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2 8. 도주 =========================================================================
숲지기는 내 경고를 마을 촌장에게 전달했다. 금방 마을에는 경계령이 내렸고, 나 혹은 마스터라는 연관성을 배제한 채 괴물이 숲 밖을 배회하고 있다는 사실이 퍼져나갔다. 그건 숲지기의 배려이기도 했다.
드물게 맞이한 위협적인 상황에 사람들은 몹시 불안해하며 날이 어둡기도 전에 집으로 돌아가서 문을 걸어 잠갔다. 창밖 너머로 엿본 고요해진 빈 거리에는 바람만이 휘돌았다.
촌장을 위시한 마을 원로 몇몇이 직접 날 만나러 찾아왔을 땐, 하도 심각한 낯빛들을 하고 있어서 좀 찔리긴 했다. 사실 이 사태의 한 원인인 마스터는 태연하기만 한데, 나만 마음 졸이는 게 억울하기도 했다. 물론 그도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
그들은 나를 연신 ‘마법사님’이라고 부르며 괴물을 처리하는 데 도움을 달라고 적극 부탁했다. 또 괴물과 싸울 때 경비대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나는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괴물이 마을 근처로 다가오면 알 수 있다고 일러주었다.
대화를 한창 나누고 있을 즈음 걸어 들어온 숲지기가 마을 밖으로 나간 이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따로 사람을 보냈다고 했다. 며칠 외출을 삼간다고 크게 지장이 있는 건 아닐 터이다. 계속 괴물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면 곤란하겠지. 우리도 며칠 후면 떠나야 할 테니까. 그때까지 놈이 숲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슬렁거린다면 이쪽에서 놈을 잡으러 가야 할지도 몰랐다.
나름의 방비를 해두었음에도 불안한 구석은 있었다. 숲지기의 오두막에서 마을까지, 괴물의 걸음으로 따지자면 그리 멀진 않을 터였다. 혹여 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변이라도 당한다면.
……설마.
불길한 생각을 물리치면서 난 마을 사람들을 등지고 식사를 챙겨 방으로 돌아왔다. 숲지기를 만난 것에 대해서 언질하지 않았으므로, 마스터는 내가 방 밖에서 뭘 하고 다니는지 몰랐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긴 죄송스럽지만, 마스터는 도움도 안 될 거고……. 휴식을 취하게 내버려두는 쪽이 나을 것 같단 생각도 있었다.
“밖이 소란스럽더군.”
딱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마스터에게서 미끄러지듯이 매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잠들었다가 깼는지 침대에 몸을 묻은 채였다. 그럼에도 잠기운이 전혀 묻어나지 않고 선명한 목소리였다. 난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챙겨온 쟁반을 침대맡에 내려놓았다.
“…아. 마을 사람들이 왔다 갔어요. 제가 괴물이 마을을 습격할지도 모른다고 경고를 좀 해뒀거든요. 많이들 불안한가 봐요.”
“쓸데없는 짓을.”
“네?”
“쓸데없는 짓이라 했다.”
차갑도록 떨어지는 분절음이었다. 몹시도 질책하는 듯이 들리는.
가슴이 서늘해진 난 내가 또 멍청한 짓을 한 건 아닌지 빠르게 되짚어보았다. 나 뭐 실수한 거야? 생각해봐도 모르겠는걸. 잘못을 하고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구제불능이 된 기분으로 난 반문했다.
“뭐가 쓸데없는 짓이에요? 숲지기가 괴물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내버려둘 순 없잖아요. 제가 알리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그랬다면, 손쓸 필요도 없이 그를 제거할 수 있었겠지.”
잠시,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듯했다. 혀가 얼어버린 양 말이 나오질 않았다. 뭐라고 하는 건지 귀로는 들리는데, 와 닿질 않는다. 맙소사 이건…….
지독히 단조로운 음성이 이어 흘렀다.
“놈이 마을을 습격한다면 필히 충돌이 벌어질 터. 네 입으로 마을 사람들을 다 죽이기는 무리라고 했으니 목격자와 놈을 모두 해결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기가 막히다 못해 가슴이 답답하다. 그야말로 숨이 턱 막혔다.
“그러니까……. 제가 모른 척 입 싹 다물고 있어야, 했단 거죠?”
“그래, 일을 번거롭게 만드는구나.”
마스터는 심지어 약간, 짜증이 인 것도 같았다. 늘 깊게 가라앉아 있던 검은 눈동자가 유독 번뜩거림을 품었다. 난 꼬집듯이 천천히 반문했다.
“우리 때문에 잘살고 있던 저 사람들이 죽든 말든 상관없으시고요?”
“말했을 텐데. 놈이 그들을 크게 해하는 쪽이 유리하다고.”
잘라 말하는 투에, 가책이 느껴질 리 없다. 당연히 가책을 느끼고 있지 않으니까. 논리적으로 문장을 연결하듯 술술 내뱉은 말이며 무미건조한 낯. 누군가의 삶을 파괴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그게, 소름이 끼쳤다. 도덕이라는 단어를 아예 배제하고 살아온 상대를 앞두고 막막하기만 하다. 평생을 공감할 수 없이 고립된 존재처럼.
당신, 뭔가를 느낄 수는 있나? 사랑하기는커녕 증오할 수는 있나? 좋아하는 건 있나? 싫어하는 건 있어?
……살아 숨 쉬는 건 맞나.
“…전 마스터가 정말 끔찍해요.”
난 그와 눈을 마주한 채 똑똑히 내뱉었다. 머리에 열이 올라서, 도무지 참아낼 수가 없었다. 일전에도 한 번, 터트린 적 있지 않던가.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 정말로 난…….
“이런 일 있을 때마다 질려요. 사람 같지도 않아.”
“나는 인간이 아니다.”
“알고 있어요!”
날카롭게 소리를 내지른 난 숨을 몰아쉬었다. 확 솟구치는 열기가 속을 그슬렸다. 암세포가 전이되듯 그을음이 날 까맣게 좀먹는 듯하다.
“근데 전 인간이거든요. 마스터가 종속되었다느니 어쩌느니 아무리 주장해도요! 그러니까 그런…… 소리 다신 하지 마세요.”
‘개’소리라고 말하지 않은 건, 제자로서의 마지막 예의였다. 솔직히 저런 모습이 아니었으면 뺨을 한 대 후려치고 싶기도 했다. 내게 그럴 배짱이 있느냐는 둘째 치고 기분만큼은. 진짜, 인간말종을 앞에 두고 있는 것 같거든.
“착각하지 마라. 너는 이세계의 인간이 아니며 그들과 같지 않다.”
말의 요점을 무시하고 중요치 않은 거 꼬투리 잡는 상대, 짜증나게 느껴지지 않은가. 마스터가 딱 그런 류였다. 난 울컥하는 성미를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네 다르죠. 근데 상대가 한낱 짐승이어도 그렇게 편의적으로 해를 끼쳐선 안 되는 거예요.”
“이 마을을 떠나면 네 뇌리에서 금세 잊힐 티끌만도 못한 존재들이다. 감정의 논리로 그들에게 신경 쓸 필요 없다. 쓸데없는 일이니.”
하등한 짐승을 보듯이 마스터는 차게 읊조렸다. 그는 진심으로-그에게 진심이란 게 있다면- 내 가치관을 의아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그건 무시라기보단 몰이해였다. 그리고 후자가 어떤 의미로는 더 나빴다.
“쓸데없는? 그게 쓸데없는 일이라면, 세상에 쓸데없는 일 아닌 게 없어요! 아참 지금도 전 쓸데없이 마스터를 돕고 있죠! 제 인생에서 가장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확신시켜줘서 참 감사합니다!”
씩씩거리며 마음껏 소리를 지르고 나자 찾아드는 건 후회였다. 내가 마스터에게 일방적으로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었다. 대가를 바랄 생각은 더욱이. 내가 마스터와 함께하는 건, 그를 내버려둘 수 없어서라는 마음의 부채 탓도 있지만 그와 헤어진다 한들 딱히 갈 데가 없다는 이유도 있었다.
그러니까 마스터와의 관계에서 내가 힘을 더 가지고 있고, 마스터 쪽이 더 아쉬운 점이 있다고 해서 내 쪽에 우위가 매겨지는 건 아니다. 마스터가 내 심리를 꿰뚫고 있진 않겠지만, 내가 그에게 붙어있는 이유를 계산해보긴 했을 것이니 어렴풋이 짐작은 하겠지.
만약 마스터가 내 말이 거슬려서 나와 함께하지 않겠다고 말한다면-
불안 속에서 나는 그의 낯을 주시했다. 어쩌면 마스터는 내가 꼭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쉽사리 숲지기의 호감을 샀으니, 다른 누군가를 이용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마스터는,
“네 어리석음은 구제할 길이 없구나.”
몹시도 한심하다는 듯이 내뱉고 눈을 내리감았다. 말 안 듣는 아이를 두고 골치가 지끈거리는 부모처럼. 그는 내가 답지 않은 이유로 흥분하여 소리를 지르고 있는, 몹시도 비이성적인 상태라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물론, 그가 이전처럼 힘을 가지고 있었다면 무시하는 대신 내게 틀림없이 벌을 내렸을 것이다.
안도가 찾아들면서 나도 화가 좀 가라앉았다. 사람의 천성은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더군다나 나는 그를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질색하는 걸 알았으니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을 꺼내지 않겠지. 나와 무의미한 말다툼을 벌이는 건 마스터도 내키지 않을 테니까.
분명한 건,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양보는 없다. 다만 그가 납득하건 그렇지 않건, 나는 그를 차차 바꿔나갈 참이었다. 말로 이길 수 없으니 설득하는 건 무리다. 그러니 그냥 강짜라도 부려야지 어쩌겠어. 무보수 노동자로 부려 먹히고 있는 내게 그 정도 요구할 권리는 있었다.
“식사하세요.”
나는 뚱하니 내뱉었다. 기껏 가져온 음식은 먹어야 하지 않겠어?
그리고 몹시도 이성적이다 못해 비인간적이라 날 꽥꽥대는 원숭이 취급하는 마스터는, 역시나 순순히 식사에 응했다. 조금 전 있었던 말다툼 때문에 감정이 상해, 내가 가져온 식사를 거부한다는 섬세함 따윈 존재하지 않는 군상이었다. 그 점은 참 편했다.
마스터가 식사를 마칠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쾅쾅거리는 소리로 들릴 만치 다급하고 거칠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난 마스터 쪽을 힐끔 보고 바로 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닫고 등지고 섰다.
“무슨 일이시죠?”
숲지기였다. 근심이 내려앉은, 초조한 얼굴이다.
“지금 나와, 숲을 수색할 수 있겠소? 실종자가 생겼소. 약초꾼인데, 오후 무렵에 돌아올 예정이라 따로 기별을 보내지 않았소. 그런데 아직 돌아오고 있지 않다고 하오.”
“조금 늦는 걸 수도 있잖아요. 길을 헤맬 수도 있고.”
“숲에 익숙한 자라 그럴 가능성은 낮소. 아내가 걱정이 많아서, 단 한 번도 제시간에 돌아오지 않은 적이 없었다고 하오. 괴물과 연결 짓긴 부족하나 혹시 모르니 찾아봐야겠소. 사고를 당해 고립되어있다면 위험할 테지. 좀 도와주셨으면 하오.”
친한 사람인가. 하긴 이 작은 마을에서 서로 얼굴은 그럭저럭 다 알 것이다. 난 잠시 머뭇거렸다.
“전 도움이 못될 거예요.”
“마법사들은 수색마법을 쓸 수 있다고 들었소. 어려운 일인 거요?”
“…전 지금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요. 그 숲에 떨어지면서 마력이 뒤틀려서, 당분간 회복해야 할 거예요.”
어쨌거나 사실이었다. 나도 돕고 싶지만,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 이는 마스터가 당부하고 또 당부한 것이고, 우리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우린 마탑의 추적을 피해야 하니까. 불가피하다면 모를까, 다른 이를 돕다가 어긴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 괴물은 어찌 상대할 참이오.”
“제게 마법검이 있어요. 검의 힘을 빌면 괴물을 상대할 수 있죠.”
“놈이 마을에 접근하면 알 수 있다지 않았소? 마법을 쓸 수 없다면 어찌 아는 거요.”
예리한 질문이었다. 난 재빨리 머리를 굴려서 답을 짜내었다.
“그건 제 동생에게… 위험이 다가오면 감지하는 능력이 있어요. 일종의 예지력 같은 거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않은가. 난 괜찮게 둘러댔다고 생각했지만, 숲지기는 날 동반할 만한 근거를 찾은 듯했다.
“마을에 남겨두면 동생은 안전할 거요. 수색하다가 괴물을 만날지 모르는 일 아니겠소? 탐색 겸 같이 갔으면 하오. 동생이 괴물이 접근했다고 알려준다면, 마을에서 곧장 신호를 쏘아 올릴 테지.”
“왜 그토록 제가 함께 가기를 원하시는 거죠?”
“실종된 자는 내 오랜 친구요. 안전하게 마을로 데려오고 싶소. 괴물에게 잡혀갔을지도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하더라도 그를 구해서 돌아오는 길에 괴물과 마주친다면…….”
숲지기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어떤 끔찍한 상상을 떠올리는 듯이 참담한 표정이었다. 대범한 자로 보였는데, 내색을 하지 않았을 뿐 불안해하고 있었나 보다. 그는 이내 한숨처럼 토해냈다.
“부탁이오.”
그 절실한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