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01 8. 도주 =========================================================================
숲 속에 숨겨져 있던 마을다운 황량함이다. 여행자라곤 도통 찾질 않는지 마을의 하나뿐인 여관-여관이라기엔 이층집에 가까운-에 도착했을 때, 난 바로 다른 손님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실제로도 맞았다. 빈방이 있느냐고 물으니 방이 딱 두 개 있는데 모두 비었다고 한다. 둘 중 어느 방을 잡든 그건 내 마음이었다.
혹시 죄를 짓고 숨어 사는 이들의 마을이 아닐까, 여행자가 적은 편인 것 같다고 운을 띄우니 마을이 생긴 지 이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숲에서 채취하거나 사냥한 부산물로 먹고살던 이들이 알음알음 모여서 만든 마을이라고. 워낙 작은 마을이기도 하기에 영주도 거의 내버려둔 채 신경 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난 두 방 중 좀 더 널찍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물론 마스터와 같이 쓴다. 원래부터 한 방에서 생활하기도 했거니와 방을 따로 쓰기엔, 마스터를 혼자 두기가 걸려서……. 아이인 척할 수 없다면 입을 열지 말아 달라고, 당부해두긴 했지만 못 미더운 구석이 있었다.
열은 내렸지만, 마스터의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으므로 아직은 좀 더 쉬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몹시도 하녀가 된 기분이지만, 난 마스터를 종일 업고 걸어도 조금도 지치지 않을 만큼 튼튼하니까. 아래층에서 미리 주문해놓은 음식을 들고 올라오자, 마스터가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모습이 보였다.
난 그의 앞에 먹을 게 담긴 쟁반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마스터는 다른 무언가에 신경을 빼앗긴 것 같았다. 깊게 빠져든 듯 검은 눈이 늪처럼 짙었다. 어둑한 방안에서 미동도 없이 앉아 수면에 이는 파문을 응시하듯, 그만한 집중도로 생각에 빠진 모습이 인형처럼 섬뜩하다. 아름다움은 마음을 끌기 마련이나, 마스터의 외형은 도리어 끌리는 마음도 배제하듯 물리쳤다.
생리적인 두려움이었다. 세상 모든 것을 집어삼킬 악하고 삿된 힘이 그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양.
“놈이.”
그가 불현듯 뇌까렸다.
“오고 있어.”
피가 빠져나가는 듯,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불안이 먹구름처럼 날 덮쳐온다.
“시, 시온인가요? 엘리야가? 누가 온다는 거예요! 놈이 누군데요?”
안절부절못하며 추궁하듯 질문을 쏟아내자 마스터의 시선이 최소한의 동작으로 내게 꽂혔다.
“숲에서의 그놈.”
“아… 난 또.”
마음이 탁 놓였다. 한숨을 내쉰 난 야단을 핀 탓에 거의 엎어질 듯이 기울어진 수프 그릇을 세웠다. 숲에서의 그놈이라면, 그때 도망갔던 그 괴물이잖아. 이미 끝난 일 아니던가?
“그 괴물은 이 마을까진 오지 않는다던데요. 싫어하는 향의 수목이 경계에 심겨 있다고 했어요.”
자연스럽게 반론하던 난, 문득 마스터의 말이 질문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 마스터는 ‘오고 있다’고 했지 ‘올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짐작이나 가능성을 논하는 것이 아닌 확신, 그건 분명히 달랐다.
난 곰곰이 그때 목격한 괴물의 형상을 떠올려보았다. 흉악한 모습이긴 하되, 대단히 위협적으로는 느껴지진 않았다. 두렵지만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은 있었다. 그전에 요엘에게 죽을 뻔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그에 비하자면 대수롭지 않은 상대다. 그 때문에 그다지 긴장감이 일지도 않았다.
더군다나 작은 곳이라도 마을은 마을, 숲엔 그 괴물 하나밖에 없다던데, 혼자 침범하기엔 본능적으로 꺼리지 않을까.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모든 능력을 다 잃은 것 아니었어요?”
“마력을 사용할 수 없다고 해서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니.”
“그 본질이 뭔데요?”
뭐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본질을 가지셨기에, 맘대로 모습도 바꾸고 괴물의 접근도 눈치를 챌 수 있나 싶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마스터는 이번에도 침묵했다.
당최 어떤 비밀이길래 그리 싸안고 있나. 부아가 치밀었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전에 만난 불새 엘로힘이 했던 말을 기억하며 난 진지하게 읊조렸다.
“그러니까 놈도 일종의 마법 생명체고, 그 때문에 마스터는 놈이 가까워지는 걸 느낄 수 있단 말이죠? 얼마만큼 가까이 있지요?”
“이전에 떠나온 곳 인근에.”
이전에 떠나온 곳 인근이라면……. 등에 소름이 쭈뼛 솟았다. 그 오두막 근처란 말이야? 거기까진 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전에는 출몰하지 않았던 곳까지 내려왔단 건 이곳 마을까지도 올 수 있다는 소리다. 충분히 가능성 넘쳤다. 그런데 도대체 왜?
죽을 때가 되면 안 하던 짓을 한다고 한다. 특히 영역 밖으로 벗어나는 건, 대단한 변화다. 놈이 움직일 만한 어떤 특별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싫어하는 냄새를 참아내며 우리를 추적할 동기. 괴물의 습성에 대해선 아는 바 없으니 영 가닥이 닿지 않는다.
그때……. 마스터를 보고 도망간 이후로 우리가 오두막을 찾아내기까지, 텀이 있었다. 놈은 그 이전에 우리 앞에 나타날 수 있었다. 근데 그렇게 하지 않고 이제야?
“마을 사람들에게 경고를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어떻게 알았느냐고 묻는다면 뭐라 대답할 참이냐.”
지극히 현실적인 지적이었다. 믿을 것 같지도 않았다. 이 마을까지 내려온다는 보장도 없으니. 하지만 적어도 한 명, 곧 이곳으로 올 숲지기한테만큼은 경고해야 한다. 기껏 도와준 사람을 괴물이 배회하고 있는 오두막으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으니까.
괴물을 그리 위협이라 느끼지 않은 건 여전히 유효해서, 난 침착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놈이 마을에 가까워진다면, 내가 놈을 없애버리면 되잖아. 마법을 쓰지 못한다고 해도 내겐 검이 있다. 난 진지하게 물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나요?”
“멈춰 섰다.”
“더 올 것 같으세요?”
“모른다. 놈의 상념은 간헐적으로 내게로 전달된다. 추적의 의지는 느꼈으나 지금은 끊겼다. 어찌 될지는 모르지.”
“왜 우리를 쫓는 거죠. 놈이 우리에게 적의를 품고 있나요?”
힐끗 내 쪽을 바라본 마스터의 눈에 어둠의 단면처럼 칠흑색 윤이 감돌았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걸 말하지. 놈은 내 앞에서 도망쳤다. 그는 본능에 의한 것이지. 허나 놈은 숲의 주인이다. 마물에게 있어 도전심과 지배욕은 공포를 이겨내기 마련이며 저보다 강한 자를 먹어치우고 성장하는 것이 바로 마물의 습성이다.”
“그래서 마스터에게 도전할 셈이라는 거군요?”
난 한숨을 내쉬었다. 도전은 무슨 도전이야 그때 도망쳤으면 그대로 끝이지. 깔끔하지 못한 뒷마무리다. 골치 아프게. 하지만 놈도 어느 정도 이지를 가진 것 같았으니, 마음을 바꿨을 수 있다. 그냥 처음 마주쳤던 일어났어야 할 일이 후에 닥친다고 생각하는 게 편했다.
그보다 가장 중요한 걸 물어야 했다. 마스터는 그 질문에 한해서 틀림없이 세상에서 가장 객관적인 이였다.
“제가 놈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검을 쓴다면, 가능하다. 마법을 쓰는 것과는 달리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다.”
“…알았어요. 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으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대비를 해야 하니까요.”
“마을 근방으로 접근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본인이 알 수 있단 뜻이겠지? 마력이 살아있으니 나 역시도, 경계한다면 눈치챌 수 있다.
마스터가 식사하도록 내버려두고 난 자리에서 일어섰다. 졸지에 괴물을 마을로 불러들인 것 같아서 기분이 좀 찜찜했다. 말도 안 하고 돌아갈 것 같지는 않지만, 숲지기를 우선 찾아볼 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계단을 타고 1층에 내려섰을 때, 마침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아가씨, 아이는 상태가 어떻소? 잠자리가 내 집보단 편하긴 할 건데.”
“많이 나았고, 지금 식사하고 있어요.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받지 않을 걸 생각해 오두막에 사례를 놓고 오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말로만 고마운 게 아니라 실지로 난 숲지기에게 꽤 많은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성의껏 우릴 도왔고, 여기까지 안내해주기도 했다.
난 품에서 금으로 된 동전을 두어 개 꺼냈다. 너무 많이 준다면 거절할 수 있었기에, 내가 생각하기에 적당한 보상이라고 여겨지는 액수였다.
“저 실례가 아니라면, 이것으로라도 보답하고 싶어요.”
“아가씨가 뭘 아는군.”
숲지기는 놀랍도록 냉큼 금화를 받아갔다. 난 미심쩍게 눈을 치켜떴다.
“숲에서는 쓸 일도 없다면서요.”
“예의상으로 해본 말이오. 숲에서 혼자 살려면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이 있다고.”
“그렇겠지요,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어요.”
“말해보시오.”
“그 숲에 산다는 괴물이 이제껏 단 한 번도, 숲을 벗어나 오두막 근처로 온 적이 없나요? 정말 단 한 번도?”
숲지기의 눈이 일순 흔들렸다.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는 분명히 동요했다. 남들에게 말 못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눈빛이었다. 악의적이거나, 음모라 말할 만한 것은 아니어도 남자는 분명히 뭔가 숨기고 있었다. 순식간에 그에게 품은 호의가 가시고,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어찼다. 뭘까?
그러나 고작 이 정도 찔러본다고 즉각 반응할 리 없다. 숲지기는 곧 능청스럽게 시침을 떼었다.
“그랬다면 내가 그 오두막에 어찌 살 수 있겠소? 놈이 앞발로 툭 치면 무너져내리겠구먼, 불안해서 말이지.”
“그러면 괴물의 습성은 어떻게 아셨어요? 이를테면 그 괴물이 숲을 독차지하고 있어서 다른 위험한 것들이 없다는 거요.”
제법 날카로운 지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직접 관찰하거나 확인한 게 있어야 그리 잘 아는 듯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도 이전 숲지기에게 주워들은 것이라오. 놈은 내가 숲에 오기 전부터 그곳에 살고 있었으니까. 대대로 전해진 이야기지. 어떻게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오. 그런데 다른 괴물이 나타난 적도 없고, 어쨌든 내가 본 건 놈뿐이니까……. 주워들은 이야기와 다름이 없으니 믿을 수밖에.”
“괴물을 직접 보신 적 있나요?”
“우연히 평소보다 더 깊게 숲 속으로 들어갔다가, 놈을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지. 내 쪽을 보기에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고. 다행히 놈은 나를 쫓지 않았지. 그 후로는 그 근처에 얼씬도 해본 적 없다오.”
“그렇군요.”
의심이 사라지기엔, 태연한 얼굴로 술술 뱉어내는 모양새가 마음에 걸렸다. 물론 아무것도 숨기는 게 없기에 당당하게 막힘없이 말하는 걸 수도 있는 데 그것과는 느낌이 좀 달랐다. 내가 예민한 걸까.
하지만 거의 낌새를 비치지 않던 시온들도 한순간에 돌아섰는데, 그걸 생각하면 숲지기가 드러낸 기색을 무시하기는 어려웠다.
설마 마탑과 관련된 건 아니겠지. 멱살을 잡고 추궁할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 의심은 의심으로 남겨두자. 난 일단 숲지기를 붙잡아야 했다.
“그 괴물이 지금 오두막 근처에 있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요.”
숲지기는 정말로 깜짝 놀란 것 같았다. 그는 속사포처럼 내게 말을 쏟아냈다.
“괴물이 오두막 근처에는 왜 온단 말이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릴. 아니 그리고 그걸 아가씨는 어떻게 아오? 지금 날 겁주려는 거요?”
“그럴 리가요. 저는 마법사잖아요. 왠지 모르게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오두막 인근에 마법을 펼쳐 놓았어요.”
“마법이 잘못될 가능성은?”
“없어요. 그러니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두막으로 돌아가선 안 된다는 거예요.”
숲지기는 확연히 낯빛을 굳히곤 나를 바라보았다.
“믿기 어려우실 건 알아요. 그런데 사실이에요. 어쩌면 괴물은 이 마을로 향할 수도 있어요.”
“혹시 놈이……. 아가씨를 노리는 거요? 숲에서 놈과 충돌이 있기라도 했소? 어쩐지 하도 멀쩡하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소만.”
“아뇨, 마주치긴 했는데 특별히 일은 없었어요. 놈은 괴물이잖아요. 변덕이 들었을 수 있죠.”
“내참,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군. 이거 마을에 비상회의라도 열어야겠소. 그 괴물 놈이 마을을 습격하기라도 하면, 어찌 될련지.”
자신이 마을에 해악을 가져온 건 아닐까 꺼림칙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내가 괴물을 상대할 만한 능력이 있다는 걸 밝혔다. 괴물이 마을에 나타나면 원인제공자로서 놈을 처리할 의향이 있다고도. 숲지기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며 일단 경고는 전해놓겠다고 밝혔다. 거기까지는 모든 게 순조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