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먼저 48화
열네 살의 여름이었다. 삼복더위 속에서 부모 모두를 잃었다. 어머니의 장례는 아버지와의 합동 발인을 위해 오일장으로, 아버지의 장례 역시 어머니와의 합동 발인을 위해 삼일장으로 치러졌다.
상주가 된 휘욱은 부모님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장례 행렬의 가장 앞에 섰다. 숨죽여 우는 이들만 있을 뿐, 두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통곡하는 이는 없었다.
이설 자동차의 대표 이사직을 맡고 있던 아버지와 컨서베이터였던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언론에서는 연일 자극적인 보도를 이어 나갔다. 불운의 사고가 이설가를 덮쳤다는 말과 함께 증시도 요동쳤다.
장례식장을 찾은 이들은 휘욱을 위로하는 것보다,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일에 열을 올렸다. 주가가 낮아진 틈을 타 주식 브로커와 펀드 매니저, 투자가들이 뭉텅이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이 틈을 타 주식 증여를 통한 합법적 탈세를 모의하는 듯했다.
열네 살밖에 안 된 휘욱이었지만, 아버지 곁에서 보고 자란 게 많았다. 언젠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훌륭한 경영인이 되는 게 휘욱의 꿈이었다.
‘모나코에서는 자동차 경주장이 아닌 도로에서 F1 경기가 열린대요. 우리도 서울에서 그런 거 하면 멋지겠다. 아빠가 회사에서 그런 거 하면 안 돼요?’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휘욱이 아버지에게 꺼낸 말이었다.
‘아버지가 유럽 자동차 회사 버금가게 자동차를 열심히 만들어야겠구나. 우리 휘욱이랑 서울 시내를 달리는 F1 경기를 보려면.’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어린 휘욱의 물음을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 어린 아들에게 눈을 맞추고, 귀를 기울이는 일을 소중히 생각하던 분이었다. 아버지의 자상한 면모는 경영 일선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설 자동차에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없었다. 노사 간의 화합을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이어 갔고, 일할 맛 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해 아버지는 물심양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사람 살자고 하는 일이야. 사람 못 살게 구는 회사는 존재 자체를 고민해 봐야 한다.’
아버지는 늘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각별했던 건 당연했다. 두 분은 대학교 미술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아버지는 조부의 뜻에 따라 경영학과로 진학했는데, 취미로라도 붓을 잡고 싶어서 동아리 활동을 했다고.
서양회화를 전공한 어머니는 친구를 따라서 얼결에 동아리에 가입했다가 아버지를 만났다. 성정이 올바른 두 분은 단번에 서로가 짝이라는 것을 알아봤다고 했다. 아들 휘욱 앞에서 애정 표현을 숨기는 일도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표현을 해야 하는 거야. 마음에만 담아 두면 상대는 절대 알 수가 없단다.’
늘 아버지의 곁에서 행복한 미소를 짓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었다.
‘그럼요. 엄마, 아빠도 날 사랑하니까, 그 표현으로 동생 하나만 낳아 줘요. 귀여운 여동생으로.’
‘그건 안 돼. 엄마가 힘들어서.’
아버지는 휘욱을 낳을 때 어머니가 너무 힘들어했다며, 둘째는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그리고 둘째가 생기면 어머니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방해가 될 거라는 말도 했었다.
그러다 인애가 태어났다. 인애의 어머니는 휘욱 어머니의 절친이었고, 두 사람은 흉허물 없는 막역한 사이였다.
‘여동생을 이모가 낳아 줬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마주한 갓 태어난 아이는 새빨간 피부가 쪼글쪼글했고,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속싸개에 감싸여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번데기처럼 보였다.
‘너무 못생겼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호기심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사람처럼 생기지 않은 작은 아기가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서 날마다 보고 싶을 정도였다.
‘엄마, 인애 얼마만큼 컸대? 이모한테 전화해 봤어?’
유치원에 다녀오면 어머니에게 졸라서 인애 집에 전화를 걸어 보라고 했다. 이제는 얼마나 컸는지, 말은 하는지, 걸어 다닐 수는 있는지 궁금해서 안달이 났다.
인애가 백일이 지났을 무렵, 마침내 인애 집에 초대를 받아 갈 수 있었다.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보았던 빨갛고 조그맣던 아기가 포동포동 살이 올라 뽀얀 얼굴을 빛내며 휘욱을 바라보았다.
‘귀엽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휘욱을 응시하는 모습이 못 견디게 귀여웠다.
‘안아 봐도 돼요?’
휘욱은 인애 어머니의 허락을 받고 작은 아기를 두 팔로 조심스레 감싸 안았다.
‘좋은 냄새 난다. 따뜻해.’
아기에게서 나는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좋았다. 휘욱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내려 아기의 코끝에 자신의 코끝을 비벼 보았다. 기분이 좋은지 아기가 까르륵 소리를 내며 웃었다.
‘휘욱아, 그러면 안 돼.’
어머니가 휘욱을 나무랐다.
‘휘욱이가 우리 인애를 엄청 좋아하네. 휘욱아, 나중에 크면 우리 인애랑 결혼할래?’
인애 어머니가 던진 말에 어른들 모두 웃음을 터뜨렸고, 휘욱은 어안이 벙벙해진 얼굴로 품에 안은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마냥 누워만 있을 것 같았던 아기는 삑삑 소리가 나는 신발을 신고 걸음마를 떼기 시작했다. 성당에서 삑삑거리는 신발을 신고 돌아다녀서 수녀님에게 혼이 나기도 했다. 휘욱은 인애가 혼나는 게 싫어서 인애를 내내 품에 안고 다녔다.
‘우리 휘욱이가 인애를 잘 돌보네. 기특하기도 하지.’
수녀님들은 휘욱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흐뭇해했다.
오직 인애만 귀엽고, 예뻤다.
‘엄마, 우리 이모한테 인애 잠깐만 빌려 오면 안 돼? 인애랑 잠깐만 같이 살면 안 돼?’
휘욱이 물은 말에 어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 휘욱이 이러다 진짜 인애한테 장가가겠네. 인애가 그렇게 좋아?’
인애를 돌볼 때마다, 아버지가 늘 말씀하셨던 사람을 아끼는 일을 휘욱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인애를 마주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뜻 모를 책임감이 생겼다.
그렇다고 휘욱이 모든 아이들을 인애처럼 대했던 것은 아니다. 다른 아이들은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그저 귀찮고, 시끄러운 존재들이었다.
부모님 친우의 딸이어서 그런 건지, 인애는 남달랐다. 서럽게 울다가도 휘욱을 보면 울음을 뚝 그치고 방긋방긋 잘도 웃었다.
‘이모도 휘욱이가 이모 집에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 인애가 휘욱이만 보면 울음을 뚝 그치네.’
‘그럼 우리 엄마, 아빠가 서운해할걸요. 이모, 그냥 인애를 우리 집에 보내 주세요. 제가 잘 돌볼게요.’
‘휘욱아, 나중에 커서도 우리 인애 잘 돌봐 줘야 해. 알았지?’
꼭 그러겠다고 인애 어머니와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었다.
인애가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휘욱은 전교 회장으로 단상에 올랐다. 후배들의 입학을 축하한다는 축사를 읽는데, 아이들 속에 섞여 있는 인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휘욱의 시선이 인애에게 잠시 머물렀다.
‘오빠!’
인애가 입 모양으로 반갑게 인사하며 손을 흔들었다. 하마터면 읽고 있던 축사를 내려놓고 손을 흔들 뻔했다. 휘욱은 얼른 정신을 차리고 축사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오빠라고 반갑게 말하던 아이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인애에게 ‘오빠’라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 휘욱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는지, 저 아이는 알까?
아빠라는 말과 혼동해서 휘욱을 아빠라고 부를 때마다, ‘아’를 ‘오’로 정정해 주느라 애를 먹었다. 그랬던 핏덩이가 어느새 자라서 초등학교에 입학한다고 하니 감개가 무량했다.
누가 보면 휘욱이 업어 키운 줄 알겠다. 맞다, 업어 키웠다. 아주 가끔 인애를 등에 업고 재워 본 적도 있었다. 인애는 다른 사람 손을 타는 것은 싫어해도 휘욱에게는 곧잘 안겼으니까. 등에 착 감기는 따뜻한 감촉은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이듬해 휘욱은 중학교에 들어갔고, 인애와 만나는 일도 뜸해졌다. 사춘기가 올까 말까 한 시기여서, 세상 모든 게 유치해 보이기 시작했다. 어린애와 노는 게 시시해졌고, 인애와 만나게 돼도 예전처럼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그게 속상한 듯 인애는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휘욱아, 인애랑 좀 놀아 줘.’
휘욱만 바라보고 있는 인애를 안타깝게 여긴 어머니가 한마디 하면, 겨우 말을 붙이곤 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남부러울 것 없이 자란 환경, 모두가 휘욱을 총명하다고 칭찬했고, 사춘기의 반항심과 함께 비뚤어진 자만심도 슬슬 고개를 들었다.
그러던 여름, 휘욱의 세상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일이 벌어졌다. 전부를 잃었고, 휘욱을 칭찬하던 이들은 뒤에서 수군거렸으며, 사춘기 소년은 갑자기 어른이 되어야 했다.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울음조차 나오질 않았다. 누군가 꿈을 꾸고 있는 거라며 휘욱을 깨워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만 간절했다.
부모님의 유해를 화장해서 봉안당에 모실 때까지 휘욱은 정신이 멍했다. 어디선가 어머니가 다정한 목소리로 휘욱을 부를 것 같았고, 아버지가 휘욱을 혼내시며 정신 차리라고 말씀하실 듯했다.
휘욱은 봉안당 건물 뒤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닥을 열심히 기어가는 개미 떼를 보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 뭐 하나, 내가 발로 짓이겨 버리면 죽고 말 텐데.
신이 휘욱의 가족을 짓밟아 놓은 것처럼 느껴졌다.
개미 한 마리 악의로 죽여 본 적 없는 자신에게 왜 이런 가혹한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울고 싶은데 눈물이 나오지 않아서 더 괴로웠다.
‘오빠.’
가만히 땅을 내려다보고 있던 휘욱을 부른 것은 이제 아홉 살이 된 인애였다. 까만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인애의 얼굴에는 안도감이 어려 있었다.
‘다행이다. 오빠 찾아서.’
선한 미소를 머금으며 다가온 인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휘욱의 옆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어디선가 매미 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오빠, 밥 안 먹었지?’
장례가 진행되는 3일 내내 끼니를 거른 것도 잊고 있었다. 그 누구도 휘욱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깨어 있는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이거라도 먹어. 아무것도 안 먹다가 갑자기 밥 먹으면 배 아파.’
인애는 판 초콜릿을 까서 휘욱의 입에 넣어 주었다. 마른 입 안에 달콤한 기운이 가득 퍼져 나갔다.
그리고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