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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부인의 비밀-41화 (41/116)

41화. 라이언의 친구

“문제가 뭐지?”

매튜가 나가자마자 라이언이 리아를 향해 물었다.

“몰라서 물어요?”

“그러니까 지금 물어보고 있지 않소.”

“하, 참네.”

리아는 그의 표정에서 진정하게 느껴지는 궁금증에 어이가 없어 힘이 빠졌다. 그녀가 그의 앞자리에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당장 음유시인과 화가를 내보내세요.”

“왜? 그들이 맘에 들지 않나? 그림은 아직 못 봤지만, 음유시인은 제법 노래를 하던데.”

그 순간에도 밖에서는 음유시인의 노래가 아주 작게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물도 그만두세요.”

“선물을 싫어하나?”

“물론 좋아해요.”

“그런데 왜?”

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무지 대화가 통하지 않고 있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어디서 그런 이상한 방법을 배워왔을까? 선물이면 모든 게 다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당신 생각이라면 그 생각은 아주 몹쓸 생각이니까 싹 고치시고, 누가 알려 준 거라면 그 사람 몹쓸 사람이니까 멀리하세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군.”

“모르겠어요?”

그녀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지금부터 제 말 잘 들으세요.”

리아의 표정이 비장했다.

“선물은 좋아하지만, 이 정도로 과한 선물은 부담스러워요. 고맙지가 않고 날 놀리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리아가 라이언의 얼굴을 살피며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음유시인과 화가는 정말 최악이에요. 누구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저는 정말 싫어요. 차라리 당신을 찬양하게 하세요. 그럼 당신도 왜 싫은 건지 금방 내 마음을 느낄 수 있을 테니.”

“내가 방법을 잘못 찾은 건가?”

리아가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님. 제가 사랑을 달라고 했지 선물을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그게 뭐가 다르지? 난 당신에 대한 사랑을 선물로 표현한 것뿐인데.”

라이언의 대답에 리아가 눈을 질끈 감았다. 여전히 머리가 지끈대고 있었다. 리아는 손을 들어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어디가 아픈가? 의사를 불러올까?”

염려가 가득한 라이언의 목소리에 리아가 다시 눈을 번쩍 떴다.

“이거요! 제가 바라는 건 바로 이런 거예요.”

“그게 뭐지? 도대체 뭐가 뭔지를 모르겠군.”

라이언이 인상을 쓰며 영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리아는 그런 라이언을 보며 작게 한숨을 쉬고는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댔다.

“당신의 염려, 나를 향한 걱정, 그리고 배려.”

그녀가 라이언의 손을 들어 올려 마주 잡으며 계속 말했다.

“그걸 바라는 거예요. 그게 바로 사랑의 시작이에요.”

라이언은 그녀가 잡은 손에서 느껴지는 열기에 몸을 떨었다.

여자는 선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돈을 아끼지 않는 조건 없는 선물 공세면 자신이 그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충분하다고 여겼다.

지난 일주일간 그녀에게서는 고맙다는 말 외에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만, 그는 선물 보내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실 즐거웠다. 누군가를 위해 돈을 쓴다는 사실이, 그게 자신의 아내라는 사실도.

하루하루 무얼 보내면 그녀가 더 좋아할지 생각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그녀의 반응을 기대하는 것도.

염려? 걱정? 배려?

자신의 아내, 레오니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어려웠다. 빨리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고 믿게 만들어 초야를 치르고 아이도 낳아야 하는데…

불면증도 악몽도 없는, 그녀와 보내는 삶에 길들여지고 있는 것일까? 이제 더는 모엘르 검이 간절하지 않은 것일까?

“레오니.”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네. 공작님.”

그녀가 대답했다.

“그럼 당신이 알려줘.”

“네?”

“당신이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줘. 난 선물을 하는 것밖에는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사랑을 어떻게 가르칠 수가 있을까? 그의 말에 리아는 난감해졌다. 그렇지만 레오니라고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다정하고 감미로웠다.

마치 그 이름이 진짜 자신의 이름인 것처럼. 몇 번을 다시 들어도 질리지 않을 것처럼.

똑똑똑-

그때 울리는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이 화들짝 놀라며 잡은 손을 떼어냈다.

“무슨 일이지?”

라이언의 성난 목소리가 서재를 울렸다. 그의 응답에 집사 넬슨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주인님. 말씀을 나누시는 와중에 죄송합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네. 제임스 클라이 경이라고 하십니다.”

넬슨의 말에 라이언이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임스? 제임스 클라이?”

“그게 누구죠?

라이언의 격한 반응에 리아도 덩달아 궁금증이 생겼다. 도대체 제임스 클라이 경이 누구기에 남편에게 이런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일까?

“제임스 클라이 브렌트.”

“브렌트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리아가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며 미간을 찡그렸다.

“브렌트 남작. 그는 내 친구이자 레이디 페넬로페의 오빠라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누군가를 이토록 반가워할 수 있다는 것도. 저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제임스 클라이가 도착했다는 말에 라이언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서재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떤 사람일까? 어떤 친구일까?

리아는 제임스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느 정도의 관계이기에 천하의 베드포드 공작을 뛰게 만들 수 있는지. 그녀는 그를 따라나섰다.

***

“제임스!”

그는 홀 중앙에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키가 매우 컸고, 페넬로페와 같은 금발이었다.

라이언의 외침에 제임스가 돌아섰다.

“라이언!”

두 남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서로를 감싸 안았다. 리아는 그런 그들의 뒤에 얌전히 서서 제임스를 관찰했다.

라이언과 제임스의 키는 비슷했다. 그렇지만 이미지는 전혀 달랐다. 제임스는 리아가 알고 있는 전형적인 백인 미남의 모습이었다. 금발에 하얀 피부, 섬세하고 곧은 코, 쌍꺼풀이 짙고 속눈썹이 풍성한 눈.

여자보다 더 아름다운 얼굴, 한마디로 그는 그리스 남신 같았다.

“자네가 돌아왔으니 지금쯤 사교계가 한바탕 난리가 났겠군.”

라이언이 포옹을 풀며 말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여기로 도망을 친 것 아니겠나. 3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교계는 너무 극성스러워.”

제임스가 대답하다가 라이언의 뒤에 서 있는 리아를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그런데 이분은….”

그제야 라이언이 리아를 돌아보며 소개를 하기 위해 입을 열려던 찰나, 제임스가 먼저 선수를 쳤다.

“스톱! 내가 맞춰봄세.”

제임스는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턱을 받치며 리아의 주위를 천천히 돌았다. 그는 마치 조각상과 같은 완벽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금실을 붉게 물들여 놓아도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음이라. 세상 모든 붉은 빛을 가져온다 해도 그녀의 머릿결만 못하니.”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찬사에 리아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도자기를 빚어놓은들 그녀의 부드러운 피부에 비할쏘냐. 여신이 있다면 그건 바로 그녀로다.”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그렇지만 부끄러움도 잠시. 그의 찬사는 점점 과해지고 있었다.

“황금을 박아 놓은 두 눈동자. 너무 아름다워 바라볼 수가 없으니. 그녀를 볼 수 있는 자 오직 그대, 검은 사자만이 그 아름다움을 독차지하네.”

그의 황당한 찬사가 끝나자 라이언이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자리에서 웃지 않는 사람은 리아가 유일했다.

제임스는 드디어 리아 앞에 섰다. 그리고는 허리를 굽혀 멋들어지게 인사를 하더니 손을 내밀었다.

“공작부인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제임스 클라이입니다.”

“반가워요. 브렌트 남작님.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죠?”

리아가 제임스의 손을 재빠르게 잡았다 놓으며 물었다.

“아, 저에 아름다운 시 말입니까?”

“그게 시라구요?”

“문밖에 음유시인의 시를 잠시 빌려왔습니다. 그의 찬양이 너무 흥미로워서 친구를 방문한 목적도 잊고, 한참을 구경했지 뭡니까.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분이기에 그 정도로 찬양하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흐흠….”

음유시인이라는 말에 리아가 라이언을 살짝 째려봤다. 그러게 당장 그만두게 하라고 했죠? 라는 표정으로.

“그런데 그 찬사보다 더 아름다우신 분이 계셔서 정말 놀랐습니다. 음유시인은 벌을 줘야겠습니다. 그는 부인의 아름다움을 반도 표현하지 못하고 있으니까요.”

“네?”

리아는 제임스의 화법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도대체 친구가 어쩜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그는 라이언과는 완벽하게 반대되는 사람이었다.

“제임스. 이제 그만하고 들어가지. 자네는 어찌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군.”

라이언이 제임스와 리아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변해서야 되겠나? 자네가 이 지경이니 나라도 변하지 말아야지. 그래야 우리가 서로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되는 것이 아니겠나.”

제임스는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얄미운 말을 해도 밉지가 않고, 느끼한 말을 해도 설득력이 있는.

그의 등장으로 사교계가 들썩인다고?

리아는 왠지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심술궂은 페넬로페의 오빠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그럼 부인, 제 친구가 하도 성화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아마도 당분간은 이곳에서 신세를 지게 될 것 같은데… 저와의 첫 만남이 부디 불쾌하지 않으셨으면….”

제임스가 다시 손을 내밀며 인사를 청하자 리아는 그의 손을 잡았다.

그때 라이언이 다시 제임스를 재촉했다.

“그만 들어가지.”

“전혀요.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제 불쾌함의 원인은 이 사람 때문인걸요.”

리아가 웃으며 라이언을 돌아봤다.

“공작님. 부디 음유시인을 처리해 주시겠어요? 제 간절한 부탁이에요.”

마주친 라이언의 눈빛은 차가웠다.

‘왜 저러지?’

리아가 길게 의문을 가질 틈도 없이 그가 그녀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녀가 마주 잡고 있는 제임스의 손을 잡아챘다.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나는 친구와 나눌 이야기가 많아서 먼저 가 보겠소.”

“어허, 이 친구가 아직도… 부인, 기분 상하지 않았길 바랍니다. 이 친구가 옛날부터 이렇게 저한테 집착을 합니다. 아직도 그 버릇을 못 고치고….”

라이언은 변명을 주절대는 제임스를 잡아끌었다. 두 친구는 서로 투덜대며 서재로 들어갔다. 혼자 남겨진 리아는 황당함에 고개를 흔들었다.

“하. 이게 무슨….”

제임스의 손을 잡고 들어가는 남편의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옛날부터 집착한다고?

리아는 근처에 서 있는 넬슨을 불렀다.

“넬슨. 서재로 차와 요깃거리를 보내 주겠어? 그리고 손님께서 성에 머무르실 예정인 것 같으니 방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

“네 마님. 준비하겠습니다.”

“오늘 저녁은….”

“저녁은 7시에 예정되어 있습니다. 남작님의 자리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넬슨의 말에 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시선은 여전히 서재를 향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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