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3 8. 도주 =========================================================================
요새 내가 맡은 역할이 퍽 다양해졌다. 마법사도 모자라, 하녀, 짐꾼, 보모, 경비병……. 그렇다고 해서 딱히 내 가치가 높아졌다거나, 대우가 좋아진 건 아니므로 스스로 좀 더 쓸 만해진 것에 대해서 만족감 따위 느끼기 어려웠다.
어쨌건 난 숲지기를 따라 걷고 있었다. 실종자를 찾고,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마스터를 마을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 홀로 두고 가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던가.
괴물을 마을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스터는 놈을 찾아 나선다는 날 질책하는 듯이 바라보았지만, 구태여 대립각을 세우지 않았다. 아마도 나와는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듯했다. 그러니까 합리적인 판단으로, 내키지는 않아도 나를 내버려두겠단 것이다.
아무 힘도 없는 마스터가 해를 끼치지는 못한다곤 하나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에게 온건한 태도를 보일 것 같진 않았다. 난 그에게 ‘괴물이 오고 있다.’고만 알려주고 그 외에는 입을 열지 말라고 당부해두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도 마스터가 자폐증이 있으니 그냥 홀로 내버려두라고, 말을 걸면 발작을 일으킬지 모른다고 경고를 해둔 터였다.
내가 마법사이고 도움을 주고 있는 이상, 그들이 마스터를 괴롭힌다거나 건드리는 일은 생기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니 참 쓸데없는 걱정 같지만, 마스터가 전혀 자기를 방어할 수 없는 상태다 보니…….
그리하여 난 마스터를 여관 1층에 둔 채 홀로 숲지기와 떠나왔다. 내가 자리를 비운 새에 괴물이 들이닥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그리 생각하면서도 잠시 떨어져 있기로 한 마스터에 대해선 별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걱정이 되는 건 내 쪽이지.
새카만 밤이었다. 겁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밤중에 야생의 숲길을 걷는 건 도시에서 자란 내게 낯선 경험이다. 불어오는 바람따라, 서로 맞부딪히며 쓸리는 듯한 소리를 낸 나뭇잎들은 이따금 떨어져 볼을 스쳤다. 숲 기슭이라 나무가 그리 빽빽한 편은 아님에도 찌를 듯이 서 있는 고목들이 별빛 가득한 하늘을 가렸다. 때문에 더 어둡고, 스산함마저 감돌았다. 손에 들린 등불의 밝기가 미약하게 느껴질 만큼.
정말로, 괴물이 튀어나오기에 딱 좋은 광경이다. 실제로 괴물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숲지기라도 홀로 여기에 발을 들이는 건 꺼려졌으리라. 내가 동반하지 않겠다고 했다면, 그는 홀로 숲을 뒤져야 할 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보자는 의견이었고, 그만이 당장 찾아 나서야 한다며 강경했던 것이다.
자리를 비운 새 괴물이 습격해올 가능성이 있어서, 몇 안 되는 마을 장정들이 한밤중에 탐색을 나서기엔 위험했다. 괴물에게 유리한 숲 속에서 습격을 받아서 잘못되면, 다 죽을 수도 있으니까.
괴물이 가까이 온다면, 눈치채지 못하진 않겠지. 난 미약한 공포에 사로잡힌 채 감각을 점검했다. 숲지기는 거의 도움이 안 될 테니, 나 홀로 상대해야 할 텐데.
이성적으로는 그게 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닥쳐올 싸움에 긴장감이 일었다. 대련이 아니라 죽고 죽이는 류의 싸움이다. 게다가 지금 난 절대적인 건 아니라고 하나, 마법을 쓸 수 없다. 되도록 써서는 안 된다. 이대로 놈이 추적을 포기하고 숲으로 돌아가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이 낮다는 건 깨닫고 있었다.
탐색은 내 몫이 아니었다. 내가 잔뜩 곤두선 채 경계하는 동안 숲지기가 바닥에 난 자국을 훑으며 자취를 추적하고 있었다. 숲지기와 난 목격자의 말에 따라 약초꾼이 갔을 만한 방향을 따라가는 중이었다. 분명히 오두막 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난 남의 발자취를 추적하는 데는 재주가 없지만, 숲지기는 등불로 바닥을 비춰보면서 실종자의 행로가 대강 추측이 가는 듯했다. 미묘하게 땅이 팬 흔적이라든가 까진 나무뿌리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탐색은 내내 침묵 속에서 이어졌다. 긴장을 놓진 않았지만, 난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한밤중에 숲 속을 거니는 것도 괜찮은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새카만 어둠이 잠식한 숲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가시자 그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왔다. 고대의 숲처럼 까마득히 높은 침엽수림 위로 검은 융단에 깔린 은가루처럼 별이 반짝이고 눈처럼 새하얀 달빛이 발 앞을 적신다. 그 아련한 빛이 숲을 코팅하듯 은은히 휘돌고 있었다.
신비와 공포는 종이 한 장 차이라지. 괴물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지만, 반대로 요정이 노닌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묵묵히 앞서가던 숲지기가 어느 순간부터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거칠고 지저분한 외형과는 달리 그의 입에서 나온 휘파람은 맑게 울리며 공기 중으로 뻗어 나갔다. 실종자를 찾는 신호인가 싶어 난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그 괴물 말이오. 왜 갑자기 당신들을 쫓아왔는지……. 정말 짐작 가는 게 없소?”
휘파람 소리가 듣기 좋아 귀를 기울이고 있는데, 돌연 그가 물어왔을 때 난 뜨끔해서 혀를 깨물 뻔했다.
“글쎄요. 제가 동생과 함께이다 보니 위협을 좀 주어서……. 아마 그 때문 아닐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숲지기는 멈춰선 채 소리 높여 휘파람을 불었다. 실종자도 들을 수 있겠지만, 괴물도 들을 수 있을만한 소리라 이완된 몸에 긴장감이 솟아올랐다. 반쯤 의도한 바이니, 괴물과 마주쳐도 상관은 없겠지. 그런데 이름을 불러도 상관없지 않나? 왜 하필 휘파람이지?
의문이 들자 불현듯, 아까 전 숲지기의 이상한 눈빛이 떠올랐다. 뭔가를 감추고 있는 눈빛이라고 생각했었지……. 휘파람을 불어대는 소리가 갑자기 이상하리만치 귀에 거슬렸다. 휘파람을 왜 부는 거냐고 막 입을 떼려는 찰나, 숲지기가 먼저 내 쪽을 돌아보았다. 요엘의 일이 기시감으로 스치며,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창백하도록 차가운 얼굴은 아니었다. 날 선 살의나 적의, 파랗게 얼어붙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다. 도리어 인간적인 고뇌가 담겨 있었다. 몹시도 곤란한 듯한 표정이다.
“……난 아가씨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믿소. 여태 만났던 다른 마법사와는 달리 고압적이지 않더군.”
뜬금없는 말이지만, 서두에 불과함이라. 내 경계를 늦추기 위해서가 아닌, 진실을 고백하는 투였다. 그 때문에 나를 불러냈던가.
“왜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죠? 그보다 우리 약초꾼을 찾고 있던 거 아니었어요?”
“그는 안전하니 찾을 필요가 없소. 약초꾼은 자정쯤 마을로 돌아올 거요. 나는 그를 찾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게 아니오. 아가씨와 할 말이-”
그때였다. 피잉- 이상한 굉음이 들리며 붉은 빛이 역행하는 별똥별처럼 하늘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폭죽처럼 팡 터지며 온통 빛을 흩뿌렸다. 나는 바로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 신호였다. 마을에 괴물이 침입했다는.
그 작은 마을에서 괴물이 마스터에게 다다르기까지는 순식간일 것이다. 난 이를 갈며 나를 유인한 것이라고 실토한 숲지기를 노려보았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거야! 그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어!”
눈을 부릅뜬 그를 내버려두고 난 바로 땅을 박차고 뛰었다. 마스터를 두고 오는 게 아니었어!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을 때, 그가 나를 유인하려고 한다는 걸 한 번쯤은 의심해 보았어야 하는 건데.
항상 후회는 늦었다. 일단 숲지기에 대한 건 나중에 처리해도 늦지 않다. 그가 괴물과 어떤 관계이건……. 눈앞의 풍경이 휙휙 바뀌며 난 단숨에 마을로 내달았다.
저 멀리, 무너진 담벼락이 보인다. 사내 한 명이 그 앞에 쓰러져서 기절해 있었다. 스쳐 지나가며 난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죽지는 않은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땅에 움푹 팬 발자국이 보였다. 건너뛴 듯이 간격을 두고 발자국이 이어지고 있었다. 마치 목표물이 어디 있는지 아는 것처럼, 정확히 여관으로 향하는 방향.
내가 딱 마을을 나선 타이밍에 들이닥친 걸 보니 어쩌면 놈은 내가 마스터의 곁에서 떨어지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숲지기와 놈이 어떤 관계인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놈은 나타났고, 이제 내가 놈을 잡으면 되니까.
빠르게 내달리면서 난 로브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검 손잡이가 품 안에서 잡혔다. 거기에서 흐르는 강렬한 마력도. 난 검을 바로 빼 들었다. 눈앞에 여관이 보였다. 그리고 굳건히 닫힌 여관문을 몸으로 부수고 있는 놈의 모습도. 주변 건물들이 모조리 문을 걸어 잠그고 공포에 떠는 가운데 여관에선 비명이 쏟아지고 있었다.
난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바로 놈의 등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반은 다급함이, 반은 분노가 섞여 섣부른 검질이었다.
콰삭! 검은 어이 없이 맨 벽을 찍었다. 그 충격에 근육까지 아렸다. 기척을 감지한 놈이 몸을 굴려 옆으로 피했던 것이다. 검날 자체는 뭉뚝해 보였건만, 거기에 담긴 마력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두부 썰듯이 벽을 파고들었다. 난 검날을 빼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놈이 형형한 안광을 비추며 내 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 찢어진 동공을 마주하고 있자니 오금이 저렸다. 차라리 정신없이 싸우면 모를까 떡하니 마주하고 있자니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린다. 세상에, 내 평생 이런 괴물하고 싸우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
-크르르르릉.
놈은 경계하듯 길게 울음을 내었다. 폐부를 파고드는 듯한 압박감이었다. 난 손에 힘을 주어 검을 곧추세웠다. 두렵더라도 싸워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공격할까? 선수필승先手必勝이라는, 어디선가 들어본 말을 떠올리며 난 발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반쯤 무너진 문이 달그락 소리를 냈다. 안쪽에서 ‘얘야!’, ‘그만둬!’, ‘나가지 마!’ 따위의 외침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그러나 이내 문은 무너져 내리다시피 열렸다. 거기에 평소와 다름없이 고요한 눈으로, 마스터가 서 있었다.
“마스터!”
난 그를 펠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도 잊고, 질책하듯 외쳤다. 다행히 따라 나올 엄두가 나지 않는지, 뒤따르는 이는 없어 듣지 못한 것 같다.
싸우고 있는 와중에 도대체 왜 나온 거야? 난 슬쩍 괴물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 전까지 내게 사나운 기색을 드러냈던 괴물은 갑자기 내가 안중에도 없어진 듯싶다. 샛노란 눈동자가 흔들림 없이 마스터에게 박혀 있었다.
마치 사로잡힌 듯이……. 외형을 넘어 그 안에 도사리고 있는 심연을 직시하는 것처럼. 적의라기보단 매혹이고, 관찰이라기보단 통찰이었다. 그래 역시 놈은, 마스터 때문에 제 본거지를 떠나 이곳에 왔다.
놈이 마스터를 찾아온 게 어떤 의미인지는 몰랐다. 하지만 놈의 시선에 마스터가 노출되게 놔둘 순 없었다. 움직임도 재빠르고, 마음 바꿔먹고 금방 달려들 수 있으니까. 내가 마스터 앞을 가로막듯 서자 놈의 눈이 가늘어졌다. 방해당하는 게 불만스러운 듯 놈은 괴성을 내지르며 발을 굴렀다.
-크아아아아앙!
고막이 터질 듯한 쩌렁쩌렁한 소리에 머리가 다 울린다. 난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서도 달려들 마음을, 확 실행하지는 못했다.
기묘한 일이었다. 놈은 내겐 경계심을 드러내되 마스터에게는 그러지 않았고, 여기까지 쫓아와서 시끄럽게 소리를 냈다뿐이지 정작 덤벼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홀린듯이 빤히 바라봤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무슨 목적을 품고 있는지도……. 마스터는 이 괴물이 그에게 도전하려는 듯하다고 언급했지만, 그렇다고 보기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그냥 충동적으로 쫓아온 게 아닐까?
“나를 찾은 이유가 무엇이지.”
마스터가 그리 물었을 때, 나는 짐승에게 사람대하듯 말을 거는 것을 보는 양 이상하게 생각했다. 물어도 어차피 대답 못 하잖아? 그래서 놈에게서 뚱하니 마법어가 흘러나왔을 때,
[당신을 뵈었는데 어떻게 그냥 스쳐 보낼 수 있겠습니까.]
무생물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는 걸 보듯이, 경악에 사로잡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