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의 비밀-40화 (40/116)

40화. 사랑을 얻는 방법

먼저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리아를 내려다보며 라이언은 협탁에 작은 등불만을 남겨두고 불을 껐다. 그녀는 진짜 잠든 것인지 잠든 척을 하는 것인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배려가 고마웠다. 같은 침대에서 자고 싶다고 말하는 그를 밀어내지 않은 것을. 그날 그 악몽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은 것도.

사랑을 바라는 것이지 유혹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고?

라이언은 지치고 복잡한 몸을 그녀 옆에 뉘었다. 또다시 편안함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어째서 그녀 옆에 몸을 뉘면 이토록 편안한 것이지? 함께 잠들면 불면증과 악몽이 사라진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그에게 꼭 필요한 존재였다. 놓치고 싶지 않은.

그렇지만 그녀가 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그냥 사랑한다고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라이언은 아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잠이 들었는지 그녀는 그를 향해 누워 있었다.

‘잠든 척을 하는 것이라면 내 쪽을 바라보진 않겠지.’

그는 은은한 조명을 무기 삼아 그녀의 잠든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감은 눈 위에는 속눈썹이 긴 그림자를 만들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섬세하고 귀여운 코끝은 손가락으로 톡 건드려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무슨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입꼬리를 살짝 말아 올리고 있었다. 달빛 아래 피부는 너무 따스해 보였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은 마치 금실을 수놓은 것 같았다.

그 역시도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려 누웠다. 고민이 깊은 밤이었다.

턱밑까지 이불을 끌어 올려 덮고 있는 그녀의 옆으로 손가락 끝이 살짝 삐져나와 있었다. 라이언은 그 손끝에 자신의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그녀의 생각을 읽고 싶었다. 뭘 원하는지. 도대체 그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녀는 답이 없었고, 생각조차 읽히지 않았다. 다만 이어진 손끝을 통해 저릿한 기운이 그의 심장으로 스며들 뿐이었다.

***

“무슨 고민이 있으십니까?”

영지의 재정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마주 앉은 자신의 주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자꾸 딴짓하자 매튜가 몇 번을 망설이다 물었다.

“각하.”

대답 없는 라이언을 향해 매튜가 조금 더 큰 목소리를 냈다.

“아, 뭐라고 했지?”

“무슨 고민이 있으신지 여쭸습니다.”

“고민? 내가?”

라이언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다.

“자꾸 다른 생각을 하시는 것 같아 보이셔서.”

매튜의 말에 라이언이 주름진 이마를 문질렀다. 다른 생각을 하긴 했다. 사실 온통 다른 생각뿐이었다. 도무지 자신의 머리로는 답이 나오질 않았다.

“여자들은 뭘 좋아하지?”

예상치 못한 라이언의 질문에 매튜는 말문이 막혔다. 엘리시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소문난 그도 여자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그렇지만 주인의 질문을 회피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여자라면 공작부인을 말씀하시는 걸까?’

매튜는 공작부인이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재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먹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고. 맞다! 부인의 표정이 가장 행복으로 밝아졌을 때는 지난번 백지수표를 드리고 재산을 넘겨드렸을 때였다.

“그, 그게. 제 생각에는 보석이나 돈을 좋아하지 않을까요?”

“확실한가?”

“그런 걸 싫어하는 여자는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매튜의 대답에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석이라.”

***

“마님.”

메리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또?”

메리의 떨리는 목소리와 손에 들린 물건만으로도 무엇인지 감이 온 리아가 체념한 듯 질문했다.

“저기, 그게 이번에는 좀 특별한 거라고….”

특별하다는 메리의 말에 리아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이번엔 또 뭘 보내셨을까?”

남편에게 사랑을 원한다고 이야기를 한 지 오늘로 일주일.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일까? 그날 이후, 하루에도 몇 번씩 진귀한 선물들이 리아 앞으로 도착하고 있었다.

물론 선물이 싫지는 않았다. 그의 노력이 웃기면서도 고마웠다. 아주 처음에는 말이다.

그래도 모든 것에는 정도라는 게 있는 법. 과하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고 했던가? 아무리 귀한 선물도 발에 차일 정도로 많이 받다 보면 감흥이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보석이 보석 같아 보이지 않게 된 지 며칠, 리아의 참을성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디서 사랑을 배운 것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선물을 보내면 여자가 넘어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니….

선물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선물할 줄 모르는 남자보다, 선물하는 남자가 백번이면 백번 다 옳다. 그렇지만 라이언은 너무 심했다. 말 한마디, 쪽지 한 통도 없이 그저 메리를 통해 끊임없이 선물만을 보낼 뿐이었다.

선물의 종류도 다양했다. 온갖 종류의 보석은 물론이요, 방 안에 모든 가구를 바꿔주기도 했다.

그녀의 방 문고리가 황금 고리로 바뀐 것은 애교 축에도 못 들었다. 그의 재산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상상할 수도 없지만, 너무 과했다. 정말 과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요리사 3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그들은 온종일 리아를 위해 온갖 요리를 해다 바쳤다. 다 먹을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음식이 오로지 리아 한 명만을 위하여 만들어졌다.

디자이너 쥬넬은 렌포드로 돌아갔다. 돌아간 이유도 참으로 가관이었다.

이유는 오직 하나였다. 공작부인의 신발과 손가방, 그리고 속옷을 제작하기 위해 더 고급스럽고 더 화려한 재료를 찾아야 한다며 자신의 살롱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모든 것은 라이언의 지시였다.

마구간에는 리아를 위한 모두 7마리의 최고급 말이 대기 중이었다. 꼬박꼬박 하루에 한 마리씩 말들이 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앞으로 몇 마리까지 늘어날지 궁금할 정도였다.

그 모든 것을 견뎌내던 리아의 인내심이 폭발하게 된 것은 바로 오늘 아침이었다.

오늘 아침. 리아를 위한 음유시인과 화가가 성에 도착했다.

심지어 그들은 도착한 그 순간부터 그녀를 위해 노래를 하고 시를 지었으며, 온갖 모습을 그림으로 남겼다. 리아는 더는 그의 이상한 행동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인들 보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라이언은 미친 짓을 하고 있었다.

그가 미친 것이 아니라면 분명 그녀를 놀리는 것이니라.

라이언이 처음 보석을 보내올 때는 좋았다. 보석을 싫어하는 여자는 없고, 리아 역시 다르지 않았으니까.

사실 첫날부터 그가 보낸 보석은, 아무리 선물이라고 해도 한 번에 받기에는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이긴 했었다.

목걸이, 반지, 팔지가 15세트, 브로치 12개, 보석 핀이 27개였다.

통이 참 크다고 칭찬했는데. 그날의 칭찬이 독이 되었을까?

과연 언제까지, 얼마나 오래, 이 짓을 하려나 일주일을 지켜봤다. 그렇지만 더 이상은,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메리! 제발 저 망할 노래 좀 그만하게 할 수는 없을까?”

지금도 그녀의 방, 창문 밖에서는 망할 음유시인이 망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녀의 붉은 머리와 황금색 눈동자, 하얀 피부를 찬양하고 또 찬양하고 또 찬양하는 손발이 오글거려 미칠 것만 같은 노래를.

“그, 그것이. 벌써 몇 번이나 이야기했는데. 자신은 오직 공작님의 명령만을 따를 뿐이라며.”

리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잘 아는 메리는 재빨리 테이블 위에 선물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창가로 달려가서 창문을 단단히 닫고는 공작님께서 이번에 새로 바꿔주신 금실로 짠 커튼까지 꼼꼼히 쳤다. 그런데도 어찌나 목소리가 크고 우렁찬지 음유시인의 노래는 리아를 여전히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소파에 앉아 있는 리아의 시선은 메리가 올려놓은 선물상자 위에 머물러 있었다.

이 정도 크기라면. 도대체 또 뭘 보낸 걸까?

목걸이? 브로치? 머리핀? 그건 이미 수도 없이 많잖아. 손거울? 화장품? 장식품? 그것도 넘쳐나서 정리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야.

어차피 다 그게 그거였다. 리아는 선물상자를 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더는 못 참아!

“공작님은 어디에 계시지?”

“서, 서재에서….”

리아는 서재라는 말을 듣자마자 선물상자를 집어 들고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문을 열자마자 마주친 것은 화가였다. 그는 리아가 방 밖으로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문 앞에 대기하고 있었다.

오로지 그녀의 모든 모습을 화폭에 담겠다는 일념 하나로. 화가를 보니 분노가 더 솟구쳤다.

“정말 단단히 미쳤어!”

리아는 곧장 계단을 내려가 라이언이 있다는 서재로 돌진했다.

쾅-

물론 문이 열렸다가 재빠르게 닫히는 소리였다. 리아는 노크도 인기척도 없이 서재 문을 열어 재꼈다.

그녀는 화가 난 만큼 쿵쾅대며 걸었지만 다행히도 서재 바닥에 깔려 있는 폭신한 카펫 덕에 그는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라이언은 소파에 앉아 매튜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리아는 대답 없이 그의 앞에 선물상자를 내려놓고 허리에 손을 올리고 섰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는 것이라면 괜찮아. 그 정도쯤이야 얼마든지 더 해 줄 수 있으니.”

라이언이 웃으며 말했다. 리아는 그의 말에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이 사람 진짜 미친 건 아닐까?

“어, 얼마든지 더 해 준다고요?”

라이언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감동했나?”

그때 그녀가 내려놓은 선물이 아직 포장조차 풀지 않은 상태라는 사실이 라이언의 눈에 들어왔다.

“마음에 들지 않나?”

“어떻게 알겠어요. 풀어보지도 않았는데.”

리아의 대답에 라이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지?”

“뭐 어차피 풀어봤자 그게 그거 아니겠어요? 이미 많이 받은 것 중에 하나겠죠.”

그게 그거라는 리아의 말에 가만히 앉아 있던 매튜가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보석이라고 다 같은 보석이 아닙니다. 어제 부인께 선물한 그 목걸이만 해도….”

“그만.”

“네?”

“미안하지만 우리 부부의 일에 끼어들지 말아 줄래요?”

“하하하.”

갑자기 라이언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웃지 마세요. 전 지금 심각하니까. 저 밖에서 꽥꽥거리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부른 거죠?”

“꽥꽥?”

“네. 꽥꽥이요.”

그때 다시 매튜가 억울하다는 듯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꽥꽥거리다니요. 그는 엘리시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음유시인입니다. 그를 데려오려고 제가 얼마나 많은….”

“그럼 저 망할 음유시인을 데려온 게, 매튜 당신이에요?”

리아가 매튜의 말을 자르며 언성을 높였다. 매튜는 고개를 돌리며 그녀의 시선을 회피했다.

“오늘 온종일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물 마시는 모습까지도 그림으로 그려대는 남자 역시도, 매튜 당신이 데려왔겠군요?”

“저… 제가 데려오긴 했지만, 모든 것은 공작님께서 생각하신….”

리아의 시선이 다시 라이언을 향해 돌아갔다.

“매튜, 그만 나가 보게.”

라이언의 명령이 떨어지자 매튜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도망치듯 방을 빠져나갔다.

그는 공작부인의 표정과 목소리만으로도 좋지 않은 상황임을 직감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