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40)

* * *

수호는 침대에 누워 끔뻑끔뻑 눈만 깜빡이고 있었다. 주이와의 계약이 종료됐다. 재계약 의사를 물었지만, 아직 마음의 결심이 서지 않은 수호는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짐을 챙겨 본가로 돌아왔다.

“이수호, 엄마가 밥 먹으래.”

핸드폰을 쥔 채 멍하니 있던 수호는 방문을 열고 얼굴을 내민 이창호를 바라봤다. 이씨 집안의 첫째, 창호는 수호의 대답도 듣지 않고 사라졌다.

수호는 거실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침대에서 일어났다. 벌써 시간이 저녁이 되어 있었다.

주방으로 향하자 형인 창호와 누나인 수빈이 식탁에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딱 수호의 자리에 국그릇을 놓던 엄마가 수호를 보자 빨리 앉으라고 손짓했다.

“막둥이가 좋아하는 버섯찌개 했어.”

“응, 잘 먹을게요.”

한식 사랑이 지대한 수호 앞에 오랜만에 엄마의 손맛이 가득 들어간 버섯찌개가 김을 모락모락 내고 있었다. 호로록 국물을 떠먹는 수호를 흐뭇한 얼굴로 보던 엄마, 정미숙은 앞에 앉은 창호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도끼눈을 했다.

“밤새 술이나 퍼먹고 다니고 아주 잘났다.”

“졸업 축하 파티였어.”

“어후, 잘나셨어. 또 술에 떡이 돼서 새벽에 기어들어 와봐. 그땐 문 안 열어줄 거야.”

“알겠으니까 그만 좀 해요.”

새벽부터 이어진 미숙의 잔소리에 창호가 눈가를 찡그리고는 밥을 입에 욱여넣었다. 조용히 옆에서 식사하고 있던 수빈이 수호를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

“너 무슨 일 있었어?”

“……?”

갑자기 날아든 수빈의 물음에 국물만 떠먹고 있던 수호가 의아한 눈을 했다. 수빈은 찬찬히 수호의 얼굴을 뜯어 살폈다. 어느새 창호와 미숙까지 합세해 세 쌍의 시선이 뚫어져라 수호에게 향하고 있었다. 수호는 이 익숙하고 부담스러운 시선에 그저 고개를 저었다.

“아무 일도 없어.”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이는데.”

“지금 보니까 그러긴 하네. 막둥이 무슨 일 있어?”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요즘 힘들어?”

수빈, 미숙, 창호가 앞다퉈 관심을 보였다. 수호는 세 사람의 질문에 다시 고개를 저었다. 힘든 일도 없었고, 기분이 안 좋지도 않았다. 무슨 일도 없었다.

하지만 가족들의 생각은 달랐다. 수호는 늘 똑같이 뚱한 느낌의 얼굴이었지만, 지금 유독 입술을 꾹 다물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은 다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게 수호가 고민에 빠졌을 때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가족끼리 말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주오가 하는 것처럼 귀엽다, 좋다 같은 애정 표현을 남발하는 가족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서로 사이가 좋았다. 동생과 막둥이에게 관심이 많은 형, 누나와 엄마는 뚫어져라 수호를 보았다.

수호의 대답이 미심쩍은지 수빈이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팀 계약 때문에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물론 팀 계약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 상황이긴 했다. 하지만 고민까지는 아니라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이번엔 창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뭐가 문제야?”

“문제없는데.”

“없기는. 너 표정이 딱 옛날에 프로게이머 시작할 때 고민하던 표정인데.”

창호가 계란말이를 한 덩이 입에 넣으며 어서 바른대로 말하라고 눈빛을 보내왔다. 하지만 수호는 정말 말할 게 없었다. 고민 같은 건 없었다. 그거 생각이 조금 복잡할 뿐.

입을 꾹 다물고 멀뚱히 세 사람을 쳐다보고만 있는 수호에게 미숙이 입을 열었다.

“막둥이가 없다면 없는 거겠지. 그래도 고민되는 거 있으면 꼭 엄마나 형, 누나한테 말해. 혼자 끙끙거리지 말고.”

“응, 알겠어.”

“진짜 엄청 고민하는 표정인데……. 고민이라고 해서 없다고 하는 건가.”

수호는 정말 말한 대로 알아먹는 사람이라는 걸 22년 동안 겪어온 창호가 눈가를 찡그렸다. 동생의 의사소통 능력이 걱정스러운 창호는 수호를 빤히 보고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복잡하다거나, 걱정된다거나, 고민되는 것들. 혼자 해결 못 할 것 같은 거면 꼭 얘기해. 완전하게 해결해 주진 못하더라도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수는 있으니까.”

“응, 알겠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들이 한두 개쯤 있지만, 수호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가족들에게 물어봐야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요즘 수호의 머리는 복잡했다.

팀 재계약이냐, 아니면 이적이냐. 그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수호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따로 있었다.

수호는 누워 있는 동안에도, 밥을 먹는 동안에도 꼭 쥐고 있었던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 하지만 여전히 도착해 있는 연락은 없었다.

주오와 저녁을 먹었던 그날, 그때 이후로 주오에게서 연락이 끊겼다. 그게 벌써 일주일 전이었다.

수호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핸드폰이 잠잠해지자 생각에 잠겼다. 어쩌면 당황스럽다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늘 핸드폰을 시끄럽게 만들던 주오가 왜 갑자기 연락을 하지 않는 걸까. 수호는 여전히 저녁을 먹었던 그날 나눴던 연락을 끝으로 더 이상 주오에게서 연락이 없는 메시지방을 켰다.

[GER.D RAIN: 수호야, 오늘 즐거웠어. 만나줘서 고마워 :D]

[네. 다음에는 제가 살게요.]

[GER.D RAIN: 정말? 다음에 꼭 사줘야 해, 약속이야 *^^* 이제 어서 자. 내가 다음에 또 연락할게]

[네, 형도 안녕히 주무세요.]

수호는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를 꼼꼼히 바라봤다. 분명 다음에 연락한다고 했다. 하지만 주오는 연락이 없었다. 바쁜 걸까. 만약 그게 아니라면 화가 났을까. 어느새 수호의 입술이 다시 꾹 다물렸다.

그날 아쉬운 듯 눈을 빛내던 주오의 모습이 몽글몽글 떠올랐다.

침대에 앉은 수호는 찬찬히 그날 일을 돌이켜 봤다. 수호가 생각하기에 주오는 그때 아쉽기도 했겠지만, 화가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멀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자신을 보러 찾아왔던 주오였다. 그런 주오에게 밥도 얻어 먹은 데다 심부름을 해야 한다고 빨리 보내 버렸다. 조금 더 같이 있고 싶어 했던 주오가 그런 자신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났던 게 아닐까 싶었다.

곰곰이 주오가 연락을 하지 않는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하던 수호는 물끄러미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생각에 잠긴 얼굴 위로 연락을 해봐야 할까, 하는 고민이 얼핏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수호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만약 정말 화가 나서 연락을 하지 않는 거라면 섣불리 연락하는 게 더 화를 돋우는 일이지 않을까.

차근차근 할 말을 정리해서 연락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판단을 내린 수호가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어떻게, 언제 연락하지.

그 생각이 수호의 머릿속을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때 쥐고 있던 핸드폰이 지잉지잉 울리기 시작했다. 배터리 다 된 인형처럼 침대에 축 늘어져 있던 수호가 번뜩 일어나 핸드폰을 봤다.

주오일까 싶었지만 핸드폰 화면에 뜬 건 모르는 번호였다.

“누구지.”

누굴까 고민하던 수호는 지금이 팀 이적 시기라는 걸 깨달았다. 팀에 소속되어 있을 때는 외부 팀과 연락이 보통 불가능했지만, 이제 주이와 계약이 종료된 마당에 그런 규율은 무용지물이었다. 이적 제의일 게 분명했다.

진동이 꺼지지 않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던 수호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이수호 선수 핸드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아, 저희는 제라드 사무국입니다. 전에도 한번 인사드렸던 적 있었는데 이선미라고 기억하세요?

이선미. 수호도 몇 번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주이와 계약 전에도 제라드로 오라고 연락이 왔었고, 틈틈이 대회장에서 얼굴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스리슬쩍 제라드의 좋은 점을 어필하던 사람이었다.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수호 선수가 기억해 주셔서 정말 기분 좋네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주이와 계약이 종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드렸습니다. 제라드의 미드라이너로 영입하고 싶습니다. 만나 뵙고 말씀 나누고 싶은데 혹시 시간 되실까요?

“아…….”

수호도 예상했던 상황이었다. 수호도 다른 팀의 이적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주이에서 계약 기간에 끝나기 전 재계약을 제안했을 때에 전처럼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프로게이머는 언제나 우승을 목표로 한다. 그건 수호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수호는 더더욱 우승에 집착했다.

그간 주이가 우승할 수 있었던 주된 전력은 감독 윤채현, 미드라이너인 수호, 그리고 서포터였던 박선우였다.

감독인 윤채현은 주이에 남아 있지만, 박선우는 제라드로 거취를 옮겼다. 그리고 주이로 새로 온 서포터는 유명하기는 했지만, S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선수였다. 그 상태에서 우승을 노리기엔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었다.

제라드와 월드 챔피언십에서 3:2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주이였기에 박선우가 팀을 나간 건 큰 사건이었다. 수호는 전력이 다운된 곳에 더 이상 머무를 생각이 없었다.

낯을 가리는 탓에 팀을 자주 이적하지 않은 수호였지만, 우승을 향한 열망은 누구보다 뛰어났기에 고민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주이에서 제안한 재계약은 일단 보류하기로 결정한 상태였다.

수호가 생각에 잠겨 대답을 하지 않자 상대방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최고의 대우를 해드릴 수 있습니다. 꼭 수호 선수와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최고의 대우. 제라드라면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이 후원하는 팀이었기에 허황된 말은 아니었다.

“제라드 팀 사무실로 가면 될까요?”

-번거로우시면 저희가 직접 찾아가도 됩니다!

제라드는 수호가 만날 의향을 내비치자 기쁜 목소리로 답해왔다. 수호는 그런 상대에게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계약 때문에 만나야 한다면 제라드 사무실이 나았다.

그곳엔 주오가 있었다. 수호가 알기로는 제라드는 한 건물의 세 개 층을 사무실과 연습실 등으로 쓰고 있었다. 사무실로 찾아가면 주오를 만날 수 있을 터였다.

“아뇨,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그러시면 편하실 때 찾아주세요. 언제가 괜찮으신가요?

“내일모레 금요일, 2시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그러면 그때 뵙겠습니다. 수호 선수와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네, 그러면 그때 찾아뵙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제라드 선수들도 사무실에 있나요?”

수호의 질문이 뜻밖이었는지 잠시 상대방이 침묵했다. 그러고는 이내 다시 밝은 목소리를 말을 꺼내왔다.

-두유 선수 때문에 그러시나요? 제라드 선수들도 그 시간에 연습 시간이라 한 층 아래인 연습실에서 있을 겁니다. 두유 선수에게 말씀 전해 드릴까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러면 내일모레 찾아뵙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수호는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바라보다 다시 침대에 풀썩 쓰러졌다.

수호의 얼굴 위로 옅은 긴장감이 엿보였다. 정말 주오가 화가 났으면 어쩌나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수호는 머리를 데굴데굴 굴려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지 생각에 빠졌다. 화가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가 지금 수호에게 있어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 * *

제라드의 사무실과 연습실은 수호의 생각보다 더욱 컸다. 수호가 머물고 있는 주이는 월드 챔피언십 우승컵을 두 번이나 들었음에도 처우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주이를 후원하는 회사가 그렇지 규모가 크지 않기도 했지만, e-스포츠에 그렇게 투자를 많이 하지 않기도 했다. 그에 비해 제라드는 후원사에서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는 게 티가 났다.

주이와는 확연히 다른 제라드의 규모에 수호는 제법 놀랐다. 그리고 제라드 사무국은 전화 통화에서도 그렇게 자신하던 한국 최고의 대우를 해주겠다는 말을 지켰다.

제라드가 제안한 연봉은 여느 팀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았고, 케어 또한 전문적이었다.

수호는 자신을 어떻게든 제라드로 영입하려 열심히 입을 놀리는 이선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 선수를 이렇게 제라드 사무실에서 보게 되다니 정말 기쁘네요. 전처럼 생각 없다고 하시면 어쩌나 되게 걱정했거든요.”

그런 적이 있긴 했었다. 전에 주이와 재계약을 했을 때도 제라드 쪽에서 오퍼가 왔었다. 그때도 이선미가 연락을 해왔고, 수호는 매정하게 느껴질 만큼 단호하게 생각 없다고 딱 잘랐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거절했던 사람을 다시 마주하고 있자니 머쓱하긴 했다.

수호는 시선을 내렸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니까요. 계약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해 보고 답변드리겠습니다.”

“제라드로 오신다면 숙소부터 자잘한 식단, 체력 증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상담 등 많은 케어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꼭 수호 선수가 저희 팀으로 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선미는 활짝 웃었다. 팀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한 미소였다.

“네, 제안 온 곳 중에서 가장 조건이 좋아요. 좋은 쪽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거절할 이유가 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지금 수호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은 주오였다. 화가 나 있는 주오가 저와 같은 팀이 되는 걸 싫어할지도 몰랐다.

분명 저만 보면 있지도 않은 꼬리를 살랑거리며 찰싹 달라붙던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그런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니 조금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수호는 멍하니 테이블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김주오라는 사람을 더 마음에 들어 했었던 것 같다.

어쩐지 시무룩해진 수호가 꾹 다물고 있던 입술을 열었다.

“혹시 주오 형 잠시 만날 수 있나요? 이 시간에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조심스럽게 묻는 수호에게 선미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살며시 웃었다.

“레인 선수는 지금 아래층에서 선수들과 연습 중입니다. 수호 선수만 괜찮으면 연습실 잠시 둘러보시겠어요? 안까지는 못 들어가시겠지만, 밖에서 보실 수는 있어요.”

“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연습실 환경도 좋아서 수호 선수가 보고 계약할 마음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그러면 가실까요?”

선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수호에게 따라오라 손짓했다. 수호는 그녀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한 층당 면적이 넓은 탓인지 연습실 또한 규모가 제법 컸다. 1군과 2군, 그리고 아직 데뷔하지 않은 연습생들이 머무는 연습실까지 있었다. 그리고 TV와 소파, 여러 간식거리가 놓여 있는 휴게실까지 정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진짜 넓네요.”

“선수들이 편하게 연습하고 쉴 수 있도록 신경 썼습니다. 레인 선수가 있는 1군 연습실은 이쪽이에요. 아, 저쪽에 앉은 사람이 레인 씨예요.”

친절하게 선미가 어느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수호는 그녀가 한쪽을 가리키기 전부터 이미 주오를 발견하곤 그를 보고 있었다.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옆모습을 자랑하는 주오가 오더를 내리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수호는 주오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정말 전에 봤을 때와 달라진 것은 하나 없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괜히 샐쭉해졌다. 아픈 것도, 화난 것도 아니면서 왜 연락을 갑자기 하지 않았는지, 수호는 정말 궁금했다.

마음속으로 곰곰이 궁금증을 풀어가던 수호는 문득 주오와 눈을 맞추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

수호가 작게 탄성을 내지르는 순간 주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오가 앉았던 의자가 뒤로 쭈우욱 슬라이딩을 하면서 뒤편에 놓은 책상에 퍽 하고 부딪혔다. 그 소리에 선수들이 의아한 눈으로 주오를 바라봤지만, 그는 시선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연습실 문을 향해 다가왔다.

“수호야!”

벌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주오가 환하게 웃었다. 정말 너무 반갑다는 듯이 활짝 웃는 주오가 수호에게 한걸음에 다가왔다.

수호는 어안이 벙벙했다. 화났을 거라 생각했던 주오가 전보다 더욱 반갑게 자신을 바라보는 게 이해가 안 됐다. 화난 게 아니었나.

“여긴 어쩐 일이야? 혹시 계약하러 온 거야?”

생글거리는 주오의 뒤로 정말 기쁨의 오오라가 보이는 듯했다. 보고 있으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오오라.

수호는 주오에게 그가 했던 질문의 답이 아닌, 그동안 수호를 고민에 빠지게 했던 질문을 던졌다.

“연락한다고 했잖아요.”

“……응?”

“형이 연락한다고 했었는데 안 해서요. 혹시 그날 그렇게 보내서 화가 났나 해서요.”

뜬금없는 말이라는 건 말을 한 수호 본인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수호는 정말 궁금했다. 그가 화가 났는지, 그래서 연락을 안 하는 건지. 분명 하겠다고 했는데.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보는 수호를 마주한 주오가 당황스러운지 눈을 깜빡이다 이내 눈을 반달로 휘어 웃었다.

기분이 정말 좋아 보였다. 행복하게 웃는 주오의 얼굴이 유독 반짝였다. 수호는 어서 주오가 대답을 해주길 기다렸다.

“미안해. 제라드는 이적 기간 때에 외부와 연락을 못 하게 해서 답장을 못 했어. 그리고 화 안 났어. 내가 어떻게 수호한테 화를 내. 좋아하기도 바빠.”

주오는 자신과 수호 사이에 서 있는 선미를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뱉었다.

수호는 뚱한 얼굴로 주오를 바라봤다. 행복하게 웃는 주오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마음이 조금 풀어졌다. 수호는 주오가 화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호가 한결 풀어진 얼굴로 주오를 마주 봤다. 그래 봐야 뚱한 얼굴은 매한가지였지만.

하지만 수호에 대해 귀신같이 알고 있는 주오는 수호가 지금 기분이 평소로 돌아왔다는 걸 눈치채곤 수호에게 한 걸음 다가오며 물었다.

“그런데 수호야.”

“왜요?”

“내 연락 기다렸어?”

어느새 한 걸음 거리로 다가온 주오가 눈을 반짝였다. 꼭 연락을 기다렸다고 말해주길 바라는 듯 수호에게 닿은 주오의 시선이 맹목적이었다.

수호는 오랜만에 보는 주오의 다정하고 애정이 가득한 눈에 괜히 시선을 내렸다. 가슴이 몽글거리는 느낌이었다. 기분 나쁘지는 않지만, 낯선 느낌. 수호는 이게 뭘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형이 한다고 했으니까요.”

“내가 정말 미안해. 미리 말 못 해서. 다음에는 꼭, 꼭 수호한테 말해줄게.”

주오의 눈이 더욱 둥글게 휘었다. 수호는 그런 주오의 뺨을 손으로 꾹 누르며 밀어냈다.

“너무 가까워요.”

“미안.”

말은 그리했지만 주오에게 미안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수호는 주오를 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어쩌다 둘 사이에 놓여 이게 무슨 상황인가 눈을 굴리던 선미가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

“두 분 사이가 좋으시네요. 수호 선수가 레인 선수를 만나고 싶다고 해서 왔는데, 언제 이렇게 친해지셨어요?”

주오의 고개가 돌아갔다.

“수호가 저 만나고 싶다고 했어요?”

“네. 정확히는 만날 수 있나요, 라고 물어봤지만요.”

“수호가 먼저 날 만나고 싶어 하다니……. 수호야, 정말 감동이야.”

주오의 눈이 반짝거렸다.

수호는 오랜만에 받는 주오의 열정적인 시선이 적응되지 않았다. 수호는 몽글거리는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그때 불쑥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수호에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주오 형, 진짜 주책이다.”

선우가 짓궂게 웃으며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다. 그 뒤로 은기가 깊은 한숨을 내뱉고는 수호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이다.”

“응, 너도. 선우 형도 오랜만이에요.”

“오랜만은 무슨. 그런데 여긴 무슨 일이야?”

선우는 수호가 제라드에 있는 게 신기한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물었다. 그건 뒤에 서 있던 은기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도 수호를 빤히 바라봤다.

“그냥, 팀 이적할까 싶어서요.”

“제라드로 와. 여기 숙소도 진짜 좋더라.”

수호와 같은 팀이었던 선우가 생글거렸다. 전부터 같이 가자고 노래를 부르더니, 수호가 의적할 의향을 내비치자 선우가 옳다구나 하고 물고 늘어졌다.

수호는 제라드 자랑을 줄줄 늘어놓는 선우에게서 조용히 시선을 돌렸다.

“어, 뭐야. 이수호네? 선미 누나, 수호 우리 팀으로 이적해요?”

그때 낯선 음성이 연습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봉친놈이라고 유명한 BONG, 김우찬이 호기심 어린 눈을 한 채 서 있었다. 플레이도 미친놈같이 들이박는데, 실제 성격도 그래서 더 유명한 선수였다.

“아직은 아니야. 오늘은 얘기만 나누러 오셨어.”

“아아, 우리 미드 자리 비었는데 수호 오면 좋지. 너 고민하지 말고 들어와. 진짜 좋아.”

주오처럼 대회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수호와는 친분이 전혀 없는 김우찬이었다. 그런 우찬이 너무 자연스럽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걸 보면서 수호는 제라드 팀원들은 정말 다들 성격이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이 팀 사람들은 다들 낯을 가리지 않았다. 그래서 마당발들이 많은 팀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다. 수호랑은 전혀 연관이 없는 키워드였기에 관심이 없었지만 막상 이렇게 제라드 연습실에서 사람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느낌이 새로웠다. 도란도란, 시끌벅적한 느낌이었다.

“수호한테 부담 주지 마.”

“이게 무슨 부담이에요. 그냥 말하는 거지. 수호가 우리 팀 오면 가장 좋아할 사람이 형이면서 왜 그래요? 가식적이야, 김레인. 맨날 아닌 척만 해.”

“와, 우찬아, 그 표정 좀 역겹다.”

김우찬이 새침하게 몸을 꼬며 주오를 바라보자 선우가 온 진심을 담아서 우찬을 혐오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은기가 인상을 팍 찡그린 선우의 어깨를 토닥토닥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선우 형, 냅둬요. 반응해 주면 더 저러니까.”

투덕투덕 서로 꼬리잡기하는 것도 아니고 말을 줄줄 잇는 선수들에게 이선미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결국 와글와글 시끄러워진 분위기에 이선미가 머리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너네 들어가라.”

“어? 우리 시끄러워서 그래요? 누나 너무해. 완전 너무해!”

제라드 선수들끼리만 왁자지껄 떠드는 것에 수호가 질릴 것 같아 그들을 다시 연습실로 밀어 넣으려던 선미였으나, 우찬이 빼액 소리를 질러댔다.

“어후, 저 또라이 새끼. 야, 넌 진짜 들어와야겠다.”

선우가 시끄러운 우찬의 샤우팅에 귀를 막으며 인상을 찡그리더니 그의 뒷덜미를 잡아 연습실로 들어갔다.

“아아! 형, 놔봐요. 진짜 나 서운해!”

“시끄러, 이놈아! 아, 이수호, 잘 둘러보고 잘 생각해라. 난 네가 제라드 왔으면 좋겠다.”

“다음에 봬요.”

우찬과 선우의 뒤를 따라 연습실로 들어가던 은기가 손을 흔들었다.

“나도 연습실 가봐야겠다. 다음에 기회 되면 보자.”

그나마 팀 내에서 정상인을 고르라고 한다면 수호는 은기를 뽑을 것이다. 남들은 주오가 제일 차분하고 멀쩡하다고 하겠지만, 수호에겐 주오가 이 팀에서 제일 신기한 인간이었다.

가장 멀쩡한 은기까지 연습실로 들어가자 복도에는 주오와 선미만 남았다.

“누나, 수호 어디까지 구경시켜 줬어요?”

“아, 바로 1군 연습실로 온 거야. 네가 구경시켜 주게?”

“네, 휴게실만 갔다가 데려다주고 와도 되죠?”

손목에 찬 시계를 내려다보던 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근데 30분 정도 뒤에는 돌아와야 해.”

“알겠어요. 그럼 누나도 일 보세요.”

“그래, 부탁한다. 나보단 안면 있는 사람이랑 다니는 게 편할 거 같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천천히 둘러보다 가세요.”

“네,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넨 이선미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걸 확인한 주오가 수호를 보며 헤실헤실 웃었다.

수호는 전과 다름없이 자신을 보며 기쁘게 웃는 주오를 바라봤다. 주오는 수호의 옆에 붙어 이쪽으로 오라며 걸음을 옮겼다. 주오를 따라 간 곳은 넓은 휴게실이었다.

한쪽 벽에는 거대한 TV와 소파, 간식이 가득 들어 있는 냉장고 두 대와 식탁이 있었다. 그리고 만화책과 소설책들이 가득한 책장도 있었다. 주이도 휴게실은 있었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쉬라고 이것저것 가져다 놓은 휴게실은 처음이었기에 주위를 둘러보고 구경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살피는 수호가 귀여운 듯 주오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수호야, 뭐 마실래?”

“아, 저는 물이면 괜찮아요.”

수호의 대답에 주오는 냉장고에서 생수 한 병을 꺼내 수호 앞에 가져다 놨다. 8인용 식탁에 마주 않은 수호와 주오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봤다. 두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수호를 구경하는 주오의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수호는 꼴깍꼴깍 물을 넘기곤 입을 열었다.

“왜 그렇게 봐요?”

“오랜만이라 반가워서. 제라드로 이적할 생각 해준 것도 고맙고, 나 만나러 와줘서도 고마워. 나 많이 보고 싶었어?”

보고 싶었냐는 대답에 수호는 고개를 저었다. 보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저 그가 화가 났는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왜 연락을 안 하는지도.

“보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그래? 난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는 듯 시무룩하게 말을 뱉은 주오의 눈꼬리가 축 내려앉았다. 비를 맞고 처량하게 앉아 있는 강아지 같아 보였다. 제법 귀여운 것 같았다.

“그냥 화났나 싶었어요.”

“화는 진짜 안 났어. 내가 왜 화가 나.”

주오는 아까부터 자신이 화났을 거라고 생각하는 수호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의아한 눈을 했다. 수호는 괜히 물병을 돌돌 돌렸다.

“그때 형을 너무 빨리 보내 버린 것 같아서요.”

“아아, 괜찮아. 난 만나준 것만으로 너무 좋았어.”

“그럼 다행이지만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기분 좋아. 수호가 나 만나러 와줬다고 해서.”

그 말이 사실인 듯 주오는 기쁨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과 입이 둥글게 휘는 주오의 미소는 정말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멋있었다.

수호는 괜히 몽글거리는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보고 있기에 정말 너무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수호의 시선은 힐끔힐끔 주오에게 향했다.

“계약 조건도 들을 겸 왔어요.”

“제라드로 올 생각이야?”

“조건이 좋아서요. 괜찮은 것 같아요.”

“나는 수호가 나 때문에 안 올 줄 알았어.”

물병을 돌돌 돌리던 수호의 손이 멈칫했다. 시선을 들어 주오를 보자 그는 조금 씁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요즘 전보다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수호가 날 많이 불편해했잖아. 올스타전에서도 비슷하게 말했었고. 그래서 이번에도 같은 팀은 못 될 줄 알았어.”

물론 수호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제라드가 조건이 좋아도, 올 생각이 없었다. 주오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수호에게 주오는 그저 부담스러운 사람일 뿐이었기에 같은 팀이 되는 건 사양하고 싶었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던 수호지만, 막상 주오가 그 얘기를 꺼내면서 시무룩해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지금은 아니에요.”

“그러니까 지금 수호가 여기 있는 거겠지?”

이제는 자신이 그렇게 부담스러운 사람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주오가 전보다는 가벼운 표정을 해 보였다. 수호는 주오를 빤히 바라봤다.

지난 4년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늘 자신만 보면 어색하고 조심스럽게 웃으며 말을 걸던 김주오.

게임장 복도에서 마주치면 놀란 듯 눈을 뜨고는 이내 살금살금 다가와서 시시콜콜한 대화를 걸어왔었다. 안녕, 오늘 날씨 좋다, 취미가 뭐야 등.

그때는 정말 부담스럽기만 했다. 주오가 아무리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말을 걸었다 해도 수호는 주오의 마음보단 자신의 마음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피하기 급급했다.

그런데 그랬던 과거가 주오에게는 마음 아팠던 시간이었나 보다.

미안함에 마음이 축 가라앉았다. 수호도 반성하고 있었다. 얼굴만 가지고 사람을 판단해서 그를 불편해했던 자신이 참 어리다고 생각했다.

수호가 갑자기 반성의 시간을 가지며 축 처져 있자 주오가 웃음을 터뜨렸다. 낮은 웃음소리에 수호가 시선을 들자, 주오가 괜히 마음이 살랑거리게 되는 시선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미안해할 필요 없어.”

“그땐 제가 형을 잘 몰랐어요.”

“지금도 잘 모를걸?”

수호의 반성에 주오가 어깨를 으쓱하면 장난스럽게 말했다. 수호는 뭔가를 숨기는 듯한 주오의 의미심장한 어투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어떻게 타인의 모든 걸 알 수 있겠어요.”

매정하다면 매정한 수호의 대답에 주오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그렇긴 하지. 그러니까 알고 싶어 하는 거 아닐까? 서로를 잘 모르니까.”

모르니까 알고 싶어진다. 맞는 말이었다. 지금 수호의 상태가 그랬다. 관심도 없고, 오히려 불편하던 주오가 궁금했다. 그래서 그의 기분을 살피러 이곳까지 왔다. 본가와는 제법 거리가 있는 이곳까지 그래서 왔다.

“저는 요즘 형이 궁금해요.”

“……어?”

턱을 괴고 있던 주오의 표정이 멍해졌다. 수호는 이렇게 당황한 주오는 처음이라 신기한 마음에 그를 빤히 바라봤다. 뭐가 그렇게 놀랐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놀란 눈치였다.

주오는 많이 당황했는지 시선이 이곳저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았다. 이윽고 그의 시선이 수호에게 박혔다.

“……그 말 무슨 뜻이야?”

꼭 말속에 무슨 뜻을 숨겨놨냐고 말하는 듯한 주오의 태도에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무슨 뜻이라고 할 게 없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수호는 주오가 궁금할 뿐이었다.

“말 그대로 궁금하다는 건데요.”

“내가 왜 궁금한데?”

이번에는 수호가 말을 잃었다. 왜일까. 그건 수호도 아직 판단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궁금했다. 자신을 보며 눈을 반짝이는 주오가 너무나 궁금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답이 없는 수호를 주오는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수호의 입이 어서 열리기를 기대 어린 눈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잘 모르겠어요.”

“잘 생각해 봐. 왜 궁금한지.”

주오의 눈빛이 묘했다. 초조해 보이기도 했고, 설레어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수호는 여전히 왜 그가 궁금한지 잘 몰랐다.

“역시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저는 형이 더 마음에 들었나 봐요.”

주오의 표정이 더욱 묘해졌다. 곤란하다는 빛이 역력했다. 수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마음에 든다는 말이 그렇게 곤란한 일이었던 걸까.

주오는 갑자기 큰 손으로 얼굴을 덮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손가락을 벌려 그 사이로 수호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이 정말 곤란해 보였다.

“수호는 정말 나빠.”

“제가 형이 마음에 들었다는 게 형한테는 나쁜 일인 거예요?”

“아니, 그건 절대 아니야. 근데 지금 수호의 태도는 나빠.”

주오는 손가락 틈새를 좁히며 얼굴을 손에 묻었다. 웅얼거리는 그의 음성이 꼭 칭얼거리는 것 같았다. 덩치에 맞지 않는 행동이 제법 귀여웠다. 어느새 수호의 입가에 얕은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정작 그 미소를 봐야 할 주오는 손에 얼굴을 묻고 있어 보지 못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기분 나쁘게 만들었다면 죄송해요.”

“기분 나쁘지 않아.”

“그런데 왜 제가 나빠요.”

“들었다 놨다 해.”

대화가 안 되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주오의 말에 수호의 고개가 갸웃했다. 주오는 다시 손가락 틈새로 수호와 눈을 맞췄다.

“얼굴은 왜 그렇게 가려요.”

“표정이 이상할까 봐.”

큰 손에 감춰진 주오의 표정은 정말 볼만했다. 좋고, 당황스럽고, 곤란하고, 인내하는, 아주 복잡한 표정이었다. 분명 주오의 저런 얼굴은 아무도 본 적이 없을 거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이상한 소리.”

“맞아. 나 지금 이상해. 수호가 이렇게 만들었어.”

“형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몰라. 나도 모르겠어.”

“진짜 이상해.”

생각나는 대로 막 내뱉는 건지 중구난방으로 대답하는 주오를 보며 수호가 피식 웃었다. 주오는 그런 수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오늘 수호가 날 고문하려고 여기 왔나 봐.”

“헛소리 그만하고 이제 일어나요. 형 곧 가봐야 하잖아요.”

시계를 흘끔 보자 이미 시간이 제법 흐른 뒤였다. 30분 뒤에는 오라던 직원의 말이 생각난 수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이 너무 매정하다.”

“원래 그렇죠.”

“수호야, 그래서 수호는 내가 좋다는 거지? 날 궁금해할 만큼?”

주오의 물음에 수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고 싫고 둘 중 선택하라면 전자였다.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수호를 향해 주오가 갑자기 두 팔을 펼쳤다. 이게 갑자기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의아한 눈으로 보자 주오가 환하게 웃었다.

“작별 인사로 포옹 한 번만 해줘.”

누가 작별 인사로 포옹을 하나 생각이 들었지만, 수호는 두 팔을 넓게 벌린 주오에게 팔을 뻗었다. 허리를 감싸 안고 등을 토닥이자 주오가 꽉 끌어안아 왔다. 묵직하고 답답한 느낌이 들었지만, 주오의 체온이 따듯해서 밀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이만 갈게요. 연습 잘하세요.”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수호는 귓가에 울리는 낮은 음성에 울림이 너무 좋아서 살짝 움찔했다. 숨소리와 함께 울리는 주오의 음성이 이렇게나 좋았었나 싶었다. 수호는 주오의 어깨에 고개를 올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제라드에서 봐요.”

현재 우승에 가장 근접한 팀을 고르라고 한다면 당연 제라드였다. 이미 우승의 주력 멤버였던 선우와 수호가 빠진 주이는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수호는 우승을 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 수호가 이적할 팀은 제라드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기하고 웃기고 제법 귀여운 김주오와 같은 팀을 하면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기다릴게.”

어깨를 감싼 주오의 팔이 더욱 단단하게 조여왔다. 기다린다는 주오의 음성에서 달뜬 기분이 느껴졌다. 수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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