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 부인의 비밀-7화 (7/116)

7화. 베드포드 성을 향해

결혼식은 끝이 났다.

이제 레오니에게 남은 것은 작은 짐가방 하나뿐이었다. 작은 가방 안에는 초라한 옷가지 몇 벌이 들어 있었다.

왕비 제시카는 마지막 정을 베풀기라도 하듯이 레오니에게 수많은 드레스를 선물했다. 그렇지만 레오니는 그 드레스를 가져오지 않았다.

드레스는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은 성을 벗어나면 죽을 것이다.

죽기 위해 성을 벗어나는 것. 그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웨딩드레스를 벗고 늘 걸치고 다니던 초라한 옷을 입은 레오니는 더욱더 작아 보였다. 마치 어린아이 같았다.

그녀는 아델 궁 앞에 혼자 섰다. 시녀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겁이 났는지 아니면 라이언을 겁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결혼식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시녀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들어보니 라이언의 상처가 생각보다 흉측하다는 것 같았다. 꿈에 나올까 무섭다고.

웨딩 베일에 가려 라이언의 얼굴을 확인하지 못했다. 아니 베일을 쓰고 있지 않다고 해도 레오니는 보지 못했을 것이다. 고개를 들어 주위를 확인할 만큼의 용기는 없으니.

조용하고 음산한 아델 궁 앞에 소란스러운 기척이 들려왔다. 드디어 공작이 그녀를 데리러 온 것이었다.

“짐은 그게 다인가?”

라이언이 초라한 차림으로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는 레오니를 향해 물었다. 라이언의 등장으로 긴장감이 몇 배는 증폭된 레오니는 역시나 대답을 하지 못하고 살짝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녀로서는 최선의 반응이었다.

라이언 역시 아직 신부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얼굴에 작은 보닛을 둘러쓰고 있어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이라고는 말라비틀어진 몸뚱이와 보닛 사이로 삐져나온 헝클어진 빨간 머리, 그리고 공주라고는 보기 힘든 초라한 옷차림뿐이었다.

“옷은 그것밖에 없나?”

여전히 레오니에게는 대답이 없었다. 라이언은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미쳤다는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렇다고 쳐도 답답하고 미련한 것은 참기 어려웠다.

베드포드 성까지는 삼 일 이상 말을 타고 달려가야 하는 길이었다. 그것도 쉬지 않고 달렸을 때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아내가 된 여자 덕분에 마차를 끌고 가야 하니 족히 5일은 더 걸릴 것이었다.

뭐 그나마 다행인 점은 끝까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라이언이 인내심을 발휘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말을 하지 못하나?”

레오니가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작은 손을 말아 쥐었다. 그리고는 간신히 끌어낸 듯한 작고 갈라지는 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아… 아… 아닙니다. 제… 무… 물건은 이… 이것… 이… 전부….”

그것마저도 끝까지 마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말더듬이로군.’

라이언은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정도까지 더듬기는 어려웠다.

“고개를 들어 나를 봐.”

라이언의 압도적인 목소리가 레오니를 떨게 하였다. 라이언의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그의 명령에는 거역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레오니는 라이언의 말에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드디어 신랑과 신부가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라이언은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애써 피하고자 하는 흔들리는 시선에서, 힘겹게 떨고 있는 어깨에서도 그녀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는 가죽만 남은 얼굴은 비참할 지경이었다.

뭐 이 역시도 라이언은 예상했던 바였다. 쫓겨나듯 결혼을 한 것만 보더라도 그녀는 분명 환영받는 공주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이해할 만했다. 지금껏 그녀처럼 얼굴의 흉터를 유독 불쾌해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사실 레오니는 라이언의 상처를 마주한 순간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두려웠다. 지금껏 수많은 유령을 보았고 그들의 흉측한 모습을 마주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라이언의 상처는 그녀를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무서웠다. 그것은 원초적인 두려움이었다.

라이언은 레오니의 얼굴을 힐끗 쳐다보고는 바로 등을 돌렸다.

“그만 가지. 갈 길이 멀군.”

라이언은 자신의 아내가 된 공주에 대해 생각했다.

도대체 그녀는 왕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은 것인가? 얼굴은 정말 볼품이 없었다. 하나뿐인 공주가 먹을 것이 부족할 리가 없을 텐데. 길거리의 걸인보다도 마르고 거칠한 것이 의문이었다.

몸이 마른 것은 물론이요, 얼굴은 더 심했다. 눈은 해골처럼 퀭했으며 양쪽 볼은 움푹 팼다. 그토록 창백한 얼굴은 처음이었다.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이라고는 황금색 눈동자인데 그마저도 빛을 잃고 어두웠다.

결혼식장에서 마이클이 했던 말이 이해가 갔다. 정말 그녀는 어린아이 같았다. 17살이란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출발의 시각이 다가왔다.

라이언은 레오니가 마차에 오르는 것을 확인한 후 자신의 말에 올라탔다.

“대장. 마차를 타고 안 가십니까? 신부 혼자 남겨 두다니 너무 하십니다요.”

마이클이 놀리듯 말했다.

“내가 마차를 탈 사람으로 보이는가?”

라이언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 말을 출발시켰다. 라이언을 선두에 두고 검은 기사단 일행이 드디어 엘리시아 왕국의 수도 르셀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덜컹대는 마차 안에 앉은 레오니는 가슴에 두 손을 올렸다. 믿어지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정말이었다. 레오니는 자꾸만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해야만 했다.

드디어 끝이다. 자신은 결국 성을 벗어나고야 말았다. 레오니는 마차를 타고 출발을 했음에도 그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 손을 들어 올려 볼을 꼬집었다.

껍데기만 남은 볼은 꼬집기조차 힘들 정도였지만 분명 아팠다. 꿈은 아니었다. 자신은 지금 정말로 저 어둠으로 가득했던 성을 벗어나는 중이었다.

“하….”

레오니의 입에서 오랫동안 참아왔던 탄성 같은 숨이 새어 나왔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자신의 남편이라는 베드포드 공작을 떠올리니 다시금 가슴이 답답하고 불안해졌다.

끔찍해. 남편이라는 남자는 너무 끔찍한 사람이었다. 산처럼 큰 덩치도 그렇지만 목소리도 위협적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이마의 흉터였다.

레오니는 그를 바라보기가 역겨웠다. 왜 하필이면 그런 사람이 나의 남편인 것일까?

레오니의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차는 쉼 없이 달렸다.

레오니는 꼬박 하루 하고도 반나절 이상을 마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밖으로 나와 쉬라는 몇 번의 권유가 있었지만, 레오니가 답하지 않자 그것도 뜸해졌다.

간단한 주먹밥 정도의 식사를 마차 안으로 들이밀었지만 먹지 않았다. 생리현상도 일어나지 않는 것인지 라이언은 궁금증이 일었다.

덜커덩-

갑자기 마차가 멈춰 섰다.

출발한 지 하루가 넘어가면서부터 조금씩 풀리기 시작한 긴장에 자신도 모르게 선잠이 들었던 레오니의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

그때 누군가 마차를 두드렸다.

“잠깐 들어가겠소.”

라이언이었다.

마차가 멈춰 섬과 동시에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레오니는 다시금 몸을 곧추세웠다.

들어오라는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라이언이 마차 안으로 올라탔다.

레오니는 자신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한쪽 구석으로 몸을 기대며 움찔했다. 마차 안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마주한 라이언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위협적이고 무섭게 느껴졌다.

“할 말이 있소.”

이어지는 라이언의 말에도, 레오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몸을 떨 뿐이었다.

“나는 이 길로 렌포드로 떠날 것이오. 물론 당신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지.”

렌포드. 엘리시아의 수도 르셀 다음으로 큰 도시였다.

‘렌포드?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고?’

레오니가 무슨 말인가 싶어 고개를 살짝 들었다가 라이언의 흉터를 마주하고는 다시 놀라 고개를 숙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뭐 고개를 들 필요는 없소. 듣기만 하시오.”

레오니의 두려움을 느꼈는지 라이언이 말했다. 레오니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도 우리의 결혼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으로 생각하오. 나에게 남편의 역할을 바란다거나 그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지금부터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오.”

자그마한 몸을 웅크린 채 마차 한쪽 구석에서 벌벌 떨고 있는 레오니를 보고 있자니 라이언은 기분이 묘하게 이상해졌다.

두렵겠지. 종종 흉터를 극도로 혐오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비슷했다. 지금 그의 아내가 된 여자처럼.

결혼했다고 해 봤자 형식적인 것뿐. 아내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 있는 레오니라고 반응이 다를 이유가 없었다. 라이언은 눈을 살짝 감았다가 뜨며 우울한 상념에서 깨어났다.

“당신은 원래의 목적지인 베드포드 성으로 갈 것이오. 그곳에 미리 연락해 두었으니 생활하기에 불편함은 없을 것으로 생각하오.”

레오니의 반응을 살피는지 라이언이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시작했다.

“나와 함께 하기를 기대한 것은 아니겠지?”

라이언의 말에 레오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함께 가고 싶다는 말이오?”

라이언이 말하자 놀란 레오니가 꽉 잠긴 목을 다듬어 애써 소리를 냈다.

“아… 아니…요.”

쇠를 긁어대는 듯한 묘한 소리였다. 라이언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라이언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레오니는 가슴이 두근거려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지금 저 사람이 하는 말이 다 진실이지? 나와 함께 가지 않겠다는 게?’

듣고도 믿어지지 않는 상황이었다. 정말 혼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럼 알아들은 것으로 알겠소. 시종을 붙여 줄 터이니 조심히 가시오.”

마지막 말을 남기고 라이언이 마차에서 내렸다. 레오니는 여전히 마차 벽에 붙은 그 자세 그대로였다. 작은 움직임조차 없었다.

그때 레오니의 얼굴에서 물방울 하나가 굴러떨어져 무릎으로 툭 하고 떨어졌다.

눈물. 레오니는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다.

마차에서 내린 라이언은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레오니 엘리시아.

가까이에서 지켜본 레오니는 더 기괴했다. 왕국의 하나뿐인 공주라는 말이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한 볼품없는 모습에 라이언의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다. 사람이 저렇게까지 마를 수도 있는 것인가?

레오니에 대한 생각으로 인상을 찌푸리던 라이언이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 신경 쓰지 말자. 어차피 이름뿐인 아내인 것을.

자신은 아내를 얻기 위해 결혼을 한 것이 아니었다. 왕의 부탁 같지 않은 부탁을 들어준 것은 모두 모엘르 검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공주 역시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라이언이 부모로부터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치였다. 말하지 않아도 표정만으로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는 능력. 그 묘하고도 안타까운 능력은 살기 위한 본능적인 몸부림이었다.

공주의 얼굴은 말하고 있었다. 혼자 남겨진 기쁨을. 정말 이상한 여자였다.

“대장. 안 가십니까?”

그때 단원 중 하나가 소리쳤다. 검은 사자단에게는 미리 언질 준 일이었다. 수도를 벗어나서 갈림길에 다다르면 공주는 베드포드 성으로, 자신들은 렌포드로 떠나리라는 것을. 자신의 결혼이 형식적인 것임을.

처음에는 공주님을 두고 그러시면 안 된다며 투덜거리는 단원들도 있었지만, 공주의 상태를 보고 난 후로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이는 듯했다. 그만큼 그녀는 섬뜩하고 묘했다.

라이언은 레오니가 타고 있는 마차 주위를 한 바퀴 돌며 살펴보고 난 뒤 레오니를 베드포드 성까지 데려다줄 시종들과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남겨둔 단원들 몇몇을 향해 손을 흔들고는 미련 없이 렌포드로 향하는 길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레오니는 베드포드 성을 향해 가는 길목에 혼자 남겨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결혼을 함으로써 드디어 온전히 혼자의 몸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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