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5 1. 검은 마법사. =========================================================================
“어이, 형씨 식당에서 얼굴에 그리 가리고 있으면 쓰나. 그 비싼 면상 우리가 좀 볼 일이 있는데.”
“그래, 그 꺼먼 것 좀 벗어 보셔야겠어?”
“세상이 험하다 보니 지명수배자 같은 게 마을이 숨어들지 몰라서 말이지.”
“뭐, 꿀리는 게 없다면야 벗어 봐도 상관없지 않겠어?”
킬킬거리는 그들은 다소 위협적이었고, 마스터가 순순히 얼굴을 보인다 해도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 여자애 하나에 호리호리한 체형의 남자 한 명, 건드려보기 만만한 상대이리라. 그들에게 마스터의 복장은 그냥 좋은 시빗거리일 뿐이다. 문명인답게 점잖게 제지할까 했지만, 마스터가 이 곤경을 어찌 헤쳐나가는지 보고 싶었다. 나서려던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겁먹은 척 눈동자만 굴렸다. 이건 마스터가 가진 힘을 알아낼 좋은 기회였다. 생명의 은인에게 너무 양심 없이 구는 걸까? 죄책감이 들었지만 어쨌든 난 힘이 없고, 또 표적이 나는 아니니까.
마스터는 곁에 선 그들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전히 미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건 철저한 무시였다. 마스터가 동행하길 거부했던 이유는 자신이 문제가 될 것임을 알아서였던 것일까. 불현듯 떠오른 그 생각은 내 양심을 또 한 번 쿡 찔렀다. 아야! 나 진짜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거겠지?
“근데 이 자식이……. 진짜 자나? 어이!”
유독 험상궂다 못해 얼굴에 칼자국이 나 있는 사내가 마스터의 어깨를 건드리자 얼굴을 가리던 후드가 슬쩍 위로 벗겨졌다. 흑요석 가루를 뿌린 듯이 은은한 광택을 띠고 내리깔린 검은 속눈썹이 사뿐히 들렸다. 그때서야 마스터가 눈을 뜬 것이다.
무감정한 검은 눈동자가 드러나자 일순 공기가 바뀌었다. 실내를 떠도는 미미한 바람마저 뚝 멎는 것 같았다. 그저 눈을 뜬 것만으로도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놀랍지만, 그것은 누구나가 느낄 수 있을 변화였다. 난 긴장감에 입을 축였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치 아득한 암흑이 담긴 눈동자가 사내들을 향했다. 그들은 순간 위축된 듯이 보였다. 고저 없는 음성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
“치워.”
그 말에 절대적인 명령이라도 담긴 것처럼 마스터를 건드린 사내가 주춤하며 물러섰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 무리 전체가 움찔거렸다. 그러나 곧 사내의 얼굴에는 자신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 몰이해는 곧 분노로 탈바꿈했다. 자신이 고작 그 한 마디에 겁먹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던 것이다.
“이, 이 자식이?!”
그리고 그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사내가 주먹을 들어 마스터를 내리치려는 그때, 갑자기 허공에 원형의 어둠이 나타나 그를 집어삼켰다. 사내의 존재가 이 공간에서 단숨에 말살 당한 것이다. 검은 구(毬) 안에서 얼음을 깨부숴 먹듯 아작아작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소름 끼치는 피비린내가 확 풍겼다. 곧 어둠이 사라지자, 무언가 툭, 하고 둔탁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식당은 죽음과 같은 침묵에 휩싸였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몸을 떨고 있었다. 도무지 가눌 수 없이 덜덜 떨리는 몸 때문에 테이블에 진동이 일 지경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나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그래, 공포였다. 의자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나는 이미 다리에 힘이 풀려 무릎을 꿇었으리라.
그 떨어진 것, 그것은…… 둥글게 뭉쳐진 살덩어리였다. 육체를 찢어발겨 강제로 응축한 듯한 그것의 표면은 피로 젖어 하얀 뼛조각을 내보이고 있었다.
호흡이 멎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무너지듯 입을 막았다. 누군가가 목을 조르듯 목구멍이 아프도록 죄어왔다. 그 살덩어리 중앙에는 마치 의도한 것처럼 둥글고 하얀, 어떤 것이 자리하고 있었다. 제 죽음조차 인지하지 못했을 사내의 눈, 빨갛게 혈관이 돋은 흰자위에 억울한 듯이 일그러진 눈동자가 피가 식어내릴 만큼 끔찍했다. 몇 초 전만 해도 사람이었던 그는 이미 더 이상 사람이라 할 수 없는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지독한 비현실감에 사로잡혀, 미처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커다란 소리만이 고동처럼 귓가에 웅웅대었다. 나는 잠시 후에야 그것이 비명임을 알아차렸다. 이건 공포영화를 봤을 때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아니, 교통사고를 목격했을 때에도 이보단 나았다. 구토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게 만드는 공포 속에서 나는 간신히 목소리를 끄집어내어 물었다.
“왜…… 죽이셨어요?”
나서지 않은 나를 비웃듯 그의 눈은 변함없이 차가웠다. 마치 보석을 그대로 박아놓은 양, 아무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그 눈빛. 그는 기계처럼 충실히 대답을 들려주었다.
“나를 공격했으니까.”
폐가 얼어붙은 듯이,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고산증이라도 느끼는 양 나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러면서 내 안에서 갖가지 감정이 빙빙 소용돌이쳤다. 기이할 정도로 화가 치솟고, 목에 예리한 칼날이 겨누어지는 듯이 두려웠다. 겁에 질린 개가 짖어대듯 무어라도 소리를 질러 이 감정을 떨쳐 버리고 싶었다. 끔찍한 악몽이 현실이 되어 덮친 그 앞에서, 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딱히 내가 도덕군자인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태연할 수 있을까. 살인. 그 단어를 떠올리자 혈관이 팽창하듯 머리가 당기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덩어리가 왈칵하고 솟구쳤다. 내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심이라도 새겨져 있었던 것일까. 아니, 단순히 공포심 때문에 머리가 돌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이미 떨리는 입술로 항의하고 있었다.
“죽일 것까진… 없었잖아요. 죽이진 않아도 되었잖아요!”
나는 미친 걸까? 진짜 무서워 죽겠는데, 무서워 죽겠는데 그것을 압도할 정도로 이 감정을 참을 수 없었다. 천적을 앞두고 도리어 달려드는 생쥐처럼, 본능적으로 솟구치는 무언가가 두려움을 넘어서 그를 노려보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스터의 무감한 눈빛이 내게로 꽂히자 등이 저절로 의자에 바짝 붙었다. 당돌한 척 크게 치떴던 눈이 자연스레 내리깔렸다. 그 역시 그저- 어찌할 수 없는 본능. 나도 죽이려고? 그런 말을 지껄이는 허세는 부릴 수 없었다. 난 이를 악물었다.
“나를 공격하는 것은 죽음에 달하는 죄다.”
함무라비 법전을 강화한 것 같은 가혹한 소리를 마스터는 진리처럼 내뱉었다. 공포에 굴복하듯 나는 그 말을 납득할 뻔 했다. 그래 여긴 다른 세계니까, 마스터가 너무 대단한 존재라 그게 정말 사실일 수도 있지. 반면 그런 미친 규칙이 어디 있느냐고 사납게 부정하는 소리가 날 일깨웠다. 혼란해하는 날 두고 마스터는 여전히 차갑게 깔린 음색으로, 말을 이었다.
“잘 봐 두어라. 이것이 앞으로 네가 해야 할 일이니.”
얼음을 깎아 만든 양 무감정한 낯에서 흘러나온 그 말이, 섬광처럼 나를 꿰뚫는 것 같았다.
“……제가요?”
“그래. 나를 적대하는 자들을 치우는 것. 내가 나서기 전에.”
마스터의 음성은 고저 없이 차분했지만, 내 귀에 그 말은 질책으로 들렸다. 내가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저들이 죽었다는 듯한. 아니야, 내가 나섰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그냥 신 나게 두들겨 맞고 퉁퉁 부은 내 얼굴 정도가 더해져 남았겠지.
그러나 그 어떤 위로로도 내가 느끼는 무력감은 해소할 수 없었다. 흡사 손바닥 위에 올려진 연약스러운 하얀 나비라도 된 듯싶었다. 그가 손을 쥐면, 나는 단숨에 으스러져 숨이 멎고 말겠지. 그 절대적인 잔혹함이 너무도 생생하여 나는 언제고 순번을 기다리다 단두대에 오를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죽은 것이 악인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아니,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나는 방만하게 마스터가 가진 힘을 궁금해했고, 그를 데려왔고, 내버려뒀고, 그리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내 가볍고 얄팍한 마음이 사람을 죽게 했다. 그가 마스터에게 폭력을 행사하려고 했든, 죽어 마땅한 사람이든 그의 죽음에는 내 책임이 있었고, 난 그것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차마 시선이 내려가지 않았다. 그 처참한 모습을 다시 볼 엄두가 날 리 없다. 내가 이걸 해야 한다고? 멀쩡한 사람을 산채로 찢어 죽이는 이따위 일을? 능력 여부를 떠나 내겐 불가능했다. 이런 건 절대 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뇌까리는 내게, 그렇다면 너도 죽겠느냐는 비웃음이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세차게 고갯짓하며 속삭임을 뿌리쳤다. 이것으로 마스터가 내게 바라는 게 무언지, 더할 나위 없이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내 몸 따위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건 말하지 않아도 그의 뜻대로 움직여줄 수족. 마법을 익히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강해져야 그가 더 부리기 좋을 테니까. 그리고 마스터를 따르지 않는다면 나도 저 꼴이 날 것이다.
어느새 사방은 고요했다. 한없이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에 잠겨 난 말없이 손을 그러모았다. 떨림은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지만, 마음은 진정될 줄 몰랐다. 목숨을 건졌다고는 하나, 정말로 된통 걸려버렸다. 눈앞에 시커먼 공동이 입을 쩍 벌리는 환영이 보여, 난 불현듯 몸서리쳤다. 하나의 가정이 뇌리를 스쳤다.
…어쩌면 마스터가 이 사내를 잔인하게 처리한 건, 의도한 바일지도 모른다. 내가 도망치려는 것을, 마스터의 힘을 의심하는 것을 눈치채었다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래 경고를 주려면, 본보기를 보이는 게 가장 확실했겠지.
그리고 내가 이토록 벌벌 떨고 있으니, 마스터는 제대로 된 교훈을 주었다 확신하고 있으리라. 공포에 의한 복종.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생각났다. 사람은 두려워하는 대상을 배신하지 못하기에, 사랑받는 것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낫다는 그 문구.
하지만 그 군주정의 문구는 현대에서 자란 나에게 통용되기에는 너무도 완고하고, 고리타분했다. 왕이 없는 나라에서 자란 난 자유를 알았고, 공포심 때문에 목줄을 벗어나지 못하는 짐승이 될 수도 없었다. 이 세계가 어떤 곳이든, 어릴 때부터 다져져 온 내 가치관은 그리 쉽사리 바뀔 만한 종류가 아니었다.
그의 본보기는 도망치려는 내 마음을 유예했을 뿐 돌이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내 도주욕은 이전보다 훨씬 더 강렬해졌다.
어두운 숲 속에서 맹수를 만난다면, 피식자는 일단 숨을 죽이고 있더라도……. 결국은 기회를 보아 도망치고 말리라.
그리고 나 역시, 그래야했다.
비록 지금은 두려움에 떨며, 눈도 맞추지 못하는 나이지만 절대 당신의 뜻대로만 움직이지는 않으리라. 몸이 노예라고 마음조차 노예일 수는 없는 법이니. 내린 고개 사이로 서늘하게 눈을 빛내며, 나는 다짐하듯 되뇌었다.
식욕이 뚝 떨어진 내가 음식물이 담긴 접시를 맥없이 바라보는데,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던 마스터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그림자를 드리우자 결심이 무색하게, 난 꼴사납도록 화들짝 놀랐다. 꽤 많던 손님이 남김없이 도망쳐버린 식당은 싸하게 비어서 나와 마스터 외엔 아무도 없었다. 사실 나도 매인 몸만 아니라면 줄행랑치고 싶었지만…….
방으로 돌아가려나 싶어 나는 한숨을 삼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방으로 가려면 저 끔찍한 덩어리를 지나야 하는데……. 내가 접시만 쳐다보고 있는 이유는, 절대로 그쪽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옆쪽 테이블을 타고 건너가는 게 백만 배는 나을 것 같았다.
저걸 도대체 누가 치울까? 나라면 억만금을 준대도 치우고 싶지 않을 거라고 불평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손님도 내쫓고 여관에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치네. 살인이 벌어진 시점에서 그런 걸 생각하는 것조차 사소하게 되어버렸지만. 나는 잠시 여관주인에게 애도를 표했다.
“아?”
돌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어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귀를 기울여 보려는 찰나, 마스터의 손에서 재빠르게 빛이 점멸한다.
우우웅- 그리고 이어진 진공음. 어지러울 만치 고막을 괴롭히는 귀울림이 일며 지잉지잉 거리는 소리가 공간을 휩쓸었다. 이윽고 팟, 하는 소리를 마지막으로 여관 전체가 잠시 암전에 감싸였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난 조심스레 물었다.
“뭘… 하신 거예요?”
“결계, 이 여관에는 이제 누구도 출입할 수 없다.”
============================ 작품 후기 ============================
5편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상세히 쓰는 발랄한 로맨스판타지!
딴거보다 이 소설을 주로 쓸거예요. 아마도.....
선작,추천,코멘트,평점,쿠폰,아이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