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18 9. 여정 =========================================================================
지나가다 부딪힌 여자를 왜 그런 추리과정까지 거치면서 추적해 들어온 건데? 미친놈이라기엔 너무 사리가 분명해서 똑똑한 변태 쪽에 가까울 것 같긴 하다. 그러면서도 난 그가 내 정체를 눈치챘을 가능성을 간과하지는 않았다. 할 일 없어서 이런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을 테니까. 청년은 능청스럽게 말했다.
“첫눈에 반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운 분이시니, 제가 뒤따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요.”
“남편 있다니까 개수작 말고.”
소름이 일어서 나도 모르게 싸늘하게 내뱉어버렸다.
“남편? 남편이라니, 그냥 호위라지 않았나.”
눈치 없는 여관주인이 혼잣말하며 내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얼얼하다. 청년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그렇군요.”
역시? 그건 또 무슨 근거로 추리해 낸 건지 알고 싶지 않았다. 난 정색하며 말했다.
“저는 당신에게 볼일이 없어요.”
“저는 볼일이 있습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저는 없어요. 그리고 바빠요. 좀 나갔다 와야 해서요.”
일단 그를 마스터가 있는 여관 밖으로 끌어낼 셈으로 난 그렇게 말했다. 기억을 지우거나 해서, 처리해버려야 하나. 이라칼을 불러서라도. 그러나 청년은 따라나서긴커녕, 너무도 선뜻 대꾸해버렸다.
“다녀오시지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뭐, 뭐야? 일단 나가겠다고 했기에, 난 그를 등지고 대단히 찝찝한 상태로 여관을 나섰다. 내가 떠나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가 수상하기 여길 것 같았기에.
물론 멀리 가지는 못했다. 이라칼이 여관에 남아 있으니 별문제는 없겠지 싶으면서도, 마법사 길드의 마법사가 마스터와 한 건물 안에 있단 사실이 못내 신경 쓰였다. 기분이 이상하다. 도대체 무슨 목적이 있어서 잠깐 마주친 나를 집요하게 따라온 걸까.
내가 마탑의 마법사인 걸 눈치챘고, 마탑과 마법사 길드가 거래한 바 있다면 이런 식으로 접근할 게 아니라 대놓고 언질을 주거나 자기 패거리를 몰고 오면 그만일 텐데. 의뭉스러운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려웠다.
잠시 여관 주위를 방황하던 난, 삼십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결국 다시 여관으로 돌아왔다. 이리저리 테이블이 놓인 1층을 슥 둘러보았지만, 어느새 자리를 떴는지 청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안도가 되기는커녕 왠지 모르게 불안했다. 기다리겠다고 했으니 벌써 떠났을 거 같진 않은데.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따라오지도 않았으리라.
난 곧바로 여관주인에게 물었다.
“그는 어디로 갔지요?”
“방을 달라기에 주었다오. 올라갔지.”
여관주인은 아까 말실수한 걸 떠올렸는지 힐끔 내 눈치를 살폈다. 그는 곧바로 덧붙였다.
“그러고 보니 그 호위인지 남편인지.”
“그가 왜요?”
“방금 여관을 나서던데. 마주치지 못했소?”
못 보았는데. 미묘하게 엇갈렸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고 올라가려던 난, 일순 그 자리에서 뻣뻣하게 굳었다.
방을 얻어 올라갔다는 건, 그 수상한 마법사와 마스터가 지척에 있단 소리였다. 아무 힘도 없는 마스터가 호위도 두지 않는 무방비 상태로!
“아가씨 방이 어딘지 물어보긴 했는데 말해주지 않았다우. 근처 방을 준 것도 아니니 걱정할 것 없소!”
난 여관주인의 외침에 대꾸도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박차고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아주 이성이 날아가진 않아서, 합당한 사고가 뇌리를 스쳤다.
그로서는 내 방이 어딘지 알 리 없고, 이 인근에서 마법이 사용되지도 않았다. 또한 그가 내 방을 찾아들어 마스터에게 해코지를 할 만한 근거도 없다. 마스터는 겉보기엔 예쁜 아이일 뿐이니까. 그 짧은 사이에 무슨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으리라.
애써 그렇게 달래면서 방이 있는 층에 다다르기 무섭게 난 주변을 살폈다.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난 발소리를 죽이고 마스터가 있는 방으로 빠르게 접근했다. 일부러 외떨어진 방을 택한 탓에 복도를 돌아들어야 했다. 낮이라 침묵에 잠긴 복도에선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귀퉁이를 막 돈 순간, 난 무언가를 발견했다.
문이 미세하게 열려 있었다.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 내린다. 이라칼이 문단속을 하지 않았을 리 없으니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하나였다.
“마스터!”
득달같이 문을 열어젖히며 방으로 뛰어든 난 숨을 급히 들아마셨다.
예상대로였다. 그러나 일순 뇌리에 펼쳐진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내 눈엔 이상하기 짝이 없는 광영으로 보였다.
바닥에 몸을 굽히고 앉은 청년은 아이의 경계를 풀듯 마스터와 지그시 눈을 맞추었다. 그의 손은 마스터의 어깨를 짚고 있었다. 마스터는 아이답지 않은 고요한 눈으로 그를 마주한다.
어떤 감흥도 일지 않은, 조금도 놀란 것 같지 않은 기색이다. 흡사 그들 사이에서 무언의 대화라도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그가 금방이라도 마법을 행사해, 마스터에게 해를 끼칠 수 있었기에 난 조심스러운 움직임으로 그들에게 다가섰다. 숨을 죽이고 아주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난 인기척을 내어 청년의 팔목을 잡고, 마스터에게서 떼어냈다.
어쩐지 위험하게 홀린 듯한 표정을 짓던 청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내 경계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말을 꺼냈다.
“아주 예쁘고…… 묘한 아이로군요.”
정말 변태 아닌가. 거부감이 확 치밀어 낸 빠르게 그의 팔을 내팽겨쳤다.
“이게 무슨 짓이죠?”
난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마스터를 등 뒤로 감싸고 섰다. 청년은 웃음을 머금은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 보이며 곤란한 듯이 말했다.
“방을 잘못 찾았다고 하면…… 믿지 않으시겠지요?”
“당신, 도대체 목적이 뭐야.”
심장박동이 자리를 찾고, 빠져나간 듯했던 온기가 돌아오자 노기가 일었다. 납득할 만한 대답이 따르지 않을 경우, 이 자를 처리해야 했다. 그건 의무심에 가까웠다.
“글쎄요. 그렇지, 일단 제가 마법사라는 건 말씀 드려야겠군요.”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고백해오는 태도에 난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
흐음 소리를 내며 그는 턱을 쓸었다. 그리고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아까는 유부녀라고 하셨으니 이번엔 아들이라고 할 셈입니까? 그리 닮지도 않았는데. 충고 하나 하자면, 표정관리를 좀 더 하셔야겠습니다. 그렇게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누구나 수상하게 여길 겁니다.”
당신처럼 이상하고 집요하고 예리한 사람은 그리 흔치 않다고! 항변하는 대신 난 이를 득득 갈며 변명했다. 일단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시간을 벌어야 했으므로.
“동생이에요. 그리고 몰래 들어왔는데 들켰다간 추가 요금을 내야하잖아요.”
하하, 청년은 소리 내어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다.
“좋은 답변입니다. 그런데 잊고 계신 것 같군요.”
뭐를? 내 의문에 응답하듯 그는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
“마음이 급하셨는지 한 가지 실수를 하셨습니다. 호칭에 주의하셨어야지요. 제 귀는 아주 좋거든요.”
아차. 탄식이 속에서 울려 퍼졌다. 마스터. 내가 그렇게 외쳤지. 펠이란 이름은 도통 부를 일이 없다 보니, 입에 익지가 않아서. 청년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확인사살을 가했다.
“보통 동생을 마스터라고 부를 일은 없겠지요. 그것참, 마스터라니 참 이런 아이에게는 흔히 쓰이지 않는 호칭입니다.”
말문이 꽉 틀어 막혔다. 내 실수이니 할 말이 없다. 다만 난 눈앞에 있는 이가 정말 재수 없는 인종이라는 것만 절절이 실감하고 있었다.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누구한테 말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그는 기이한 빛을 머금은 눈으로, 날 바라봤다.
“저는 당신에게 흥미가 있을 뿐입니다.”
그 눈빛, 그가 실없이 말한 듯이 이성에 대한 흥미가 아니란 건 알겠다. 그러나 이토록 적나라하게, 목적을 관철해오는 것을 마주하자니 생각이 멎어버리는 듯했다. 너무도 당황스러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대처를 떠올리기 어려웠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요. 저는 당분간 이 여관에 머물 겁니다. 그럼 이만, 실례했습니다.”
그 말만 남기고 청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방을 빠져나갔다. 정말 방을 잘못 찾은 사람처럼. 그 모습을 망연히 보고 있던 난 화들짝 놀라 손을 뻗었다. 그를 이대로 보내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가게 내버려 두어라.”
차분한 음성이 들려오자, 정지 버튼을 누른 양 내 손이 공중에서 멎었다. 들었을 법도 한데 청년은 가벼운 발걸음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충분히 거리가 벌어져서 우리의 대화가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을 때쯤 되어, 난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아 물었다.
“그가 마법사 길드에 우리에 대해서 말하면 어떻게 하려고요? 입을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살인멸구가 마스터가 선호하는 방법 아니던가. 그러나 마스터는 단정하듯 말했다.
“그리하진 않을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스터는 대책 없이 확신하는 쪽은 아니다.
“그가 뭘 원하는지…… 아시나요?”
“짐작이 간다.”
마스터는 그렇게만 말하고 그의 짐작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뭐야, 내가 오기 전에 뭔가 대화라도 나눈 건가? 마법어를 나눈 것 같진 않았는데, 마스터는 지금 마법어를 쓸 수도 없잖아. 아이컨택을 통해서 의사를 교환하는, 내가 모르는 다른 방법도 있는 건가.
의문이 찾아들었으나 마스터는 설명하는 대신 강조하듯 재차 말했다.
“적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일단 내버려 두어라. 간단히 제거할 수 없는 자와 굳이 전투를 감수하여 이목을 끌 필요는 없다.”
……아무래도 마스터도 그자처럼 추리를 통해 얻은 결론인 것 같았다. 그런데 난 당최 짐작할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아주 바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난 잠시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짐작이란 거 저한테 좀 말씀해주시면 안 돼요?”
마스터는 침묵을 대답으로 돌려주었다. 게다가 대화를 단절하듯이 바로 앉아서 눈을 감아버렸다. 그 때문에 머릿속에 물음표만 띄운 채 안 돌아가는 머리를 굴리던 난 얼마 후 방으로 돌아온 이라칼에게 신경질을 내버렸다.
“말도 없이 마스터를 두고 어딜 갔다 온 거야!”
어쨌든 그건 이라칼 잘못이었다.
이라칼이 다소 반항적인 눈빛을 보이긴 했지만, 그와 나 사이의 대화는 어차피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그 문제는 그걸로 끝났다. 난 청년에 대해서 이라칼에게 알려주었고 이라칼이 당장에라도 청년을 찾아가 없애버리려는 듯한 기색을 보이자 마스터의 뜻에 따르라고 요구했다.
한 지붕 아래 불편한 동거는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게 특별히 어떤 변화를 초래했던 건 아니다. 나와 이라칼은 교대로 마스터의 곁을 지켰고,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정보를 수집하러 나돌아다녔건만 성과는 없었다. 마법사 길드는 쉽사리 물러갈 조짐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단 건 국경봉쇄가 풀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며칠 후 돌파구를 찾지 못해 슬슬 초조해할 무렵, 이라칼이 자리를 비우고 내가 마스터의 식사를 가져오려고 정말 잠깐, 오 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1층에 내려가 있는 때에, 그동안 죽은 듯이 잠잠했던 청년이 방에 숨어들었다. 그걸 간파한 걸 보면 정말로 기회가 나기만을 기다렸나보다.
열린 방문과 이어 마스터에게 손대고 있는 청년을 목도한 순간 소름이 쫙 끼쳤다. 난 나도 모르게 탁자 위에 있는 아무 물건이나 집어서 그에게 내던졌다.
와장창! 엄청난 속도로 날아간 물컵이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박살났다. 기민하게 피해낸 청년이 야만인을 대하듯 시선으로 날 비난하며 교사처럼 질타했다.
“물건을 함부로 파손해서는 안 됩니다. 그저 대화를 시도하려던 것뿐인데 반응이 격렬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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슼팬이라는건 스포츠마다 skt며 sk며 많아서 좀 다양하긴 하지만.... 제가 말한 건 롤 프로게임단 skt t1 팬이라는 뜻입니다. 전에 어떤 분이 물어보셔서요.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