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5 8. 도주 =========================================================================
“네 마력을 닫아라.”
아찔하니 높은 침엽수가 드리운 숲 속 그늘에서 마스터가 내게 처음으로 주문한 건 그 말이었다. 이동의 후유증으로 빙빙 거리는 어지럼증을 이길 일이 없어, 휘청하며 나무를 짚고 있는데 들려온 소리에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마력을 닫다뇨?”
“마력이 몸 밖으로 발산되지 않게끔 하라. 숨을 죽이듯 마력의 호흡을 차단하는 거다. 추적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차분하기 짝이 없게 이어진 설명에 난 그의 말이 다급함을 담고 있지는 않을지언정 재촉의 의미를 담고 있단 걸 바로 깨달았다.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요.”
몸 주위를 미약하게 휘돌던 마력을 모으듯이 빨아들이자, 금세 몸 안에 들어찼다. 넘쳐나는 걸 억지로 한 그릇에 꾸역꾸역 그러모은 양 거북한 기분이 든다. 마스터는 미동도 없이 다음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 이동의 잔재가 남아있을 터, 움직여야 한다.”
몽환의 미로가 무너져 내리며 이리로 떨어진 것임에도 땅이 파이거나 나무가 부러지는 일 없이, 우리 둘만 이곳에 떡하니 놓인 것처럼 이동과정은 매끄러웠다. 다만 주변에 비산하듯 흩뿌려진 금빛은 이제는 파쇄된 미로의 마력이었다. 그 자취가 아주 미미하여 찾아내기 쉬울 것 같진 않지만,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다. 모든 시온과 아모스와 룻이 우리를 쫓으려 할 테니까.
난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니까, 어디로요?”
마스터는 잠시 가늠하듯 하늘을 올려다본 뒤 주변을 훑었다. 인적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실로 막막한 숲 속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느 쪽으로 향해야 할지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는데…….
“…일단 숲 밖으로.”
숲 속에서 익숙지도 않은 야영생활을 하는 것보단 그래도 사람 사는 곳으로 가는 게 낫겠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장서기 시작한 마스터를 뒤따랐다. 그래도 마스터니까 무슨 대책이 있겠지, 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토대로.
그러나 그로부터 몇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그 토대를 무너뜨려야만 했다.
***
“점점 숲이 우거지는 기분이 드는 데요.”
제 착각은 아니겠죠? 난 그런 눈으로 의심쩍게 말을 꺼냈다. 그뿐만 아니라 아까부터 계속 말은 하지 않고 있었는데, 점점 경사가 가팔라지는 느낌이다.
“저기, 마스터 이거 숲 밖으로 가는 길은 맞겠죠?”
캐묻듯 또다시 질문을 건네자 우뚝 멈춰선 마스터가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난 그의 낯을 목도하자마자 흠칫 놀랐다. 창백한 달처럼 희게 질린 낯엔 여전히 표정이 없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고단한 기색이었다. 이런 비유가 어울릴지는 모르겠지만, 꼭 부모 성화에 끌려다니느라 잔뜩 지친 조숙한 아이 같다.
그는 선 채로 인형처럼 입술을 달싹였다.
“글쎄.”
그 대책 없는 대답에 난 또 놀랐다.
“설마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그런 말씀은 아니시겠죠?”
불신이 팽배한 질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즉, 마스터는 정곡을 찔린 양 제자리에 선 채로 침묵을 고수했다. 맙소사! 마스터는 그야말로 생각 없이 걷고 있었나 보다. ‘생각 없이’라니. 정말로 마스터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 아닌가. 그를 모든 걸 기계처럼 정확히 계산해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행동하는, 지극히 비인간적인 인물이라고 여겼기에 이 상황이 지독히 낯설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게 있었다. 생각해보면 마스터는 지금 본신의 형태조차 유지할 수 없는 몸이다. 마력도 쓸 수 없는 완전히 아이와 같은 상태. 이 숲 밖으로 나가는 길을 알 도리가 없지 않은가. 너무 전적으로 그에게 맡긴 게 잘못이었다.
난 당황스러운 마음을 누르며 혀를 찼다.
“모르면서 앞장은 왜 서세요?”
아주 핀잔이 입에 붙었다. 마스터가 무표정하게 반론했다.
“너라고 해서 알랴.”
너도 모르니까 내가 앞장서는 편이 낫다는, 그 말인가? 내 능력을 심히 무시당하는 듯하여, 난 불만스레 눈썹을 치켜들었다.
“마법을 쓰면?”
“마력을 숨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건 그렇죠. 근데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죠.”
모르면 모른다고 말을 할 것이지 하도 당당하게 아는 척 나서시기에 괜히 따라왔다가 시간 낭비했잖아. 내가 말 안 했으면 며칠이고 이 산속을 떠돌았을 거라고 생각하니 어처구니없는 기분이었다.
“여기 잠깐 서 계세요.”
난 멀뚱히 날 쳐다보는 마스터를 두고 옆에 선 나무에 손을 짚었다. 그리고 단숨에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탁, 탁, 탁.
몇 번 세게 걷어차다시피 발을 딛고 하늘로 솟구치다 보니 난 어느덧 나무 꼭대기에 서 있었다. 그간 거조를 타고 다니며 훈련이 되었는지 위태롭게 흔들리는 가지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 있음에도 고소공포증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도 좀 정신적으로 견고해진 걸까.
물론 방금 건 얼마간 육체적 단련을 거쳤다고 부릴 수 있는 묘기가 아니었다. 사람이 표범도 아니고 어떻게 몇 번 훌쩍 뛴 것만으로도 까마득히 높이 솟은 나무 꼭대기에 오른단 말인가. 타조급 다릿심이 있지 않고서야 안 될 말이다.
다만 나는 마법사였고, 감추고 있을망정 내재한 마력이 여전히 내 육체에 효력을 끼치고 있었다. 원래 신체적 능력이 이 정도까지 되진 않았지만, 그간 치러냈던 사건들 덕에 마력이 급진하게 증가한 영향도 있었다.
역시 마력이란 건 참으로 편리한 힘이다. 난 새삼 그 점을 실감했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지금 난 마법사라기보단 전사에 가까웠다. 고로 이런 것쯤은 간단하단 말이지.
난 눈을 가늘게 뜨며 온통 푸릇푸릇한 지평선을 뚫어지게 관찰했다. 어디쯤엔가 사람 사는 곳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면서. 적어도 숲이 끝나는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가야 할 방향도 정할 수 있다. 영화에서 본 게 있으니 망정이지. 마법을 쓸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건 아니다.
“동쪽인가.”
출중한 시력으로 저 먼 동쪽 언저리에서 확연히 초목이 줄어드는 걸 포착한 난 중얼거렸다. 꼭 사람 사는 곳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으나 일단 숲이 끝나는 지점인 듯하니 저리로 가면 될 것 같다. 아예 지평선을 보아선 가늠할 수 없게끔 광활한 숲 한가운데 떨어진 건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더군다나 마스터의 감이 맞았는지, 제대로 가고 있었기도 하고.
산행에는 별로 경험이 없지만, 지금 속도로는 사나흘 걸리겠는데. 난 얼추 어림짐작해 보았다. 피로라는 걸 느끼지 못하는 몸이 된 게 이럴 때 유리하다.
난 올라온 방식 그대로 가지와 가지를 오가며 빠르게 아래로 뛰어내렸다. 몸에 내구력도 생겼는지 땅에 발을 디뎠을 때 꽤나 큰 충격이 전달되었을 게 분명함에도 통증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흡사 초인이 된 기분이다.
“이대로 쭉 가면 되겠…….”
성급히 본론부터 꺼내던 난 일순 말을 멈추었다. 나무 둥치에 오도카니 기대앉아 있던 마스터가 고개를 들며 날 응시하는 데 그 모습이……. 난 급히 숨을 들이켰다.
…아니 이거, 너무 귀엽잖아. 그 앉은 자세도 그렇거니와 빤히 날 올려다보는 모습이 지독하게 앙증맞다. 마스터에게 가져다 붙이는 게 어색하다 못해 소름 돋는 어휘지만,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물론 마스터의 미모가 어려졌다고 해서 어디로 갈 리는 없지. 지금 이대로는 예쁘장한 어린 꼬마애이기도 하고. 그러나 난 곧 착잡한 심경에 잠겼다. 아무리 사람이 시각에 의존한다지만, 저 마스터를 보고 귀엽다고 생각하다니 어디까지 이성과 따로 노는 걸까. 스스로를 힘껏 비난하고 싶은 기분이다.
“힘드신가요?”
어쩐지 힘이 들어가는 입가를 주무르며 난 나직이 물었다. 워낙 정적인 사람이기도 하고, 마력을 잃었으니 나와는 달리 육체적으로도 힘겨울 터였다. 저런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있는 걸 보니, 어쩐지 동정심이 움트기도 했다. 제자들한테 배신당하고 몸도 온전치 못한 데다가 부랑아처럼 숲 속을 헤매고 있다니…….
게다가 기껏 같이 도망친 제자라는 애는 불퉁한 말투로 갈구기나 하지. 몹시 잘못하고 있는 양 죄책감도 뒤따랐다. 난 왠지 수그러든 투로 다시금 물었다.
“좀 쉬었다가 가시겠어요?”
“그럴 시간은 없다.”
내 배려가 무색하게 마스터는 자르듯이 말하며 곧장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긴 걸어서 이동했으니 아까 그 자리에서 멀리 왔다고 말하기도 힘들다. 어디가 안전지대일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아직은 아니다.
“제가 앞장설 게요.”
발달한 신체기능이 방향감각에도 영향을 미쳤는지, 난 동쪽으로 규정한 방향이 정확히 어느 쪽인지 이 아래 내려서서도 판별할 수 있었다. 내가 가는 그대로면 최단거리로 숲을 주파할 수 있을 터였다.
성큼 걸음을 내딛자 마스터가 뒤따르는 기척이 느껴졌다. 꼭 키우던 멍멍이가 따라오는 것 같다는 불순한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난 또다시 마스터를 귀엽게 느끼려는 자의식을 애써 억누르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이후 한동안 대화는 없었다. 풀벌레 울음이며 새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계속 이어졌다. 부러 걸음을 늦추지도 않았는데 마스터는 그 작은 보폭으로도 날 열심히 따라왔다. 등 뒤로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던 탓에 그와 간격이 벌어지지 않고 있단 걸 계속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 난 꽤 긴장한 채였다. 이 피치 못할 도주생활에서 마스터와 내 안전은 거의 나 자신에게 달렸단 걸 슬슬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애 딸린 채 피난길에 오른 거나 다름없는 신세다. 그렇다고 손잡고 걷긴 좀 그렇지. 별로 친밀한 사이도 아닌데.
어쨌거나 마스터를 내내 신경 쓰면서 나아가고 있는데, 날이 어둑해질 무렵 뒤따르던 발길이 느려졌다. 용 써서 따라붙다가,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솔직히 마스터의 약한 소리를 들어보고 싶은 심술로 여태 내버려둔 감도 있었기에 난 재빨리 뒤를 돌아보았다.
“마스터?”
힘드시냐고 능청스레 물어보려던 난 마스터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목격하곤 그 자리에서 굳었다. 아까보다도 표백된 양 하얘진 얼굴은 흡사 열병을 앓는 듯했다. 드러내고 있진 않되, 고통 덕에 배어난 땀이었다. 그걸 알아챈 난 일순 가슴이 서늘해졌다.
“마스터, 어디 아프세요?”
화급히 다가서 어깨를 붙들자 마스터가 몸을 움찔거린다. 입에서 신음이라도 튀어나올 듯한데 마스터는 참아내는 양 대단히 차분하게 말을 뱉어냈다.
“이대로는 더 걸을 수 없다.”
그 단정에 난 몸을 굽혔다.
“발을 좀 볼게요.”
마스터의 몸을 눌러 바닥에 앉히고 신발을 벗겨낸 난 눈앞에 드러난 광경에 가슴에 내려앉았다. 빨갛게 부풀어오른 발이 이리저리 까진 채 피가 맺혀 있었다. 그가 구현한 신발이 불편해서라기보단, 평생 제 발로 걸어본 적 없는 사람이, 그것도 어린애인 상태로 험한 길을 이리 오래 걸으니 자연스레 나타날 법한 현상이다.
그걸 왜 생각 못 했던 걸까. 자책감에 사로잡힌 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물론 그간 내게 마스터는 너무도 대단한 사람으로 비쳤기에, 고작 반나절쯤 걸었다고 발이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가 될 거라곤 생각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한편으로 난 마스터가 내심 내게 기대고 약한 소리를 꺼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얄팍한 심술이 이런 결과로 드러나자 가슴이 쓰라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그가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그렇다. 비록 이런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진작 말을 하셨어야죠.”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아 투덜거리자 마스터가 평온하게 중얼거렸다.
“어차피 이동해야 하니. 말한다고 통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자꾸 말도 않고 함부로 단정하지 마세요. 저한테 말씀하셨으면 이런 꼴은 안 되셨을 거예요.”
상처가 난 걸 보고도 마냥 내버려둘 수 없어 가져다 댄 손을 마스터가 제지하듯 잡아채었다.
“마법을 써서는 안 된다고 하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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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도 잡았어요. 네, 그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