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7 2. 검은 탑. =========================================================================
“…….”
마스터는 설득도 비난도 하지 않았다. 다만 지그시 날 바라보는 시선에는 압력이 실려 있었고 그 모습이 내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듯이 보였다.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입술을 맞대는 행위의 내밀함에 대해서 줄줄이 읊어야 하나 난 잠시 고민에 잠겼다. 그러다가 퍼뜩 간과하고 있었던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치자, 가슴이 철렁거렸다.
“설마……. 다른 제자에게도 이 방법을 쓰신 건 아니지요?!”
추궁하듯 뾰족하게 올라간 목소리에 내가 다 놀랐다. 블레셋과 마스터……. 그 구도는 떠올리기조차 싫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싫다 못해 가슴이 미어졌다. 그가 부인해주길 바라며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속이 초조하게 타들어 갔다.
“효력이 입증되지 않은 방법이라 했을 텐데.”
들었던 말도 까먹는 우둔한 제자를 그 한 마디로 힐책한 마스터는 그걸로 용건이 끝났다는 듯이 지그시 눈을 내리감았다. 그건 정말로 조금 전에 일어난 일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태도였다.
……이렇게 날 내버려두고. 난 속으로 불만스럽게 투덜거렸다. 자기가 먼저 입을 맞춰놓고 주저 없이 모른 체하는 것에 기분이 이상하고, 나만 이렇게 휘둘리면서 감정이 왔다갔다 하는 게 또 자존심이 상했다. 갑자기 분이 치밀어, 앞으로 신체적인 접촉을 삼가달라고 말할까 하는데 마스터의 주위에 차게 고인 공기가 내게 현실을 일깨웠다. 당황과 분노로 달아올랐던 머리가 식으며 흥분이 가라앉았다.
……오늘 이미 여러 번 선을 넘나들었다. 종종 잊어버리곤 하지만 마스터와 내 관계는 엄연히 주종관계. 그가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다고 해서 마음껏 기어올랐다가 수위를 넘으면 마스터는 주저 없이 내 목을 칠 것이다.
내게는 당연하나 마스터에게는 그렇지 않은 상식을 배제하고 생각해보면 마법실력을 확 늘려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 기세로 부탁하고 매달린 주제에, 그걸 거절하고 또 추궁까지. 저 비정한 마스터가 정말로 내 머리를 날려버리고도 남을 만큼 골고루 건방지게 군 듯싶었다. 돌이켜볼수록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듯하여, 벌하지 않을까 언뜻 눈치를 봤지만, 마스터는 이미 명상에 들어 무엇도 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다행인가.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할 일이 그리 많기에 항상 저리 명상을 하고 있나 했지. 골치 썩는 일이 많아서 마음을 다스린다거나, 날 어떻게 처리할지 고심한다거나 등등 온갖 망상을 다 했었다. 하지만 책을 통해 그 또한 마력호흡이라는, 마법수련의 일종이라는 걸 알게 되자 의문은 사그라졌다. 그러니까 마스터는 나와 한 공간에 있는 내내 마법을 갈고닦는 것이다. 그만큼이나 노력을 기울였기에 마탑의 수장이 된 걸까.
그렇게 흐른 상념은 엉뚱한 곳까지 미쳤다. 그래, 입술 닿는 거에 대한 관점 차이는 그렇다 치고 마스터는 왕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니 인기도 많을 텐데, 단순히 내가 싫어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게 아닐까. 그냥 자신이 하는 일은 상대가 당연히 수긍하리라는 사고. 워낙 미동도 없고 의사표현도 하지 않아 티가 나는 일이 적을 뿐 마스터는 독선적이었고, 마스터의 지위는 그 점을 정당화할 만했다.
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당해놓고도 자꾸만 마스터를 이해하려 들고, 반감을 누그러뜨릴 이유를 찾는 내가 낯설었다. 하지만 그 모든 걸 떠나서 따지고 들기엔……. 솔직히 싫었다고는 말 못 하겠다. 정말로 당황스럽고 화도 나긴 했지만 분명히-
도리질 치며 생각을 떨쳐버린 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조용히 침대로 다가가 누웠다. 그 약간의 동작을 행하는 와중에 땀 때문에 축축하게 젖었던 몸은 어느새 뽀송뽀송해진 상태였다.
그렇다 해도 졸음만은 어쩔 수 없는 터라, 난 스르르 눈을 감았다. 온갖 험난한 일들을 다 겪고 나니 무척 피곤했다. 다만 모로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자니, 작은 동굴 같은 그 안에서 어쩐지 콩닥거리는 심장 소리를 의식하게 되었다. 조금 전만 해도 미친 듯이 달음박질하던 심장은 이제는 걷는 정도로 뛰고 있었지만 평소와는 미묘하게 박동이 달랐다.
떠올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아까 있었던 일이 뇌리를 맴돌았다. 처음이야 내가 바보같이 넘어져서 우연히 닿았던, 그야말로 사고에 불과했지만 이번 건……. 꽤 길었고, 그만큼이나 생생했다.
손목을 쥔 손길은 강인하며 힘이 있었고 분홍빛이 도는 입술은 부드럽고 촉촉했다. 그 충격적인 사건은 곱씹을수록 꽤 근사한 구도로 환상이 덧씌워졌다. 비록 입 맞춘 당사자가 무심하긴 했지만……. 아니,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나.
블레셋에게 얻어맞고 와서, 빨리 강해지게 해달라 떼를 쓰는 날 마스터는 간단히 뿌리쳐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기꺼이 내 말을 들어주려 했다. 다른 방법을 요구했더니 그 또한 들어주었다. 분명……. 그러했었다.
그 배려라고 하기도 어렴풋하고 모호한 수용이 지금 날 설레게 했다.
싫은 사람에겐, 손가락 하나 닿기 싫어할 것 같은데. 그러면 마스터도 어느 정도는 내게 호감이 있단 뜻 아니야?
……아닐지도. 그냥 이 기회에 실력을 늘려놓으면 쓸만해 질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아. 부정적인 쪽이 더 진실에 가까워 보였던 터라 애써 마음을 추스르면서도 난 비슷한 흐름을 되풀이하며 한편으로는 희망을 싹 틔웠다.
그리고 꽃잎을 떼어내며 좋아한다 싫어한다를 재어보는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한참을 씨름하다가, 어느덧 두근거림 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 후로 마스터와 나와의 관계에 변화가 있었느냐면,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마스터는 이전과 다름없는 태도를 유지했고, 나도 예전처럼 굴려고 노력했기에 그 일은 천천히 잊혀갔다. 결국 예의 그 방법을 다시 쓰는 건 그렇게 흐지부지되는 듯싶었다.
다만 한 번 마법이란 걸 부려보고 나자, 드디어 나아갈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마법을 배운다는 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비록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는 하나, 마력을 내 마음대로 다루는 일은 정말로 어려웠다. 이를테면 바람이 흘러가는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바람을 붙잡거나 멈추게 할 수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마법이란 단어가 더해지면, 이 ‘할 수 없다’가 ‘하기 어렵다’로 바뀌는 터라 불가능을 넘어 가능의 범주 안에 들게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상황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또한 내가 마법을 사용하는 방식은 책에 적혀있는 것과 궤를 달리했다.
마법을 배우는 건, 마력호흡을 통해 감응력을 높이는 기초적인 과정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호흡하듯 받아들이고 내보내는 순환과정을 통해, 마력은 점차 익숙해진 공간, 즉 몸속에 스미듯이 자리하게 된다. 그때부터 그것을 그 사람의 마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순전히 그 사람에게만 속한, 고유의 마력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은 우주라 무한한 마력이 깃들 수 있다고 마법서에서는 말하지만, 실제로 깃드는 속도는 대단히 느리고, 얼마나 마력에 민감한 체질이냐에 따라 성취가 달라진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를 연결하는, 인간의 육신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실체 없는 무언가를 ‘핵’이라 말하는데 그 핵을 통해 몸에 깃든 마력을 운용하는 것이 마법사다.
마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곧 핵을 사용할 수 있게 됨을 말한다. 그런데 내가 이 핵을 통해 운용하는 건 단순히 내 몸에 깃든 미미한 마력이 아니었다.
이전에 만들어냈던 빛의 구보다 더 난도 높은 마법을 사용해보려 정신을 집중하면, 나는 끝 모를 바다를 앞에 둔 양 헤아릴 수 없는 마력의 존재를 느낀다. 두려울 만치 압도적이고 광대한 힘, 모조리 끌어온다면 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그리하여 처음에 난 소스라치며 눈을 떴었다.
마법서에 따르면 마법사가 끌어올 수 있는 마력은 제게 깃들거나, 혹은 마력석과 같은 특별한 마력응집체에 담겨있는 것뿐. 그런데 내가 느낀 이 괴물 같은 힘은 무어라 말인가. 의혹에 빠진 내가 묻자, 마스터는 그 특별한 마력을 끌어오는 것이 ‘탑의 마법’이라고 했다.
탑의 마법, 신중하게 그 말을 읊조리는 내게 마스터는 아직 내가 배우지 못한, 혹은 배웠어야 하는데 마법을 배우느라 건너뛰었던 책 속에 담겨있었을 이야기를 간략하게 해주었다.
마탑의 마법사는 일반적인 마법사보다 강력하다. 그 이유는, 흡사 가느다란 나뭇가지가 장작이라도 되는 양 활활 타오르는 불을 피워내듯이 마탑의 마법사는 본신의 마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선 강력한 마법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강력한 마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근원이 바로 이 검은 탑이었다.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세월을 이어져 내려온 이 불가사의한 탑.
탑과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마탑의 마법사는 이 검은 탑과 영적인 영역에서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한, 또한 자신이 버텨낼 수 있는 한 얼마든지 마력을 가져다 쓸 수 있다. 그것은 흡사 무한한 힘을 가진 거대한 마력석과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다만 마력을 끌어오는 한도는 마법사 개개인의 성취에 따라 달랐다. 마력을 쌓는 데는 마력호흡이라는 단 한 가지 방법만 있는 건 아니었다. 마법을 많이 사용할수록 마력을 통제할 수 있는 역량도 성장하며, 마력민감도도 늘기 마련이라 육신에 깃드는 마력의 양도 더 많아진다.
즉 마력이 강한 사람일수록 그만큼 마력에 익숙한 육체를 가지고, 마법을 사용한 경험이 더 많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자신의 마력이 강할수록 끌어올 수 있는 탑의 마력이 많아지고 통제해내기도 수월해진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노련한 마법사라고 해도 한순간에 자신의 능력 이상의 마력을 끌어다 쓴다면, 폭주한 마력이 핵을 산산조각 내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니까 마력을 가져다 쓰는 건 자유지만 능력껏 쓰라 이거지. 난 마스터의 가르침을 찬찬히 곱씹어보았다. 그렇다면 개개인의 성취라는 건 노력과 재능도 중요하지만, 세월에 영향을 받는 게 당연하다. 나와 블레셋의 격차는 상당히 컸다. 그건 같은 고시를 붙어도 1년 공부해서 붙는 사람이 있고, 10년 공부해서 붙는 사람이 있듯이 금방 따라잡힐 수 있는 류가 아니라 천천히 쌓아올리는 류였다.
그리고 마스터는 내게 한순간에 다량의 힘을 부여하고, 인위적으로 감응력을 높여서 체내에 마력을 심었다. 그러므로 내게 필요한 건 마스터가 하듯 꾸준히 마력호흡을 하는 것과 이것저것 마법을 익혀보면서 실전감각을 높이는 일이었다.
마스터가 내게 이렇게까지 해준 건, 내 상태가 실로 백지나 다름없는 탓일 거라 추측되었다. 지금의 난 블레셋이 문제가 아니라 아래 부하들에게도 얕잡아 보이기 딱 좋은 실력이었다. 계급제도가 있다고 하나 마탑에서는 강한 마법사일수록 더 높은 대우를 받는다. 철저하게 힘의 논리에 따르는 조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마탑의 힘을 쓰는 데에는 계급 차가 있어서 가장 높은 계급인 시온의 경우 성취가 비슷하다고 할 때 가져다 쓸 수 있는 마력의 양이 더 많다고 한다. 즉 이제 내겐 바닥인 성취를 끌어올려야 하는 문제만 남았다.
어쨌든 나아갈 길이 보이자 의욕이 샘솟았다. 난 이론을 공부하기 보다는 실전을 해보는 걸 선호하는 편이라, 공부할 때도 문제를 많이 푸는 타입이었다. 너무 오래 이곳에 머무르고 있었다는 압박감이 강해져서 난 밤낮으로 마법 수련에 매달렸다. 물론 산책하러 나가겠다는 생각은 이미 포기한 터였다. 어차피 나가봤자 블레셋의 밥이 될 뿐이니.
마스터의 방은 특수한 마법적 공간이라고 했는데, 내가 이것저것 마법을 써보면서 본의 아니게 파손해보았댔자 금세 원상복귀되곤 했다. 마스터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밖을 오가면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명상하며 자리를 지켰고 때때로 짤막한 가르침을 내렸다. 처음에는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설명도 익숙해지니 대충 해석하고 알아들을 수 있었다. 몸속에 깃드는 마력의 양이 늘어가면서 점점 잠도 줄어서, 난 정말로 폐인처럼 마법에만 매달렸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산 나날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6개월 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그토록 기다리던 탑 밖으로 나설 수 있는 기회, 내게 첫 임무가 주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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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마스터를 상상하면 자꾸 다음웹툰 0.0mhz의 머리귀신이 떠오르는데....
가서 보고 오시면 이미지 잡으시는데 도움 되실듯 ^*^ 최신편만 클릭해보셔도 나오거든요.
밤 12시~해뜨기 전은 웹툰 보기 좋은 시간이지요.
선작,추천,코멘트,평점,쿠폰,아이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