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4 1. 검은 마법사. =========================================================================
밥이나 빨리 먹고 가자. 중얼거린 난 메뉴판을 펴들었다. 의자도 딱딱했지만 마스터와 내가 선택한 자리는 여차하면 도망가기 쉬운, 출입구 가까운 자리였다. 그 이유는 식당 한편에 우르르 모여있는, 곰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듯한 험상궂은 근육질 아저씨들을 다분히 의식한 탓이다. 물론 나만.
우리가 들어서기 전까지 호탕하게 탁자를 내리치며 실컷 웃고 떠들었던 그들이었지만, 지금은 아까와 비교하면 한결 조용해져 있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호기심이 섞인 시선이 쏟아졌다. 뭐, 이해할 만한 일이다. 나는 그렇다 쳐도 마스터는 내가 보기에도 수상했으니까.
조금 전 나의 마스터가 된 이는 무슨 죄를 지었는지 머리에 후드를 눌러쓰고 천으로 얼굴까지 가린 채였다. 성격이나 몸에 밴 분위기를 생각하면 너무나 수줍음이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닐 테고, 그렇다면……. 난 의혹을 품고 그를 바라보았다. 아마도, 현상수배범 정도가 가능성 있지 않을까. 자신을 감추고 싶은 마음은 알겠지만 저래서는 오히려 더 이목을 끌뿐이다. 메뉴판을 주고 간 종업원도 먼발치에서 그를 연신 힐끔거렸다.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이 물었다.
“얼굴은 왜 가린 거예요? 그래선 식사도 못 하실 것 같은데요.”
“나는 먹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고? 난 잠시 그 짤막한 대답에서 진의를 캐내려고 애썼다. 배가 고프지 않다는 건가. 아니면 이런 곳에서 나오는 음식은 먹기 싫다는 소리야? 후자라면 인간적인 답변이었지만 내가 빈정 상했다. 그리고 인간적인, 이라는 말을 곱씹자 나는 그와 상반되는 한 가지 가정을 더 떠올릴 수 있었다. 아예 먹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
……이런 생각이 바로 드는 걸 보니 사람이라면 잠시라도 흐트러짐을 보일 만한데, 마치 신체의 모든 움직임이 계산된 것처럼 완벽해서 더더욱 인간미 없는 마스터를 내 안에서 정말로 인조인간에 가까운 존재로 두고 있었나 보다.
어쨌든 나는 한껏 낮춘 목소리 그대로 다시 한 번 물었다.
“그럼 저 혼자만 뻘쭘하게 이 시선을 받으며 먹으라는 건가요?”
“싫다면 굶어야겠지.”
고요하고 유리표면처럼 매끄럽기 짝이 없어, 어조 변화를 거의 느낄 수 없는 음성이었지만, 내겐 그 답변이 단칼에 자른 듯이 확고하게 들렸다. 실은, 그가 내 어리광 비슷한 요구를 받아줄지 시험해본 터라 머릿속이 팽팽 돌아갔다. 내게 이 식사자리는 그에 대해 알기 위한 자리이지 단순한 친목 도모의 장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의 대답을 토대로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마스터가 나를 제자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즉, 일정 부분 나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식사하는 데 따라와 준 것처럼. 다만 그 책임이라는 것에는 한도가 분명하므로 그는 그 한도를 벗어나는 요구는 들어주지 않으리라. 어렴풋이 기준선을 그어낸 나는 울적한 척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만 먹지요. 그런데 여기 메뉴는…….”
눈앞에 놓인 메뉴는 분명 읽을 수는 있었지만 아주 간략하게 요리명만 적혀있어서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김치볶음밥처럼 음식이름에 내용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까르보나라라고만 적혀있으면 까르보나라를 모르는 사람은 재료가 뭐가 들어가는지, 어떤 요리법으로 만들어지는지 짐작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였다.
나는 포기하고 종업원에게 손짓했다. 쪼르르 달려오는 종업원은 주근깨가 송송 난 열다섯에서 열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마스터도 그렇거니와 여기 사람들은 딱히 동양이니 서양이니 구분할 수 없는 외모를 하고 있었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서양인이라기에는 민둥민둥하고 동양인이라고 보기에는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다만 머리카락 색이나 눈 색은, 이 좁은 식당 내에서도 골고루였다.
내가 그들을 신기하게 여기듯, 그들에게도 내 생김새가 특이하게 느껴지는지 종업원은 날 신기하게 보는 눈초리였다. 반면 아까까지만 해도 은근슬쩍 쳐다보던 마스터에게는 꺼림칙한지 시선을 주지 않고 종업원은 완전히 내 옆에 서 있었다.
나는 좀 더 세부적인 분석에 들어갔다. 여기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은 티에 셔츠, 그 위에 조끼를 걸친 간소한 복장으로 재질은 리넨처럼 식물에서 뽑아낸 실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다만 색 자체는 갈색이나 베이지색으로 단조로웠다. 나는 마스터를 흘끗 바라보았다.
마스터가 걸친 옷은 일체 먹으로 물들인 양 검다 못해 은은한 광택이 어린, 고급스러운 재질이었다. 하지만 장례식장에서나 입을 것 같은 올블랙의 패션은 여기서 아무도 애호하지 않는 것 같다. 역시 저게 정상적인 차림은 아니었어. 가만, 그러고 보니 내 복장은 어떠한가? 벼락같은 깨달음에 나도 모르게 몸을 더듬었다. 맙소사, 왜 여태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지?
그 이상한 공간에 빠져들기 이전, 나는 잠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내가 입고 있던 옷은 잠옷이었다. 곰돌이가 그려진 친숙한 잠옷. 하지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건…… 부드러운 재질의 베이지색 웃옷과 바지였다. 익숙하지 않은 재질의 옷을 난 주름을 펴듯 만지작거렸다. 깨달음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온 순간, 손에 진땀이 고이고 뺨에 확확 열이 올랐다.
내가 정신을 잃은 사이 옷을 갈아입혔단 말이야? 느껴지는 감촉이, 지금은 확인하기 어렵지만 속옷까지 손댄 건 아닌 것 같다. 진짜, 뭐라고 말할 수 없게 민망했지만, 한 번 꼭대기를 찍은 흥분은 스스로 속삭이는 위로에 힘입어 포물선을 그리며 가라앉아갔다.
어쩔 수 없었겠지. 마스터가 음흉한 의도를 가지고 그랬을 거라고는 생각한다면 억측이다. 애써 스스로 달래며 난 주먹을 꾹 말아 쥐었다. 얼굴을 가린 마스터는 시선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알 수 없어서, 내 반응을 눈치챘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아니, 알았어도 그는 필경 무심하게 넘길 터였다. 그러니 더는 생각하지 말자, 난 굳게 다짐했다.
다행히 그의 우중충한 센스는 그 자신에게만 적용되는가 보다. 내 복장은 겉보기에도 꽤 평범한 축에 속했다.
“저기 손님, 주문은?”
기다리다 못해 재촉하는 종업원에게 난 성의 없이 대꾸했다.
“여기 가장 무난하게 잘 팔리는 음식으로 하나만 가져다주세요.”
조금 전만 해도 뭘 시킬까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지금은 빨리 식사를 해치우고 방으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점원은 대충 주문을 받고 사라져갔다. 한순간 끓어오른 감정 때문에 진이 빠진 탓인지 잊고 있었던 배고픔이 밀려왔다. 나는 초조하게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톡톡 두드렸다.
굶주리고 텅 빈 위장이 쩌릿쩌릿해져 올 지경이라 이제 곧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날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깨어난 이유도 배고픔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 사실을 떠올리니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죽음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느낀 생의 감각이 배고픔이라니. 나도 참 본능적이다.
어쨌든 난 살아났고, 이제 이 세계에서의 첫 식사를 앞두고 있었다. 비록 나를 잠정 노예 취급하는 수상쩍은 인물과 함께라지만, 그건 퍽 새로운 기분이었다. 폐 안쪽에 상쾌한 공기가 차오르는 것 같았다.
한결 들뜬 기분에 따라 스르르 입이 열렸다. 허기를 잊기 위해서라도 시답잖은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마스터, 궁금한 게 있어요.”
“…….”
마스터는 미동 없이 침묵을 내세웠지만,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듯한 특유의 압박감만으로도 후드에 감춰진 시선이 내게 향한 걸 알 수 있었다. 그 뜻은 아마도 승낙이리라. 나는 공손한 척 눈을 내리깔며 조심스러운 투로 물었다.
“이곳은 어디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일정을 알고 싶어요.”
“알펜 왕국의 이지스라는 마을이지. 이곳으로 찾아올 이가 있다.”
딱 그렇게만 답하고 마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로봇이 아닌가 의심이 될 만큼 극도의 효율성이었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둘만 있었을 때보다 더 말을 아끼는 마스터는 한층 더 거리감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친근하게 느꼈던 적은 없지만, 지금은 사적인 자리에서 마치 아랫것들과 함부로 말 섞지 않는 왕족이라도 되어 보였다. 이슬람 여인들의 차도르처럼 꽁꽁 둘러싼 차림새는 세상과 그를 단절하고, 구분 짓는 듯했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다시 한 번 질문을 꺼내려는 찰나, 종업원이 포크와 함께 으깬 감자와 햄버그가 얹어진 접시를 내왔다. 겉모양은 전형적인 가정식이었지만, 배만 채울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았다. 그리고 마스터는 드셔 보지 않겠느냐는 내 예의상의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나란 존재를 전혀 개의치 않은 태도에 앞에 앉은 내가 민망할 정도였다.
난 포기하고 식사에 집중하며 마스터가 한 말을 곱씹어보았다. 알펜 왕국, 그렇다는 건 왕정제 국가라는 뜻이다. 아마 현대의 입헌군주제를 따르는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왕이 존재하지 않을까. 그리고 또 하나, 이곳으로 누군가 찾아온다는 말. 마스터와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이곳을 떠날 가능성이 높았다. 영영 여관에 머무르고 있지만은 않을 테니까.
……아무래도 마스터는 여기서 시시콜콜 이야기할 마음이 없는 듯싶다. 그러니 질문은 그가 조금 친절해지는 방으로 돌아가서 하자. 결심한 난 눈을 빛내며 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나이프라고 하기엔 날이 뭉뚝한 도구로 햄버그를 잘라내고, 포크로 감자를 퍼서 부지런히 입으로 날랐다. 다행히 음식 맛은 내가 원래 살던 곳과 비슷했고, 시장이 반찬이라 무척 맛있었다. 어찌나 먹는데 심취했는지 눈앞의 접시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생판 처음 보는 사람 앞이지만, 마스터가 내 게걸스러운 식사를 보고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걸 은연중에 알고 있었으므로 거리낌은 없었다. 어느 모로 보나 나와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애초에 없는 것 같다. 고기 기름에 볶아냈는지 약간 느끼한 감이 있는 으깬 감자를, 조리법에 대해 불만스레 품평하면서도 나는 남김없이 먹어치웠다.
반쯤 접시를 비우자 그때쯤 소곤소곤 거리는 소리가 귀에 어렴풋하게 들려왔다. 죽다 살아난 경험 덕에 청각이 비상하게 좋아졌나 보다. 의식을 집중하자 소리는 좀 더 명확하게 들렸다. 저쪽에 앉은 험상궂은 무리가 떠드는 소리였다.
“……저 까만 옷으로 둘러 입은 자식 좀 수상하지 않아? 얼굴을 저렇게 꽁꽁 싸매고. 한 번 건드려 볼까?”
누구 하나, 의심 많은 이가 먼저 언급을 꺼내자 신중한 쪽의 만류가 돌아왔다.
“귀족일 수 있잖아.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자고.”
“옆에 있는 어리숙한 계집애는 그럼 뭐고?”
“그냥 하녀겠지.”
어리숙한 계집애? 이건 나를 말할 테고, 하녀라. 좀 울컥하는 말이었지만 나는 때와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상대를 맞춰서 성질을 내보일 정도의 타협은 할 줄 알았다. 아니, 사실 너무 잘 타협하곤 해서 문제였다. 음……. 팔뚝이 아주 내 세 배는 되겠어.
대신 나는 아직 치우지 않은, 정체 모를 음식들로 그득한 메뉴판을 보며 고민에 잠겼다. 디저트 정도는 더 시켜도 괜찮겠지? 어떤 게 좋을까. 하지만 그들의 대화는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혹시 저자, 마법사는 아닐까? 흑마법사라든가.”
“캬하하! 멍청아 미쳤다고 흑마법사 놈이 저렇게 날 잡아 잡수 광고하며 싸돌아다니겠냐? 마법사 길드에 걸리면 그날로 사망인데.”
“그러게 게다가 이런 시골 동네에, 아서라 흑마법사는 무슨? 그렇게 되면 저 계집애는 실험용 인간쯤 되겠네? 마법실험에 이용할.”
“아무튼, 저 치 뭔가 구린내를 풍기는데. 내가 좀 전에 물어보았는 데 사흘 전부터 이곳에 묵었나 봐. 그런데 방에 들어간 뒤로 한 번도 나온 적이 없다네. 식사하러 내려온 적도 없고 말이야.”
“남의 눈에 띄면 안 될 이유가 있다면……. 아마.”
“그래 이유는 하나뿐이지.”
갑자기 의견이 확 기운 듯싶었다. 불길한 기분이 엄습함과 동시에, 사내들은 씨익 하고 웃으며 우정을 다지듯 끈끈한 눈빛을 주고받더니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육질의 사내들은 마스터와 내가 앉은 곳으로 우르르 몰려와 테이블을 둘러쌌다. 정확히 숫자는 여섯 명이었다. 식욕 떨어지는 상황이긴 했지만 배고픔이 아직 완전히 채워지지 않았기에 나는 아쉽게 먹다 만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나는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