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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달무리 금빛 숲-135화 (135/155)

00135  10. 바란  =========================================================================

―쾅!

저편에서 요란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귀가 있는 이라면, 누구든 듣지 않을 수 없을 만치 큰. 웅성거림이 짙어졌다. 당황과 놀람이 뒤섞인 공기. 어디선가 경비병을 부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갖은소리로 고막이 웅웅거린다.

나와 뤼비에, 그리고 마스터는 왕의 일행이 먼저 여관을 떠나고 바로 신속하게 뒷골목으로 이동했다. 시끌벅적하게 소란을 일으켜 달라고 했고, 그에 부합하는 상황이 찾아왔으니 시선을 제대로 끌어줄 것 같았다. 혼란이 더 커지면, 유적 쪽 경비도 자연히 느슨해질 것이다.

“이쪽으로.”

뤼비에가 손짓하여 우리는 낡은 문을 비집고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한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먼지 쌓인 통로를 지나, 뜰로 나아가자 높은 담벼락이 이어졌다. 날듯이 가볍게 올라타 지나다가 창문을 넘어들어가고, 또다시 다른 건물을 지나 달렸다. 아주 조용하고 신속하게 이동은 이어졌다. 이미 행로를 조사해둔 듯이 막힘이 없었다.

이쪽 지역의 조사를 그와 이라칼에게 일임했던 난 조금이라도 들어둘 생각하지 않고, 한 거 없이 따라온 게 되어 좀 머쓱해졌다. 조심스럽게 몸을 숨기고 사람들과의 마주침을 피하며 달린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 근처에 다다랐다. 한 건물을 빠져나와 골목에 서자, 뤼비에가 저편을 보며 손짓했다.

“저곳이 바란의 의회 건물입니다.”

척 보기에도 주변과 구별되는 건물이었다. 아니, 단순히 건물이라고 표현하기엔 거창한 감이 있는, 저택의 풍모다. 좌우로 뻗은 우람한 규모도 그러했거니와 그야말로 예술적인 모양새에 난 시선을 빼앗겼다. 중앙의 푸른 돔 지붕 옆으로 크고 작은 첨탑이 늘어서 있었고, 건물 좌우를 지키는 조각상들이 고풍스러운 운치를 풍겼다. 그리고 무장된 경비병들이 그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정부 주요 청사에 잠입하라는 미션이라도 떨어진 기분이다. 괜스레 긴장되어 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마, 저쪽에서 일어난 소란에 병력이 투입될 테니 당장은 이들이 전부라고 보면 되겠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만한 수의 경비병들.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음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으므로 한결 같이 바짝 굳은 얼굴들이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신경을 빼앗겼다곤 하나, 이 대낮에 잠입은 어차피 무리이니 정면돌파가 답일 터였다. 난 심호흡을 마친 뒤 말했다.

“가자.”

싸움에 있어서 항상 수동적으로 반응했기에 이렇듯 먼저 쳐들어가는 건 낯설었다. 점점 더 불법에 익숙해져 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어쨌든 해야 할 일이다. 성큼 걷는 발길이 낯설었다.

“무슨 일이냐!”

아이를 안고 있어선지, 의구심 어린 눈초리를 보이면서도 바로 창날을 들이밀진 않는다. 우습게도 난 무슨 일로 왔다고 대답해야 할까 짧게 고민했다. 뭔가 질문이 던져졌으면 대답을 해야 한다고 충실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내 고민은 별로 의미 없는 것이었다.

돌연 옆에서 마력이 피어오름과 동시에, 눈앞의 병사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졌다. 털썩. 방비할 틈도 없이 이쪽을 주시하던 병사들이 검은 안개에 휩싸였다. 목구멍으로 비명이 터지기도 직전에, 입을 벌린 채 생명력을 잃은 듯 일제히 나동그라진다. 옅은 숨소리. 죽이진 않았다. 하지만 악몽에 빠져든 듯 파랗게 질린 낯빛들이다. 뤼비에가 나직이 속삭였다.

“정면돌파라지 않았습니까?”

상큼하게 웃는 얼굴이 낯설다. 잊고 있었지만, 뤼비에는 마법사 길드에 쫓겨 다니면서도 제 몸 건사할 정도의 실력자다. 비록 내 앞에서는 자신을 낮추어서, 그가 강자라는 걸 잊게 만들었을지라도. 그의 흑마법사다운 면모를 본 건 처음이라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뭐, 편하긴 하네.

“안으로.”

마스터의 지시에 따라 우리는 쓰러진 병사들을 지나쳤다. 건물 바깥쪽에 둘린 연푸른빛을 띤 결계. 척 보기에도 꽤 강고한, 마력이 한 올 한 올 촘촘히 짜여있는 고난도 결계였다. 그러나 마스터가 손을 내밀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결계조차도 바란의 유적에서 비롯한 것일 터. 그렇다면 제 주인이 가는 길을 가로막을 리 없다.

내부엔 별다른 경비병이 존재하지 않아, 돌파하기 쉬웠다. 이 침입자들을 마주하고 어버버 거리며 손가락질하던 사람들은 뤼비에의 마법에 픽픽 쓰러져댔고, 우릴 잠시라도 막아설 수 있을 만한 실력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뻥 뚫린 복도를 따라 우리는 순식간에 내달았다. 바란에도 마법사는 있을 테지만, 이토록 굳건한 결계가 있다면 상시로 이곳을 지키고 있는 건 낭비일 터였다. 그러나 마법사 길드조차도 범접하지 못한 결계는 아무 저지 없이 우리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건물 중앙에 위치한 계단을 타고 내려가, 우리는 마침내 지하로 향하는 문 앞에 다다랐다. 바란 아래 있는 유적. 그러니 이것이 틀림없이 유적의 입구로 통하는 문일 테지. 마스터에게 확인해볼 필요 없이, 내부로부터 새어나는 마력이 범상치 않았다. 불새의 알을 깨울 때 일순 내 몸을 관통했던 탑의 마력과도 유사한 속성. 그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힘.

난 내 키보다 훌쩍 높은 문의 형상을 눈에 새겨 담았다. 거대한 철문, 아니, 철이 아니다. 칠흑같이 검은 금속으로 전체가 이루어져 있었다. 그건 내게 마탑의 표면을 떠올리게 했다. 마법 금속인 듯 그 입자가 내포한 마력으로 인해 상식의 범주를 벗어날 만치 단단해진다. 표현에 돌출된 빼곡한 문양마다 마법으로 견고함을 보태는, 겹겹이 쌓인 결계로 완벽하게 세상을 단절하고 있는 입구. 정해진 열쇠로 여는 게 아니라면, 강제로 이 문을 부수는 데는 도시를 멸할 만큼의 마력이 필요할 것이다.

“고대의 산물답군요.”

뤼비에의 눈빛에 탐욕이 서렸다. 그를 흑마법사로 만든 마법에의 열망. 그걸 자극하고도 족할 만치 대단한 마법의 소산이다. 마스터가 아래로 몸을 기울이자, 잠시 문에 시선을 빼앗겼던 난 재빨리 그를 내려주었다.

열쇠나 암호 따윈 필요 없었다. 그저 마스터가 그 문에 손을 가져다 댄 것만으로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짙은 흑암이 내려앉은 듯, 일순 마스터의 뒷모습이 검어졌다. 그 주인이 열라고 명한 양 문이 움직였다. 기이익― 낮은 소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양 문이 안쪽으로 밀려들어간다. 그리고,

아찔하도록 쏟아져 내리는 빛의 물살에 난 눈살을 찌푸렸다. 지독하게 찬란한 순금빛. 그 어떤 형상도 잡히지 않은 가운데, 오로지 그 빛만이 시야를 가득 메웠다. 마력의 근원. 익히 보아왔던.

“막아라!”

뒤늦게 달려온 듯 뒤쪽에서 다급한 기척이 느껴진다. 이제야 달려온 건가. 나는 마스터의 손을 잡았다. 마지막까지 신중을 기하는 뤼비에가 안으로 섣불리 몸을 들이지 않고 내게로 바짝 다가섰다. 안쪽에 무엇이 있는지 모를 노릇. 호흡을 맞출 겨를도 없이 우리는 동시에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등 뒤로 문이 굳건하게 닫혔다.

머릿속이 하얗게 될 만치 강렬한 빛의 세례였다. 눈이 멀어버린 건 아닐까. 난 시각을 회복하려고 애를 썼다. 눈을 몇 번 깜빡이자 그제야 흐릿하던 주변이 형체를 띠기 시작했다.

“여기는?”

균형을 잃은 듯 바닥에 손을 짚은 뤼비에가 당혹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난 기이한 기분에 사로잡힌 채 사방을 돌아보았다. 이 아름답고 몽환적인 순금빛, 비현실적인 풍경이다. 잔잔한 소리를 내며 살랑이는 나뭇잎, 드리운 가지. 그 모든 게 금빛으로 가득한 숲.

이를 본 적이 있으나, 그건 결코 현실이 아니었는지라. 내가 꿈에서 보았던 장소가…… 바로 이곳이던가? 실존하는 장소였어? 의혹이 나를 바짝 굳게 했다.

그러나 고대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이곳을, 내가 꿈꿀 이유는 무엇이지? 아니, 그 꿈이 내 것이 아닌 마스터의 것이라면 그의 기저와 가까운 이곳은 어째서 이런 형태를 띠고 있을까. 답은 항상 내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나는 시선으로 마스터를 쫓았다.

그의 어둠은 빛조차 훼손할 수 없는 것이라. 마스터는 오롯이 서서, 심연이 담긴 눈으로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는 듯이.

“마스터, 이곳은?”

내 질문의 의도를 알만한데도, 마스터는 답하지 않았다. 뤼비에가 곁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말할 수 없다는 것. 내가 알아선 안 된다는 것. 그러나 나로선 당연히, 알고 싶지 않겠어? 나는 손을 뻗었고, 마스터는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으로 내 손길을 피해버렸다.

“마스터.”

부름이 들리지 않는 양 그는 침묵을 유지한 채 걸음을 내디뎠다. 그의 목적은 분명했고, 거기에 그 무엇도 선하지 않다는 듯이. 의문을 삭이게 하는 현실이 내게도 치달아, 난 손길을 거두어 그를 따랐다. 그래, 우선은 이 유적에서 힘을 회수하는 거다. 그 이후 바란을 벗어나는 것까지 고려한다면 지체할 겨를이 없는 게 맞았다.

“아름다운 풍경이군요. 무엇 때문에 이곳이 이리 아름다워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뒤따르는 뤼비에가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은은한 마력이 온통 깃들어, 하나의 속성으로 이루어진 이 공간. 이 숲. 그러나 이곳이 과연 현실인가? 문을 들어선 순간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꿈에 빠져든 양 이곳에 놓인 게 아니냔 말이야. 나는 의문을 품었고, 그 의문은 꽤 설득력 있는 것이었다. 그 꿈 또한 현실처럼 생생했던 것이니. 현실과 꿈이 경계를 잃고 뒤섞인 듯 나 자신의 향방이 가늠되지 않았다. 그러나 목적만은 분명했기에, 걸음에는 망설임이 깃들지 않았다.

숲 깊숙한 곳으로…… 점점 더 기운이 짙어지는 곳으로 걸음을 내딛던 어느 때에,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저것이로군요.”

빈 공터에 오롯이 떠 있는 찬란한 빛의 구슬. 아니, 구슬이라기엔 무척이나 크다. 가로 세로가 내 키만큼이나 큰, 형상화되지 않은 빛의 덩어리. 그러나 내핵처럼 무한한 힘을 품고 있어, 다가가는 걸음을 저절로 멎게 만드는. 그 환한 빛살만큼이나 압박감이 온몸을 짓누를 만치 강렬했다. 나 따윈 순식간에 재 만들어버릴 듯한 태양을 마주하고 있는 듯, 신비롭고도 두려웠다.

무의식의 저 끝에서, 나는 마탑의 근원을 본 적이 있었다. 그만치 강력하진 않으나, 그와 유사한 모습. 그것이 꺼지지 않을 영원한 빛이라면, 마스터는 그 모든 걸 흡수하는 암흑이니. 낮과 밤이 한 자리에 마주한 듯이, 그리하여 낮이 밤으로 뒤바뀌는 흐름이 보였다. 마스터가 다가설수록 일렁이며 호응하는 빛. 기꺼이 밤을 바라는 낮이었다. 때문에 나는 마탑이 마스터에게서 비롯되었고, 저 힘 역시도 마스터에게서 유래했음을 상기할 수 있었다.

마스터가 말했듯, 저건 마스터의 것이었다. 그가 마땅히 회수해야 할.

“저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그 무엇도 이룰 수 있겠지요.”

서늘함이 담긴 소리였다. 조금 전, 뤼비에가 드러낸 건 탐욕. 그라면, 아니 누구라도 저 힘을 바랄 만했다. 난 경계 어린 눈으로 뤼비에를 쳐다보았다. 열망이 드러난 얼굴. 그러나 그의 충동이 통제되고 있음은 엿볼 수 있었다. 뤼비에는 표정을 감추지 않은 채, 아쉬운 듯 고개를 내저었다.

“주인이 정해진 힘입니다. 그리고 저 힘이, 주인을 바꿀 리 없다는 게 느껴집니다.”

그리 말한 뤼비에는 눈을 내리감았다. 다시 뜬 그의 눈빛은 감정을 거두어 이지를 담았고, 파문을 거둬낸 호수처럼 고요해진 눈으로 그가 물었다.

“당신의 마스터, 그는 누구입니까?”

“…….”

“제 앎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나 저것은― 일개의 한 생명이 소유할 수 있는 힘으로 보이지 않는군요.”

나는 그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조아라가 요즘 시끄러운데.... 음.

딱히 할 말이 없다. 글을 써야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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