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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72화 (72/116)

72화. 귀여운 협박

눈을 뜨자마자 라이언은 리아를 향해 또다시 굶주린듯한 욕망에 시달렸다. 깨어나자마자 그가 제일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의 옆에서 꼭 붙어 자는 아내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다행히도 리아는 아주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작고 투명한 얼굴 주위로 금빛이 살짝 도는 붉은 머리카락이 마구 펼쳐져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불꽃처럼 보여서 라이언은 홀린 듯 한참 동안 잠들어 있는 리아를 내려다보았다.

많이 피곤했는지 리아는 좀처럼 깨어날 줄을 몰랐다.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그녀가 지금 깊은 잠이 들었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라이언은 심장이 간질간질했다. 이상했다. 눈을 떴으면 당장 침대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그러기가 싫었다. 그녀의 온기를 좀 더 느끼고 싶었다.

할 일이 무척이나 많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대로 온종일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일 따윈 다 잊고 걱정 따윈 모두 날려 버리고 그저 그녀의 잠든 얼굴을 하릴없이 지켜보고만 싶었다.

사랑에 빠지다니. 검은 사자가 사랑을 하다니.

갑자기 라이언이 리아의 머리끝을 돌돌 감아올리던 자신의 손동작을 멈췄다. 숨이 막혔다.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녀는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거야.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마구 밀려 올라오는 두려움을 애써 꾹꾹 눌러 담았다. 리아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무서워졌다. 소중한 것은 늘 아픔을 몰고 온다.

지킬 것이다. 늘 자신의 옆에서 그녀가 웃을 수 있도록 그 무엇도 그녀에게 위해를 가할 수 없도록. 그가 직접 그녀를 지킬 것이었다.

“잘 잤어요?”

그때 리아가 잠에서 깨어났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다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무 일도 없이 그녀가 그의 옆에 있었다. 분명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언제나 그의 옆에서 잠들고 깨어날 것이다.

“잠꼬대가 심하더군.”

“아침부터 거짓말.”

리아가 라이언의 가슴을 파고들며 그의 심장에 귀를 가져다 댔다.

“뭐 하는 거지?”

“당신 심장 뛰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요.”

라이언은 자신의 가슴 위에 귀를 대고서 눈을 감은 리아의 얼굴을 살며시 쓰다듬었다.

“내 심장 소리가 어때?”

“잘 살아 있네요. 아주 건강해요.”

“그것참 반가운 소리군.”

리아가 가슴에 대고 간지럽게 얼굴을 비벼댔다.

“일어나기 싫다.”

“그럼 일어나지 마.”

“안 돼요.”

“왜?”

리아가 고개를 들어 올려 라이언과 눈을 맞췄다.

“할 일이 너무 많잖아요.”

“난 모르겠는데.”

“진짜요?”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하며. 리아가 그런 그의 가슴을 살짝 꼬집었다.

“자꾸 그러면 당신 물건 안 찾아 줄 거에요.”

라이언은 리아의 공격이 전혀 아프지 않고 간지러울 뿐이었다.

“그만 일어나요. 하인들이 흉보겠어요.”

“흉보려면 보라지.”

라이언이 리아의 등 뒤로 손을 둘러 그녀를 끌어당겼다. 다시 리아의 얼굴이 그의 가슴이 폭 하고 파묻혔다. 그 뒤로 한참 뒤에나 그들은 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

늦은 아침을 먹은 리아는 곧장 매튜를 불렀다. 그와 여러 가지 상의할 일이 있었다. 당장이라도 르셀을 향해 출발하고 싶었지만, 그녀에게는 그 전에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비누 만드는 일을 전담해서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아도 저 역시 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볼 때 공작 부부가 이른 시일 내에 베드포드 성으로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 비누를 계속 미뤄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지민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성에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예상했습니다.”

“마땅한 사람이 있나요?”

마땅한 사람이라. 매튜는 고민에 잠겼다.

“생각해 두신 분이 없다면 추천을 해도 될까요?”

“그럼요. 그래 주신다면 감사한 일입니다.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어서 고민 중이었습니다.”

“여기 이 향 좀 맡아 보세요.”

리아가 매튜를 향해 코르크 마개가 꽂혀 있는 작은 병을 하나 내밀었다.

“이게 말씀하신 장미 오일이군요? 어쩐지 아까부터 방안에 은은한 장미 향이 난다고 했습니다.”

매튜는 리아가 내민 병을 조심스럽게 받아 코르크 마개를 뽑더니 코를 가져다 댔다. 달콤하면서도 향긋한 장미 향이 그의 후각을 자극했다.

“어떤가요?”

“굉장하군요. 향낭 주머니와는 차원이 다른 향기입니다.”

진하게 농축된 향기는 약간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 정도로 강렬했다.

“오일을 만들어 첨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럼 부인께서 추천하고자 하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매튜의 말에 리아가 웃으며 호출 벨을 누르자 금방 집사 넬슨이 문을 두드렸다.

“찾으셨습니까. 뭐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십니까?”

“메리를 불러 주세요.”

“네?”

“제 시녀 메리 말이에요.”

“시녀 메리요? 알겠습니다.”

리아의 말을 알아들은 넬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나갔다.

“그녀는 왜?”

“지금 매튜가 들고 있는 장미 오일을 만든 장본인이 바로 메리예요.”

“네?”

오일만 있다면 장미 비누를 만드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리아는 그동안 이미 몇 번이나 장미 오일을 만들었고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며 도와준 사람은 바로 메리였다.

리아는 메리에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과정을 자세히 알려 주고 연습시켰다. 그 결과 이제 그녀가 없이도 메리는 오일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 반가운 소식은 메리의 어머니가 비누를 만들 줄 안다는 사실이었다.

“제가 추천할 사람이 바로 메리랍니다.”

리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메리가 문을 두드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어요. 마님?”

“메리, 이리와. 여기 앉아봐.”

리아가 손을 흔들며 자신이 앉아 있는 소파 옆자리를 툭툭 쳤다. 메리가 안으로 들어오다가 매튜를 보고는 흠칫 놀라며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채, 챈들러 님 안녕하세요.”

매튜가 있다는 것을 모르고 들어왔기에 당황한 메리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녀는 리아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도대체 절 왜 부르신 거예요?’ 메리의 얼굴만 보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어서 앉아. 할 말이 있어.”

메리는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았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응접실에 들어와 보았지만, 소파에 앉는 것은 처음이었다. 폭신하고 편안한 소파가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메리는 고개조차 제대로 들지 못한 채로 두 손을 맞잡고 손톱을 잡아 뜯었다.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걸까? 아닌데. 잘못한 게 전혀 없는데…. 그녀의 심장이 마구 뜀박질을 했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매튜의 시선이 자신을 향한 것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메리, 너에게 부탁할 것이 있어.”

리아의 말에 메리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부탁이요? 마님께서 제게 부탁을 하신다고요?”

“그래. 부탁이 있어.”

“부탁이라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언제든 명령만 내려주세요. 뭐든지 다 들어드릴게요.”

“뭐든지 다?”

“그럼요. 당연하죠.”

메리의 표정에서 진심을 읽은 리아가 매튜를 보며 또 싱긋 웃었다.

“뭐든 다 들어준다는데요. 어때요?”

“그래 준다면 저야 고맙습니다. 저, 그러니까….”

메리라고 이름을 부르기 어색한 매튜가 뭐라고 호칭을 써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리자 리아가 메리의 이름을 성까지 붙여 말해 주었다.

“메리 브라운이에요.”

“네. 브라운 양께서 도와주신다면 제게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직 모르는 메리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갸우뚱할 뿐이었다.

“메리, 네가 우리 비서님을 도와줄 수 있겠니?”

“제가요? 감히 제가 뭘 어떻게….”

“브라운 양. 장미 오일 만드는 법을 알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와 함께 비누 작업을 함께 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정중한 매튜의 부탁에 메리는 어찌할 줄 몰라 하며 리아를 쳐다봤다.

“네가 매튜를 도와주면 좋겠어.”

메리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좋은 기회였다. 시녀일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렘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금 베드포드 성에서 영지민들을 위해 장미 비누사업을 시작하려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그녀였다.

그렇지만 그 일을 돕기로 한다면 공작부인을 옆에서 모실 사람이 없었다.

“그렇지만… 마님 제가 자리를 비우게 되면….”

“난 괜찮아. 물론 메리만큼 맘이 맞는 사람을 찾기는 어렵겠지만, 시중을 들어줄 시녀는 찾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지만 장미 오일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메리와 나 단 둘뿐이지.”

이러려고 그토록 열심히 방법을 설명해 주신 걸까? 메리는 이든로즈홀에서 보낸 지난 시간이 떠올랐다. 몸을 회복하기 위해 외출도 삼가는 시간 동안 리아는 몇 번이나 오일 만들기를 반복했다. 그 결과 이제 메리는 혼자서도 충분히 장미 오일을 만들어 낼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메리의 어머니께서 비누를 만들 줄 안다고 하셨지? 매튜와 함께 베드포드 성으로 돌아가서 작업을 시작해 줘. 메리 가족에게 그 일을 맡기고 싶어.”

이 세계에 떨어져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메리였다. 리아는 메리에게 은혜를 갚고 싶었다. 그녀가 가족들을 이야기했을 때 마음먹었던 일이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 빨래하는 어머니, 마구간에서 일하는 동생까지….

“대신 메리 막냇동생을 여기로 보내 주겠어? 그 아이는 기사가 되는 게 꿈이라고 했지? 내 밑에 두고 심부름을 시키며 데리고 있고 싶어. 공작님의 종자로 삼아도 좋고.”

지나가는 말로 잠깐 동생에 관해 이야기했던 것까지 기억하고 챙겨 주는 리아에게 감격한 메리의 눈가에 어느새 눈물이 맺혔다.

“물론 메리 가족이 그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자세한 것은 여기 매튜와 상의를 하면 될 거야.”

“돌아올게요.”

“응?”

“마님께서 허락하신다면 제 어머니와 언니께 오일 만드는 법을 알려 드리고 저는 최대한 빨리 마님 곁으로 돌아올게요.”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에요. 제가 없으면 누가 마님을 보살펴 드리겠어요. 저는 끝까지 마님 곁에 있을 거예요.”

느껴지는 진심에 리아는 메리의 손을 움켜잡았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그녀를 도와준 사람은 누가 뭐래도 메리였다. 메리가 있기에 리아는 버틸 수 있었다.

눈물이 핑 돌았다. 기껏 시녀 일에서 벗어나게 해 주겠다고 했는데 그걸 마다하고 돌아오겠다니. 리아로서도 메리를 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지금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고 그 기회를 잡게 해 주고 싶었다.

“메리 난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더 반가울 거야. 물론 네가 싫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다 알고 있지?”

메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다 알아요. 마님께서 절 얼마나 생각해 주시는지요.”

둘이 손을 잡고 한참 동안을 눈물을 글썽이며 마주 보고 있자 보다 못한 매튜가 끼어들었다.

“흠흠. 그럼 브라운 양. 우선 가족께 서신을 먼저 보내고 우린 이른 시일 내에 성으로 출발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챈들러 님. 메리요. 그냥 메리라고 편하게 불러 주세요.”

브라운 양이라는 호칭이 너무 어색했던 메리는 매튜를 향해 수줍게 말하며 일어섰다.

“마님 그럼 전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요. 제가 잠시 마님 곁을 비운다고 생각하니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에요.”

갑자기 의지가 불타오르는지 메리가 주먹을 불끈 쥐더니 매튜와 리아에게 인사를 하고는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우리 메리가 좀 귀엽죠?”

메리가 정신없이 재빠르게 빠져나간 문 쪽을 홀린 듯 쳐다보고 있는 매튜를 향해 리아가 말했다.

“잘 부탁해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대로 시작을 하려면 제대로 맡아서 관리해 줄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아서….”

“네. 무슨 말씀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요?”

“네?”

다른 이야기라니? 매튜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직 공작님께 전해 듣지 못했겠지만 우리는 왕궁에 가기로 했어요.”

“네에? 갑자기 왜?”

매튜는 리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라이언에게 그녀의 비밀을 조사해 준 사람이 그였으니 말이다.

그는 리아가 버림받은 공주이며 환영받지 못하는 공주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왕궁에 가겠다니.

“제가 결혼 후 처음으로 친정방문을 하기로 했답니다.”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매튜는 말을 잇지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되도록 빨리 출발했으면 좋겠는데. 언제가 좋을까요?”

“우선은 제가 베드포드 성에 다녀와야 해서….”

“오, 걱정하지 말아요. 매튜는 함께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쪽 일이 더 중요하죠.”

“먼저 공작님과 상의를 해 보겠습니다.”

리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충분히 예상한 반응이었다. 그녀가 왕궁을 가겠다는 말에 반가워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니….

“그럼요. 그래야죠. 마침 저기 공작님이 오시니 지금 상의를 해 보면 되겠네요.”

그녀가 문 쪽으로 손을 흔들며 그게 라이언을 불렀다.

“여보!”

라이언은 메리가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 확인하고 들어오던 참이었다. 오늘 아침 리아는 그에게 먼저 메리에 대한 계획을 말해 주었고 그는 좋은 계획이라며 찬성을 했다.

“이야기는 다 나눴나?”

“네. 뭐 거의요.”

라이언이 자연스럽게 리아의 옆자리에 앉으며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 장면을 본 매튜가 공작 부부의 애정표현에 아직 적응하지 못한 채 얼굴을 붉힌 것은 물론이었다.

“아직 안 끝났나? 금방 메리가 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다른 게 남았어요. 매튜가 당신과 상의를 해야 한다고 해서요.”

라이언은 머리카락을 넘겨준 뒤 리아의 손을 잡아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섬세한 손가락을 어루만지며 그제야 건너편에 앉아 있는 매튜를 쳐다봤다.

“상의할 것이 무엇이지?”

“공작부인께서 왕궁 방문을 원하십니다.”

그는 다시 리아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난밤 그에게 했던 말을 이토록 빨리 진짜로 실행하려고 한단 말이야? 진짜 왕궁에 가겠다고?

“진짜 갈 건가?”

“그럼요. 내가 허튼소리 하는 줄 아셨어요? 되도록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우선….”

라이언이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며 매튜를 쳐다봤다. 왕을 만나러 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방문의 목적이었다. 약속한 검을 대신 받아 주겠다고 왕을 찾아간다는 아내.

그는 왕의 반응이 걱정이었다. 과연 왕이 어떤 식으로 리아를 대할 것인가! 조금도 예측할 수가 없었다.

“제가 우선 왕께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서신?”

“아무 때나 찾아가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맘때쯤에는 왕께서도 여름 궁에서 휴가를 보내고 계실 것입니다. 무작정 샤르트 궁을 찾아가신다고 하셔도 만나지 못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좋아요. 되도록 빨리 만나고 싶다고 서신을 보내 주세요.”

리아의 말에 라이언과 매튜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 장면을 놓치지 않고 포착한 리아는 라이언에게 잡혀있는 손을 잡아뺐다.

무슨 일이오? 하는 표정으로 허전해진 손과 리아를 번갈아 쳐다보는 라이언을 향해 그녀가 경고하듯이 말했다.

“일부러 시간을 끄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요. 전 오늘부터 르셀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저에게 온 모든 초대를 받아들일 생각이에요.”

“뭐라고?”

“말 그대로 초대받은 파티에 빠짐없이 참석하겠다고요. 사실 전 혼자 다녀도 괜찮은데 당신이 절대 안 된다면서요. 어쩔 수 없이 늘 당신과 함께해야겠네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그 많은 초대를 다 응한다는 말인가?”

라이언이 황당해하며 리아를 향해 항변했다. 이미 매튜의 입은 쩍 벌어진 후였다. 아주 고단수의 협박이었다. 그렇지만 리아의 협박보다 그를 더 놀라게 한 것은 그 협박에 반응하는 라이언의 모습이었다.

라이언은 매우 당황해 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당장 파티에 끌려가는 것처럼.

“그러니까 하루라도 빨리 출발을 하는 편이 당신께도 좋을 거예요. 온갖 파티에 전부 참석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에요.”

리아가 라이언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톡톡 치며 마지막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응접실을 빠져나가는 그녀를 향해 한마디 말도 더 할 수가 없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이 한 말을 지킬 것이다. 어쩌면 오늘 밤부터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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