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1. 검은 마법사. =========================================================================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 나라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나 봐요?”
질문을 던지기 무섭게, 아저씨의 표정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난 그저 마스터가 한 행동의 타당성과 이 나라의 낮은 치안수준에 대해서 에둘러 묻고 싶었을 뿐인데, 문제는 내 조악한 말솜씨인 듯싶었다. 위협할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위협으로 들린 모양이다. 아차 싶은 난 할 말을 이번에는 신중하게 골랐다. 정신을 차린 아저씨가 분개한 표정으로 외쳤다.
“아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나라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답니까?!”
“하지만 애초에 다들 도망만 쳤잖아요. 지금까지도 누가 잡으러 오는 것 같지 않고 제재를 가하는 사람도 아무도 없는걸요?”
“그거야…….”
답답하다는 듯이 아저씨의 목소리가 잦아들었다.
“두려우니까 그런 겁니다요. 왜 여기 텅 빈 것 같지 않습니까?”
“네, 그렇네요.”
“그나마 있던 손님은 외출하거나 식당에 있었는데……. 그런 걸 보고 누가 여기에 붙어있겠습니까? 짐이고 뭐고 챙길 사이 없이 다들 도망갔습지요. 저야 여기 주인이니 어쩔 수 없이 남아있었습니다만.”
그렇게 보면 이 아저씨 생각보다 강심장이다. 나는 싱긋 웃으면서 질문했다.
“병사라든가 자경단 같은 건 없습니까?”
물론 내가 꼭 마스터가 잡혀가라고 비는 것은 아니지만, 여태 아무런 일도 없는 건 이 나라가 무법지대나 마찬가지인 걸로 생각되는데.
“있기야 있습죠. 병사 정도가 아니라, 도망치던 손님이 흑마법사가 출현했다고 소리 질렀으니 마법사 길드에도 연락이 갔을 겁니다. 시간이 이렇게 되었으면 도착하고도 남았을 텐데 보십쇼. 밖에서 아무런 소리도 안 들리지 않습디까?”
난 그제서야 퍼뜩, 마스터가 말한 ‘결계’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렇네요.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군요.”
“엄청난 결계라도 펼치셨는지 원. 밖에서 들어오려고 난리를 칠 텐데 이렇게 조용하다니! 이런 경우는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요. 일행분께서는 굉장한 마법사이신가 봅니다.”
“한 번 나가려고는 해보셨어요?”
“저기 가서 문을 열어 보십쇼. 낮에는 빛이 들긴 했는데, 뿌연 막이 쳐져서 보이지도 않고 나갈 수도 없습니다요. 내일이면 떠난다니 다행……. 아이고 손님! 제가 입방정을! 부디 마법사님께 제가 이런 소릴 했다고 말씀 마십쇼. 송장 하나 치릅니다요!”
편안히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마스터와의 친분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사실 저도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고자질 같은 거 할 생각 없어요.”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그런데 손님은 며칠 전에 마법사님이 처음 오셨을 때 못 뵌 거 같은데……. 그 이후로 방에서 나오신 적도 없고. 흠, 실례지만 외모를 보아하니 먼 곳에서 오신 듯한데?”
갸우뚱하며 아저씨가 묻자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해졌다. 사실 난 다른 세계 사람이라고? 차원의 균열에 갇힌 나를 마스터가 구해줬다고? 입 밖에 내놓기는 쉬웠지만 그렇게 쉽게 말해버릴 수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막막하게만 느껴지는 현실이 또다시 눈앞에서 끄집어내 지자, 울컥하는 감정이 끓어올랐다.
나는 가까스로 속내를 삭이며 미소 지었다. 누군가에게 말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한들, 이 아저씨에게는 아니었다. 또한 간과하고 있던 것에 문득 생각이 미쳤다. 만약 내가 섣불리 그 사실을 이야기했다간, 마스터가 입막음 한답시고 이 아저씨를 없앨지도 모른다. 마스터는 그가 그럴 수 있는 사람이란 걸 이미 내게 증명해 보였다. 결국 난 대충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건 저도 기절해 있어서 잘 모르겠군요. 여행 중이었는데 맹수의 습격을 받아서 의식을 잃고 깨어보니 저분이 저를 구해주셨더라구요. 그래서 당분간 은혜를 갚으려고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만, 오늘 일도 있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 그, 그렇습니까요?”
아저씨의 얼굴에 뭔가를 말하고 싶은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기색을 재빨리 포착하고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말씀해보세요. 마법사님은 주무시니까 망설이지 마시구요.”
“그게…….”
아저씨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잠깐 갈등하던 아저씨는 전쟁을 앞둔 장수처럼 비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느새 말투가 달라져 있었다.
“이런 말,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아가씨. 내가 아가씨가 남 같지 않아서 하는 말이야, 잘 들어.”
“네, 말씀하세요.”
“아가씨 말이야. 저분이랑 동행하다가 혹시 기회라도 생기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가게. 최대한 멀리.”
그 표정이 너무나 진지해서 농담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나는 긴장한 채 물었다.
“그건 어째서죠?”
“쯧쯧, 아가씨는 아무리 오지에 살았다지만 흑마법사가 뭔지도 모르는가? 내 비록 여관 주인이지만 소문은 들어 알고 있다네. 흑마법사가 사람을 구해줬다는 소린 이번이 처음이구만. 분명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게야.”
“저 그런데,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흑마법사라고 자꾸 말씀하셨잖아요? 흑마법사가 그냥 마법사랑 다른 점이 무엇이죠? 어떻게 저분이 흑마법사라는 걸 아시는지?”
물론 마스터는 흑마법사라고 불려도 족할 의상을 고수했지만, 단순히 시커멓게 입고 다녀서 흑마법사라고 하는 것 같진 않았다.
“어이쿠 아가씨도 참! 정말 상식이 부족하구먼?”
손바닥을 딱 내리치며 기겁한 표정을 지은 아저씨가 다시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라는 건 마법사 중에서 특히나 사리분별을 못 가리는 자들을 말하지. 즉, 인간이길 포기한 잔인무도한 자들이라네. 힘에 도취되어 마구잡이로 마법을 뿌리거나, 법을 밥 먹듯이 어기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기 위해 금지된 마법에 손대는 자들을 말하지. 대개는 제정신이라 하기 어렵고, 극도의 잔인성을 보인다네. 그래서 흑마법사가 나타났다 하면 꼭 대형사건이 터지지. 이번만 해도 보게나. 내 평생 사람을 그리 잔인하게 죽이는 건 처음 보았네! 아무리 마법사들이 법외의 존재라 해도 시비 걸렸다고 그리 무참히 사람을 죽이진 않는다네. 그런데 어찌 흑마법사가 아니라 할 수 있겠나?”
“그, 그런가요.”
“게다가 그들은 마법실험을 위해선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리지 않지. 아마 아가씨를 구한 것도…….”
잠시 아저씨와 나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섬뜩한 느낌에 사로잡힌 난 곰곰이 마스터의 말과 행동을 되짚어보았다. 마스터는 날 제자로 삼을 거라고 말했지만 그게 진실일까? 거짓말을 할 사람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뢰를 품을 만한 상대도 아니었다. 내가 마스터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던 건, 마스터가 내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지 그를 믿어서가 아니다.
일단 마스터를 따르기로 한 아까의 결심과는 반대로 난 흔들렸다. 흑마법사라……. 분명 마스터의 잔인한 본보기는 아저씨가 말한 흑마법사의 정의에 부합하는 행동이었다. 실험체로 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짜 제자가 된다고 쳐도 앞으로도 저런 장면을 계속 보고 살아야 한다면, 아니면 나 스스로 저런 짓을 해야 한다면? 나는 자신이 없었다. 아저씨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죽은 놈이야 사실 마을 골칫거리인 건달패 놈이라 없어진 게 차라리 낫긴 하네만 아가씨는 그래도 멀쩡한 사람 같은데 그리 죽어서 쓰겠나. 나도 내 평생 이런 충고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네.”
짧은 시간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지만, 아저씨는 진정으로 날 걱정해주고 있었다. 우려가 담긴 음성에 난 조금이나마 위로받는 것 같았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긴 하구나.
“……다만 난 아가씨가 과연 도망칠 수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드네. 흑마법사란 원래 마법사 길드에 쫓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 마련인데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 하며, 아직도 결계가 깨지지 않은 것 하며. 무시무시한 실력자 같구먼.”
하는 얘기인즉슨 충고의 탈을 쓴 사형선고였다. 그래, 어차피 해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당장 이 여관을 나가는 것도 여의치 않다면, 마스터를 따르는 수밖에 더 있을까? 나는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체념한 투로 말했다.
“그래도 방법이 있겠지요. 죽었다 살아난 목숨, 그보다 더한 운이 없을까 합니다.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래, 뭔 수가 생기겠지. 참 아가씨 많이 먹게 생겼는데, 아직 배가 덜 찼지? 내가 아가씨를 위해서 이 여관에서 가장 비싸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를 해주지. 다른 데 가서도 이런 건 먹어볼 수 없을 걸세.”
많이 먹게 생겼다는 말이 내 예민한 신경줄을 건드렸지만 농담인 걸 알기에 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래도 될까요?”
“뭐, 어차피 먹을 사람도 없고 돈도 두둑하게 받았으니.”
자신의 풍만한 배를 두드리며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아저씨한테 나는 밝게 화답해주었다.
“기대해 볼게요.”
기대했던 대로 아저씨가 만들어준 야심작은 정말 맛있었다. 풍성한 식사를 마친 난 빵빵한 배를 움켜쥐고 방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아있기 무서웠던 듯, 아저씨가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끌기도 했고 밥도 먹느라 시간이 꽤 흐른 터였다. 내가 식사하는 동안 아저씨가 층계에 촛불이 켜놓았는데, 정작 내려올 때 환하던 위층은 불이 꺼져 완전히 어둠에 잠겨있었다.
어둠은 늘 두려움을 가져다주기 마련이다. 조금 전까지 사람냄새가 풍기는 대화를 나누고 온 터였지만, 아무것도 보이질 않으니 갑자기 불안감이 밀려왔다. 다행히 방은 왼편 두 번째에 있어서 그나마 찾기가 쉬웠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더듬거리며 난 발을 내디뎠다. 손으로 벽을 타고 나아가던 난 이윽고 떠나온 방문을 찾아내 문을 열었다.
삐걱. 작은 소리를 내며 방문이 열렸다. 하지만 역시 불이 켜지지 않은 방안은 계단의 불빛이 올라오던 복도보다 더 어두웠다. 시야가 온통 캄캄하기만 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불 켜놓고 나올 걸, 하고 후회가 뒤늦게 찾아든다.
한 발짝 한 발짝 조심스레 떼며 침대가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무언가가 발에 걸렸다. 배가 빵빵해서 그런지 무게중심이 앞으로 확 기울었다.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나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
“우앗?!”
눈을 질끈 감고 닥쳐올 아픔을 예상했지만 느껴지는 것은 둔탁한 감촉이었다. 여기에 소파라도 있었나? 그래도 제대로 박은 터라 코가 얼얼했다. 반쯤 기운 몸으로 무심코 손으로 딛고 일어나려던 나는 맨들거리는 천 자락을 짚고 미끄러져 또 한 번 휘청였다.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쓰러진 순간, 입술에 무언가가 닿았다.
부드럽고, 말랑한 고무 같았다. 더군다나 따뜻한 공기가 새어나오는…….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다. 이상한데 이건. 이 감촉은 마치- 사람 같은……?!
고개를 들던 난 어둠 속에서도 은은한 빛을 내는 검은 눈동자를 맞닥뜨렸다. 맙소사! 사색이 된 나는 일어날 엄두도 못 내고 엉덩방아를 찧으며 번개같이 마스터에게서 떨어졌다. 우당탕! 엉덩이에 멍이 드는 것 같았지만, 아픔 이전에 두려움이 먼저 엄습했다.
이 상황에서 자연스레 내가 떠올린 건 아까 낮의 바로 그 장면이었다. 한 사람이 순식간에 핏덩이가 되어버렸던 그 장면. 그리고 그 이유도. ‘나를 공격했으니까.’ 냉담한 음성이 풀 사운드로 메아리치는 듯했다. 기껏 죽었다 살아났는데, 이대로 인생이 끝나는 건가? 덜덜 떨면서 난 다급하게 소리쳤다.
“으악! 마, 마스터 이건 절대 고의가 아니에요! 공격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앞이 안 보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