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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56화 (56/116)

56화. 그녀가 있어야 할 곳

“당신을 위해 면도를 했어.”

이번엔 그의 턱이 그녀의 젖은 어깨에 닿았다. 그의 말처럼 그곳은 매끈했다. 분명 그는 면도했는데도 이상하게 리아는 그와 살이 마주 닿은 부분이 따끔거렸다. 그것도 매우.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등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의 손길이 부드럽게 미끄러질 때마다 리아는 묘한 기분에 몸을 움츠렸다. 그때 갑자기 그의 손이 등에서 떨어져 나갔다.

첨벙-

그와 동시에 욕조의 물이 넘치며 그녀의 작은 몸이 그의 다리 위로 올라앉았다.

“어멋!”

놀란 그녀가 소리치자 그는 그녀를 더 당겨 앉으며 귓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쉿! 밖에 존과 메리가 아직 있어.”

존과 메리는 침대의 시트를 가는 중이었다. 리아는 입을 다물었다. 라이언이 메리를 쫓아내고 욕실에 들어왔다는 자체만으로도 벌써 그들은 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신경 쓰지 마. 부부가 함께 목욕하는 게 잘못인가?”

잘못은 아니지…. 다만 부끄러울 뿐이라고! 그때 존이 욕실 문을 향해 물러가 보겠다는 인사를 했다. 그 뒤 바로 철컥하며 작게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이어졌다.

리아는 참았던 숨을 후하고 내쉬고 난 뒤, 고개를 돌려 라이언의 얄미운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이게 뭐 하는 거예요!”

그는 화를 내며 벌어진 그녀의 입술을 놓치지 않았다. 곧바로 그의 입술이 그녀에게로 포개지며 뜨겁고 달콤한 숨을 불어 넣었다.

리아의 가슴 부근에서 물이 찰랑댔다. 더 깊숙하게 물속으로 몸을 집어넣고 싶었지만, 라이언의 다리 위에 올라 앉아 있기에 그건 불가능했다. 그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그녀를 끌어 않으며 온 입안을 휘저었다. 그가 불어넣는 뜨거운 숨은 그녀를 들뜨고 벅차고 황홀하게 만들고 있었다.

정신이 아득했다. 며칠간 일어난 일들이 모두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첫날밤의 기억이 물밀 듯 밀려들며 온몸이 달아올랐다. 어색하게 흔들렸던 그녀의 손이 자연스럽게 그의 가슴 위로 올라갔다. 물속에서 달라붙은 두 남녀의 몸은 매끄럽게 어우러지며 서로에게 미끄러졌다.

라이언은 집요했다. 깨어 있는 그녀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구석구석까지 훑으며 맛보았다. 보드라운 안쪽 살을 쓸며 그의 혀가 그녀의 혀로 엉켜 들었다.

이미 물 밖에서부터 그는 흥분해 있었다. 메리를 내보내고 욕실에 들어올 때부터… 리아의 가녀린 목과 어깨선을 보았을 때부터… 아직 환자인 그녀를 어떻게 해 보려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냥 잠깐 안아 보기만 하는 거야… 그냥 키스만 하는 거야….

그러나 그녀와 입을 맞춘 순간. 백지가 되었다. 그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해 버렸다. 그저 그녀를 갖고 싶다는 생각밖에 남아 있는 것은 없었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숨결이 달콤하게 엉켜 들자 라이언의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물 안에서 마주한 리아는 더 작고 더 가벼웠다. 그녀는 너무 연약해…….

“하아…하아….”

라이언이 입을 떼어내자 리아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당신은 너무 작고 약해.”

키스가 더 길어지면 도저히 참지 못할 것 같았기에… 그는 힘겹게 그녀를 떼어 놓았다. 당장이래도 그녀 안에 들어가고 싶었다. 딱딱하게 굳은 턱은 그가 얼마나 본능과 싸우고 있는지를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에는 리아가 그의 입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난 하나도 약하지 않아요.”

입을 마주 댄 채로 속삭이자 그녀의 달콤한 숨이 그의 입술을 간지럽게 했다. 이젠 손이 아닌 그녀의 맨 가슴이 그의 가슴에 마주 닿았다. 그 느낌이 너무 아찔해 라이언은 온몸이 따가웠다.

“내가 죽을까 봐 두려웠어요?”

이번에는 질문이었다. 물기를 머금은 입술을 마주 댄 채로 그녀는 그를 애타게 하고 있었다. 달콤한 숨을 한입에 삼켜버리고 싶은 것을 참아내며 그 역시 그 상태로 대답했다.

“첫날밤을 치르자마자 신부를 잃고 싶지는 않더군.”

리아는 웃음이 났다.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 귀여웠다. 이미 그는 온몸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는데… 전부 느껴지는데…. 아닌 척하는 걸 보니 그에게도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기뻤다. 냉정하고 차갑기만 할 줄 알았던 그가 알고 보니 다정한 남자였다니….

그녀가 깨어나고부터 보여준 그의 행동은 세상 그 누구보다 다정했다. 침대에서 일어나지 말라고 투덜대는 것도, 고기 대신 수프를 먹으라고 하며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지 않는 것도… 전부 그녀를 위해서였다.

눈빛 하나, 손짓 하나에도 애정이 느껴졌다. 리아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지금 이곳, 그의 옆이 원래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고 믿고 싶었다. 신들이 돌려놓은 이 자리가 처음부터 리아 자신의 것이었다고.

그의 곁으로 오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이었다고.

“당신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녀가 먼저 솔직해지기로 했다.

“마지막 순간에… 당신이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돌아왔어요. 당신의 옆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어서….

리아의 작은 혀가 그의 입술을 간질였다. 서투른 그녀의 키스는 그를 몇 배는 더 흥분시켰다. 라이언은 곧바로 자신의 입을 열어주었다.

또다시 길고 달콤한 키스가 그들을 뒤덮었다. 물이 식어가는 것도 모르고 그는 그녀를 맛보는데 정신이 없었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몸이 그의 몸에 착 감겨들며 천국보다 달콤한 숨결은 끊임없이 빨아들여도 부족했다.

더 이상은 못 참아…. 참을 수가 없어…. 어깨 언저리에 머물던 그의 손은 점점 그녀의 척추를 타고 내려왔다. 미지근한 물은 그들의 접촉을 더 부드럽고 미끈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입안에서 감겨드는 촉촉함과 손 아래 느껴지는 매끄러운 몸이 그를 한계에 밀어붙였다. 당장 그녀 안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그는 손을 움직였다. 그의 손길이 곱슬한 수풀 너머 살 끝에 닿자 그녀가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쉬….”

라이언이 리아를 달래며 그녀의 아랫입술을 머금었다.

“아프게 하지 않을게.”

최대한 그녀가 힘들지 않게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의 의지도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그녀의 말을 믿고 싶었다. 아니 믿어버렸다. 그래야 그녀를 가져도 죄책감이 덜 할 테니.

“하아….”

두 번째 관계였다. 아직 낯선 침입에 익숙해지지 않은 그녀는 움찔대며 자신을 방어했다. 그 떨림에 라이언은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초야를 치른 그녀의 몸은 낯선 침입이 주는 즐거움을 금방 알아채 버렸다. 발끝을 타고 오르는 흥분에 그녀는 몸을 떨었다.

“하흣…하아….”

황홀함이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리아의 몸은 본능을 따라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가 더 깊숙이, 더 안으로 들어오기를 바라면서.

“라이언….”

“처음보단 덜하지만. 그래도 아플지 몰라.”

“상관없어요.”

그가 이마를 맞대며 속삭였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아플까 봐 그만두겠다고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흣…아흣….”

그녀의 입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신음이 마구 터져 나왔다. 본능의 소리였다.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는 비명이었다.

움직임이 거세질 때마다 욕조의 물이 찰랑대며 넘쳐흘렀다.

두 번째 관계는 더 격렬했다. 서로를 다시 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는 두려움이 얽혀들어 조금이라도 살아 있다는 것을 더 느끼려는 듯 집요하고 거칠었다.

연약한 그녀를 배려하겠다는 생각은 까맣게 잊히고 그는 그녀를 마구 몰아붙였다.

자꾸만 차가워지는 물의 온도를 느낀 라이언이 허리 짓을 더 빠르게 서둘렀다. 서로의 몸이 주는 열락에 빠져 자칫하다가는 그녀가 감기에 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가 마주 닿은 그녀의 몸을 그대로 눌러대자 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며 그의 어깨로 허물어졌다.

라이언은 리아의 떨림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절정의 순간은 이내 전율을 남기며 흩어졌다.

“물이 차가워.”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 안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채로 그녀를 안고 욕조에서 일어났다.

리아는 부끄러움에 라이언의 가슴에 고개를 묻었다. 라이언은 웃으며 그녀의 몸을 직접 닦아주었다. 비누칠하며 그녀의 몸을 문지르던 그가 말했다.

“빨리 장미 비누를 만들어야겠군. 애써 장미 향이 밴 당신의 몸을 이놈이 망쳐놓고 있어.”

“내일부터 정말 할 일이 많네요.”

그는 그녀를 죽이려고 한 범인을 잡아야 했고, 그녀는 이곳 엘리시아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그녀의 오빠라는 젊은 왕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아버지에 대해, 어머니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다. 물론 렌포드까지 와야만 했던 이유도 잊지 않았다.

“우선 당신은 좀 쉬어야 해. 의사가 당신은 아직….”

“어머, 말이랑 행동이 전혀 다르시네. 쉬어야 하는 환자를 상대로… 음흉하기도 하지.”

놀리는 리아의 말에 라이언이 딴청을 부리며 그녀의 몸에 묻은 거품을 닦아주었다.

“전 괜찮으니 더는 환자 취급하지 말아 주세요. 자꾸 그러면 정말 환자 노릇 하면서 당신 옆엔 가지도 않을 거예요.”

“앞으론 허락 없이 다치지 마.”

“내가 다치고 싶어서 다쳤나….”

리아가 입술을 삐죽댔다.

“갑작스러운 사고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내가 당신을 지켜주겠소. 그 누구도 당신의 손끝조차 건드리지 못하도록.”

진지해진 라이언의 말투에 리아는 조용해졌다. 그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이제 기댈 사람이 생겼다는 벅차오르는 감정에… 눈물이 차올랐다.

리아는 이 세계로 와서 처음으로… 바로 이곳이 그녀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돌아왔다는 것을.

그의 곁에서, 그와 함께. 원래 그녀가 누려야 할 모든 것들을 누릴 작정이었다. 더는 레오니에 대한 연민이나 미안함 따위로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레오니는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죽음이라는 구원을 받았다. 이제 자신이 행복해질 차례였다.

바로 이곳, 라이언의 옆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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