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이런 천으로 묶어요?”
연습실에서는 감독과 선수들이 머리를 맞대고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있었다. 문을 닫고 들어온 주오와 수호는 서로를 잠시 보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옹기종기 모인 까만 뒤통수들 사이로 주오가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조은기는 자신의 어깨 너머에서 갑자기 나타난 주오의 머리통에 놀라 눈가를 찡그렸다.
“왔으면 기척을 내요.”
“문 열고 들어왔으면 됐지 왜 화를 내. 그런데 뭐 하고 있었어?”
놀란 은기에게 무심하게 대답한 주오가 진형이 들고 있는 검은 천에 시선을 돌렸다.
“그건 뭐예요?”
“레인 형, 이걸로 이인삼각 때 눈 가리는 거래요.”
진형이 들고 있던 검은 천을 흔들었다. 머리에 둘러 묶을 것같이 생긴 얇고 긴 천이 진형의 손에서 살랑거렸다. 주오가 천을 받아 드는 걸 보면서 재인이 재밌다는 듯 웃었다.
“진짜로 묶으라고 하다니. 되게 웃기지 않아?”
“그러게. 진짜로 줬네.”
키보드를 맡은 사람이 눈을 가린다고는 들었지만, 진짜 이렇게 천을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주오는 부드러운 천을 이리저리 둘러보고는 수호를 돌아봤다. 여전히 멀뚱하게 서 있는 수호에게 주오가 한걸음에 다가갔다.
“한번 미리 써볼까?”
“네.”
어차피 지금부터 이인삼각 연습을 할 생각이었기에 수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가 천을 달라며 손을 내밀자 주오가 천을 자신의 등 뒤로 휙 숨겨 버렸다. 수호는 뭐 하시는 거냐며 눈을 빛냈다.
“해줄게.”
“제가 할게요.”
“내가 해줄게.”
주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천을 더욱 꼭꼭 숨겼다. 수호가 뺏어보려 손을 뻗었지만 주오가 날래게 몸을 피했다.
“형.”
“응, 수호야.”
“제가 한다니까요?”
“내가 해주면 안 돼?”
뫼비우스의 띠도 아니고 계속 같은 상황의 반복되었다. 주오를 잡으러 연습실 안을 빙글빙글 돌았던 수호가 가빠진 숨을 후 내뱉었다.
“생각보다 수호도 집요한 면이 있구나.”
주오와 수호의 술래잡기를 구경하던 진형이 감탄 어린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 옆에 나란히 앉아 있던 지한도 입을 열었다.
“레인 형도 생각보다 되게 장난기 넘치시네요.”
“감독님, 빨리 두 사람이나 좀 말려봐요. 연습실을 몇 바퀴 도는 거예요.”
조은기가 머리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재인은 여전히 재밌게 두 사람을 관람했다.
“수호도 몰랐는데 승부욕이 대단한가 보네. 주오가 뛰자마자 눈빛 바뀌면서 바로 쫓아가던데.”
수호는 사람들이 이리 찌르고, 저리 찔러도 딱히 반응이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승부욕 하나만큼은 엄청났다. 그래서 지는 걸 매우 싫어했으며, 승부를 가릴 수 있는 거라면 집요해졌다.
평소 같았으면 수호도 ‘그럼 형 마음대로 해요’ 이러고 말았을 테지만 주오가 갑자기 도망가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수호는 열심히 주오를 쫓았다. 하지만 길쭉길쭉한 다리를 가진 김주오가 이수호에게 잡힐 리가 없었다.
결국 이수호가 숨을 몰아쉬며 주오를 노려봤다. 주오는 숨도 차지 않는 듯 여전히 웃으며 수호를 바라봤다.
“수호가 졌으니까 내가 해줄게.”
“그래그래, 이제 그만하고 연습하자. 주오가 묶어줘.”
“……알겠습니다.”
진형의 중재에 결국 주오가 묶어주는 걸로 결론이 났다. 이거 가지고 뭐 이렇게 시간을 보냈나 싶어져 수호는 허탈감에 의자에 풀썩 앉았다. 주오는 냉장고에서 막 꺼내 온 차가운 물을 건넸다.
“수호도 어린애 같은 면이 있었네. 더울 텐데 물 마실래?”
“형이 더 애 같아요. 갑자기 왜 도망가요.”
주오에게서 물을 건네받은 수호가 물을 한 모금 삼켰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시원한 느낌에 더위가 조금 가셨다. 수호가 생수병 뚜껑을 닫자 주오가 검은 천을 들고 살랑였다.
“장비 세팅하고 나면 묶을게.”
수호는 주섬주섬 키보드랑 마우스 세팅을 마쳤다. 복도에서나 연습실에서나 실랑이가 길어진 탓에 연습 시작이 늦어졌다. 빠르게 준비를 마친 수호를 보며 싱긋 웃은 주오가 천으로 수호의 눈을 가렸다.
불편하지 않게 너무 꽉 매지 않은 주오가 빙글 돌아 수호의 앞에 섰다. 길게 뻗은 눈매가 천 아래에 감춰진 단정한 얼굴이 있었다. 천이 검은색이라 그런지 수호의 피부가 더욱 하얗게 보였다. 물끄러미 수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자 수호가 벙긋 입을 열었다.
“형, 시작 언제 해요?”
피부가 하얗기 때문인지 색이 짙은 입술이 아님에도 참 선명하게 느껴졌다. 괜히 나쁜 마음이 막 샘솟았다. 주오는 곤란하다는 듯 눈가를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역할 분담 선택을 잘못 한 것 같아.”
“왜요?”
주오의 한탄스러운 중얼거림을 들은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건 주오가 정말 좋아하는 수호의 행동 중 하나였다. 주오는 지금 절에 들어가고 싶었다. 너무 귀여웠다. 너무너무.
주오의 눈이 음험하게 빛나는 걸 발견한 재인이 주오의 어깨를 잡았다.
“김주오, 진정해라.”
“나도 그러고 싶어.”
“심호흡해 봐. 후우, 후우.”
주오가 재인의 호흡을 따라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수호는 깜깜한 세상에서 둘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뭐 해요?”
마음속 번뇌를 잠재우던 주오는 엄한 눈으로 수호를 바라봤다.
“별일 아니야. 자, 이제 연습하자.”
“네.”
“키보드에 손 올려줄게.”
수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는 주오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주오는 지금 마음속에서 체이스사에 감사의 인사를 수백 번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수호의 손을 잡아볼 수 있다니. 너무 감사하고 감사한 기회다.
키보드에 수호의 손을 올려놓은 주오가 의자를 끌고 와서 수호의 옆에 앉았다.
“주오 형, 이제 게임 돌릴게요.”
“어, 돌려.”
두 사람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기로 한 은기가 사용자 설정 게임을 시작했다. 열 명이서 플레이하는 맵에서 두 사람이 게임을 시작했다. 미드에 대치한 주호(주오와 수호)와 은기.
은기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주호를 상대했다. 아무리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선수들이라고는 하나 둘이서 결국 한 몸은 아니다. 스킬도 분명 뻑 날 테고, 마음대로 플레이가 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은기의 예상대로 주오와 수호는 오합지졸이었다. 은기가 있는 방향 정반대로 스킬이 날아가고, 생존기로 도망을 갈 때도 엄한 방향으로 도망가다 죽기 일쑤였다.
계속 죽기만 반복하는 주오와 수호를 돌아보며 은기가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둘이 진짜 동상이몽인데요? 이렇게나 마음이 안 맞는데 어떻게 게임을 하려고 그래?”
은기의 말이 수호의 심기를 긁었다. 앞서 말했다시피 수호는 승부욕이 남달랐다. 그게 수호를 세계 1위에 올려놓은 원동력이기도 했다. 수호는 눈을 가린 검은 천을 끌어 내리며 은기를 바라봤다.
“다시 해.”
수호의 단호하고 매섭게 빛나는 눈빛에 은기가 움찔했다. 순둥하던 놈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눈을 빛내니 은기는 당황스러웠다. 구경하던 지한이 놀란 눈으로 말했다.
“수호 형 진짜 승부욕 강하구나.”
“그러니까 4년 내내 잘하는 게 아닐까.”
재인의 맞장구에 지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러니까 더 잘하려고 연습도 그렇게 많이 하는 거겠죠? 정말 대단해요. 역시 수호 형은 제 우상이에요.”
* * *
수호만이 불타오른 이인삼각 연습이었다. 아무리 여러 번 도전해도 마찬가지였다. 수호와 주오, 즉 주호의 연패.
훌쩍 시간이 지난 것을 확인한 은기가 수호를 힐끔 곁눈질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부욕으로 불타오르는 수호의 눈치를 살금살금 살핀 은기가 장비를 챙기며 입을 열었다.
“이수호, 나 이제 갈 거야. 말리지 마.”
예상보다 1시간 반을 더 시달린 은기가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호는 묵묵히 입을 꾹 다문 채 키보드를 노려봤다. 주오는 곤란하다는 얼굴로 수호를 보며 웃었다.
“가봐. 오늘 고생 많았어.”
“에휴, 그럼 내일 봐요. 나 간다.”
“응, 잘 가.”
분명 인사는 했지만 수호는 은기를 보고 있지 않았다. 부글부글 속이 끓는 듯 키보드를 정말 부술 듯이 노려봤다. 늘 수호에게 져왔던 주오와 은기는 이런 수호의 모습이 낯설기 그지없었다.
패배의 쓴맛에 분노하는 이수호라니……. 연습실을 나서던 조은기마저 잠시 멈춰 수호를 멍하니 바라봤다.
주오가 그런 은기에게 이만 가보라고 손짓했다.
“수호는 내가 잘 달랠 테니까 이만 들어가 봐.”
“네, 형 내일 봐요.”
“그래.”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겨 나가는 조은기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주오는 시선을 돌려 수호를 바라봤다. 여전히 슬픔에 잠겨 있는 수호의 어깨가 안쓰러워 보였다.
굴 안으로 꾸역꾸역 파고든 작은 생물체 같아 주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오늘 처음으로 맞춰본 거니까 너무 상심하지 마. 내일 더 잘하면 되지.”
“네. 그런데 지는 건 싫단 말이에요.”
“나도 그래. 지는 건 재미없지.”
키보드에 박혀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던 수호의 시선이 주오에게 향했다. 수호와 눈을 맞춘 주오가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제라드로 와, 수호야.”
“갑자기 왜 얘기가 그쪽으로 빠져요.”
수호가 난데없는 주오의 말에 패배의 분노가 싹 가신 평소의 멀뚱한 눈을 했다. 주오는 동글동글 검은 조약돌처럼 앙증맞은 수호의 눈을 보다가 순간적으로 수호의 볼을 쿡 찔렀다. 덕분에 수호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형, 뭐 해요?”
“아, 미안. 순간 귀여워서. 어쨌거나 제라드로 왔으면 한다는 게 내 마음이야. 전에도 얘기했는데 또 얘기해서 수호가 나한테 질리면 어쩌지?”
대체 무슨 말을 저렇게 중구난방으로 하는 건지. 수호는 횡설수설하는 주오를 뚱한 눈으로 보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요. 그리고 생각해 보겠다고 그때도 얘기했었는데.”
“나는 수호랑 정말 같은 팀 하고 싶거든. 오랜만에 월챔 우승컵 들고 싶다.”
마지막으로 들었던 그때를 떠올리는 듯 주오의 음성에 그리움이 묻어났다.
수호의 기억에서 주오는 준우승을 해도 분한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평소보다 조금 씁쓸해 보일 뿐 우승을 하지 못해서 화를 내거나, 슬퍼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수호는 주오가 우승에 큰 욕심이 없는 줄 알았다.
하긴, 아무리 생각해도 프로가 우승에 욕심이 없을 리가 없었다.
“형도 우승 못 했을 때 화났어요?”
“화나지. 그런데 화낸다고 결과가 바뀌는 것도 아니고, 분하면 그만큼 더 연습하는 수밖에 없지.”
수호도 그런 마음을 느낀 적이 있다. 아마 수호뿐만 아니라 프로 선수들 모두가 그렇게 느낄 거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느껴서 죽어라 연습한다 해도 결국 우승을 거머쥐는 팀은 세계에서 단 한 팀이었다.
그리고 최근 4년간 그 한 팀은 수호가 속한 주이였다. 그리고 수호가 독차지하고 있는 만큼 다른 사람들은 우승컵에 손도 대지 못했다. 잘한다고 그렇게 소문난 주오마저.
수호가 보기에도 주오는 정말 잘하는 선수였다. 그는 뇌지컬이 뛰어난 선수라고 다들 알지만, 사실 피지컬도 뛰어났다. 솔직히 지금 수호가 속한 팀에서 객관적으로 주오보다 잘하는 선수는 찾기 힘들었다. 그런 그가 우승컵을 코앞에서 놓치는 게 문득 안타까웠다.
“좋게 생각해 볼게요. 제라드 가는 거.”
“고마워.”
주오가 활짝 웃었다. 문득 수호는 궁금해졌다. 김주오가 우승컵을 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게 궁금해졌다. 주오는 그런 수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활짝 웃을 뿐이었다.
“맞다, 우리 며칠 뒤면 1대1 매치에서 붙게 될 텐데 내기하지 않을래?”
주오의 난데없는 내기 발언에 수호가 고개를 갸웃했다. 일단 1대1 매치에서 주오와 대결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서로 4강에서 승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수호는 자신 있었다.
“4강에서 이겨야 붙게 되죠.”
“수호는 이길 거잖아.”
꼭 그렇게 될 거라고 확신이 담긴 음성이었다. 수호는 자신을 굳게 믿는 주오 때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단순한 그 한마디 말이 참 기분 좋았다.
“무슨 내긴데요?”
“소원 하나 들어주기. 간단하지?”
가볍게 흐르는 주오의 말에 수호의 눈에 경계심이 어렸다. 주오는 오랜만에 보는 날 선 눈빛에도 빙긋 웃었다.
“무슨 소원 비실 건데요?”
“간단한 거. 그냥은 수호가 안 해줄 것 같으니까 소원으로 빌려고.”
“그래요. 그렇게 하세요.”
주오가 바라는 게 뭔지 궁금하긴 했지만, 어차피 알게 될 일 없을 거다. 수호는 자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이기리라는 것을.
여유 있는 수호를 보며 주오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졌다고 화내면 안 돼. 나 그러면 슬퍼. 수호한테 미움받기 싫단 말이야.”
“알겠어요.”
수호가 명쾌한 답을 내려주자 주오가 활짝 웃었다. 수호에게 미움받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생기가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그럼 다시 연습해 볼까?”
주오가 산뜻하게 연습 재개를 알렸다. 수호의 손이 다시 키보드 위로 올라갔다.
그렇게 시작된 두 사람의 연습은 그 뒤로 두어 시간 뒤에야 끝이 났다.
* * *
[이제 올스타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벌써 오늘을 포함해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니 너무 슬프네요. 그리고 그만큼 오늘은 흥미진진한 경기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바로 1대1 4강과 결승이 있는 날입니다!]
[벌써부터 흥미진진한데요?! 4강에 한국 선수 두 명이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바로 SUHO 선수와 RAIN 선수인데요! 대진표를 보면 이 두 선수가 각각 4강에서 승리하면 결승에서 맞붙게 됩니다!]
이영중 캐스터와 박동진 해설의 힘찬 해설과 함께 올스타전이 시작됐다. 오늘을 포함해 내일이면 끝이 나는 올스타전이기에 해설들의 열정이 한층 뜨거웠다.
[아아, 정말 올해도 결승에 한국 선수가 둘이나 있다니 정말 기대 됩니다. 두 선수가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유기현의 기대감에 찬 목소리와 이영중 캐스터의 진행이 시작됐다.
[첫 번째 매치는 SUHO 선수와 중국의 NIMA 선수입니다! NIMA 선수도 1대1 매치의 꾸준히 이름을 올리는 선수죠? 오늘은 과연 마의 4강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수호와 마주 보고 앉은 NIMA는 수호를 경계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작년에도 수호에게 패하고 결승을 밟지 못한 선수였기 때문에 수호에 대한 복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하지만 그 당사자인 수호는 여느 때와 같은 평온한 얼굴로 게임에 임했다. 둘은 자신의 주 라인 캐릭터를 꼽았다. 수호는 매지션, NIMA는 한 방 싸움에 강한 탱커형 챔프.
매지션 캐릭터는 초반에 약한 편이기에 탱커에게 승기를 잡아 오기 힘든 편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상식을 깨고 수호는 가볍게 NIMA 선수에게 승리했다.
아무리 튼튼해 봤자 상대 선수를 맞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수호는 NIMA의 공격을 훌쩍 피하며 딜을 넣었다. NIMA가 고른 탱커는 그저 걸어 다니는 샌드백과 다름없었다.
4강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게임은 쉽게 끝이 났다.
[역시 작년 1위를 거머쥐었던 SUHO 선수입니다! 올해도 NIMA 선수를 물리치고 결승에 이름을 올립니다!]
[이 선수는 대체 언제까지 결승전을 제집 드나들듯이 다닐 생각인 걸까요? 이벤트전에서까지 종횡무진합니다!]
뜨거운 환호성을 뒤로하고 수호는 장비를 챙겨 무대를 내려왔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던 주오는 계단을 내려오는 수호를 보며 웃었다. 주오는 늘 웃고 떠들고 실없는 소리를 하던 룸메이트가 아니었다. 주오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결승 진출 축하해.”
“감사합니다.”
“그러면 결승에서 보자.”
“네.”
주오는 수호의 작은 머리통을 스치듯 쓰다듬고는 무대 위로 올라갔다.
자신 있는 얼굴로 무대로 올라간 주오가 다시 아래로 내려온 건 20분 정도가 지난 후였다. 여유 있던 모습처럼 주오는 수호와 마찬가지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한국은 축제의 도가니였다. 유독 흥분한 박동진이 땀을 닦았다.
[이야, 이 매치를 작년에 이어 또 보게 되다니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오늘은 어떤 경기를 할지 정말 기대됩니다.]
[작년에는 둘 다 원딜 챔피언으로 대결했었는데 올해는 어떤 챔피언으로 하게 될까요?]
박동진과 유기현의 기대 어린 말에 이영중이 거들었다.
[뭔들 어떱니까?! 한국 선수들이 나란히 결승에 올랐다는 것에서부터, 그것도 그 선수들이 SUHO와 RAIN이라는 거에서 이미 한국 팬분들은 열렬한 환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커뮤니티 반응이 벌써부터 핫한데요?]
[다들 그만큼 두 선수의 경기를 관심 깊게 보고 계시다는 소리겠죠! 자, 그럼 두 선수 입장합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샤우팅과 함께 무대 위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나란히 한국 유니폼을 입고 무대 위로 올라오는 주오와 수호를 향해 환호성이 쏟아졌다.
[RAIN! RAIN!]
[SUHO! SUHO!]
베를린 경기장의 모든 관객이 두 사람을 외치며 응원했다.
수호는 맞은편에 앉아 모니터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는 주오와 눈이 마주쳤다. 주오는 눈매를 둥글게 휘었다.
“수호야, 내기 잊으면 안 돼.”
“알겠어요.”
[자, 챔피언 픽 시작합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말과 함께 픽창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백여 가지의 챔피언이 화면 빼곡히 들어차 자신을 선택해 달라며 반짝였다.
두 사람 다 픽창을 훑으며 생각에 빠졌다. 수호는 천천히 스크롤을 내렸다. 그러고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자신이 가장 잘하고, 그를 유명하게 만든 캐릭터를 선택했다.
선택 완료를 누르자마자 중계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SUHO 선수!!! 한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다이니아를 꺼냅니다!]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챔피언인데 지금 꺼내 드네요! SUHO 선수 때문인지 너프가 심해서 스킬 데미지가 생각보다 안 나오게 됐죠. 암살자류 챔피언에게는 큰 결점입니다. 그런데 그런 챔피언을 올스타전에서 보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그래도 내가 하면 다르다, 라는 걸 이번 경기를 통해서 SUHO 선수가 증명해 줬으면 좋겠네요.]
중계진이 도란도란 주오의 픽을 가지고 얘기를 하는 동안 주오도 픽을 마친 모양인 듯 해설들의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헤드셋을 끼고 있어 중계진의 소리가 전해지지 않았다. 아마 주오도 그럴 터였다.
두 사람의 픽을 알고 있는 중계진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떠들어대는 사이 게임은 시작됐다.
로딩창이 끝나고 인게임으로 들어서는 순간 수호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주오가 선택한 챔피언은 정말 대회에서, 아니, 이벤트전인 올스타전을 포함해서 일반 게임에서도 보기 힘든 챔프였기 때문이었다.
주오가 선택한 울프베어는 보통 즐겜러들이나 한다는 챔피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스킬 변화와 함께 연구 가치가 올라간 챔피언이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1대1 매치 결승에서 꺼내기에는 그렇게 메리트 있는 챔피언은 아니었다.
수호가 선택한 챔피언이 너프가 돼서 잘 안 나온다고는 하나 그래도 울프베어보다는 좋았다. 수호가 승리할 가능성이 꽤나 높아 보이는 상황이었다.
[다이니아와 울프베어. 보고 힘든 매치업인데 이걸 1대1 매치 결승전에서 보게 될 줄을 몰랐네요.]
박동진 해설의 어리벙벙한 말에 이영중 캐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얼마 만에 보는 챔피언들인지 모르겠네요. 특히나 RAIN 선수가 울프베어를 픽한 이유가 궁금하네요. 왜 저런 챔피언을 선택했을까요?]
[아마 이번에 스킬 리메이크를 통해서 들어오는 대쉬기를 막아내는 판정과 순간적인 무적기 때문에 선택한 것 같네요. 하지만 상대가 암살자 챔피언을 할 거라고 예상하지 않는 한 픽하기 힘들었을 텐데, RAIN 선수를 보니 아마 SUHO 선수가 암살자류 챔피언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습니다.]
유기현 해설의 말에 박동진 해설이 말을 덧붙였다.
[다이니아는 순간적으로 상대에게 파고들어 강한 딜로 찍어 누르는 챔피언인데 울프베어가 스킬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결정 될 듯하네요.]
[해설분들이 보기에는 그게 쉬울 것 같습니까?]
이영중 캐스터의 말에 두 사람 다 고개를 저었다.
[RAIN 선수가 울프베어를 많이 연습했으면 다이니아의 스킬을 회피할 가능성이 더 높긴 하겠지만, 그래도 보통은 힘들 겁니다.]
[아아, RAIN 선수 정말 어떤 플레이를 하기 위해 저 픽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를 보여줬으면 하네요.]
주오가 울프베어 픽의 이유를 보여주기를 해설들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대했다. 그들뿐 아니라 관중석에서 경기를 보고 있는 관중들의 마음도 그랬다.
수호를 스타덤에 올려놓았던 다이니아가 승리할지, 꿀잼 픽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울프베어가 승리할지 다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공격적으로 나선 건 수호였다. 수호가 바닥을 긁으며 곡선으로 상대에게 딜을 넣는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로 원거리 견제가 가능한 다이니아와 다르게 울프베어는 근접용 챔피언으로 수호처럼 원거리에서 견제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스킬을 피하며 기회를 엿볼 뿐이었다. 상대적으로 병사들을 잡기에는 울프베어가 다이니아보다 강했기 때문에 병사들을 처치한 수는 주오가 우세했다.
이렇게 되면 제한 시간 동안 골드를 더 많이 모으게 되는 쪽은 주오였다. 결국 수호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조금이라도 주오의 피를 깎아놓기 위해 수호가 지속적으로 견제를 해왔다. 그러나 울프베어는 기본적으로 탱탱한 캐릭터였기 때문에 살짝 긁힌다 해도 괜찮았다.
생각보다 까다로운 상대를 만난 수호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어느새 수호의 눈이 뜨거운 승부욕으로 빛나고 있었다. 예상하지 못한 울프베어 픽이 수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그래도 수호는 주오보다 빠르게 스킬을 사용해 그를 죽일 자신이 있었다.
[자, 이제 제한 시간 30초 남았습니다! 이제 슬슬 SUHO 선수도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현재 골드 상태는 RAIN 선수가 더 우세하기 때문에 SUHO 선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RAIN 선수가 반응하기 전에 그에게 진입해서 킬을 따내야 합니다.]
이영중 캐스터와 박동진 해설의 말을 유기현이 거들었다.
[네, 무조건입니다. 과연 SUHO 선수가 작년에 이어 올해서 1대1 매치 우승을 할 수 있을지 30초 후면 알 수 있습니다!]
[어후, 기대되는데요?! 과연 우승자는 SUHO 선수일지, RAIN 선수일지! 뭐 CKR 리그 중계자로서 둘 중 누가 우승을 한다 해도 참 기쁠 뿐입니다!]
수호는 빠르게 주오를 향해 달렸다. 병사를 먹는 척 그를 방심시키고 스킬을 사용해 빠르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주오는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수호가 스킬을 쓰는 동시에 바로 무적기를 사용했다.
[아아악!! SUHO 선수 이러면 지는데요!!]
박동진 해설이 흥분하면 내는 특유의 하이톤 비명 소리가 짜릿하게 울려 퍼졌다.
[RAAAAAAAAAIN!!! 호우, 너무 멋있습니다. 울프베어는 언제 저렇게 연습을 했던 걸까요. 다이니아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딱 맞춰 무적기를 사용했습니다!!]
유기현 또한 같이 흥분해서 모니터 속 주오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환호했다.
울프베어의 실드로 다이니아의 딜을 씹은 순간 승패는 났다. 수호의 딜이 무력화되는 순간 주오가 달려들었다. 근접 챔피언인 만큼 달라붙는 순간 암살자류나 원딜류 챔피언들은 살아 나가기 힘들었다. 특히나 다이니아 같은 물몸 암살자류 챔피언은 더더욱이었다.
결국 베어의 포효, 상대를 물어뜯고 던져 버리는 스킬을 마지막으로 수호의 피는 0이 되었다.
화면에 차오른 안내 문구와 함께 체이스를 대표하는 캐릭터 물범이 화면 가득 펑펑 튀며 축포를 터뜨렸다.
[RAIN 선수, 작년 챔피언 SUHO 선수를 꺾고 1대1 매치 우승을 차지합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시원한 샤우팅과 함께 경기장에 RAIN을 외치는 소리가 가득 찼다.
수호는 입술을 꾹 다물고 모니터를 노려봤다. 그의 하얀 얼굴에는 분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수호는 이내 묵묵히 자리에서 일어나 주오에게 다가왔다. 평소에도 뚱한 얼굴이 더욱 뚱해져 있었다.
미안하지만 주오는 그런 수호를 보며 웃었다.
“우승 축하해요.”
“수호, 많이 분한 것 같은데.”
“분해요.”
수호가 눈가를 찡그렸다. 하지만 주오는 그런 수호가 귀엽다는 듯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윽고 주오가 허리를 살짝 숙여 수호와 눈을 맞췄다.
“우리 내기한 거 기억해?”
“기억해요.”
“다행이다. 소원권 지금 쓸게.”
“뭔데요?”
대체 무슨 소원을 빌고 싶길래 저런 얼굴을 하고 있을까. 주오는 평소처럼 웃고 있었지만, 표정이 묘하게 딱딱했다. 월드 챔피언십에도 긴장하는 걸 보인 적이 없던 주오가 지금 긴장하고 있었다. 주오는 살짝살짝 수호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돼?”
“……네?”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수호가 예상치 못한 소원에 당황하는 사이 주오는 거절당할까 초조한 눈치였다.
내기에서 이겨 소원을 빌었는데 왜 거절당할까 걱정하는지 모르겠다. 수호는 생각보다 어이없고 허탈한 소원에 웃음이 나왔다. 그래 봐야 남들은 이게 웃는 건지도 모를 만큼 미세한 미소였지만, 주오를 비롯한 수호의 팬들은 그가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하세요.”
“……정말? 정말 그래도 돼?”
주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우승자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 아래에서 환하게 웃는 주오는 정말 멋있었다. 수호는 반짝 빛나는 주오를 보며 순간적으로 바짝 긴장했다. 역시 불편한 사람이었다.
주오가 수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수호는 순식간에 주오에게 폭삭 안겼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힘 조절하는 것조차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수호는 안기면서 주오의 어깨에 박은 턱이 알알했다.
수호가 반사적으로 주오와 맞닿은 가슴으로 손을 꾸역꾸역 밀어 넣어 턱을 어루만졌다. 그 덕에 주오와 수호의 거리가 멀어졌다.
주오는 수호가 아파하자 화들짝 당황하며 안절부절못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수호의 얼굴을 살폈다.
“수호야, 미안해. 많이 아파?”
“아파요.”
“어디 봐봐. 진짜 미안해.”
주오가 수호의 뺨을 감싸고 얼굴을 살폈다. 딱히 빨개지지도 않았지만 주오는 미안하다는 듯 얼굴을 찡그렸다. 수호는 바짝 붙은 주오의 얼굴이 부담스러워 그의 뺨을 밀어냈다. 주오와 붙어 있으면 바짝바짝 입이 마르는 느낌이었다.
“괜찮아요. 그것보다 방금 거로 된 거예요?”
“아, 안 되는데. 제대로 못 했는데. 한 번만 더……. 안 될까?”
주오가 시무룩한 얼굴로 수호를 바라봤다. 진짜 너무너무 아쉽고 억울해 죽겠다는 듯 주오는 한없이 아쉬워하고 있었다.
주오가 조심스럽게 검지를 쭉 펴서 자신의 눈가에 가져다 댔다. ‘one more time’을 외치는 주오가 웃겨 수호는 턱을 문지르던 손을 주오를 향해 뻗었다.
주오는 자신에게 향하는 수호의 손을 바라봤다. 설렘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으로 그의 눈동자가 한없이 떨렸다. 수호는 입꼬리마저 파르르 떨리는 주오의 허리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등을 토닥여 주는 서비스까지 더했다.
주오는 괜히 이런 소원을 빌었다고 후회했다.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주오는 딱딱한 석상이 되어 자신을 감싼 수호의 체온을 느꼈다. 어느새 주오의 귓가는 붉어져 있었다.
“우승 축하해요. 내년엔 제가 이길 거예요.”
“응, 그래. 수호가 이겨. 다 이겨.”
떨리는 주오의 음성에 수호가 시선을 들어 주오를 바라봤다. 이내 수호가 눈가를 찡그리더니 다시 시선을 내렸다.
주오의 상태가 이상해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었지만, 얼굴이 너무 가까웠다.
주오의 얼굴이 불편한 수호와 수호의 몸이 가까이 있어 불편한 주오는 둘 다 굳어 있었다. 삐걱삐걱, 녹슨 인형처럼 둘의 행태가 참으로 볼만했다.
[오오, 지금 뭐 하는 거죠?]
[SUHO 선수가 축하의 의미로 포옹을 해주고 있는 것 같은데 의외네요. 저 선수가 저러는 선수가 아닌데.]
이영중 캐스터의 놀란 음성에 박동진 해설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유기현은 그런 둘을 장난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RAIN 선수 오늘 무슨 날인가요? 우승과 함께 SUHO 선수의 포옹까지. 오늘 계 타는 날인가 봅니다!]
[아하하, 그러네요. RAIN 선수! 우승 축하합니다!]
중계진이 주오와 수호를 보여 해설을 하고 있었지만, 주오는 그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수호만 보일 뿐.
이쯤 됐겠지 생각하고 허리에 두른 팔을 풀어내려는 수호를 주오가 감싸 안았다. 수호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형, 언제까지 하려고요?”
“수호야, 조금만 더.”
“뭐, 그래요.”
주오의 음성에서 그의 감정이 넘실넘실 흘러나왔다. 기쁨, 행복. 보는 사람도 괜히 마음이 살랑거리게 되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이제 그만 떨어지려던 수호도 마음을 접고 얌전히 있었다.
끔뻑끔뻑, 눈을 한동안 깜빡이고 있자 해설들의 독촉 소리가 들렸다.
[RAIN 선수 기쁜 건 알겠지만, 인터뷰 진행을 해야 합니다. 남은 건 내려가서 하시길 바랍니다.]
이영중 캐스터가 허허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빈말이 아니었는지 무대 아래에서 스태프들이 이만 내려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스태프와 눈이 마주친 수호는 주오의 어깨를 톡톡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형, 저는 그만 내려가래요.”
“아, 그러네. 아쉽다.”
주오도 그제야 내려오라고 눈치를 주던 스태프를 발견했는지 수호의 어깨를 감싸고 있던 팔을 풀었다. 두 사람 사이에 다시 두 걸음 정도의 거리가 생겼다. 주오는 한껏 아쉽다는 얼굴로 수호를 바라봤다.
“그럼 갈게요.”
수호는 주오에게 짤막하게 말을 건네고는 자리로 가 키보드와 마우스를 챙겼다. 수호가 무대에서 내려가자 아나운서가 주오에게 다가왔다.
[그럼 1대1 매치 우승자 RAIN 선수를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RAIN 선수, 우승 축하드립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말과 함께 주오에게 마이크가 넘어왔다. 정하은 아나운서는 방송용 미소를 지으며 주오를 바라봤다.
“RAIN 선수 1대1 매치 우승 축하드립니다. 소감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우선 이벤트전이라도 제가 우승을 한 게 오랜만이라 정말 기쁩니다. 그리고 상대가 수호였기 때문에 더욱 뜻깊은 것 같아요.”
“SUHO 선수와 결승에서 만나기를 기대하셨는데 그런 SUHO 선수에게 승리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결승 경기에서 인상적인 챔피언들이 나왔어요. 다이니아와 울프베어. 최근 나오지 않는 픽이라 많은 사람들이 즐거워했습니다. 왜 울프베어를 픽하셨나요?”
다이니아는 그래도 쓸 만하다고는 하나 울프베어는 즐겜픽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1대1 매치 결승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중계진과 관객들 모두 주오의 픽이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주오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싱긋 웃었다.
“제가 SUHO 선수의 팬이기 때문에 SUHO 선수가 어떤 챔피언을 할지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 수호라면 분명 암살자류를 할 것 같았기에 순간적인 폭딜을 무력화시키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뽑은 픽이었습니다.”
“오, 상대 선수를 파악해 놨었기에 뽑을 수 있었던 픽이었군요. 하지만 딜을 무력화시키는 스킬을 가진 다른 챔피언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굳이 울프베어를 픽한 이유는 뭘까요?”
“이벤트전이라 재미를 주고 싶기도 했고, 수호 선수는 많은 챔피언들의 이해도가 높은 선수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픽보다는 수호가 예상하지 못할 픽을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오의 차분한 설명에 아나운서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SUHO 선수가 어느 타이밍에 들어올지 예상하기는 힘드셨을 것 같은데 다이니아가 진입하는 순간 바로 무적기를 사용하던데 어떻게 반응하신 걸까요?”
“앞서 말했다시피 제가 SUHO 선수의 팬이기도 하고, SUHO 선수와 많이 경기를 해봐서 그런지 알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이유였군요. RAIN 선수의 픽에 대한 고심과 SUHO 선수에 대한 팬심으로 인해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오늘 좋은 경기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아까 SUHO 선수와 포옹하시던데, 축하의 의미셨나요?”
경기를 마치고 나면 악수를 하거나 결승같이 큰 무대에서는 포옹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SUHO는 그런 것과 거리가 먼 선수였기에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냈다. 왜 SUHO는 RAIN과 포옹을 했는가.
주오는 아나운서의 질문에 무의식적으로 입가에 미소가 활짝 피어올랐다. 정말 행복에 겨운 사람 같은 얼굴이다.
“네, 제가 이기면 해달라고 했었습니다. 오늘 이겨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아, 그런 이유였군요. SUHO 선수와 많이 친해지신 것 같네요.”
“이번 올스타전은 저에게 정말 감사한 대회입니다.”
오랜만에 우승자가 되어보기도 하고, 수호와 전보다 훨씬 가까운 사이도 되었다. 주오에게는 이번 올스타전이 정말 잊을 수 없는 대회였다. 주오가 뿌듯하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RAIN 선수에게 뜻깊은 대회가 되었다니 저도 기쁘네요. 내일은 올스타전 마지막 날인데요. RAIN 선수는 SUHO 선수와 파트너로 출전하시는데 각오 한마디 들을 수 있을까요?”
주오는 수호와 지난 며칠간 연습했던 날들을 떠올렸다. 잘하는 사람들끼리 모였다 해도 한 몸은 아닌지라 실수투성이였다. 그래도 좋았다. 수호랑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주오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했다.
“팬 여러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수호와 저, 많이 응원해 주세요!”
주오가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아나운서도 주오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지금까지 RAIN 선수의 인터뷰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일 다시 만나요!”
카메라가 중계진에게 넘어갔다. 이영중 캐스터는 오랜 경기 일정에도 파이팅이 넘쳤다.
[네! RAIN 선수의 인터뷰였습니다. 다시 한번 RAIN 선수 축하드리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이 올스타전의 마지막 날이죠?! 그만큼 재밌는 경기들이 많이 준비되어 있으니 내일도 저희와 함께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즐거운 게임으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
이영중 캐스터의 깔끔한 마무리 인사와 함께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오늘의 경기는 커뮤니티에서 많은 사람에게 언급됐다.
[게임/81657] 오늘 솔랭주의보 개미쳤다
울프베어 실화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오늘 랭 돌리면 울프베어 존나 나올 듯. 진짜 레인 왜 그런 걸 꺼내 들어서 솔랭도 못 돌리게 만들어ㅠㅠㅠ
└ 근데 리메이크한 거 괜찮아 보이더라. 다이니아가 Q로 계속 긁는데도 탱탱해서 딜도 잘 안 들어가던데.
└요즘 천상계 연구픽임. 물론 아래 티어에서 나오면 즐겜픽 될 확률 100%
[게임/86145] 이 형들 기류 무엇임?
오늘 오랜만에 방송 봤는데 키자마자 레인이랑 수호가 부둥켜안고 있어서 존나 놀랐네;; 얘네 안 친하지 않았었음?
└ ㅇㅇ 안 친했었음. 근데 이번 올스타전에서 급격히 친해진 듯?
└ 존나 근데 개박력 있게 끌어안던데;; 드라만 줄
└ 너 같으면 네가 좋아하는 여돌이 안아봐도 된다는데 안 하겠냐?
[게임/91563] 레인x수호 코인 주가 폭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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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주식 떡상도 아니고 진짜 폭등 중임;;; 시발 오늘 내가 체이스 대회 보다가 처음으로 울었다. 미쳤냐고요 김레인 씨 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처음에 포옹했다가 수호가 턱 박으니까 뺨 붙잡고 살피는 것 봐. 시발 너무 달아!!!!!!!!!!!
└진짜 매족 먹으면서 보고 있엇는데 내가 먹는 게 매족인지 꿀인지 헷갈리더라;;
└설레는 키 차이 뭐냐.
└수호도 작은 편은 아닌데 진짜 주오랑 있으니까 작아 보이는 것봐.
└191 옆에서 누가 안 작아 보이겠냐 tq...
└아래도 안 작겠지.
└아니 근데 진짜 둘이 뭐 있음? 이건 가까워져도 너무 가까워졌던데?
└그래서 싫다는 거임?
└존나 좋다는 거임.
└근데 누가 턱 박았다고 저렇게 살펴보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오늘도 김레인 씨 주접떠는 거 보고 갑니다ㅠㅠ 레인 수호만 보면 저러는 거 진짜 개귀여워ㅠㅠㅠㅠㅠ
└ㅇㄱㄹㅇ 눈에서 꿀 떨어짐 진짜;; 그 와중에 수호가 주오 볼 미는 것도 개웃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니깤ㅋㅋㅋㅋㅋㅋ갑자기 둘이서 꽁트 찍잫앜ㅋㅋㅋㅋ
[게임/93512] 영중 형님 오늘 멘트 개웃기넼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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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선수 기쁜 건 알겠지만, 인터뷰 진행을 해야 합니다. 남은 건 내려가서 하시길 바랍니다.]
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캐스터갘ㅋㅋㅋㅋ 인터뷰를 못 해서 말리는 것봨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대환장이었네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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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중에 이기면 수호한테 포옹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하면서 수줍어하는 김레인 존나 킬포임 tqzzzzzzzzzzzzzz 얘네 게임대회 하는 게 아니라 여기서 러브시그널 찍고 있는 거 아니냐. 시그널 겁나 보내는데?
└ㅋㅋㅋㅋㅋㅋㅋ나 이거 듣고 존나 빵터졌었음ㅋㅋㅋㅋ아니 하라는 우승자 인터뷰 안 하고 무대 중앙에서 저러고 있으니까 진짜 영중 형님 얼마나 어이없었겠냨ㅋㅋㅋㅋ
└진짜 경기도 경긴데 김레인x이수호가 제일 웃긴 듯ㅋㅋㅋㅋㅋㅋㅋㅋㅋ
└2222 이거 때문에 경기 꼬박꼬박 챙겨 본다. 내일 이인삼각도 존나 기대 중임.
김레인×이수호 파는 사람 있어??
1권
@정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