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님들의 말랑한 최강 귀요미 (163)화 (163/164)

163화. 

생각하지도 못한 축가에 펑펑 운 나를 아빠가 다독였다. 그러고는 언니와 오빠를 보고는 두 팔을 벌렸다.

“우리 큰 딸, 우리 아들…… 한번 안아 보자꾸나.”

아빠의 말에 눈물을 머금은 언니와 픽, 웃은 오빠가 와서 조심히 안겼다.

“정말이지 아버지, 결혼식을 이렇게 감동적으로 만들면 어떻게 해요?”

“네 결혼식에 못 해 줘서 서운하더냐? 그럼 한 번 더 해도 돼. 딴 놈이랑. 그땐 내가 기쁨의 댄스까지 춰 주마.”

이 와중에도 나이 먹은 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은 티를 낸 아빠의 말에 언니는 울다가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기쁨의 댄스가 뭔지 모르겠지만 그건 내세를 기약할게요. 그때도 아빠의 자식으로 태어날 거니까 사랑으로 키워 주세요.”

“내세에 내 등골을 빼먹겠다고 예약을 하는 소리로 들리는구나. 뭐, 좋다. 그러려무나. 그땐 네게도 멋진 어미가 있을 테니까. 부디 엄마와 내 사이를 질투하지 말거라.”

“어? 그건 안 되는데. 아빠의 가슴은 내 건데! 엄마가 있으면 이건 엄마 거잖아요.”

내 눈물로 젖은 듬직한 가슴을 콕콕 누르며 말하자 아빠는 어깨를 으쓱였다.

“이기는 사람이 가지는 것으로 하자꾸나. 내가 보기엔 우리 구운 찹쌀떡이 이길 것 같아. 이렇게 쫀득하게 달라붙어서 안 떨어질 테니까.”

잠시 가족끼리 이야기를 하며 서로의 눈물을 닦아 주며 웃었다. 그러고는 뒤를 돌아봤다. 방긋 미소 지은 씨엘을 향해 손을 뻗자 금세 다가와서 내 손을 꼭 잡았다.

“이제 하객으로 오신 분들께 인사를 하고 피로연을 하자꾸나.”

아빠의 말에 씨엘과 함께 먼저 가족들을 찾아가 인사를 했다. 미네르바의 입술은 귀에 걸린 지 오래였다.

“우리 포슬포슬한 백설기가 이젠 법적으로도 내 가족이 된다니 너무나 기쁘구나. 부디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자꾸나.”

방을 새로 꾸며 놨으니 언제라도 오라는 말에 나와 씨엘은 미소로 답을 했다.

“이, 이모…….”

기사가 된 콜린이 다가오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어렸을 때부터 나와 결혼하겠다고 노래를 부른 콜린은 입술을 깨물며 주먹을 쥐었다. 혹여나 씨엘을 때리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바르르 떤 손을 풀더니 가까스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봤다.

“결혼 축하해.”

“응, 고마워.”

“이모 덕분에 무사히 기사가 되었어. 만약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모를 팔아서 아카데미에 보내지 않았으면 기사는커녕 공작이 되어서 놀고먹기만 했을지도 몰라.”

멋진 남자와 결혼하겠다는 말에 형부와 언니는 콜린이 반항할라치면 나를 신나게 팔았다. 그 덕에 아카데미에 들어가서 무사히 기사가 된 콜린은 아쉬움을 삼키며 나를 꼭 안았다.

“나 이제 기사가 되었는데 진짜 멋진 남자가 된 것 같지 않아?”

“그래, 우리 콜린은 진짜 멋진 남자야.”

“그럼 나 그 부케 줘.”

“어? 아…….”

생각해 보니 부케를 던지지 않았다. 결혼식 절차를 줄이다 보니 부케 던지는 것도 빼 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멋진 기사님이 된 콜린에게 건네줬다.

콜린의 푸른 눈과 부케가 잘 어울려 보였다. 부케를 조심히 잡고 향을 맡은 콜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젠 이모가 나랑 결혼 못 하니까…… 내 반려감 찾아 줘.”

“뭐?”

“티그리스 형님들이랑 외삼촌을 결혼시켜 줬잖아. 그니까 이젠 내 결혼도 시켜 줘야지. 단! 2년 후에, 이모를 떠나보낸 내 마음을 진정시키려면 그 정도 기간이 필요할 것 같아.”

이러다가 진짜 중매쟁이가 될 것 같았다. 어이없는 표정을 짓다가 시무룩해진 커다란 강아지가 된 콜린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줬다.

“콜린이 형부랑 언니한테 가문을 경영하는 법을 군말하지 않고 배우면 생각해 볼게.”

“핏! 하여튼 우리 이모는 공짜가 없어. 그래도 절대 밉지 않지만.”

툴툴대는 콜린의 볼에 입맞춤을 하자 기분이 금세 좋아졌는지 어렸을 때처럼 배시시 웃었다. 아직도 어린아이 같은 콜린을 뒤로한 채 실베스터 왕국에서 온 하객을 봤다.

“고모님,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모님, 정말 축하드려요.”

인연이 닿은 지 오래되었지만 라파엘과 미카엘라는 여전히 나를 고모님이라고 불렀다.

“근데 아이린과 제이비어는?”

“으음, 지금 둘 다 방에서 대성통곡 중일 겁니다. 그래서 못 데려왔어요.”

제이비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이린도 나와 결혼하겠다고 남매가 선의의 경쟁을 펼쳤다. 내 반려가 되려면 멋진 사람이 되어야 하기에 힘든 수업도 싫다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했다던데.

역시 내가 죄인인 게 분명했다. 

“이러다가 아이린과 제이비어가 엇나갈 것 같아서 큰일이에요. 그러니 가까운 시일에 왕궁에 한 번만 들러 주세요.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중하게 말하는 라파엘을 본 나는 씩 웃었다. 그의 속내가 슬쩍 비쳤다. 아이린과 제이비어 때문이 아니라 그저 나를 왕국에 초대하고 싶어 하는 티가 났다.

“뭐 시간 나면 씨엘이랑 같이 갈게. 그러니까 라엘은 아이들 단속 잘해. 미카 언니도.”

“오실 때 미리 연락 주세요. 고모님이라면 약속 없이 오신다고 해도 언제든지 환영해요.”

본디 씨엘에게 먼저 허락을 받아야겠지만 평소처럼 내 마음대로 결정하고 말았다. 그 결과 뒤에서 씨엘의 표정이 약간 굳었다.

“씨엘? 미안, 내가 멋대로 결정해서.”

“괜찮아. 난 라피의 옆에 있을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하니까.”

조신한 남편이 된 씨엘은 포스스 웃으며 내 손을 잡더니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슬쩍 긁었다. 간지러움에 씨엘을 봤다. 얼굴이 살짝 익은 복숭아처럼 변한 씨엘의 속내가 금방 파악이 되었다.

“얼른 인사하고 피로연에 참석하자. 그래야 우리도 일찍 쉴 수 있지.”

“응.”

얼른 인사를 해치워 버리자고 했지만 생각한 것만큼 빨리 진행되지 않았다.

“난 우리 라피 앞에 보석 지압 발판을 끝도 없이 깔아 줄 수 있는데.”

“지압 발판에 박힐 보석은 서부에서 진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난 우리 라피가 그 누구에게도 고개 숙이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펴게 해 줄 수 있는데.”

“우리 라피는 황태자 전하가 황제가 된다고 해도 절대 고개 숙이지 않을 거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때아닌 클레어런스와 씨엘의 기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 모습을 본 루카스는 어색하게 웃으며 피곤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라피의 결혼식에 참석해서 절대 이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습니까.”

“싸우지 않겠다고 했지, 도발에 반응하지 않겠다고는 하지 않았어.”

“아무도 형님을 먼저 도발하지 않았습니다만.”

“루피노 백작은 생긴 것부터가 도발적이야. 쳇! 예쁘지만 않았으면 라피가 버렸을 건데.”

클레어런스와 루카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쓸데없는 말 대신 쓸데있는 선물은 안 가져왔어?”

“우리 라피는 너무 속물적이라니까. 대놓고 밝혀. 그래서 더 좋긴 하지만.”

툴툴대면서도 선물은 피로연 때 주겠노라고 말한 클레어런스를 보며 나직하게 경고를 했다.

“예전처럼 선물이랍시고 또 그딴 것을 보내면 네 입에 전부 쑤셔 넣고 삼키게 할 거야.”

“그러는 라피, 너도 만만치 않았잖아.”

예전에 나를 닮은 것을 발견했다며 선물을 준 적이 있었다. 황태자가 주는 거니 분명 좋은 것이라고 여겨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고급스러운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가 그대로 덮었다.

콩가루가 아닌 금가루를 묻힌 찹쌀떡이었다. 정색을 한 나는 클레어런스를 보며 고맙다고 말한 후 답례품을 보냈다. 클레어런스를 닮은 것으로.

마침 통신을 하고 있을 때 선물이 도착했고 클레어런스가 뚜껑을 열자마자 펄쩍 뛰어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살아 있는 금개구리가.

“그건 클렌이 먼저 장난친 거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황족한테 바로 보복하는 것은 라피가 최초일 거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서로 씩 웃었다.

“라피, 진심으로 말하건대 부디 행복하게 살길 바랄게. 그리고 자주 연락하고.”

“응, 고마워. 클렌도 루카스랑 행복하게 살았으면 해.”

아옹다옹 다투다가 덕담을 나눈 후 얼른 다른 하객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초청된 하객에게 인사가 끝나자 피로연이 시작되었다. 

악단의 연주 소리가 들리자 자연스럽게 오늘의 주인공인 나와 씨엘이 먼저 춤을 췄다.

“저기 라피, 우리 언제 여기 빠져나가?”

아직 훤한 대낮이건만 벌써 신방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씨엘의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마 내가 가족들과 전부 춤을 춘 후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너무 피곤해서 얼른 쉬고 싶은데. 라피는 괜찮아?”

수인족인 씨엘이 체력이 떨어져서 피곤하진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끼를 부리는 씨엘의 물음에 나는 조금만 기다리라며 씨엘을 다독였다.

첫 춤이 끝난 후 당연하다는 듯 아빠가 손을 내밀었다. 푸른 눈동자가 살짝 붉게 물든 아빠는 미소 지었다. 춤을 추는 동안 아빠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만 되뇌었다. 

아빠와의 춤이 끝나자 할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건네주셨다.

“라피, 내 새끼…… 그 조그만 아이가 벌써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이야. 세월이 참 빠르구나.”

처음 만났을 때보다 나이 든 할머니는 음료를 다 마시고 한숨 돌린 나를 품에 꼭 안아 주셨다.

“저는 이렇게 컸는데 할머니 품은 그대로네요.”

“당연하지, 우리 새끼를 안아 줘야 하는데 변하면 어찌하겠느냐. 내 새끼, 우리 말랑 콩떡…… 결혼했어도 할머니 집에 오는 거 잊으면 안 된단다. 알겠지?”

“당연하지요. 티그리스 공작저에 제 가족이 얼마나 많은데요. 특히나 저 말썽꾸러기들이 나이 좀 먹었다고 이제 철이 들었나 보네요.”

내가 나이 먹은 만큼 쌍둥이도 어느새 부쩍 커서 더는 장난을 치지 않았다. 그저 내게 달려와서 안기며 자주 와 달라고 보챌 뿐이었다.

“고모, 오늘 너무 예쁘더라. 또 한 번 결혼하면 안 돼?”

제이든이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씨엘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장난이란 것을 알면서도 막 결혼한 새신부에게 하기엔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았다.

“힘들어서라도 두 번은 못 할 것 같아. 그나저나 마리엘은?”

“말도 마. 여길 못 오게 되었다면서 어찌나 서운해하는지 몰라.”

만삭의 마리엘은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곳에 올 수 없었다. 내 결혼식에 오려고 일 년 전부터 준비했다는데 인간사가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뭐 어쩔 수 없지. 마리엘한테는 출산 후에 안정기가 되면 가겠노라고 전해 줘.”

“응, 알겠어. 근데 이젠 고모할머니라고 불려도 될 나이…….”

“우선 맞고 시작할까? 이제 아이 아빠가 된다고 좀 풀어 줬더니 기어오르네? 우리 나이 많은 조카님!”

자그만 주먹을 보이며 말하자 제이든이 어깨를 으쓱이며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마법사가 통신구를 들고 이쪽으로 뛰어왔다.

“티그리스 공작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급한 일이라고 합니다.”

통신구에는 마리엘의 모습이 비쳤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통신구 앞에 앉은 마리엘은 부푼 배를 꼭 붙잡은 채 말을 했다.

- 고, 고모님…… 결혼 축하…… 아흐윽…… 드려요…….

그 말을 끝으로 마리엘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순간 놀라 그대로 굳어 있다가 정신을 차린 내가 제이든의 팔을 때리며 말했다.

“아기가 나오려나 봐. 당장 안 가고 뭐 해! 할아버지, 아빠, 형부! 비상사태예요!” 

마리엘의 출산 임박에 3일간 이어질 피로연이 일시에 중단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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