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 달무리 금빛 숲-6화 (6/155)

00006  1. 검은 마법사.  =========================================================================

“……네에에에에?!”

이 괴상한 외침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었다. 부엌 입구에 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춤거리며 서 있는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배가 불뚝 나온 중년의 남자는 이왕 들킨 거 용기를 낸 듯 바닥에 냉큼 엎드려서 주절거렸다.

“아이고 마법사님! 그럼 저는 어쩐 답니까요. 여관 개업한지 얼마 안 돼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기 힘든뎁쇼. 자비를 베풀어서 부디 여기를 떠나주시면 아니 되십니까요? 제가 숙박비 전부 돌려 드릴 테니, 부탁이니 떠나만 주십쇼. 아이고 마법사님! 이제 곧 마법사 길드에서 몰려올 텐데 그럼 제 여관은 박살이 날겁니다. 제겐 시름시름 앓는 노모가 계셔서 제가 벌지 못하면, 크흑!”

이 아저씨 원래 배우 아냐? 눈물짓는 모양새며 중간중간 추임새를 넣으며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대사가 심금을 울렸다. 나는 불안하게 마스터를 돌아보았다. 주먹질했다고 사람을 죽이니 나가라고 말한다면? 그러나 마스터는 의외로 온건한 해결책을 내어놓았다.

“내일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자가 있다. 그자와 함께 이 여관을 떠날 것이다. 그 어떤 마법사도 이 결계를 깰 수 없으니 네 여관 역시 훼손당할 일이 없을 터.”

그 어떤 마법사도.

차가운 공기가 스치고 지나가듯 겉피부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그 말을 발음하는 투는 단조로웠고……, 자신을 내세우는 자만심이 전혀 깃들어 있지 않았다. 마치 진실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듯이 차분하고 여상하기만 한 어조. 그 당연함은 내 귀엔 심지어 확신마저 깃들어있는 양 들려왔다.

…어쩌면 내 예상보다 마스터는, 더 대단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스터는 품에서 예의 그 지갑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저건 설마, 지갑째로 준다는 거야?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어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지만, 마스터는 동냥질  하는 어린애에게 동전을 던져주는 손쉬운 행위를 한 것처럼 손을 거두어내고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대박, 딱 그 단어를 떠올린 듯 아저씨의 눈이 희번뜩 돌아갔다. 전화위복이라고, 지금 아마도 일생일대의 행운을 맞이한 심정일 것이다.

“아이고 마법사님 감사합니다요. 감사합니다!”

재빨리 돈지갑을 채가는 손길은 소매치기의 그것과 맞먹을 만큼 신속하다. 그러나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지갑을 움켜쥔 아저씨는 바닥에 널려있는 시체덩이를 발견하고 새파랗게 질려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우적거리며 뒷걸음질치는 모양새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어느덧 스르르 긴장이 풀린 난 상황에 맞지 않게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어이구……, 어이구.”

그러면서도 아저씨는 거의 정신을 잃은 듯이 신음성을 내더니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부엌 쪽으로 돌아갔다. 물론 돈지갑은 놓지 않은 채였다. 공포를 이기는 탐욕이라, 박수 쳐주고 싶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내일까지 여기에 묵어야 한다면 나는 시체와 같은 건물에서 밤을 보내야한다는 뜻이다. 등골이 오싹해진 난 간절하게 물었다.

“마스터. 저걸 어쩔 수는 없나요?”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마스터의 손에서 곧 팟, 하고 빛이 터졌다. 그리고 잠시 후 돌아본 여관 바닥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깨끗했다. 마스터는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걸어서 방으로 향했다. 나는 조심스레, 시체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는 자리를 건너뛰며 그의 뒤를 따랐다.

방에서 할 일이란 뻔했다. 한순간 소스라칠 만큼 끔찍했던 기분도, 이성을 잃을 만큼 날뛰었던 때가 언제였느냐는 듯이 이상할 정도로 고요하게 가라앉았다. 여관주인 아저씨의 등장이 한 번 긴장을 풀어준 덕일까. 한 방에 있어야 한단 게 그토록 꺼림칙할 수 없었는데, 막상 오니 아무렇지도 않았다. 마치 그대로 평온하게 식사를 하고 돌아온 느낌마저 들었다. 죽다 살아나서 그런지 내가 생각해도 놀라운 적응력이다.

마스터는 햇빛 쏟아지는 소파, 내가 처음으로 그를 보았던 그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있었다. 후드를 벗고 감추었던 외양을 드러내어 가만히 명상에 잠긴 모습은 빛을 흡수하는 검은 반석처럼 기이하도록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니, 그는 조금 전 사람을 죽였는데……. 죄책감에 가슴 속에 스미는 감상을 부인하듯 고개를 저어봤지만, 찰나라도 그런 생각이 든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머리가 아니라 순전히 가슴으로, 그의 부재한 도덕성과 지독한 성격적 흠결을 배제하고 본다면-

…부인할 수 없이 그는 아름다웠다. 악의도 경계도 존재하지 않아, 무구하기 짝이 없는 그 순결한 암흑. 주저 없이 죽음을 내리던 잔혹성마저도 늪 속의 괴물처럼 죽은 듯이 잠든 터였다.

홀린 듯이 마스터를 바라보던 난 이내 시선을 떼어냈다. 이상하리만치 울렁거리는 마음을 누르듯 가슴께를 어루만지며 조심스레 침대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 그가 건네준 두꺼운 책을 침대에 엎드려서 읽기 시작했다.

내가 제자라 하면 그는 스승일 것이니, 스승이 앉아있는데 제자가 침대에 드러누워 있는 꼴이 가당한 건지, 잠깐 고민이 되긴 했다. 처음에는 침대로 가도 되나 싶어서 눈치를 좀 봤지만 마스터는 이미 내 존재를 잊은 것 같았으니 뭐.

마스터에게서 신경을 끄기로 한 난 이윽고 빠져드는 것처럼 책을 읽어 내렸다. 세계의 흐름, 숨 쉬는 것에도 깃들어 있는 마력이라는 힘, 그리고 마력을 다룰 수 있게 해주는 마법. 쉽게 이해할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알아온 것들과는 전혀 다른 상식을 따르는 내용이라 무척이나 흥미진진해서 나는 곧 시간의 흐름을 잊었다. 이 세계의 수많은 지식이 차츰 뇌리에 쌓여서 촘촘한 층을 만들어갔다.

골치 아프게 외우고 분석해야 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기초지식이 담긴 교양도서에 가까워 지루함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역사며 신화, 전설 같은 것들이 총망라된 기본서는 내게 유익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게 독서에 빠져든 후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흥미로운 책도 읽다 보면 지치기 마련이다. 점점 눈이 침침해지더니 한창 몰두해있던 집중력도 흐트러져갔다. 그러다 뱃속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진동했을 때,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날은 어둑어둑해져 있었고 책도 거의 반 절가량 읽어낸 터였다. 나는 책을 덮어놓고 뻐근한 몸을 일으켰다. 계속 자세를 바꿔가며 책을 읽었음에도 몸을 지탱하고 있던 팔꿈치가 얼얼하니 아팠다.

조용히 바닥에 내려선 난 쭈욱 기지개를 켜며 마스터를 흘낏거렸다. 땅거미 진 사위는 어스레한 푸른빛에 젖어 있었고, 그 가운데 홀로 뚜렷한 암흑을 그려내는 그는 이미 찾아든 밤이었다. 낮에도 빛 들지 않은 동굴처럼 검었던 그를 어둠이 내리깔린 방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퍽 심장에 좋지 않은 일이었다. 안 그래도 색채 없는 낯은 희다 못해 창백해 보였고, 더군다나 마스터는 그대로 모양을 잡고 설치해둔 밀랍인형이 아닌지 의심 갈 만큼 처음과 변함없는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모습이 거의 살아있는 사람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그가 눈이라도 떴다면 아마 난 엉겁결에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겠다. 섬뜩한 감각을 뿌리치듯 어깨를 문지르며 난 잠시 갈등했다.

……잠든 걸까? 그런데 진짜, 어쩌면 저렇게까지 움직이지 않을 수 있지? 그러나 곧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한층 크게 들려왔기에, 금세 결론이 나왔다. 그래서 마법사인가 보지.

굶주림에 탐구심을 잊으며 난 신발을 신었다. 아까 낮의 그 사건을 생각하면 솔직히 식당으로 내려가는 것이 무척 꺼려졌지만 정말로 배가 고프고 갈증이 났다. 어설프게 먹다가 만 게 더 위장을 자극한 듯싶었다. 역시 사람은 먹어야 살지. 마스터는 식사를 안 하신댔지? 그렇다면 나 혼자 내려가도 될 터였다. 이제 그를 마스터라고 칭하는데 전혀 위화감이 없어진 자신을 깨닫자, 약간 우울해진다.

“저, 내려갔다 옵니다.”

도망친다 오해하지 말라고 작은 소리로 말을 남기고 난 지체 없이 방을 나섰다. 여관 복도에는 은은히 등이 밝혀져 있었지만, 삐거덕삐거덕 거리는 계단을 내려오니 식당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딱 귀신이 나올 듯한 분위기다. 낮의 광경이 생각하기 싫어도 자꾸만 머릿속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반복재생되는 그 광경을 떠올리자니 으스스한 정도를 넘어 공포감마저 찾아들어, 난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쫓기는 듯한 기분으로 얼른 걸음을 내디뎠다. 불은 어디서 켜는 거야? 초조함에 발만 재게 놀리고 있는데, 부엌에서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아마 여관 주인이 저곳에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식사를 주문할 수는 있겠거니, 생각이 든 난 재빨리 걸음을 옮겨 부엌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앞에 다다른 순간, 문이 벌컥 열렸다.

“우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공포영화를 볼 때 옆 사람이 비명을 지르면, 거기에 잇따라 또 다른 비명이 터지곤 한다. 그와 마찬가지의 상황이었다. 먼저 소리를 지른 건 상대방이었고 나도 그 반동으로 미친 듯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심장이 들썩거리는 정도가 아니라 덜커덩 거리는 게 이러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심장마비 걸릴 뻔했잖아! 잠깐 헉헉 대다가 보니 상대는 아까 봤던 여관 주인아저씨였다. 아저씨는 혼이 나간 표정으로 허공에 손을 휘저으며 물었다.

“귀, 귀신이냐? 사람이냐?”

“……사람입니다만.”

그제야 어둠 속에 있던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 듯 눈을 찡그리던 아저씨는 곧 안색이 시퍼래져 허리를 굽히며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고 마법사님 일행분이 아니십니까! 여긴 어쩐 일로?”

저놈의 ‘아이고 마법사님.’ 소리란 참 묘하게 우스웠다. 난 웃음기를 감추려고 입매를 끌어내리며 최대한 덤덤한 투로 말했다.

“먹을 게 없나 해서요. 불이 꺼져 있더라구요.”

“아이고 손님! 제가 가져다 드릴테니 올라가 계십쇼. 그리고 말씀 낮추십쇼. 이 천한 놈이 어찌 마법사님 일행분께 존대를…….”

“그러실 것 없어요. 그 마법사님……,”

인상을 찌푸린 난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 아저씨 눈엔 마스터가 영락없는 살인마-실제로도 그랬지만-로 보일 텐데 동료 취급당하는 건 사양이다.

“일행이라지만 그 사람과 만난 진 얼마 안 돼서요. 개인적으로 좀 물어볼 것도 있고.”

물어볼 것이 있다니 아저씨는 한층 더 긴장한 기색이었다. 나는 부엌 안쪽을 기웃거리다가 구석에 놓인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저씨는 죄짓고 판결을 기다리는 양 조심스레 내 앞에 섰다.

“저, 무엇이 궁금하십니까요? 저는 그다지 아는 게 없어서…….”

“제가 오지에 살아서 모르는 게 좀 많아서요. 상식 수준의 질문이니 염려 놓으세요.”

다른 세계에서 왔다는 허황된 이야기, 내 입으로 꺼내놓기도 그랬지만 마음대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마스터가 딱히 무어라 입단속하지 않았지만……. 난 이 세계에서 일종의 외계인 같은 거잖아? 지구에 불시착한 ET도 결국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으니, 이 사실을 함부로 밝히고 다니면 무슨 화를 입을지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난 상식 없는 여자라, 우선 상식은 좀 알아야지 싶었다.

“예, 그러면 이거라도 드시면서 하십쇼.”

머릿속으로 꺼낼 질문을 정리하는 내게 아저씨가 내어준 것은 고기와 야채가 들어간 두툼한 샌드위치였다. 본인이 먹으려고 만들어 놓은 것인가 보다. 그와 함께 우유를 따른 컵도 건네주길래 나는 재빨리 받아 꿀꺽꿀꺽 마시면서 샌드위치를 씹었다. 걸신들린 듯이 한 개를 다 먹어 해치우고도 부족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뭐 씹은 표정을 지은 아저씨가 샌드위치를 한 개 더 건네주었다.

마스터가 지갑째로 돈을 주었으니, 수고만 더해질 뿐 손해는 아닐 텐데. 이 아저씨 서비스 정신이 빵점이네.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미루어두었던 질문을 시작했다. 다소 적절하지 못한 서두로.

“그러니까 말이에요, 이 나라는 사람을 죽여도 괜찮나 봐요?”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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