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먼저 외전 3화
산과 의사가 이제는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휘욱은 아내와 사투 같은 키스만 했다. 키스할 때마다 격렬하게 흥분하는 아내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입술을 내 줘야만 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비빔국수를 만들어 준 주말 이후로 툭하면 입술을 내밀며 다가왔다.
그런데 그게 또 싫지 않아서 문제였다. 휘욱은 아내를 품에 안은 채로 잠들기 전까지 입술만 열심히 빨아 댔다. 그러다 아내가 잠들고 나면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또 다른 사투가 조용히 이어졌다.
마침내 산과 의사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한 날, 휘욱은 하마터면 진료실에서 환호성을 내지를 뻔했다. 흘끗 본 아내의 표정도 사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밤, 그녀는 임신 이후로 입지 않았던 실크 슬립을 두른 채로 침실에 나타났다. 휘욱은 목울대가 크게 울렁일 정도로 급히 마른침을 삼켰다. 휘욱의 갈증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그녀가 말했다.
“너무 급하게 하면 안 돼.”
엄정하게 말하려고 노력하는 듯했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꿈결처럼 부드럽기만 했다.
“너무 격렬하게 해도 안 되고.”
그녀가 뜸을 들이며 천천히 다가왔다. 휘욱은 두세 걸음 떨어진 곳까지 다가온 아내의 몸을 와락 당겨 안았다.
“알아. 다 알아.”
부드럽게 속삭이며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풍만한 감촉이 뺨을 간질였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그녀의 살갗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가 폐부 깊숙한 곳까지 단숨에 파고들었다.
휘욱은 보드라운 여체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혔다.
“흐음.”
그저 누운 채로 몸을 맞댔을 뿐인데, 그녀가 얕은 신음을 흘렸다.
“벌써?”
휘욱은 그녀의 예민한 반응을 알은체하듯 물었다.
“나도 많이 참았다고.”
할 말 다 하는 윤인애는 뺨을 붉히며 예쁘게 투덜거렸다. 휘욱은 웃음기를 머금은 입술로 그녀의 살갗을 보드랍게 빨았다.
“하아.”
더운 숨을 내쉬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어여뻤다. 둘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슬립 따위와 파자마를 벗어 던지고는, 아주 천천히 깊숙한 곳까지 맞대었다.
“흐으응.”
만족스러운 신음을 내뱉는 아내의 눈가가 아름답게 붉었다. 휘욱은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생전 처음 아내를 알아 가는 남편처럼 조심스럽고 순한 움직임이었다. 그녀가 가쁜 숨을 내뱉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휘욱의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의 상승세도 가팔라졌다.
꼭 감은 그녀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가장 내밀한 곳까지 전해진 오랜만의 떨림은 달콤했다.
*
그날 이후 그녀는 못 먹는 입덧이 아닌, 먹는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휘욱이 만들어 주는 비빔국수만 주야장천 먹었다. 다른 건 먹기 싫다며 그것만 찾는 아내를 위해, 휘욱은 자다가도 일어나서 소면을 삶았다.
“우리 국수 나올 때쯤 되면, 나 정말 비빔국수 장사해도 되겠어.”
태명에 관해 많이 고민했었는데, 그녀가 국수만 찾게 된다며 어느 날부터 태아를 국수라고 불렀다. 예부터 국수는 장수의 상징이었고, 우리네 잔치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기도 했다. 그러니 의미도 나쁘지 않아서 휘욱도 그녀를 따라 국수라고 불렀다.
“근데 진짜 이름은 뭐로 하지?”
그녀가 부른 배 위에 손을 척 얹은 채로 물었다. 지금도 막 비빔국수 한 그릇을 비운 참이다.
“어렵네.”
휘욱은 나름대로 아이의 이름을 여러 개 떠올려 보았지만, 얼굴도 보지 않은 아이의 이름을 정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너는?”
아내에게 묻자, 그녀도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너무 어려워.”
이름이 갖는 의미는 태곳적부터 깊었다. 이름이 생겨야 의미가 생겼고, 가치가 매겨졌다. 두 사람의 결실을 나타내는 아이의 이름은 그래서 참 어려웠다.
“아.”
“아?”
그녀가 배 아래를 짚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정일을 하루 앞둔 오후였다.
“왜? 진통 와?”
휘욱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어, 뭔가 확 뭉치는 기분이야.”
“어떡해? 지금 병원 갈까?”
아내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단호하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 멀었어.”
마치 애를 둘 이상 낳은 경산모처럼 그녀는 여유롭게 웃었다. 이런 순간에도 자신만만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아내가 휘욱은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오후 느지막이 시작된 진통은 아주 느린 속도로 간격을 좁혀 나갔다.
“이제 가자, 병원.”
날이 바뀌고, 아침이 밝자마자 그녀가 드디어 때가 되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노란 개나리가 활짝 핀 길가에는 투명 우산을 쓴 초등학생들이 재잘거리며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봄비가 내리는 아침은 여느 때처럼 소란스러웠다. 출근 시간과 등교 시간이 겹쳐서 도로는 꽉 막혔고, 휘욱이 운전대를 잡은 차는 꿈쩍도 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안 가냐.”
휘욱이 한숨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뒷자리에서 끙끙거리는 얕은 신음과 가쁜 숨소리가 들릴 때마다 심장이 차츰 조여들었다.
집을 나설 때만 해도 여유롭게 웃던 아내는 차에 오르자 대번에 얼굴색이 바뀌었다. 그런데 여전히 차는 움직이지 못했다.
이러다 피가 다 말라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손끝이 저렸다.
“너무 막히네.”
“아직, 나오려면, 멀었어.”
진통이 지나갔는지, 인애가 제법 또랑또랑한 목소리를 냈다.
“여기만 뚫리면 병원 금방 도착해.”
휘욱은 상체를 슬쩍 돌려 뒷좌석을 바라보았다.
“전방, 주시!”
이런 상황에서도 휘욱을 다그치는 인애의 딱 부러지는 성격은 여전했다.
초등학교 앞을 기어가듯이 빠져나오자, 도로가 뻥뻥 뚫리기 시작했다. 막힌 도로를 빠져나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차가 병원 주차장에 멈춰 섰다.
“잠깐만.”
진통을 느끼는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몸을 비트는 아내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손에서 진땀이 났다.
“이제, 됐어.”
휘욱은 얼른 운전석에서 내려서 뒷좌석 문을 열고는 아내를 안아 들기 위해 자세를 낮추었다.
“아냐, 내가 걸을 수 있어.”
그녀는 휘욱의 부축을 받으면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음을 옮겼다. 윤인애의 성격은 죽음과 맞닿아 있다는 산모의 고통과 인접한 순간에도 빛을 잃지 않았다. 한결같은 면이 사랑스러워서 휘욱은 아내의 관자놀이에 가만히 입을 맞추었다.
“장모님께 연락드릴까?”
“아니.”
그녀가 단호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
“그래도 장모님이 계시는 게 편하지 않아?”
“싫어. 진통하는 거 보여 주고 싶지 않아.”
고통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며, 그녀는 출산 후에 연락하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럼, 나는? 같이 있어도 돼?”
“휘욱 씨는 당연히 같이 있어야지! 아내가 얼마나 아파하면서 애를 낳는지 다 봐야지!”
어디 가면 가만 안 두겠다는 듯이 휘욱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형형했다. 저를 낳아 준 부모에게는 고통에 찬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남편은 곁을 지켜야 한다는 그녀의 말에 뜻 모를 긍지가 차올랐다.
휘욱은 그녀가 아파할 때는 함께 아파하고, 한숨 돌릴 때는 시원찮은 농담을 주고받았다.
남편도 함께 분만에 참여할 수 있는 가족 분만실에 들어간 지 꼬박 열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국수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들이 아빠를 쏙 빼닮아서 잘생겼네요. 신생아가 코 오뚝한 것 좀 봐.”
간호사가 번데기처럼 속싸개에 돌돌 말린 아기를 안고 와서는 휘욱에게 건네주었다. 휘욱은 저의 축소판처럼 보이는 아이가 마냥 신기했다.
“나도 좀 안게 줘 봐.”
환우용 침대에 힘없이 반쯤 기대 누운 그녀가 미소 띤 얼굴로 보챘다.
“어? 어.”
휘욱은 갓 태어난 아들의 얼굴에 홀린 나머지 아내에게 안겨 줘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그리고 아들을 아내의 품에 넘겨준 순간, 말도 안 되는 공허함이 밀려들었다. 이제 얼굴을 확인했을 뿐인데, 자식을 향한 끌림은 상상 이상으로 강력했다.
휘욱은 그녀의 곁에 딱 붙어 앉아서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어때?”
그녀의 목소리도 벅차올라 있었다.
“윤인애가 세상에 마스터피스는 없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예술 작품을 사고파는 일을 하는 그녀는 완벽한 마스터피스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었다. 어쩌면 마스터피스라는 말은 작품을 사고파는 장사꾼들이 값을 올리기 위해 만든 말인지도 모른다는 회의적인 시각이었다.
“마스터피스를 스스로 낳았네.”
휘욱이 아내를 기특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녀는 갓 태어난 아이를 향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름이 생각났어.”
휘욱이 조용히 읊조렸다.
“진짜? 뭔데?”
그녀가 기대감 어린 눈빛으로 휘욱을 바라보며 물었다.
“고군.”
“고군?”
“높을 고, 임금 군. 세상을 높이 이끈다는 뜻으로.”
휘욱은 진지하게 말했는데, 아이를 안은 아내의 입가가 삐뚜름해졌다.
“고군. 성까지 붙이면 최고군?”
“응. 최고니까 최고라고 불러 줘야지.”
남편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인애의 표정도 이내 진지해졌다.
“휘욱 씨, 지금 애가 막 태어나서 벅차 있다는 건 알겠는데, 애 이름은 다시 생각해 보자. 놀림받기 딱 좋은 이름이야.”
최고를 최고라고 부르는데, 그게 왜 놀림당하는 이름인지. 인애의 말마따나 갓 아빠가 되어 감동에 찬 휘욱은 제가 지은 이름을 매우 흡족하게 여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