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9 7. 배반 =========================================================================
“나는 그가 누구인지 안다.”
덜컥, 가슴이 내려앉는다. 난 흠칫 몸을 떨었다. 입안에서 비릿한 냄새가 퍼져나간다. 놀랐다. 너무도 놀라서 혀를 깨물었단 사실도 후에야 알아챌 만큼. 찌릿한 통증이 입안에 퍼져나가는 와중에도 난 얼어붙은 듯이 유귄을 응시하고 있었다.
뭐…라고? 간절히 찾아 헤매던 해답이 곱게 포장되어 별안간에 눈앞으로 툭 떨어져 내린 듯했다. 그러나 그 답은 안을 엿볼 수 없는 검은 상자에 담겨 있었다. 성급하게 부수어 비집고, 강제로 파헤치고 싶은 충동. 멱살을 쥐고 흔든다고 한들 답할 상대가 아니기에, 난 간신히 조바심에 찬 숨을 삼켜냈다. 그리고 초조하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나직이 물었다.
“…그가 누구인데요?”
침을 삼켰던가. 목울대가 작게 울렁인다. 사포처럼 까끌까끌한 침묵 속에서 나는 유귄을 주시했다.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 마음이 너무도 절실하여 달구어진 쇳물이 끓는 듯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간결하고, 굳건했다.
“발설할 수 없다.”
“근데 왜―!”
눈앞에서 사탕을 빼앗긴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난 눈을 부릅떴다. 말할 수 없다면 왜 그런 이야기를 꺼내! 내가 얼마나……. 나는 콰득, 소리가 날만치 세게 이를 악물었다. 도무지 동요를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 내가 얼마나 거기에 매달리고 있는지, 그가 알 리 없다. 내 안에 어떤 폭풍이 휘몰아치고 있는지도 그가 알 리 없다. 그게 얼마나 내게 중요한 일이든, 그에게는 상관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괘념치 않음이 내게 분노를 일으키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사흘 굶은 사람에게 음식 냄새만 풍긴 격이다.
씩씩거리면서 난 잠시, 폭급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를 위협해 강제로 그 입에서 답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그런 생각. 어떤 수를 써서라도. 사나움이 가슴에 짓쳐들며 기세를 세웠다. 어차피 그래도 마땅한 자 아닌가?
그런데……. 내게 그럴 힘이 있느냐 하면. 혹은 그럴만한 상대냐 하면. 이성이 내세운 가정 앞에 잠깐 치민 분은 곧 일순 타오른 불씨처럼 사그라졌다. 난 차게 식은 채 입술만 깨물었다.
한순간이나마 강렬한 마음이었으니,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게서 적의를 느꼈을 법한 유귄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의 눈은 나를 담고 있되, 그저 풍경을 비춰낼 뿐인 오래된 거울의 표면 같았다. 거기 담긴 무정물과 같은 감정의 건조함을 견주어보자면, 화석이라 함이 어울릴 것이다. 유귄은 이윽고 입을 열었다.
“영영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머지않아 자연히 알게 될 터.”
기대를 부풀리기 이전, 나는 의혹을 담아 물었다.
“마스터에게 따로 언질을 받은 적 있나요?”
“그는 내게 임무 외의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장담하죠?”
“자연히 알 수 있는 바다.”
위안이 되기는커녕 궁금증만 가중시키는 소리에 나는 부릅뜬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시피 했다. 첫 만남도 그러했거니와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자다. 그러다 난 문득 그를 보며 훨훨 날아가 버린 불새를 떠올렸다.
엘로힘. 유귄뿐만 아니라 엘로힘도 마스터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 그건 단순히 유명한 사람이라 들어 알고 있는,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영혼에 맞닿을 듯이 깊숙이, 본능과 결부되는……. 물고기가 물 밖에선 살 수 없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체득하고 있었다. 마스터가 어떤 존재인지.
그래, 마스터는 분명히 범상한 존재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마스터가 인간일 거란 가설을 상당수 버린 상태였다. 그는 실지로 생명다운 특유의 활기도, 노인조차 가지고 있는 감정의 오르내림도 내보인 적이 없었으므로. 그는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만들어진 조각이며 그대로도 완전한 원형의 보석 같았다. 삶의 질곡도 겪지 않아 누군가에게 공감할 수도, 누군가를 이해할 수 없는 홀로서 완전한 생물. 아무리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고 해도, 나는 인간이 그처럼 될 수 있으리라 믿지 않는다.
차라리 추락한 천사라면 모를까.
“‘머지않아’라는 건 언제를 의미하는 거죠?”
나는 그의 말 일부를 꼬투리 잡았다. 조금만 더 오르면 산 정상이라고, 등산객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 같은 소리를 순진하게 믿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언젠가 올 그 날을 기다리며 허덕이고 싶지 않았다.
“그게 얼마나 가까운 건데요?”
재촉하듯 거듭 묻자 유귄은 느릿하게 입을 떼었다.
“네 의문은 응당하나 나는 그에 답할 수 없다. 내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다.”
“당신도 그걸 말하면 마스터에게 죽기라도 하나 보죠?”
졸라대 보아봤자 소용없을 것이다. 그런 자이다. 내게는 전혀 쓸모없는. 뒤틀린 심정에 입술을 비틀며 비아냥거리자,
“분명히 말하건대, 그대가 바라는 답을 줄 수 있는 자는 오직 당사자뿐이다.”
유귄은 단호하리만치 칼같이 답했다. 잠시나마 열어 보인 틈마저 닫혀,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 그에게서 더 정보를 캐낼 수 없단 걸 깨달았다.
속이 탔다. 사막에 며칠쯤 던져놓아도 이보다 더 갈증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눈앞에 먹음직한 미끼를 단 낚싯대가 드리워져 있는데, 미친 듯이 버둥거려도 닿지 않는 그 심정이라니. 내가 지력이 모자라서 도무지 유추할 수가 없는 걸까. 빌어먹을, 단서 하나라도 달란 말이야. 그래서 그 답을 알게 될 날, 그게 도대체 언제라고! 마스터는 내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않는데! 반년도 넘는 시간 동안 내가 알아낸 건, 마스터가 날 죽일 수 없다는 그 사실 하나뿐이라고. 그야말로 미칠 노릇이다.
난 이내 길게 한숨을 뱉어냈다. 안쪽을 뱅뱅 맴돌며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내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속에서 치미는 열기를 해소할 길이 없다. 이러다 스트레스로 머리가 하얗게 새어버리지 않을까.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가 또다시 괴롭도록 막막한 상념 속으로 빠져들지 않게끔 검이 마력을 빨아들이는 일도, 거의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변화를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옅어진 안갯속에서 검은 교교한 빛을 내며 조금씩 마력을 먹어치웠다. 그 모습이 미끈거리는 뱀이 기어가는 양 섬뜩했다. 그건 기실 내가 마스터에게 종종 느끼는 감정과 유사했다.
아름다운 외형의 보검이라곤 해도, 마탑의 마력을 품고 있는 데다가 왜 이런 곳에 처박혀서 스멀스멀 안개나 생성하고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어쨌거나 내 의문은 중요하지 않을 터였다.
밥에 뜸들이듯 지루한 관조의 시간이 지나고, 이윽고 검이 숲의 수기를 완전히 흡수했다. 탁하게 가려졌던 시야는 여전히 어스름이 깔린 숲 속에서 이제 놀랍도록 선명하게 사물을 분별한다. 나뭇잎 한 장의 솜털도 꿰뚫어보리만치. 가볍고 청명하게 피부에 휘감기는 대기도 더 이상 이곳에 마력이 남아있지 않음을 반증했다.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무런 소득 없이 이대로.
머뭇거리는 나를 향해 유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검을 들고 탑으로 돌아가라. 이제는 마법을 행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디로?”
유귄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그 또한 그에게 허락되지 않은 발언이라는 양. 그리고 마탑에서 받은 임무는 발설할 수 없음은 자명했다.
땅을 둔중하게 짚는 발소리는 금세 들리지 않게 되었다. 그 등을 뒤따라가고픈 충동이 들지 않았던 건 아니나, 걸음이 빠른 그는 땅을 스치듯이 자취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내가 뒤를 쫓을 만한 여지도 남기지 않는 움직임.
나는 침묵 속에서, 유귄이 사라진 쪽을 응시하던 시선을 내려 손안에 머물고 있는 검을 쳐다보았다. 은은한 빛을 내던 기운도 이제는 잦아들어 완전히 무기물로 돌아간 그 검. 내 임무가 끝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검의 존재. 안개가 주는 스산함은 사라졌으되 한적하기 그지 없는 숲은 여전히 고요했다. 잔가지 틈새로 인 실바람이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촉감도 미미하기만 하다. 하늘까지 무성한 나무가 말없이 가지를 드리우는, 침묵으로 얼룩진 그 가운데서 난 우뚝 서 있었다.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읊조리자 철제 셔터가 철컥, 하고 내려앉는 듯하다. 견고하게 마음에 장벽이 쳐진다.
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끝 모를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기 이전에,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동작이었다. 오롯이 홀로 직면한 갈등에 팽배해지는 고독감, 분노와 자괴감. 어쩔 수 없는 그 모든 것들을 비관하게 되고 만다.
정말로 그러고 싶지 않아. 마스터를 어떤 얼굴로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냥, 다 모르겠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언젠가 알지 모를 진실에 연연해서, 나는 언제까지 마탑에 묶여있어야 하지? 나는 어떻게 해야 이 마음을 버릴 수 있지? 나는 무얼 잘못해서 여기에 서 있나. 애초에 왜 난 이런 세계에 떨어졌던 걸까.
속이 텅 빈 동굴이라도 되는 양 내 안에서 수많은 말이 메아리쳤다. 그건 사위에 산적한 정적과는 대비되는 혼란한 외침들. 그러나 눈시울을 적시지 못하고 그저 여울을 휘돌아나가는 양 갈퀴처럼 긁어대기만 할 뿐인. 한 맺힌 울음처럼 목구멍이 끓어올랐다. 그건 이내 진이 빠진 듯 온몸에서 힘을 앗아갔다. 그 아찔한 무력감.
사실 갈등하건 그렇지 않건, 내 갈 길은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어차피 난 이 천금 같은 기회를 앞두고 여기서, 아무도 감시하는 자 없는 이곳에서 뒤돌아 도망칠 배짱도 없는 겁쟁이였으니까. 도망칠 자신이 없어서도 어차피 붙들려오게 될 것을 염려해서도 아니었다. 철저히 이성의 재단하에서 이루어진 결정이라면, 내가 이토록 자괴감에 잠기지는 않았으리라.
……두렵기 때문이었다. 막연히, 그러나 형용할 수 없이.
무엇이? 라고 묻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답은 하나. 마스터. 나를 미워하거나 증오할 만한 감성의 소유자가 아님은 알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에게서 등 돌리는 게 두려웠다. 단순히 내가 마스터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무정하고 혹독한 부모라 할지라도 그 품을 벗어나기 어렵듯이. 세상 밖으로 걸어나가는 게 망설여지듯이. 실로 그것이 단절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토록 의존해온 상대였다. 의지했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나 그가 내게 모든 걸 주었는데. 돌아가는 방법은커녕 마탑 밖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또한 그에게 품은 마음만큼이나 뿌리 깊은, 알고 싶은 마음. 지금도 모르듯이, 앞으로도 영영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을 그것.
마치 인력에 끌리듯, 돌아가기 싫다는 그 마음의 이면에서 나는 여전히 마스터의 그림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 지배력을 떨쳐낼 수가 없어서, 의문과 의혹과 미지를 남겨두고 마탑에서 도망친다는 선택따윈 주어지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순전히 타성에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건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혹여 다음 임무에서 이 순간 도망치지 않은 걸 후회하게 될지라도. 나는 여기서 돌아가야만 했다. 난 굳게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유보의 시간을 비껴내고 손을 들어 마력을 펼쳤다. 마탑을 향한 귀환 마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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