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리아
컷-
감독의 컷 사인이 촬영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리아! 괜찮아?”
촬영이 멈추자마자 매니저 현석이 달려 나와 리아가 타고 있는 말 밑에 섰다.
“응.”
짧은 대답을 마친 리아가 추운 듯 몸을 움츠리자 현석이 말했다.
“좀 내려와서 쉬어. 너 지금 그 위에서 몇 시간째인 줄 알아?”
“싫어. 다시 올라타기 힘들어. 지금 막 호흡 잡혔단 말이야.”
리아는 영화촬영 중이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장면을 찍기 위해 종일 말을 타는 중이기도 했다.
“이게 무슨 사서 고생이야. 대역 쓰자니까!”
리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오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대역 쓰면 그 비용은 어쩌고?”
“출연료를 우리가 내니? 제작사에서 내는 거잖아.”
“다 알면서 왜 자꾸 그래? 내 계약 조건 몰라? 대역 안 쓰고 직접 찍으면 대역 쓰는 비용도 나한테 입금, 거기에 옵션 금액까지 붙는 거 정말 몰라?”
현석은 오돌오돌 떨면서 돈 이야기를 하는 리아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몇 번 말 타고 돌면 되는 건데 그걸 못 해? 돈 주고 타는 사람도 잔뜩이야. 복 받은 줄 알아야지. 난 도리어 돈 받고 타니까.”
벌써 데뷔 10년 차. 7년간의 길고 긴 무명생활을 뒤로하고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 이제 3년. 톱스타의 반열에 들어선 그녀가 그동안 찍은 광고가 몇 개며, 흥행한 영화와 드라마가 한두 편이 아닌데 리아는 아직도 돈에 약했다. 그것도 매우.
“으… 근데 오늘 왜 이렇게 추워? 여름 다 지나갔나 봐.”
8월에 끝자락이었다. 특히나 촬영장소가 강원도 고지라 그런지 서늘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다.
“이러다 비 오는 거 아니야?”
“그러게 날씨가 아무래도 이상하다. 진짜 비라도 오면 큰일인데.”
심상치 않은 하늘을 보며 리아와 현석이 걱정을 할 때 촬영을 다시 시작한다는 외침이 들려왔다.
“자, 리아 씨 마지막 한 컷만 찍고 집에 갑시다. 이번에는 더 격렬하게 알지?”
감독의 말에 리아가 고개를 끄덕일 때 하늘에서 비가 한 방울 리아의 이마 위로 톡 하고 떨어졌다.
“뭐야?”
리아가 이마를 쓸어 넘김과 동시에 후드득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사방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촬영 스텝과 감독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뭐야. 비와? 아, 이거 오늘 꼭 찍어야 하는데. 리아 씨 괜찮아?”
“감독님 전 괜찮으니까 그냥 찍죠? 빗속에서 달리면 화면이 더 그럴싸하지 않겠어요?”
“리아 씨가 고생 좀 해 준다고 하면 우리야 고맙지. 정말 괜찮겠어?”
그러는 동안에도 빗방울은 더 거세지고 있었다. 비가 더 오기 전에 끝내야만 했다.
“한 번에 가요. 해 볼게요.”
감독은 연신 고맙다는 말을 내뱉으며 자리로 돌아갔다. 리아는 자신이 타고 있는 말을 쓰다듬었다.
“헤븐아 부탁해. 우리 멋지게 해 보자.”
마지막 촬영은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달리며 두 팔을 벌리고 하늘을 바라보는 씬 이었다. 얼핏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 장면이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빠르게 달리는 말 위에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두 팔을 벌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레디.”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리아는 크게 숨을 들이마신 후 고삐를 단단히 잡았다.
“액션.”
“이랴!”
리아의 외침과 함께 헤븐이 끝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픽-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무거웠다. 물에 젖은 솜도 이보다 무겁지는 않을 것 같았다. 리아는 꼭 붙어 떨어지지 않는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해 인상을 썼다.
한참을 애를 쓰던 리아의 눈꺼풀이 무슨 일인지 순간 확 올라갔다. 이상했다. 분명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리아는 두 손을 들어 올려 눈두덩을 문질렀다.
“음….”
눈이 부실 정도로 환한 빛. 리아의 눈에 느껴지는 것은 환한 빛뿐이었다. 빛에 점점 익숙해졌는지 조금씩 주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는 하얀 공간. 리아는 지금 하얀 공간 안에 서 있었다.
“뭐야? 오빠?”
뭐지? 여긴 어디지? 리아는 매니저 현석을 불러보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때 리아의 귓가로 낮고 깊게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름이 없는 아이여. 너의 이번 생은 막을 내렸다. 이제 새로운 생이 너의 앞에 펼쳐질 것이니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세요? 뭐야? 이거 몰래카메라야?”
리아가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따스한 기운이 목 뒷덜미를 스치면서 마지막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리아의 눈앞을 휘감았다.
달리는 말, 떨어지는 빗줄기, 미끄러지면서 말에서 떨어지는 자신의 모습.
“까악….”
자신의 장례식 장면이 지나가자 리아는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뭐야? 나 죽은 거야? 누가 말 좀 해 봐요? 나 진짜 죽었어? 다이?”
죽다니, 고작 말을 타다가 죽다니. 믿기 힘들었다. 지금 보이는 모든 것들이 사실이란 말이야? 리아는 마구 몸을 흔들며 사방을 돌았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름이 없는 아이여. 너의 이번 생은 막을 내렸다. 이제 새로운 생이 너의 앞에 펼쳐질 것이니 나를 따라오너라.]
또다시 리아의 귓가에 똑같은 말이 울려 퍼졌다.
“이런 씨- 뭐가 보여야 따라가든지 말든지 하지!”
리아의 입에서 비속어가 흘러나왔다. 그만큼 상황이 황당했다. 아니 황당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었다. 자신이 죽다니. 스물일곱. 앞길이 구만리 아니 구십만 리는 남았는데 죽어 버리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냐고.
“내가 진짜 죽었다고?”
리아는 목소리만을 들려주는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나 진짜 죽은 거야?”
이런 제길. 리아는 생각했다. 내가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죽어야만 하는가! 피눈물 나는 생활을 뒤로하고 이제 막 빛을 보기 시작했는데 죽어 버린 이유는 무엇인가.
세상에 죄를 짓지도 그렇다고 뭐 베풀며 살아오지도 않았지만, 죽을 만큼 큰 잘못을 한 적은 없다. 물론 오는데 순서 있어도 가는데 순서는 없다지만 이건 정말 너무하지 않은가!
하늘도 무심하시지. 정말 하늘도 무심하시지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혼자요. 자랄 때도 혼자였다. 이제 막 자리 잡고 화려한 삶을 살아보려고 하는데 죽음이라니 억울해도 이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부정하고 싶었다. 순간의 꿈이라고 생각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이상하게도 무슨 이유에선지 점점 마음이 평온해졌다.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리아는 자연스럽게 죽음을 인정하고 있었다.
[이름이 없는 아이여. 너의 이번 생은 막을 내렸다. 이제 새로운 생이 너의 앞에 펼쳐질 것이니 나를 따라오너라.]
또다시 귀가 울렸다.
“개뿔, 도대체 누굴 따라가라는 거야?”
리아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 하얀 공간에 조금 더 있다가는 없던 정신병도 생길지 몰랐다. 하긴 죽어 버린 판에 정신병이 생길 리도 없겠지만.
그때 픽- 하며 리아의 눈앞에 붉은빛이 한줄기 떨어졌다. 떨어진 빛은 이내 리아의 눈높이로 솟아오르더니 부르르 떠는 것이 아닌가!
“이걸 따라가라고?”
리아는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죽으면 이래? 저승사자가 데려가는 게 정석 아니냔 말이야. 무슨 불빛을 따라가래? 투덜거렸지만 자의인지 타의인지 모르게 몸은 이미 붉은 빛을 따라가고 있었다.
- 레테의 강
몇 걸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눈앞의 뿌연 기운이 가시고 주위가 리아의 시선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리아는 눈을 끔뻑거렸다. 여기가 어디야? 정신없는 광경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 웅성대고 있었다.
“자, 거 조용들 좀 합시다. 이거 떠든다고 해서 다시 살아나고 하는 거 아닙니다.”
어디선가 귀를 울리는 걸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아는 고개를 돌려 사방을 살폈지만, 출처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들어 대고 있는데 이상하게도 머릿속에선 그 말의 의미가 또렷하게 박혀 들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리아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금 죽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이게 무슨 황당하고 어이없는 일인가 모르겠단 말이다.
“여기가 어디냐 하면은!”
리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준비했던 멘트인지 걸쭉한 목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자자 망자들 집중하세요. 지금 여기는 레테의 강 제37구역. 그러니까 대한민국에서 사망하신 분들이 모이신 곳입니다.”
“레테의 강?”
모든 사람이 다시 웅성대기 시작했다. 개중에는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나이든 노인도 있었다. 울며불며 난리 치는 사람부터 벌써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표정의 사람도 있었다.
“그러니까 뭐 한국에서 쓰는 말로 그냥 요단강이나 삼도천쯤으로 알아들으세요. 여기까지 오신 분들은 모두 환생을 하실 겁니다. 운 좋으신 줄 아세요. 그나마 잘 살아오셔서 지옥 불에 안 떨어지고 오신 거니까.”
“환생?”
리아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소리쳤다. 내가 지금 죽었고 여기서 환생을 할 거란 말이야?
“개망할. 헤븐 타고 좀 달렸더니, 그게 지금 진짜 날 천국에 데려다 놓은 거야?”
죽기에는 좀 억울했다. 아니 많이 억울했다. 이제 좀 인기 얻어서 돈도 모으고 명예도 얻는가 싶었는데 죽다니. 벌써 죽어 버렸다니 다 부질없는 것이지만 제대로 써 보지도 못하고 아껴만 두었던 돈들이 너무 아까웠다.
“모두 집중하세요. 투덜대셔도 어차피 여기서는 돌아갈 방법이 환생밖에 없습니다. 죽음이야 우리 내 인생에 누구나 결국은 겪게 되는 일. 그 순서가 조금 빠르고 늦다뿐이지 피할 수 없는 것임을 다 잘 알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걸쭉한 목소리가 계속될수록 리아의 심기는 점점 더 불편해졌다. 그러니까 뭐야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뭐 이딴 소리야? 지금 나한테?
아무래도 꿈같았다. 아니면 몰래카메라가 분명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사후세계가 존재할 리 만무했고 한국 사람끼리만 모아서 환생시키는 것도 웃겼다.
“저기요. 이봐요? 이거 몰래카메라죠? 지금 촬영하는 거죠?”
리아는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남자를 향해 물었다.
“리아?”
리아와 눈이 마주친 남자가 갑자기 눈을 휘둥그레 뜨며 소리를 질렀다. 남자의 큰 목소리에 제각기 현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정신없던 죽은 자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해 집중되었다.
“뭐? 탤런트?”
“리아라고?”
“리아가 죽었어?”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잊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을. 죽음이라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신이 팔려 아주 잊고야 말았다.
제각기 자기 죽음을 받아들이며 울고 웃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리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진짜 리아야?”
“어머, 나 진짜 팬이야!”
“리아가 누구야?”
“잠깐, 저 잠깐….”
순식간에 리아의 주변이 아수라장을 변했다. 죽었는데, 이미 죽어 버렸는데. 이제 곧 환생이라는 것을 한다는데! 그런데도 연예인이 뭐라고. 그게 그렇게 궁금하고 보고 싶은 것일까?
몰려든 사람들로 리가 허우적댈 때였다.
삐
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자신을 향해 달려들던 사람들도, 여기저기 만져대던 사람들도.
“거, 사람들이 죽었어도 변함이 없네. 연예인이 그렇게 좋은가.”
“네?”
나한테 하는 말인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다들 멈춰 있을 뿐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 찾아도 안 보이니 괜히 힘 빼지 마시구랴. 아무래도 님께서는 저 끝쪽에 서 계시다가 마지막에 환생하시는 것이 좋겠소. 흠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리아의 몸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
“거, 내가 다 님을 배려해서 이러는 것이니 이해 부탁합니다. 내가 좋은 곳으로 환생시켜 드리겠소. 거, 정 고마우면 이따 가시기 전에 흠흠, 그 사인이라도 한 장 해 주고 가면 되고….”
리아의 대답이 나오기도 전에 소리가 멀어졌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피니 대열의 맨 끝쪽이었다. 더군다나 앞에 사람들과 자신 사이에는 무슨 막 같은 것이 존재하는 듯했다.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사람들은 금방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모두 잊은듯했다. 다시 울고 웃으며 자신들의 상황에 빠져들었다.
“야 이 거지 같은 놈아. 내가 죽은 거야? 나 죽었어? 이거 진짜 장난치는 거 아니야? 나 진짜 죽었냐고? 좋은 곳에 환생? 사인 한 장? 그깟 사인 백 장이래도 해 줄 수 있어. 그러니까 대답 좀 해 봐. 나 죽었어?”
“죽었소.”
굵고 짧은 대답이었다. 돌아온 대답에 힘이 쭉 빠졌다. 그래 죽었네. 진짜 죽은 거네. 이게 모두 꿈은 아닌 거구나.
“순서대로 줄을 서서 여기 강물 한 모금 마시고 좋은 맘으로 환생합시다. 다음 생에는 부디 오래오래 살아서 아주 나중에 만납시다.”
저승사자인지 뭔지 알 수 없는 존재의 말을 끝으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줄의 맨 끝. 리아가 서 있는 자리였다. 어찌나 죽은 사람이 많은지 차례가 오려면 아주 까마득했다. 죽는 사람이 참으로 많기도 하구나.
이렇게 된 바에는 사인 한 장 해 주고 그냥 좋은 집에 환생이나 해? 어차피 이번 세상 외로웠으니 다음 생에는 가족들 북적북적하고 좀 먹고살 만한 집으로 태어나게 해 달라고 빌어봐? 리아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미 리아에게 죽음은 현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