유기현이 입을 열었다.
[그때 OZ 선수가 승부수를 띄우지 않았다면 아마 주이는 아무것도 못 하고 그대로 졌을 테니까요. 신인인데도 과감한 전투 능력과 판단력을 겸비한 OZ 선수가 견제될 듯하네요.]
“네, 앞으로가 기대되는 선수인 것 같습니다.”
[경쟁자가 있어야 서로 발전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SUHO 선수와 OZ 선수의 재대결을 기대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한타에서 RAIN 선수는 OZ 선수는 보는 게 아니라 상대 본진을 보셨는데 그 이유는 뭘까요?]
박동진 해설의 물음에 주오가 수호를 보고는 싱긋 웃어 보였다. 수호는 갑자기 왜 자신을 보고 웃을까 의아했다.
“OZ 선수는 우찬이와 수호가 마무리해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까지 그쪽에 투자하는 건 과투자인 것 같아서 차라리 상대 본진의 발을 잡고 있는 편이 전투에 더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혹시 그러다가 본인이 죽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으셨나요?]
보통 아무리 상대와 성장 차이가 있다고 해도 세 캐릭터의 중앙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죽을 걸 감내하고 내려야 하는 결단이었지만, 주오는 달리 판단했다.
“OZ 선수를 처리하고 수호와 우찬이가 저한테 오는 시간이 제가 주이 선수들에게 죽는 시간보다 더 빠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이템도 단단한 템들로 세팅해서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주오의 답변에 유기현 해설이 감탄 어린 효과음을 냈다.
[역시 게임을 세세하게 보시는 RAIN 선수입니다. 오늘의 승리로 총 6연승을 달리고 있는데요. 소감이 어떻습니까?]
“6연승을 하고 있어서 기쁘긴 하지만 아직 남은 대진이 쟁쟁한 팀들이 많아서 더 많이 연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뻔한 답변이었지만 말을 부드럽고 조리 있게 잘하는 탓인지 주오의 말은 다 새롭게만 들렸다. 고개를 꾸벅꾸벅 끄덕이던 이영중 캐스터가 마이크를 잡았다.
[네! 앞으로도 승리를 더 쌓아가길 바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팬분들께 한마디씩 해주세요!]
“우선 바쁘신 와중에 이렇게 직관도 오시고, 경기 영상을 보면서 응원해 주시는 팬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모습으로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하하, 네! 승리 인터뷰 감사했습니다. 그러면 다음 경기 때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이영중 캐스터와 말과 함께 수호와 주오를 비추던 카메라가 점점 멀어졌다. 주오는 그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이내 수호를 향해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였다.
수호는 갑자기 날아든 하트 세례에 멀뚱히 주오를 올려다봤다. 주오는 여전히 엄지와 검지로 만든 하트를 수호를 향해 내밀고 있었다.
“하트야.”
“그건 저도 알아요.”
“혹시나 수호가 잊어버렸을까 봐 만들어봤어.”
무엇을 잊어버린다는 건지 몰라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를 못 하는 수호에게 주오가 다가와 귓가에 속닥거렸다.
“내가 수호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어요.”
수호는 귓바퀴를 간지럽히는 주오의 숨결에 움찔거리며 고개를 뒤로 뺐다. 이렇게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주오가 밀고 들어올 때마다 수호는 심장이 바들바들 떨리는 느낌을 받았다.
주오는 그런 수호의 심정을 모르는지 그저 화사하게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흔들어 보였다.
“……가요.”
“수호 귀여워.”
“…….”
수호는 그저 몸을 돌렸다. 정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평소처럼 뚱한 얼굴이었지만, 속으로는 번뇌를 느끼는 수호의 뒤로 주오가 웃으며 쫓아왔다.
수호는 한 걸음 뒤에서 들리는 주오의 발소리가 신경 쓰였다. 돌아보지 않아도 분명 싱글거리고 있을 주오의 얼굴이 떠올라 수호는 걸음을 더욱 빨리했다.
요즘 들어 왜 이렇게 주오가 신경 쓰이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백 후 애정 표현이 전보다 과해지긴 했지만 그것 말고는 변한 게 없었다. 하지만 수호는 묘하게 주오가 불편했다. 그가 다가올 때마다, 좋아한다고 말을 할 때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이 꾹 다물어졌다.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불편했다. 그렇다고 주오가 싫은 거냐고 물으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같이 있으면 묘하게 불편하지만 그래도 떨어져 있고 싶진 않은 사람. 계속 웃는 얼굴이 보고 싶은 사람.
수호는 사람에게서 처음 느껴본 이 기묘한 느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곰곰이 뒤를 따르는 주오에 대해 생각하던 수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고심하는 얼굴로 길을 가던 수호는 갑자기 앞을 막아선 사람으로 인해 걸음을 멈췄다.
“…….”
“어? 수호야!”
수호와 주오의 앞을 막아선 사람은 주이의 감독 윤채현이었다. 제라드로 이적하고 오랜만에 만난 채현에게 수호는 고개를 꾸벅였다.
“오랜만이에요.”
“여전히 딱딱하네. 아, RAIN도 같이 있네. 반가워요.”
“감독님, 안녕하세요.”
수호의 뒤에 있던 주오에게 채현이 인사를 건네자 주오 웃으며 답했다. 사람 좋게 웃는 주오를 보며 채현도 미소 지었다.
“오늘 진짜 잘하더라. 레인 선수가 잘하는 선수인 줄은 알았는데 오늘은 더 놀랐어요.”
“칭찬 감사합니다. 주이도 이번에 새로 합 맞추는 선수랑 신인도 있는데 플레이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연습한 결과가 나와서 다행이지. 그래도 아직 더 키워야겠더라. 오늘 제라드랑 체격 차이 나는 게 확 느껴지더라고.”
“저희도 그만큼 열심히 할 테니 다음에도 재밌게 경기해요.”
“그래. 그럼 나도 이만 애들한테 가봐야겠다. 수호 너 조심해라. 다음에는 꼭 이길 거니까.”
자신 있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채현에게 수호는 고개를 꾸벅였다. 저 사람이 저렇게 자신만만하다는 건 그렇게 만들 자신이 확실하게 있다는 의미였다. 채현 밑에서 우승을 했던 수호였기에 알 수 있었다.
“아직은 제가 더 해먹고 싶어요.”
“하하, 역시 수호는 승부욕이 강하네. 그래 그럴 수 있을지 한번 보자.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볼게. 진형이한테 안부 전해줘!”
채현이 손을 흔들며 주이의 대기실이 있는 방향으로 사라졌다. 채현의 뒷모습을 묵묵히 보던 수호는 갑자기 어깨 뒤에서 쑥 나타난 주오의 얼굴에 화들짝 놀랐다.
“어…… 미안해. 그렇게 놀랄 줄 몰랐어.”
기겁한 수호는 어느새 복도 벽에 바짝 붙어 있었다. 주오는 놀라게 해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수호의 놀란 심장은 쉽사리 진정되지 못하고 쿵쿵 뛰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할 말 있어요?”
“있긴 한데……. 근데 괜찮아? 많이 놀랐어?”
“네.”
“미안해.”
“미안해할 건 아니에요. 제가 놀란 거니까. 그런데 무슨 말 하려고요?”
여전히 경계 어린 눈을 한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수호에게 주오가 눈가를 접어 웃었다. 수호는 괜히 숙소 보디워시의 달달한 코코넛 향이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귓가가 뜨거워지는 감각에 수호는 주오를 보던 시선을 돌려 바닥을 바라봤다.
평소와 달리 당황한 수호를 보며 주오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냥, 새삼 다시 반했다고 말하고 싶었어. 윤채현 감독님한테 더 해먹고 싶다고 말하는데 수호가 너무 멋있는 거 있지.”
“그게 뭐가 멋있어요.”
뚱한 얼굴로 대답하는 수호에게 주오가 한 걸음 다가갔다. 그러자 수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자신감 있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그리고 말한 걸 현실로 만들 수 있는 실력까지 너무 섹시해.”
“정말 우찬이한테 말투 옮았네요.”
“응? 이건 정말로 섹시해서 하는 말인데. 장난 아니야.”
장난이 아니라는 주오의 말에 수호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갑자기 주오가 고백했을 때 했던 ‘키스하고 싶다고 하면 미워하겠지’라던 말이 떠올랐다. 왜 갑자기 그 말이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 말이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형의 섹시의 기준이 이상한 것 같아요.”
“이상하지 않아.”
“이상해요.”
“아니라니까?”
갑자기 시작된 섹시하다, 아니다를 두고 경기장 복도에서 한동안 두 사람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실랑이는 두 사람을 찾아 나선 진형이 나타나서야 끝이 났다.
“너네 대체 여기서 뭐 하냐. 빨리 돌아가서 피드백해야지.”
“네.”
“죄송합니다.”
진형에게 끌려 연습실로 돌아가는 주오와 수호 사이에 말은 없었다. 늘 옆자리에 앉던 두 사람이었지만, 이번엔 그들 사이에 우찬이 앉았다. 그 덕에 주오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곤란하던 수호는 마음 편하게 연습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거리를 두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수호의 시선은 계속 주오에게 향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를 볼 때마다 주오와 눈이 마주쳤고, 그는 그때마다 눈가를 접어 웃었다.
주오의 미소를 볼 때마다 귓가가 뜨거워져서 수호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이상했다. 뭐라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정말로 뭔가 이상했다.
* * *
[게임/1985622] 오늘 자 경기
커뮤니티 터졌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진짜 치킨 먹으면서 봤는지 치킨이 안 아깝더라;; 사실 2대0으로 원사이드 경기긴 했는데 세트마다 치고받고 해서 심장 졸이긴 했음.
일단 oz 신인인데 제라드한테 한 방씩 먹이는 거 보니까 진짜 발굴이었음. 이대로만 계속 가면 나중에 진짜 커질 거 같아ㅠㅠㅠ 그 골렘 둥지에서 갑자기 나타나서 무랑 두유 딸 때 진짜 나도 모르게 소리 질렀다.
그리고 수호는 진짜 여전히 잘하더라. 미드에서 oz 솔킬 내는 거 보면 답이 나옴. 맨날 커리어빨이라고 이제 피지컬 죽었다고 하는데 그 장면에서 그 말 쏙 들어감;;;;
그리고 내가 정글 유저라 그런가. 김레인이 오늘 개미쳤다고 느꼈음. 처음에 시야싸움도 그렇고 상대 정글 숨도 못 쉬게 만들어주는데 진짜 정글이 그렇게 하니까 모든 라인이 개편해 보이더라. 진짜 김레인 영원해.... 진짜 이제 남은 프로 중에서 노장에 속하는데 아직까지도 저렇게 잘하면 어쩌라는 거임???
진짜 다음에 주이랑 제라드 붙는 거 겁나 기대된다.
└ 진짜 쌉인정. 오늘 나도 굽네 먹으면서 봤는데 진짜 유독 맛있게 느껴지더랔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원사이드 경기였는데도 재밋엇음. oz도 진짜 기대되는 신인인 건 맞는 듯.
└ 나는 개인적으로 오늘 미드만 보면 수호보단 oz가 더 잘한 거 같음. 수호는 레인이 시야 잡아주고 그래서 편해진 게 좀 크다고 봄. 전투에서도 레인이 본 데 뚫어서 수호가 잡은 거였음.
└ ? 미드 솔킬 못 봤나;;;;
└ 난 이 의견에 동의함. 솔직히 혼자서 뭘 보여준 건 oz였음.
└ 진짜 제라드가 이겼는데도 oz팬들 인정을 못 하네.
└ 그냥 수호 팬들이 인정하기 싫은 거 아님???
└ ㅅㅂ 그만 좀 싸우라고
└ 오늘 전 김레인에게 제 영혼을 드렸습니다.
└ 응 안받아줌~
[게임/1999999] 김레인x이수호 떡밥 또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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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옹 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레인 갑자기 팔 벌리고 저러는 거 안아달라고 저러는 거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와중에 수호 안아주는 것도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얘네는 무슨 날이 갈수록 만담 찍는 것도 아니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저는 좋아요. 계속 그래주세요. 사실 포옹 말고 더한 것도 괜찮음 ㅠㅠㅠㅠㅠ
└ CKR 공식 커플.
└ ㄴㄴ 레인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님?
└ 넌 안보이냐? 일방적이면 수호가 안아줬겠ㅇ어????????
└ 진짴ㅋㅋㅋㅋㅋㅋ게임에서도 레인이 미드 겁나 봐주던데 현실에서도 수호만 보넼ㅋㅋ 이쯤 되면 진짜 찐사랑인 듯.
└ 나만 느낀 거 아니었구낰ㅋㅋㅋㅋㅋㅋㅋ 자꾸 수호 잡힐 때마다 근처에서 김레인 알짱거리고 있음zzzz
└ 아 진짜 얘네 점점 친해지는 게 너무 보기 좋아ㅠㅠ 막 보고 있으면 괜히 애들 소꿉장난 하는 거 같음 (둘 다 나보다 나이 많은데...)
└ 진짜 보고 있으면 웃기면서 하찮고 귀여움ㅋㅋㅋㅋㅋㅋㅋ 둘 다 커리어 지리고, 게임판에서 유명한 애들인데 현실에선 왜 이렇게 둥글둥글하냨ㅋㅋㅋㅋ
└ 진짜 김레인 저 덩치로 저러는 데 귀여워 보이는 거 실화임? 190 넘는 거구가 저러고 있으면 징그러울 텐데 김레인은 왜 이렇게 잘 어울리냐.
└ 얼굴이 잘났잖음;;;
└ 이거 쌉ㅇㅈ
└ 이수호도 답싹답싹 안기는 것 보셈. 그리고 왜 김레인 목덜미에 비비적거리는 건데;;;
└ 아 나 지금 봤는데 뭐야ㅠㅠ 개귀엽자나ㅠㅠㅠㅠ
[게임/2000132] 인터뷰 끝나고 카메라 돌아갈 때 얘네 뭐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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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한테 인사하다 말고 갑자기 수호한테 손가락 하트 날리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건 어떻게 발견한 거얔ㅋㅋㅋㅋㅋㅋ
└ 진짜 개웃기넼ㅋㅋㅋㅋㅋㅋㅋ 카메라 돌아갈 때 저러는 거 보면 언플은 아닌가 본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좋아하나봄ㅋㅋㅋㅋㅋㅋ
└ 이제 알았나요... 김레인은 언제나 수호한테 진심이었어요(김레인 5년 덕질 중)
└ 진짜 ㄱㅆ이 이거 어케 발견했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개찰나의 순간이넼ㅋㅋㅋㅋㅋㅋ
└ ㄱㅆ이도 이 두 사람한테 진심인가 본데??
└ 김레인 진짜ㅠㅠㅠ 안쓰러워....수호야 제발 받아줘... 언제나 너만 보자나ㅠㅠㅠ
└ 진짜 김호구.... 언제까지 호구 할래ㅠㅠㅠ 제발 호구에서 벗어나길...
└ 이수호 표정 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딱 이런 느낌임ㅋㅋㅋㅋㅋㅋㅋ
└ 그 와중에 우리 레인은 참 밝게 웃는다... 진짜 어떤 의미로 존경스러움... 받아주지 않는 사람한테 5년이나 저러고 있는데 진짜 한결같다...
└ 어떻게 보면 독종이라니까.
└ 그러니까 월챔 우승도 해보고, 아직까지도 잘하겠짘ㅋㅋㅋㅋ
└ 레인 형, 제발 꽃길만 걸어요. 나는 언제나 김주책 씨의 사랑을 응원해!!
└ 주책이라닠ㅋㅋ 근데 인정이닼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