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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먼저 35화 (35/68)

결혼 먼저 35화

휘욱이 흐릿해진 시선으로 가늠하듯 인애를 바라보았다. 마치 먼 과거부터 더듬어 오는 것처럼 그의 눈빛이 아득했다. 아직 잠이 덜 깨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두 사람의 짧고 치열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인지 모르겠다.

인애는 영원처럼 아득하게 느껴지는 그의 눈빛을 바라보는 게 괜히 어색해서 먼저 시선을 돌렸다. 그가 전해 주는 압도감은 언제나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었다.

이번만큼은.

그가 마음을 열고 다가오기 시작한 지금만큼은 그렇게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앞으로 그와 함께할 시간을 주체적으로 꾸려 나가고 싶었다.

그와의 시작은 명백히 불편했다. 옹졸한 생각이 들거나, 마음이 조여서 괴로울 때, 이 결혼을 선택하고 받아들인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앞으로는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더욱 신중해지고 싶어졌다. 모든 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마음속 심연의 가장자리에서는 두려움을 숨기느라 급급한지도 모르겠다.

그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마음을 연 것처럼 행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아예 없다면 그것 또한 거짓이다.

하지만 지금, 연소 과정을 제대로 규명할 수도 없는 연기에 현혹되어 그를 멀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고, 겁먹어서 밀어내지 않고.

서로를 온전히 바라보며 다가가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모든 것이 순리대로 흘러갔으면 좋겠다.

꼬르륵.

그와의 관계를 심각하게 정리하며 다소 관념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데, 생리적 현상이 인애를 순식간에 현실로 끌어당겼다.

“배고파?”

배 속에서 나는 소리를 그도 들었나 보다. 그가 상체를 일으키며, 잠기운이 묻어나는 탁한 목소리로 물었다. 콘트라베이스의 중간 줄에서 날 법한 음색에 끓는 소리가 더해진 그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관능적이었다.

당장에 그의 입술을 집어삼키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차근차근 다가가자고 마음먹었지만, 치솟는 본능은 무섭도록 분명했다.

키스는 괜찮지 않을까? 잠에선 깬 남편과 키스 정도 나누는 것쯤이야 자연스러운 것 아닌가?

별로 심각하지도 않은 고민을 심각하게 이어 가고 있는데, 그의 커다란 손이 다가와 인애의 목덜미를 잡아끌었다. 입술이 닿기 직전 심장이 터질 것처럼 크게 뛰었다.

그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는 인애의 작은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가 놓아 주었다. 급하게 하고 싶지 않다는 인애의 말을 지키려는 듯 그의 키스는 따뜻하고 담백했다. 하지만 정작 그렇게 말한 인애는 안달이 나서 입술 끝이 저릿할 정도였다.

키스까지는 했잖아?

인애는 멀어져 가는 그의 입술을 따라가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젤리 위에 묻은 설탕을 핥듯이 그의 마른 입술을 축이고, 말랑말랑한 젤리를 입술로 짓이기듯 했다. 저돌적으로 다가갔지만, 움직임이 서툴러 성에 차지 않았다.

잠들기 전, 그가 인애를 품에 안고 퍼부었던 키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미숙했다. 이 정도의 키스로는 갈증이 해소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섬세하게 악기를 조율하는 것처럼 입을 맞췄다. 음이 벗어나지 않도록, 줄이 끊어지지 않도록.

사람을 고문하는 악취미는 없었지만, 그가 자신으로 인해 달아올라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또 보고 싶었다.

급하게 하지 말자는 말을 했을 때, 옆에 누워서 거친 숨을 고르며 열기를 식히려 애쓰던 그의 모습은 평생을 봐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질리기는커녕 그를 자극하고 농락해서 죽을 때까지 즐겨 보고 싶었다.

인애는 그의 어깨 위에 올린 손을 미끄러뜨려 그의 넓은 가슴팍을 어루만졌다. 얇은 니트 아래의 단단한 가슴 근육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부진 질감 아래에서 터질 듯이 쿵쿵거리는 그의 심장도 손에 잡힐 듯했다.

그가 가뿐하게 인애를 안아 들어 단단한 허벅지 위에 앉혔다. 단지 허벅다리 위에 앉았을 뿐인데, 마치 모든 것을 뒤섞고 있는 듯 열기가 솟구쳤다.

가슴 위에 닿아 있던 손은 자연스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하체는 그의 품 안에 있었지만, 상체는 그를 온전히 품고 있는 자세였다. 미묘한 결합에 가슴이 뛰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춘다 해도, 영원토록 키스만 나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안온한 동시에 황홀했다.

그는 인애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등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그의 손길이 지나가는 곳마다 살갗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손길이 닿으면 만족스러웠고, 손길이 멀어지면 죽을 것만 같았다. 그가 다른 여자의 몸을 만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의 손길이 지나간 살갗에서는 참혹한 고통이 느껴질 정도였다.

온몸을 그에게 내맡기고 싶었다. 구석구석 샅샅이 그와 함께하고 싶어졌다. 말랑말랑한 여체를 그의 단단한 몸에 찰싹 붙였다.

“으음.”

그의 목울대에서 신음성이 흘렀다. 억눌린 관능이 새어 나오는 소리는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등허리를 어루만지던 손이 가녀린 어깨를 움켜잡듯 했다.

딱 달라붙어 있던 입술이 가까스로 떨어졌다.

“하아.”

저지할 틈도 없이 더운 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인애가 가쁜 숨을 고르는 모습을 일렁이는 눈동자로 바라보았다. 진갈색과 진회색이 묘하게 뒤섞인 그의 눈동자에는 열기와 금욕이 공존했다.

욕망을 억누르는 그의 시선은 흡족할 만큼 아름다웠다. 이 눈빛을 매일, 매 순간, 영원토록 보고 싶었다. 본능을 억누르며 인애와의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그의 모습은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사랑스러웠다.

“배고프냐고 묻더니, 이게 뭐야.”

열기에 그을린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톤 높게 흘러나왔다. 인애는 그를 놀리듯 장난을 걸었다. 그는 커다란 손으로 달아오른 인애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성욕, 수면욕, 식욕, 셋 중 무엇이 가장 강력할까?

아까 그는 수면욕을 택했고, 이번에는 인애가 식욕을 들고 나섰다. 생명과는 직결되지 않지만 셋 중 가장 큰 쾌락을 안겨 줄 수 있는 본능적 욕구를 뒤로하느라, 두 사람은 오래도록 더운 숨을 골라야만 했다.

“그래, 나가서 뭐 좀 먹자.”

인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허벅다리 위에서 내려왔다. 그가 곤란한 얼굴로 머뭇거렸다.

“왜 안 일어나?”

먼저 바닥을 딛고 선 인애가 여전히 침대 헤드 보드에 기대앉아 있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먼저 나가 있을래?”

그는 두 사람이 나누었던 열기를 홀로 앓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어.”

그의 바지 섶을 흘끗 본 인애는 얼른 침실을 나섰다. 그와 직접적인 정사를 벌인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사모님, 일어나셨어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귀신처럼 다가와 말을 거는 아주머니의 스산하고도 음흉한 목소리에 인애는 하마터면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아주머니는 미심쩍은 눈빛으로 흠칫 놀란 인애를 뜯어보듯 했다.

“아직 안 주무셨어요?”

“이제 저녁 7시밖에 안 됐는걸요. 저녁 식사 하시겠어요?”

지금 아주머니가 차려 준 저녁밥을 먹는다면 체할 것만 같았다. 또 그가 마음을 연 이후에 처음으로 함께하는 저녁 식사였다. 그런데 아주머니는 식사 시중을 든다면서 옆에서 감시할 게 뻔했다.

그동안에는 식탁 앞에 무미건조한 얼굴로 마주 앉아서 쇼윈도 부부 연기를 완벽하게 해냈기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아주머니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고, 아주머니에게 보여야 할 것들만 존재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보여 주고 싶지 않은 것투성이였다. 만들어진 쇼윈도 부부가 아닌,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나누는 안온한 부부의 모습은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감정에는 틈이 존재한다. 아주머니에게 그 틈을 보여 주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휘욱 씨가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하네요. 치킨 튀길 줄 아세요?”

인애의 물음에 아주머니는 짐짓 당황한 얼굴을 했다.

“튀길 줄 알죠. 마침 닭볶음탕 하려고 사다 놓은 닭도 있고요. 튀기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텐데, 기다려 주시겠어요?”

“양념은요?”

인애는 천진한 얼굴로 무구한 물음을 던졌다.

“네?”

“저는 양념치킨이 더 좋거든요. 아, 치킨 무 없으면 느끼해서 못 먹는데……. 그리고 닭볶음탕용 닭은 몇 마리예요?”

“한 마리 반이요.”

“저 사람 혼자 다 먹을 양이네요.”

사실 그가 치킨을 먹는지, 안 먹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는 집에서 대체로 건강식을 즐겼고, 패스트푸드, 인스턴트 음식 등 정크 푸드를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생각해 보니 인애는 그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었다.

아는 게 없어도 이렇게 좋아질 수 있나.

새삼 신기해하며 인애는 아주머니를 따돌리기 위해 애썼다.

“그냥 배달 주문 하죠, 뭐. 쉬세요. 알아서 먹을게요.”

예상치 못한 전개에 아주머니는 당황한 듯 보였다.

“아, 그리고 부탁드릴 게 있는데요.”

“네, 말씀하세요. 사모님.”

“제가 지금 생리 전 증후군이 심해서 좀 예민하거든요. 혹시 PMS 약 좀 사다 주시겠어요?”

“지금이요?”

“네, 지금이요. 저녁 먹고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제가 지금 두통이 심해서 나갈 수가 없네요.”

아주머니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요일 저녁 7시에 PMS 증후군 약을 사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머니가 나가고, 주문한 치킨이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침실 밖으로 나왔다.

“무슨 냄새야? 아주머니는?”

“치킨 시켰어. 맥주도 시키고. 아주머니는 잠깐 나가셨어.”

그가 한쪽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매혹적으로 웃었다. 그의 눈빛은 ‘제법인데?’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럼 이 집에 우리 둘뿐이야?”

그가 성큼 다가오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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